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②국과수 현장검안 2223일의 기록 최초 공개

가난한 죽음이 남긴 숙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현장으로 향했다. 이들은 변고로 사망한 고인의 첫 번째 조문객이자 마지막 관찰자였다. 현장 구석구석에 짙게 눌러 붙은 죽음의 흔적으로 고인의 마지막 숨을 살폈다. 6년1개월, 2223일의 기록을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했다.

한국 법의학계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을 뽑을 때 ▲대구 지하철 참사(2003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2014년) ▲충북 증평 사건(2016년)은 빠지지 않는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대외적으로 한국 법의학의 수준을 알렸다는 점에서, 뒤의 두 사건은 현행 검시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손꼽힌다. 

병사 관행
화 불렀다

2014년 6월12일 전남 순천의 한 매실밭에서 반백골화된 변사체가 발견됐다. 사체는 육안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훼손된 상태였다. 경찰은 사체 발견 직후 무연고자로 판단, 순천 지역의 촉탁의를 통해 부검을 진행했다. 부검을 진행해도 사인이 나오지 않자 경찰은 단순 노숙자 변사사건으로 판단했다. 

문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서 사체의 대퇴부뼈와 머리카락으로 유전자 감정을 한 결과, 사체의 신원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밝혀졌다는 점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유 전 회장의 소재를 찾고 있던 경찰은 ‘유령을 쫓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동시에 변사사건 현장에 사체를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2015년 3월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이하 서울연구소)를 중심으로 ‘현장검안’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서울경찰청 광역과학수사 8권역인 강서·양천·구로 지역에서 교통사고 사망사건을 제외한 모든 변사사건에 국과수 법의관이 직접 현장에 출동하고 검안하는 업무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현장검안은 법의관 1명과 법의조사관 1명이 짝을 이뤄 24시간 대기하다가 변사사건이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출동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법의관, 법의조사관, 법의학 교수 등이 휴일 없이 24시간 현업근무체제로 참여했다.

여기에 서울연구소 법의조사과에서 시행 중이던 ‘365부검’과 연계해 부검도 진행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에서 활동하던 거의 모든 법의학자가 이 사업에 동참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5월 충북 증평에서 80대 노인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충북 증평군 증평읍의 한 마을에서 80대 여성이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불에 덮인 채 발견된 사체는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경찰은 인근 병원 의사가 쓴 시체검안서를 참고해 ‘병사’로 결론내렸다. 유족은 경찰의 말을 믿고 장례를 치렀다. 

현장에 ‘죽음 전문가’ 필요성 ↑
2014·2016년 사건 결정적 이유

유족이 사망 경위를 알아보기 위해 방안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노인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경찰은 유족으로부터 CCTV 영상을 전달받았지만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건으로 변사사건 처리지침이 개정됐다. 변사 처리 기준을 강화하고 부검 권고 대상을 늘린다는 내용이다. 실제 증평 사건을 계기로 국과수 부검 건수가 증가했다. 


변사사건 처리지침에는 ▲영아 및 아동 돌연사 ▲구금‧조사 등 법 집행 과정에서의 사망 ▲중독사 ▲탄화 ▲부패 ▲백골화 ▲익사나 추락사에서 목격자나 CCTV가 없는 경우 ▲기타 정확한 사인 파악을 위해 필요한 경우 부검을 권고한다고 돼있다. 또 사인이 불명확한 경우 반드시 변사사건으로 처리하고 단순 병사 등으로 처리를 금지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법의학계 관계자는 “변사사건이 발생했을 때 담당 수사관은 먼저 현장과 변사자를 조사한다. 이후 변사자를 영안실로 옮기면 그곳에서 수사관의 진술을 토대로 검안의는 현장조사를 하지 않고 시체검안서를 작성하는 관행이 있다”며 “담당수사관은 사인이 무엇인지보다 범죄 연루 여부를 중심으로 사건을 보는 경향이 강해서 타살 혐의점이 보이지 않으면 내인사(병사)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변사자의 사인이 병사로 판명되면 그다음부터는 경찰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유족이 사체를 인수해 장례를 치르면 된다. 수사기관의 영역에서 개인의 영역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외인사 혹은 기타 및 불상으로 처리되고 부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그때부터는 경찰→검찰(검사)→법원→국과수 등 복잡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변사 처리
업무 늘어

