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범죄 TF 변호사들 줄사퇴 카드 꺼내든 이유

“수장 자르니 나갈 수밖에”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서지현 전 검사의 사표가 수리된 지 보름이 지났다. 20년 공직생활을 마친 그는 법무부나 검찰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서 전 검사의 소식을 듣고 사퇴한 디지털성범죄 태스크포스(TF) 위원들은 여전히 법무부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서지현 전 검사의 ‘전대복귀’ 형식의 좌천성 인사와 재빠른 사표 수리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일요시사>는 익명을 요구한 전직 TF 위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동훈 체제’ 법무부의 디지털성범죄 대처 의지를 들어봤다.

법무부 직원들은 ‘한동훈 체제’에 빠르게 적응 중이다. 검찰권 강화를 목표로 하는 윤석열정부 기조에 맞게 과거 탈피에 나섰다. 그러나 문재인정부서 요직을 거친 검사들과 파견 업무를 수행 중이던 직원들에게는 적응 기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디지털성범죄 TF 위원 대부분은 이 같은 법무부의 인사에 사퇴 카드를 꺼내 들었다.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2차 가해가 지속되고 있다.

▲재판에서 보인 태도를 생각하면 참으로 구차하고 파렴치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법원에서 디지털성범죄 가해자에 대한 형량을 정할 때 이러한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태도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반성문 100번 제출했다고 ‘진지한 반성’을 했다며 감형해서는 안 된다는 게 증명된 것 아닌가.

▲형사처벌이 진정한 반성을 이끌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진정한 반성은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 형사재판의 구조에서 피해자는 대체로 소외된다. 특히 피고인이 자백하면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다며 양형 감경 사유로 삼아준다.

그 결과 N번방 사건에서도 함께 방에 있었던 일반 가담자들은 아동 성 착취물 시청 및 소지죄로 대체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들의 주된 양형 감경 사유는 진지한 반성이었다. 디지털 성범죄뿐만 아니라 성범죄 전반에서 양형 감경 사유에서 형이 선고되는 비율이 양형 가중 사유에서 형이 선고되는 비율의 10배 정도 된다.


피해자에게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진지한 반성은 결국 형식적 반성이 되기 쉽고 2차 가해로도 쉽게 연결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성범죄 태스크포스(TF) 위원들이 사퇴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가 있나? 단지 서지현 전 검사에 대한 편파 인사 때문인가?

▲서 전 검사 인사 조치에 대한 항의 차원으로 다른 문제는 없었다. 서 전 검사가 사실상 위원회 실무의 총괄책임자이고 위원은 전원 민간전문가로 비상근인 상태에서 위원회 어느 누구와도 상의 없이 법무부 장관 취임 직전에 그 실무 총괄책임자를 법무부에서 나가라고 한 것은 사실상 위원회 업무를 마비시키는 것과 같다.

전문·자문위원 22명 중 17명 대거 사의 표명
남은 기간 세 달도…실제적 성과·활동 여러워

물론 다른 후임이 올 수도 있었겠지만 임기가 3개월 남은 상태에서 누가 후임으로 오더라도 인수인계와 기존 논의에 대한 이해도 등에서 종전처럼 활동하기 어려울 것으로 대다수 위원이 봤다. 실제로 누가 후임으로 올 것인지 알려주거나 향후 일정 및 계획에 대한 어떤 공유도 없었다.

-실제 법무부에 파견 업무를 수행한 검사와 수사관들도 서 전 검사에 대한 인사가 납득하기 힘든 인사라고 하는데 일각에서는 “한동훈 지시”라는 말이 있다.

▲정기인사 시점도 아니고 위원회 활동종료 시점도 아닌, 단지 새로운 법무부 장관 임명이 임박한 시점에 이뤄진 갑작스러운 인사 조치라 그런 추측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갑자기 언론 보도를 보고 서 전 검사가 복귀명령을 받아 더 이상 일을 못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황당했다.우리 일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없는 것 같아 형식적으로 존속할 이유도 없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이렇게 새 장관 취임 직전에 말 그대로 짐 쌀 시간도 주지 않고 복귀명령을 내린 것은 이례적인 것은 맞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위원회 사무처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데 여러 정부부처에서 파견온 공무원들을 복귀시킬 때 그런 식으로 복귀시킨 적은 없었다.

