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대참사> ‘먼저’ 책임질 사람들

너도나도 네 탓 ‘폭탄 돌리기’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6명의 사내가 뒤에서 조직적으로 밀었다”는 증언이 속출하는 가운데, 경찰은 군중을 의도적으로 민 6명, 특히 주범이라고 지목된 ‘토끼 머리띠를 한 사내’를 찾는 데 몰두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에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러나 156명이 죽고 151명이 다친 ‘이태원 대참사’의 책임이 오롯이 이 6명에게만 있을까. <일요시사>는 이번 대참사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짚어봤다.

희생자 중 누군가는 성인이 되어 처음 일탈해본 대학교 새내기였고, 누군가는 결혼을 한 달가량 앞둔 예비신부였다. 어떤 이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본인의 몸을 더 아래로 숙이다가 변을 당했고, 어떤 이는 친구의 소지품을 찾기 위해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6시부터
포화상태

외국인 희생자도 수십명 나왔다. K-POP을 사랑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유학생은 끝내 조국 땅을 다시 밟지 못했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홀로 출장 왔던 외국인 노동자는 마지막 생활비를 가족에게 부쳐주지 못했다. 

참사 당일(지난달 29일) 초저녁부터 이태원 ‘세계 문화 거리’는 축제를 즐기러 나온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코시국 이후 3년 만에 처음 맞이한 ‘핼러윈 축제’인 만큼 사람들은 들뜬 모습이었다. 인파가 더 많아지자 사람들은 한층 더 신이 났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거리는 더욱 비좁아졌다.

오후 5시경까지만 해도 거리 상인들은 으레 있던 유동인구가 “조금 더 많아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현장에서 영업을 하고 있던 클럽 관계자는 “(오후 5시에)평소보다 사람이 많은 수준이었고, 위험 신호는 감지되지 않았다”며 “6시부터 ‘이거 좀 이상한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일요시사>에 알렸다.


현장에 있었던 또 다른 목격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6시에 도착해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7시쯤 자리를 떴다고 증언했다.

그는 “내가 체구가 작은 편도 아닌데 압박감이 상당했다”며 “당시 친구들에게 ‘압사’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 기억난다. 실제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목격자 본인이)100m 정도 움직이는 데도 1시간가량 걸렸는데, 체구 작은 여성이 현장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거다. 나도 ‘쓸려서 내려왔다’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참사가 벌어진 골목엔 초저녁(5시) 전후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6시 무렵엔 이미 인구 포화상태로, 움직일 수 없는 수준의 압박감이 거리에 형성됐다.

포화상태가 된 6시부터 참사가 벌어진 10시경까지 약 네 시간 동안 세계음식거리는 ‘압사’의 위험에 노출돼있었고, 시민들이 스스로 대처할 방법은 전무했다.

<일요시사>에 당시 상황을 증언한 제보자와 112신고 센터에 최초로 전화를 한 신고자의 증언은 일치했다. 참사가 벌어진 장소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는 중학생인 딸과 함께 축제를 즐기러 가려다 인파에 밀러 안전한 곳에 대피해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세계음식거리 쪽으로 이태원역에서 내린 사람들이 계속 올라가는 것을 본 신고자는 곧장 112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

그는 신고 전화에서 “골목에 사람이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것 같다”고 경찰에 알렸다.


윤석열, 이상민, 윤희근, 오세훈, 박희영, 김상범…
탄핵? 경질? 총대 누가 메나…꼬리 자르기 시도?

이에 경찰 측은 “사람들이 밀려서 넘어지고 그러면 큰 사고가 날 것 같다는 거냐”고 되물었고 신고자는 “맞다. 지금 너무 소름 끼치는 상황”이라고 당시 현장을 정확히 알렸다.

최초 신고자가 112에 전화를 건 시간은 오후 6시34분으로 기록돼있다. 사고에 대한 ‘예고 전화’가 걸려온 지 약 2시간 후, ‘사고가 일어났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오후 8시9분에 전화한 신고자는 “사람들이 다치고 있다”고 말했고, 8시53분 신고자는 “사람들이 압사당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그 직후까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현장 상황을 경찰에 알린 셈이다.

