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대참사>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다섯

살릴 수 있는 기회 다 날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수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간 데 이어 후폭풍이 온 나라를 강타했다. 이 가운데 참사 막전막후가 알려지면서, 이번 참사가 ‘인재’였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일요시사>가 참사 전후로 주어졌던 수많은 기회를 되돌아봤다. “만약…”이란 부질없다지만 “왜?”는 꼭 필요하다. 이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다.

경찰이 참사 발생 몇 시간 전부터 위험 징후 신고를 꾸준히 접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첫 신고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는 구체적 표현이 등장했음에도 안일한 대응에 그쳤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경찰청은 지난 1일 사고 당일 112신고 접수 녹취록을 공개했다. 

[1] 참사 징후 신고, 정말 묵살됐나?

녹취록에 따르면 참사 당일(지난달 29일) 오후 6시34분 신고자는 경찰에 “사람이 내려 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와서 압사당할 거 같다. 통제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경찰은 “큰 사고가 날 것 같다는 거냐”며 “출동해서 확인해보겠다”고 답했다. 실제로 경찰은 현장 파악에 나섰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이후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보행로 통제 등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119에 최초 사고 신고가 접수된 시점은 오후 10시15분이다. 그전까지 112 상황실은 총 11건의 ‘위험 징후’ 신고를 접수했다. <일요시사>가 녹취록 11건을 모두 살펴본 결과, 직접적으로 ‘압사’라는 표현이 들어간 신고만 6건에 달했다.


119 최초 신고보다 최소 1시간 이상 빨랐던 신고들에서도 “진짜 사고 날 것 같다” “장난전화 아니다” “대형사고 나기 직전이다” 등 심각성을 강조한 표현이 포착됐다.

경찰 측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각 2·5·6번째 신고 때 현장에 출동해 ‘강력 해산’ ‘시민 통제’ 조치 등을 실시했다. 하지만 경찰은 결국 대형참사를 제때 막지 못했다. 이에 ‘출동한 경찰관이 어떤 방식으로 해산·통제에 나섰는지’에 의문이 남지만, 출동 기록을 담은 문서에는 구체적인 조치 내용이 기술된 바 없다.

경찰 관계자는 구체적인 조치 내용을 설명하라는 요구가 이어지자 “감찰을 통해 밝혀질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경찰이 설명을 미루는 사이, 정말 실효성 있는 조치가 취해졌었는가에 대한 의심이 증폭되고 있다. “사고 이전까지 경찰의 해산·통제 조치가 없었다”는 현장 증언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2] 간담회 성과, 왜 없었나?

용산구청 등 관계기관 네 곳은 참사 발생 사흘 전 ‘대비 간담회’를 열고도 참사를 막지 못했다. 또 간담회 당시 안전대책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걸 넘어, 외려 ‘경찰 통제를 완화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일었다. 이튿날 열린 용산구청의 자체 대책회의도 예년 대비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나 함께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 26일 용산구청은 용산경찰서·이태원상인연합회·서울교통공사 등이 참석한 4자 간담회를 주재했다. 용산구청은 이날 상인들에게 안전대책 대신 쓰레기 문제 등을 안내했다. 실제로 간담회에 참석한 용산구청 측 인원은 자원환경순환과 관계자 2명뿐이었다.


자원환경순환과는 생활쓰레기 처리를 맡은 부서다. 축제 관리·안전 관리는 각각 문화체육과·안전재난과 몫이다. 애초에 안전 대책을 논할 부서는 간담회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던 셈이다. 

상인연합회는 이날 간담회에서 경찰 통제를 사실상 완화하라고 요구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경찰 측 간담회 주요 내용 보고서에 따르면 연합회는 경찰에게 “작년에는 경찰기동대를 각 거리에 배치해 영업을 중단시키고 인파를 해산시켰는데 사정은 이해하나 과도한 조치였다”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올해는 과도한 경찰력 배치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간담회에 참석한 업주는 “앞선 지구촌축제에 경찰과 용산구청 등에서 요원을 배치해 장사에 방해가 됐다”며 “경찰력이 배치된다면 형사 조끼를 벗어달라”고 말했다.

어이없는 대형사고 막전막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진단

용산구청은 지난달 15~16일 이태원에서 지구촌축제를 개최했다. 용산구청은 당시 인원 통제를 위해 경찰 경비인력 109명과 구청 직원 1078명을 배치했다. 이 덕에 100만명 남짓한 인파가 몰리고도 큰 사고가 없었다.

반면 축제에 참여한 일부 이태원 업주들은 “안전조치 강화로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회 관계자는 관련 의혹에 대해 “간담회 당시 기동대 200명 정도가 온다는 이야기에 (연합회)관계자 한 명이 ‘핼러윈은 자발적인 축제기 때문에 기동대 차량이 길가에 늘어서 있으면 시민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라며 “경찰력 배치 자제 요청을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용산구청은 지난달 27일 ‘핼러윈 대비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용산구청 보도자료에는 이날 회의에서 ▲식품 접객업소 점검 ▲주요 시설물 안전점검 ▲종합상황실 운용 ▲방역 관리 ▲소음 특별점검 ▲청소 대책 등이 논의됐다고 적혀 있다. 대규모 인원 밀집에 따른 안전 대책은 이날도 논의되지 않았다.

이날 회의는 부구청장 주재로 11개 부서장이 참석해 진행됐다. 지난해와 재작년에는 구청장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고, 용산경찰서·소방서장이 참석해 대책을 의논했던 것과 비교하면 회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다. “올해 용산구청이 애초부터 안전 대책 마련에 안일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난달 31일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아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고 발언해 비난을 자초했다. 아울러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주최 측이 없어 축제가 아니라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결국 박 구청장은 지난 1일 입장문을 내고 “관내에서 발생한 참담한 사고에 구청장으로서 용산구민과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3] 무정차 지시, 진실 공방


참사 당일 이태원 인근에는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참사 이후 지하철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 조치가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조치 미시행 배경을 두고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사이 진실공방이 심화되고 있다.

