<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③외로운 선택 ‘1149’ 굴레

모두가 기쁜 날, 누군가는 죽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망 장소·사망의 원인·사망의 종류. 한 사람의 삶이 종이 한 장으로 갈음된다. 이 종이에 적힌 내용으로 죽음 이후의 상황이 엇갈린다. 누군가는 장례식장으로, 누군가는 부검대로. 고인의 마지막 숨이 남은 현장에는 종이 너머의 삶이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과 경찰청은 2015년 3월1일부터 2021년 3월31일까지 6년1개월 동안 서울 강서‧양천‧구로와 경기 부천 지역에서 현장검안 사업을 운영했다. 교통사고를 제외한 모든 변사사건에 법의관이 직접 출동해 검안업무를 진행한다는 내용이다. <일요시사>가 총 1만279건의 현장검안 출동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남녀노소
마감한 삶

#1. 새해 첫날. 많은 사람이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날에 누군가는 스스로 생명의 빛을 꺼뜨렸다. 2018년 1월1일 서울 구로에서 50대 남성이 화장실에서 목을 매 사망했다. 다음해 1월1일에도 집에서 목을 매 사망한 50대 남성이 발견됐다. 그는 평소 술을 마시고 자주 죽는다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2. 추석 연휴. 2015년 추석 연휴(26~28일) 동안 남성 3명이 각각 양천(70대), 강서(60대, 70대)에서 목을 매 사망했다. 2016년 추석 연휴(14~16일)에도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끊은 여성이 발견됐다. 2017년(10월3~5일), 2018년(9월23~25일)에도 추석을 전후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3. 크리스마스. 온 도시가 불빛으로 가득한 이날 어둠 속에서 조용히 죽어간 사람이 있다. 서울 양천에서 3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그녀는 집 화장실에 번개탄을 피웠다. 같은 날 서울 소사에서 60대 남성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야산에서 목을 맸다.


#4. 청소년 극단적 선택. 2018년 5월 13세 아이가 멀티탭 전선으로 목을 매 사망했다. 아이의 휴대폰에는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같은 달 14세 아이가 방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적이 나빠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뒤였다. 2015년~2021년 강서‧양천‧구로‧부천 지역에서 청소년(13~19세)이 극단적 선택(추정) 등 외인사로 사망한 사건은 71건이다. 

#5. 노인 극단적 선택. 같은 기간 65세 이상 노인 316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대체로 주거지에서 목을 매는 방식으로 사망했다. OECD 회원국의 노인 극단적 선택률(인구 10만명 당) 평균은 17.2명이고 한국은 46.6명(2019년 기준)으로 OECD 평균과 비교해 2.7배 높다.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부패 때까지 방치되는 노인
사회복지사 있으면 발견 빨라

국과수는 2223일 동안 강서 3094건, 양천 2352건, 구로 2463건, 부천 2370건 등의 변사사건에 출동했다. 이 가운데 1149명이 극단적 선택(추정 포함)으로 사망했다. ‘목맴’ ‘추락’ 등은  CCTV로 확인되지 않거나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경우 ‘미상’으로 분류했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극단적 선택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변사사건 대비 극단적 선택(추정) 비율은 11.2%에 이른다. 강서 12.5%(386건), 양천 10.9%(257건), 구로 10.6%(260건), 부천 10.4%(246건) 등이다.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변사자 10명 가운데 1명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셈이다. 전체 극단적 선택의 98%가 목맴(의사)·추락사·중독사 등 3가지 방법으로 이뤄졌다. 

극단적 선택자는 남성이 805건으로 여성(341건)과 비교해 2.3배 많았다. 연령별로는 10대 27명, 20대 103명, 30대 150명, 40대 177명, 50대 247명, 60대 184명, 70대 167명, 80대 76명 등으로 나타났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율이 높고, 연령별로는 50대에서 가장 많았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간한 <2022 자살예방백서>(2020년 기준)에 따르면 2020년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명당 25.7명이다. 남성이 35.5%(9093명)로 여성 15.9%(4102명)과 비교해 2.2배 많다.


집에서 사망
전체 3.4배

80세 이상이 가장 높지만 극단적 선택자 수는 50대에서 가장 많았다. 남성은 ▲11~30세 ‘정신적 어려움’ ▲31~60세 ‘경제적 어려움’ ▲61세 이상 ‘육체적 어려움’을 극단적 선택 동기로 꼽았다. 여성은 전 연령대에서 ‘정신적 어려움’이 첫손에 꼽혔다. 

변사사건 발생 장소는 주거지가 가장 많았다. 전체 변사사건의 과반(56.4%)인 5794건에 이르렀다. 출동장부에 명확하게 ‘주거지’ ‘주거지 내 사망’으로 기재된 사건만 산출한 수치로, ‘고시원’ ‘고시텔’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 건수는 더 늘어난다. 강서 1734건(56.0%), 양천 1167건(49.6%), 구로 1276건(51.8%), 부천 1617건(68.2%) 등이다.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출생·사망통계(잠정)’에 따르면 전체 사망자의 74.8%가 의료기관에서 사망했다. 주택에서 사망한 비율은 16.5%로 나타났다. 사망 장소를 알 수 없는 사망자를 포함한 기타는 8.7%였다. 변사사건에서 주거지(주택) 내 사망 비율과 비교했을 때 3분의 1 수준이다. 

