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참사에 대한 애도를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사회 각계각층에선 각자의 방식으로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가 벌어진 다음날(지난달 30일)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참사 수습에 국정동력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정계 또한 일제히 동참했다. 국민의힘 양금희 수석 대변인은 “정쟁을 이 기간(국가 애도 기간)만이라도 멈춰야 하지 않을까 말씀을 나눴다”며 “민주당도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 애도 기간 동안 사고 수습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사고와 관련해서 괴담이라던지 정쟁을 유발하지 않도록 하자”고 더불어민주당에게 휴전을 제안했다. 이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금은 무엇보다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라며 “민주당은 다른 어떤 것들을 제쳐두고 정부의 사고 수습과 치유를 위한 노력에 초당적으로 적극 협력하겠다”고 답했다.
잠시 멈춤
윤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제안을 거대 야당이 받아들이며 여의도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던 정치 전쟁은 ‘잠시 멈춤’ 상태가 됐다. 여야 휴전으로 세간의 이목은 자연스럽게 ‘이태원 대참사’ 쪽으로 옮겨가게 됐고,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일주일째 국민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됐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우선 한숨 돌리게 된 셈이다. 민주당은 이태원 참사 전까지만 해도 연일 ‘유동규발 대표 리스크’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이 대표의 지시에 따라 이태원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하고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 행렬에 동참하는 등 국민의 슬픔과 함께 하는 행보를 보였다.
기자들의 전화를 피하던 민주당 인사들조차 먼저 일정을 알리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이제야 숨통이 트인 모양새다. 그동안 지독하게 숨죽여 있었던 탓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20일부터 약 10일 동안 노심초사하며 언론 보도를 기다려야 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출소하던 20일부터 매일 ‘폭탄 발언급’ 폭로를 쏟아내며 민주당을 압박했다.
그는 “이재명은 김문기를 알았다” “서서히 폭로해 말려 죽이겠다” “수뇌부끼리 정보를 공유하던 공보방이 있었다” 등 하나같이 치명적인 폭로를 쏟아내며 이 대표를 압박했고, 민주당 관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의 입만 바라보며 눈치를 봐야 했다.
이 대표를 방어하지도, 이 대표를 공격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태가 변하는 것을 지켜본 것이다.
휴전 제안에 흔쾌히 승낙
민, 어쨌든 한숨 돌릴 기회
그렇게 민주당의 언론 대응이 원활하지 못할 때마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하락해갔다. 리얼미터의 지난달 4주 차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은 유 전 본부장의 폭로전인 3주 차(48.4%)대비 약 2%p가 하락(46.4%)가 하락했다.
국정감사라는 좋은 호재를 맞았음에도 정계 뉴스는 유 전 본부장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채워졌고, 간혹 나오는 국정감사 뉴스는 김의겸·박범계 민주당 의원 등이 저지른 ‘헛발질’ 뉴스로 채워졌다.
반면 손실도 있었다. 한 의원이 국가 애도 기간임에도 ‘술자리’를 벌이며 물의를 빚은 것이다. 앞서 민주당 지도부는 참사 직후 의원들에게 “술자리 같은 대규모 행사와 골프, 축구 등의 스포츠 행위를 당분간 자제해달라”고 긴급 공문을 돌렸던 바 있다.
애도 기간이 선포된 만큼 국민들의 눈초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말아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서영석 의원은 참사 이튿날 ‘술자리’를 벌이며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경기도 부천에 지역구를 둔 서 의원은 지난달 30일, 파주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부천시 당원 교육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날 워크숍에는 지역과 민주당 관계자 수십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를 전면 취소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해당 자리에서 수십명의 관계자들은 맥주와 소주를 나눠마시는 ‘술판’을 벌였다. 술자리 논란이 보도되자 서 의원은 본인의 SNS에 “출발 이후 당의 지침을 받았다”며 “하지만 사려깊지 못한 행사 진행으로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민주당이 헛발질을 하고 있을 때쯤, 여권은 참사 수습에 전념했다. 윤 대통령은 참사가 벌어졌다고 알려진 시각 한 시간 뒤인 29일 11시쯤 최초로 보고받고 즉시 각 부처에 긴급 지시를 내렸다.
윤 대통령은 긴급 문자를 돌려 “행정안전부 장관을 중심으로 모든 관계부처 및 기관에서는 피해 시민들에 대한 신속한 구급 및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대장동, 청담동…가라앉은 논란
여, 정부 책임론으로 더 큰 피해?
지난 8월 벌어진 홍수 피해 당시와 비교해 사뭇 빠르고 적절한 대응을 했다고 평가받은 윤 대통령은 참사가 벌어진 직후에 이렇다 할 비판을 듣지는 않았다. 그러나 곧바로 문제가 터졌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들과 같은 당에 소속돼있는 지자체장들이 국민 정서에 반하는 실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참사로 인해 큰 슬픔에 빠지게 된 국민들은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크게 실망했고, 실망은 곧 분노로 변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가 터지지자마자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발언으로 가장 먼저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참사 상황과 소방·경찰의 인력 배치는 무관하다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이 질타는 비판을 피해갔던 윤 대통령에게까지 향하게 됐다. 망언을 한 인사를 윤 대통령이 끝까지 챙기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윤 대통령은 지난달 31일에 이어 두 번째로 합동분향소 현장을 찾았다. 해당 자리에는 김건희 여사 등 윤 대통령의 측근들도 동행했다. 이날 이 장관은 시종일관 윤 대통령의 바로 옆자리를 지켰고 이 모습은 매스컴을 탔다.
대통령실은 이 장관의 동행을 두고 “주무부처 장관이기 때문에”라는 해명을 내놨지만 정계는 다르게 해석했다. 정계 인사들이 하나둘 “사퇴하라”고 요구하는 주문에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을 버리지 않겠다”는 대답을 내놨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이 장관에 대한 해임 의견을 입밖에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의도적
다수의 안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태원 참사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이는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로 느껴질 수 있고, 자칫 잘못하면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계는 이미 참사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