그러나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해야 할 시간에 경찰은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112에 다급히 걸려온 다수의 신고 전화가 있었음에도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시민의 대피를 도모한 경찰이 한 명도 없었던 셈이다.

‘경찰관 직무 집행법’ 제5조에 따르면, 경찰관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는 극도의 혼잡 상황에서 시민들을 억류하거나 피난시킬 ‘의무’가 주어진다. 해당 법을 놓고 여러 법리적 해석이 있지만 이 법 조항을 경찰관의 ‘의무’로 보는 것이 요즘 판례의 동향이다.

법원은 시민이 위험에 빠졌는데도 경찰관의 직무 권한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가능하다는 쪽으로 최근 판결을 내리고 있다.

경찰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는 측은 ‘경찰관 직무 집행법 제5조’를 들어, 시민들의 안전을 지킬 권한을 발동하지 않았으니 처벌 대상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중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첫 번째 책임은 경찰 측에 있고, 이는 이미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여론을 예측한 듯 경찰청은 지난 2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을 대기발령하고 임현규 총경을 용산서장으로 발령했다.

그러나 서장 해임만으로 부정적 여론이 사그라들지는 않을 모양새다.

참사의 규모가 큰 만큼 더 큰 책임이 있는 인사가 물러나야 되지 않겠냐는 지적이다. 이들의 지적은 ‘윤희근 경찰청장 해임’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경찰?
구청?


윤 청장은 지난 1일 ‘이태원 사고 관련 브리핑’에서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관계 기관들의 유기적인 대응에 대해서도 부족한 점이 없었는지 원점에서부터 면밀히 살펴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찾아내겠다”며 “향후 범정부 차원의 재발 방지 논의에 적극 참여해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찰이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윤 청장의 발표 후 여야를 막론하고 정계에선 일제히 비판 성명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본인의 SNS에서 “112신고 녹취록을 보면 조금도 변명할 여지가 없고, 본인(윤희근 청장) 스스로도 미흡했다고 인정했다”며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은폐로 당시 해경청장이 구속됐다. 즉시 (윤 청장)을 경질하지 않으면 공직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당도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대표단회의에서 “(윤 청장은)대책 마련 주체도, 참사의 수사 주체도 아니다. 이번 참사의 책임자이고 수사받아야 할 대상”이라며 ‘윤 청장 파면’ 주장에 힘을 실었다.

경찰 책임론이 불거지자 경찰 측은 책임을 다른 데 돌리려 애썼다. 그중 하나가 서울교통공사다. 경찰 측은 “9시 전후로 ‘이태원역 무정차’를 권유했지만 서울교통공사 측이 이를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경찰 측은 용산경찰서 112 상황실장의 휴대폰 전화 목록을 공개하며 주장에 힘을 실었다.

경찰 측이 공개한 사진에는 오후 9시32분 1분가량 발신한 정황이 있고, 오후 9시38분 경 다시 통화한 기록이 존재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 측은 “사실무근”이라 맞서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진위를 파악해보니 경찰이 주장하는 통화 시간(9시32분)에는 역장이 경찰 측에게 외부 출입구 유입을 막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뿐 ‘무정차’에 대한 논의는 일절 없었다”며 “그들(경찰)이 주장하는 ‘무정차’에 대한 논의는 11시 넘어서야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오후 6시부터 이태원의 유동인구가 비정상적으로 많아져 9시쯤엔 포화상태가 됐다는 사실은 현장 관계자가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서울시?
정부?

즉, 역장의 재량에 따라 충분히 ‘이태원역 무정차’를 결정할 수 있던 상황인 것이다. 영엄사업소및역업무운영예규 제37조(무정차 통과 조치)에는 ‘역장은 승객 폭주, 소요 사태, 이례 상황 발생 등으로 승객 안전이 우려될 경우 종합관제센터에게 보고하고 열차 무정차 통과를 요청할 수 있다’고 적시돼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이를 두고 “역사 내부 통제하기도 빠듯한 인원”이라며 “역 외의 상황을 파악할 인력이 부족했다”고 둘러댔다. 이 같은 해명에도 비판이 따라붙는다.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 핼러윈데이 축제 날에 현장 추가 인력배치는 이뤄지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꼴이라는 것이다.

한 안전공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측은 서로 “네탓 내탓” 싸움을 하고 있지만, 양측 모두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총평을 내렸다. 