연 3만건 전후의 변사사건을 다루는 경찰로선 까다롭게 느낄 수 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과 증평 사건으로 변사사건 현장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이를 계기로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현장검안은 2016년 정식사업으로 본궤도에 올랐다. 국과수 서울연구소는 2015년 3월1일부터 2021년 3월31일까지 강서·양천·구로지역의 현장검안을 진행했다. 2018년 2월부터는 경기 부천까지로 지역이 확대됐다.

<일요시사>가 국과수 서울연구소에서 6년1개월, 2223일 동안 진행한 현장검안 출동장부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이 기간 동안 국과수 법의관은 총 1만279건의 현장에 출동했다. 하루 평균 4.6건 꼴이다. 지역별로 강서 3094건, 양천 2352건, 구로 2463건 등의 변사사건이 일어났다. 한 달 평균 각각 42건, 32건, 34건이다.

부천은 원미‧소사‧오정으로 구분했고 2370건으로 집계됐다. 부천은 2016년 원미‧소사‧오정구 등 3개 일반구를 폐지하고 36개 일반동, 10개 책임동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했다. 10개 책임동은 원미1동·심곡2동·중동·중4동·상2동(이상 원미구), 심곡본동·소사본동·괴안동(이상 소사구), 성곡동·오정동(이상 오정구) 등이다. 

연도별로는 2015년(3월부터) 803건, 2016년 1121건, 2017년 1197건, 2018년 1992건, 2019년 2122건, 2020년 2337건, 2020년(3월까지) 707건으로 나타났다. 2018년 2월부터 부천이 포함되면서 2018~2020년에 검안 건수가 크게 늘어났다. 

하루 평균
5건 출동

현장검안을 진행한 전 지역에서 남성 사망자가 여성 사망자에 비해 많은 경향을 보였다. 전체 건수로 따지면 남성(6664건)이 여성(3605건)보다 1.8배 더 사망했다. 지난해 기준 전체 사망자 31만7680명 가운데 남성은 17만1967명, 여성은 14만5713명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여성보다 1.1배 많다. 변사사건에서 남녀 간 차이가 전체 평균보다 크게 벌어진 것이다.


전체 변사자의 연령 평균은 65.8세로 나타났다. 사망자의 연령대는 전체 지역에서 50~80대에 두껍게 분포됐다. 50대 1699명, 60대 1706명, 70대 1961명, 80대 2122명 등이다. 생후 1년 미만 아동의 사망은 28건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22명은 검안으로는 사인을 파악하지 못해 ‘기타 및 불상’으로 기재됐다.

사망의 종류별로는 전체 1만279건 중 병사가 4762건(46.3%)으로 가장 많았고, 외인사가 2699건(26.3%)으로 나타났다. 외인사는 극단적 선택·타살·사고사 등 자연사를 제외한 모든 죽음을 뜻한다. 눈여겨볼 부분은 ‘사인 불명’ 사망자 수다.

전체의 2818건(27.4%)은 사인이 판명되지 못했다. 강서 770건, 양천 626건, 구로 716건, 부천 706건 등이다. 비율로는 부천에서 29.8%, 구로에서 29.1%로 높았다.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 징후’ 이른바 R코드에 잡힌 사망자 수를 확인할 수 있다. R코드에는 ‘원인미상의 기타 돌연사’(R96) ‘증상의 발생으로부터 24시간 이내에 일어난 달리 설명되지 않는 사망’(R961) ‘지켜본 사람이 없었던 사망’(R98) ‘기타 불명확하고 상세불명의 사망원인’(R99) 등이 포함된다.