-서 전 검사가 사실상 좌천을 당했다고 해도 TF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있지 않나?

▲갑작스레 서 전 검사에 대한 인사 조치가 이뤄진 것이므로, TF로서는 남은 임기 동안 실제적인 활동을 하기 어려워졌다. 고작 임기가 3개월 남은 TF의 핵심 담당 검사 활동조차 보장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 검사가 떠난 이후 TF가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지 않겠나.

▲서 전 검사처럼 성인지 감수성을 갖추고 형사 절차 전반을 꿰고 있는 검사가 드물다. 후임이 누가 오든 이 역할을 잘하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했다. 위원 다수의 생각이 그랬다.

-윤석열 캠프는 지난해 12월 권력형·디지털 성범죄에 적극 대처하고 범죄 피해자를 보호·지원하는 원스톱 통합 전담기관 신설을 공약했다. 그러나 사실상 말뿐인 공약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렇다. 디지털 성범죄에 주로 대응하는 부처가 현재 법무부, 여성가족부다. 그런데 윤석열 캠프는 이미 여성가족부는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고, 서 전 검사에 대한 인사 조치를 통해 법무부 내 디지털 성범죄 TF의 활동은 막아버렸다.

디지털 성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윤석열 캠프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상태서 여성 유권자를 위한 형식적인 공약 한두 개라도 만들어야 하니 내세운 공약이 아닐까 싶다.

▲우리 위원회는 사실 법무부 내부의 위원회고 권고안을 내는 정도의 권한밖에 없다. 그래서 이 권고안들을 실현시키는 것은 법원, 검찰, 경찰, 여러 정부부처에서 함께 협의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다. 우리 위원회가 무력화되었다고 해서 그 공약이 당연히 무산된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고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할 일은 많다.

정말 잘하고자 한다면 디지털 성범죄 대응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상설 조직을 예산과 인력을 들여 만드는 것이 맞다. 현재 국가가 영상물 삭제를 지원할 의무가 있는데 범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그 지원 기관의 인력만으로는 너무 힘들다고 들었다.

서지현 전 검사 “짐 쌀 시간도 안 줘”
TF 아닌 정부 차원 전담기구 만들어야

수사기관도 삭제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결국 영상물을 찾고 삭제하는 것도 1차적으로는 피해자들의 몫이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해자들은 삭제했다고 주장하고 법원에서는 실제 삭제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지 않고도 삭제한 듯하다는 이유로 감경 사유로 삼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다만 그나마 권고안을 잘 내고 있던 법무부 소속의 위원회조차 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관리하기는커녕 일방적인 인사를 내는 마당에 제대로 된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법무부가 성범죄 대응과 관련한 새로운 기구 설치와 법 제정 등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디지털 성범죄 및 아동 대상 성범죄 등을 담당하는 전담기구를 오래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상의 성범죄 수법은 점차 진화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에 재빠르게 대응하면서 피해자 지원 등도 통합적으로 실시하는 전담기구가 필요하다. 참고로 TF 권고안 중에서도 피해자를 지원하는 통합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현재 권고안 중에는 60여개의 법률 제개정안이 포함돼있으므로 의지만 있다면 정부입법으로 추진할 수도 있다. 그런데 법무부는 전통적으로(?) 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이 많다 보니 성인지 감수성은 부족한 반면 기존 법체계를 지나치게 중시하고 새로운 현상에 대한 대응과 아이디어 면에서는 적응이 느리다. 그런 측면이 범죄 척결에 장애가 된다는 평가가 있어왔다.

우리 위원회 권고안의 법률제·개정안을 보고도 분명히 법무부가 기존 법체계 등을 이유로 반대할 수도 있다. 자꾸 모든 자리를 검사들에게 부여하려 하지 말고 민간에서 새로운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채용해서 새로운 범죄 유형 등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피해자들의 고통이 멈추지 않는다. 잘하길 바란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