쟁점은 경찰이 서울교통공사에 지하철 무정차 통과를 요청한 시점이다. 경찰은 참사 발생 이전인 오후 9시38분 무정차 통과를 최초 요청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서울교통공사는 참사 발생 이후인 오후 11시11분 요청받았다는 입장이다. 

참사 발생 이전에 지하철 무정차가 시행됐다면 인원 유입을 줄여 피해가 줄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양측 대립은 단순한 진실공방을 넘어 ‘책임 떠넘기기’ 색채가 짙은 셈이다.

황창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은 지난 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에게 직접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이 자리에 왔다”며 ‘사전 요청 주장’을 재차 피력했다.

황 관리관은 “사고 당일 상황실장은 사무실이 아닌 이태원역 부근에서 상황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휴대전화로밖에 통화를 할 수 없었다”면서 “상황실장 말에 따르면 오후 9시 38분 이태원역장에 무정차 통과를 요청했다고 본인한테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울교통공사는 사고 이후인 오후 11시11분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는데, 그것도 확인했다”며 “오후 11시11분에는 야외가 아닌 사무실에서 상황실 요원이 이태원역사 직원에게 전화해 2차로 무정차 통과를 요청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10만명 넘는 인파
알고도 대책 전무

이와 관련해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사고 당일 오후 9시38분에 경찰과 통화한 것은 맞다”면서도 “이때는 귀갓길 승객이 역사 내에 포화된 상황이라 외부 출입구 유입 승객을 일시적으로 통제해달라고 요청받은 것”이라고 전했다. 오후 9시38분에 전화로 요청이 오고 간 건 사실이지만, 이때 무정차 통과 논의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양측 대립이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당장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양측이 결백을 호소하면서도 애도 기간임을 고려해 ‘전면전’은 삼가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은 애도 기간이 끝나는 대로 진상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4] 현장 구조, 왜 지지부진?

참사 당시 소방당국이 최초 신고 접수 직후 경찰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경찰의 현장 상황 오판으로 사고 수습이 난항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교통통제 등을 위한 대규모 인력 투입을 주저하는 사이 피해가 더욱 커졌다는 지적이 불거졌다. 

관계당국의 보고 내용을 종합하면 소방당국은 오후 10시15분 최초 신고를 접수한 지 2분 이내에 구조 인력을 출동시켰다. 이어 접수 3분 뒤인 오후 10시18분 소방종합방재센터가 ‘핫라인’을 통해 서울경찰청에 공동 대응 요청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동 대응 요청은 참사 현장이 복잡한 만큼, 경찰이 현장·교통 통제를 즉각 지원해달라는 맥락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경찰은 현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대응 요청 10여분 만에 현장에 급파된 경찰 선발대 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확성기 등 통제 장비도 갖추지 않아 사실상 현장 통제는 시도조차 어려운 수준이었다. 현장 증언에 따르면 경찰 선발대는 사고 현장을 통제하기보다 구조에 나선 소방당국을 지원하는 데 매진했다.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교통통제도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 구급차 이송이 지연되자, 소방당국이 먼저 경찰청에 교통통제를 요청했다. 관할 경찰서인 용산경찰서 인력만으로 현장을 온전히 통제할 수는 없었다. 추가 인력 투입이 절실했지만, 서울경찰청이 기동대 일부를 투입해 현장을 지원한 시점은 오후 11시50분이었다.

소방당국이 교통 통제를 요청한 시점으로부터 1시간이 넘게 지난 뒤였다. 

경찰은 현장 상황 오판이 인명피해를 키웠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일 대국민 사과 브리핑에서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부터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 신고가 다수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112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 조치가 적절했는지 등도 감찰을 통해 빠짐없이 조사할 것”이라며 경찰 측 잘못을 시인했다.

[5] 토끼 머리띠 처벌 가능성

일각에서는 참사 초래 주범으로 이른바 ‘토끼 머리띠’를 지목한다. 토끼 머리띠를 착용한 남성 일행이 골목 위쪽에서 “밀어! 밀어!”라는 외침과 함께 사람들을 밀쳤다는 증언이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이 남성을 소환해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적 공분이 큰 가운데 관련자들의 처벌 여부에 이목이 쏠리지만, 이들이 실제로 처벌될지는 미지수라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경찰은 지난 1일 이 남성을 소환 조사했다. 경찰은 이 남성이 고의로 군중을 밀쳤는지 등 사고 당시 상황을 집중적으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성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본인의 이동경로 등을 근거로 들었다고 전해진다. 이외에도 경찰은 고의적으로 군중을 민 것으로 보이는 인원 다수의 신원을 확인·추적하고 있다.

경찰이 이들을 ‘가해자’로 보고 처벌하고자 한다면 폭행치사죄나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자신이 군중을 밀면 누군가가 죽거나 다칠 수 있다고 예견하고도 고의로 이들을 밀었다면 폭행치사죄, 참사를 예견한 상태에서 고의성 없이 밀었다면 과실치사죄 적용 대상이다.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이들의 신원을 상당수 특정한다고 해도, 이것이 형사처분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형사처분으로 이끌어내려면 가해자 행위가 연쇄작용을 일으켜 참사로 이어졌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골목 안에서 수백명이 서로 밀고 밀리던 중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 미는 행위가 누구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줬는지 파악·입증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난점으로 꼽힌다.


<jeongun15@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