24시간 근무체제 모든 변사사건 투입
강서·양천·구로·부천 네 지역 검안

2017년부터 지난 5년간 2만5497건, 2만8466건, 2만8176건, 3만1801건, 3만7833건 등으로 늘어났다. 


전체 사망자 수 대비 8.6%(2017년), 9.5%(2018년), 9.5%(2019년)의 비율이 2020년 10.4%, 지난해 11.9%로 증가했다. 변사사건의 원인불명 사망자 비율은 전체 사망자 수 대비 R코드 비율과 비교해 2.3배 이상 높다.

대한법의학회 학회지에 게재된 <2015년도 서울과학수사연구소 검안사례들에 대한 통계분석> 논문에 따르면 사인불명인 경우에도 부검률은 40%로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사인 규명을 위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최민성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은 “한국 사회는 사망자의 죽음 이후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특히 사인을 밝히려는 노력이 없다. 심지어 병사로 죽어도 무슨 병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로지 범죄 혐의점에만 집중해 사망을 판단한다. 현장에 나가 변사사건을 마주하면서 당장 먹고사는 게 바쁜 사람은 사인에 관심을 가질 새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외된 죽음을 위한 국가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대한법의학회는 2018년 11월23일 ‘변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국민의 건강, 안전, 범죄와 관련해 사망원인을 밝히고 국가가 책임지고 처리해야 하는 죽음’을 변사로 정의했다. 형사소송법이나 의료법에는 변사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대한법의학회는 변사를 정의하면서 ‘사인 규명’이라는 법의학의 사명과 ‘국가의 책임’을 담았다. 

국가 책임
어디까지?

현장검안 사업에 참여했던 법의학자들은 “한 생명이 다할 때 그 생명의 사망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주는 것, 그리고 남아있는 유가족에게 망인의 사인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것 또한 국가의 의무이며 변사사건 현장에서 근무하는 모든 이들이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과수 최민성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 인터뷰

“송파 세모녀 또 나올 것”

최민성 법의관은 현장검안 사업 이후 가치관까지 바뀌었다고 말했다.

변사사건 현장에서 가난한 죽음을 숱하게 목격하면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국가적 복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빈곤과 소외로 인한 죽음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보호 부재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된 것.

지난달 2일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최 법의관을 만났다. 

-현장에서 법의학자의 역할은 뭐였는지. 

▲변사체를 확인하고 경찰에 제출하는 서류(수사용 서류)의 부검 여부에 대한 의견을 내는 일을 했다. 이때 법의관이 내는 의견은 ‘참고사항’에 불과하다. 결정은 경찰과 검찰이 한다. 일반적으로 사인이 불명확한 경우에는 부검을 해야 하지만 한국은 검찰과 경찰의 의견에 따라 ‘복불복’이다.

국가의 역할 필요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는지.

▲부자가 살고 있던 집에서 아버지가 사망했다. 아들이 완전히 넋이 나가있어 사연이 궁금했는데 알고 봤더니 장례 치를 돈이 없던 거였다. 심지어 그들이 살고 있던 임대주택은 아버지 명의로 돼있어 아들은 한 달 내로 집을 비워줘야 할 상황이었다. 또 한 번은 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신고를 받았다. 이불을 들췄더니 결박된 상태였다. 할머니를 살해한 사람은 소주살 돈을 훔치기 위해 그 집에 침입했다고 했다. 

-현장검안 과정에서 느낀 바가 있다면.

▲검찰과 경찰, 심지어 법의학자까지도 소외된 이들의 죽음에는 큰 관심이 없다. 과거 ‘송파 세모녀 사건’이 있지 않았나. 또 다른 송파 세모녀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가난한 사람의 죽음에 국가가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법의학자는 죽음을 다루지만 국가는 소외된 죽음 자체를 줄일 수 있다. 국가가 관심을 기울이면 애초에 죽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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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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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