변사사건의 10% 극단적 선택
50대 남성에서 가장 많았다

사체가 부패된 채 발견된 변사사건은 303건(3%)으로 확인됐다. 사체 발견이 늦어 부패가 진행되면 부검을 하더라도 사인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 2014년 전남 순천의 매실밭에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장기가 다 부패돼 끝내 사인을 알 수 없었다.

즉 사체 발견까지 오래 걸릴수록 사인 규명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독거노인 가운데서도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 등의 관리를 받고 있는 이들은 사망 후에도 발견이 빨라 사체의 상태가 온전한 경우가 많았다. 또 주변 사람을 통해 병력이나 평소 생활 등에 대해서도 정보 수집이 가능했다.

반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은 부패된 상태로 발견돼 사인 규명을 위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현장검안 사업에 참여한 한 법의관은 “방 전체가 사체의 부패액으로 가득 차 있는 현장도 봤다”고 전했다.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변사체는 67건이다. 병사가 18건, 외인사가 14건, 사인을 알 수 없는 ‘기타 및 불상’은 34건으로 파악됐다. 성별로는 남성이 55명, 여성이 12명이다. 2019년 2월에 사망한 외국인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였다. 새벽에 기침과 경련 증상을 보여 응급실로 후송됐지만 사망했다. 

개인의 죽음
사회의 책임

최민성 국과수 서울과학연구소 법의관은 “사회가 만든 병이 분명히 존재한다. 일자리를 잃고 술을 많이 마셔서 걸리는 간경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걸리는 결핵 등 이들은 병사지만 병을 만든 건 사회다. 사회적 보호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빈곤에 의한 극단적 선택도 사회의 책임이 있다. 결국 망자는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장검안 사업 비하인드 스토리

“사람 없어서 끝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현장검안 사업을 바탕으로 2015~2017년 <서울과학수사연구소 검안사례들에 대한 통계분석>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국과수는 시체검안서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변사사건에서 법의학 전문성이 결여된 채 작성된 시체검안서·사망진단서에 의존해 수사가 진행되고 종결되는 현실을 바꿔보려 한 것. 


시체검안서는 사망진단서와 마찬가지로 사망 사실을 확인하는 서류다.

유족은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가 발급한 사망진단서 혹은 시체검안서가 있어야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의사가 48시간 이내 치료한 환자의 사망에 발급하는 사망진단서와는 달리 시체검안서는 직접 진료를 하지 않은 의사도 쓸 수 있다.

의사에 따라 사인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장검안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2016년 충북 증평 사건의 경우 사망종류를 ‘병사’라고 기재한 시체검안서가 사건의 단초가 됐다.

경찰은 시체검안서를 믿고 사건을 종결했고 유족은 경찰의 말을 믿고 장례를 치렀다. 유족이 CCTV를 다시 보지 않았다면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

대한법의학회는 <법의학 전문 감정 연구 인력 인재 양성 방안 연구소 최종보고서>에서 “이 사업은 전문가에 의한 신속한 현장검안을 통해 수사의 방향 제시에 도움을 줬다. 신속한 시체검안서 발급, 장례절차 진행, 저소득층 검안비 절감 등으로 유족의 편익이 증가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어 “한국의 검시·검안제도의 문제점을 노출하고 개선안을 도출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다음 기약 없어

문제는 현장검안 사업을 더 끌고 갈 여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현장검안 사업은 시범사업 때부터 법의학자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장검안 사업을 마칠 때쯤에는 대부분의 의견이 일치했다.

‘현재 인력으로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결국 6년1개월 만인 2021년 3월31일을 끝으로 현장검안 사업은 종료됐다. 재시작은 불투명한 상태다.

당초 국과수의 계획은 현장검안 사업을 중장기적으로 서울 전체 나아가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법의관에게 현장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이후 대학과 업무 협업을 진행해 보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결론적으로 목표 달성은 실패했다. 

대한법의학회는 “현행 사업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법의관의 업무 피로도가 높다”며 “법의학자가 직접 현장에서 검안을 담당한다는 이상적인 형태로 고안된 사업임에도 근본적인 인력 부족이 해결되지 않는 한 많은 인력을 가진 기관 주변 지역에서만 실시될 수 있는 제도라는 한계를 노출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실제 국과수에서 서울 강서·양천·구로를 대상으로 현장검안 사업을 한 이유는 양천구 신월동에 위치한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자동차로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한 법의관은 “보통 현장에서 검안을 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왔다갔다 이동시간이 2시간”이라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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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