사고가 벌어진 후의 책임이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측에 있다면 사고가 벌어지기 전의 책임은 행정부에 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행정부처는 행정안전부, 용산구청, 그리고 정부다. 사실 한국에서 벌어진 압사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초의 대형 압사사고로 알려진 1960년 1월 ‘서울역 압사사고’에서는 31명이 압사당했고, 2005년 경북에서 일어난 상주 콘서트장 압사사고와 2006년 롯데월드 압사사고에서도 수십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수용 가능 인원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 서로 뒤엉키는 상황에서 서로를 짓누른 것이 원인이었다.

지난 수십년간 다수의 희상자를 잃은 뒤 정부는 축제 등에 관한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이를 개선해나가려 했다.

이 매뉴얼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그 근간을 둔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66조 11항에는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지역축제를 개최하려면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그 밖에 안전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한다’고 적혀 있다. 

윤 대통령 “모든 책임은 여기서 끝난다?”
법률 “지자체장, 중앙행정기관장 책임”

해당 법률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장인 행정안전부 장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인 서울시장과 용산구청장은 각각 지역축제의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날 축제에 대한 ‘안전관리 계획’이 나온 것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세 명의 책임자 중 그 누구도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사람도 없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난달 31일 합동분향소를 찾은 현장에서 용산구청에 대한 책임론에 대해 “(용산구청은) 전략적인 역할은 다 해왔다”며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 작년보다는(인파가) 많을 거라고 예측했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많을 거라고는...”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박 구청장은 이틀 뒤 ‘전략적인 준비를 다 하지 않았다’는 점이 세간에 알려졌다. 참사 이틀 전 열린 ‘용산구청 핼러윈 대책회의’에 불참한 것이다.

그가 대책회의에 불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각에선 ‘박희영 사퇴론’까지 불거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용산구청에서 핼러윈 대책회의가 열릴 때 지자체 행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소식은 본인의 SNS를 통해 알려졌다. 그는 “야유회와 바자회 등에 참석하며 하루를 보냈다”는 게시물을 올려 회의 당일 구민 행사에 참석했던 것을 직접 알렸다.

지난 2일 용산구 홈페이지 ‘나도 한마디’ 코너에는 시민들의 청원이 빗발쳤다. ‘용산구청장을 탄핵합시다’라는 글에는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는 망언을 들었다”며 “그럼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했는데도 서울 도시 한복판에서 150명 이상이 죽어야 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냐”고 질타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또한 박 구청장과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 해외순방 중이었던 오 시장은 참사 소식을 듣자마자 급하게 귀국하며 사태를 수습하려 애썼다. 그는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무한 책임을 느낀다”며 연신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러나 서울시 책임론에 대해서는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언급하지 않겠다”며 ‘서울시 책임론’에는 선을 그었다. 

그가 말한 수사 결과는 현재 경찰청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가 수사 중인 ‘이태원 부실 대응 사건 수사’를 말한다. 특수본은 지난 2일 서울경찰청, 서울소방재난본부 방재센터, 용산소방서, 서울교통공사, 이태원역, 다산콜센터, 용산구청, 용산 경찰서 등 총 8곳을 압수수색하며 이태원 부실 대응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사실 최초의 책임 회피성 발언을 한 것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다. 이 장관은 지난달 31일 기자들에게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며 “그것(인력 배치)이 원인이었는지 의문이다.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선 안 된다”고 말하며 정쟁의 불을 지폈다.

그의 발언이 알려지자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 성명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적절한 발언이 아니다”며 “애도 기간에는 정쟁을 지양하고 사고 원인이나 책임 문제는 그 이후에 논의할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연일 무책임한 면피용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선 이상민 장관은 이미 여당 안에서도 파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수습부터?
회피 급급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국민의힘 유튜브 채널에서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좌우명을 소개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마음의 여유를 갖기 어려운 자리같다”며 “트루먼 대통령은 ‘모든 책임은 여기서 끝난다’라는 뜻의 ‘The buck stops here’를 본인 책상에 붙여놨다고 한다”고 말했다.

여당의 지자체장들과 직접 임명한 이 장관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태를 보이는 가운데, 윤 대통령은 책임을 짊어질지는 모습을 보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