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온상’ 미성년 랜덤채팅 실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9.14 11:01:55
  • 호수 12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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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소녀 노리는 검은 유혹

[일요시사 취재2팀] 구동환 기자 = 온라인은 익명성이 주는 자유로움이 존재한다.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랜덤채팅에 접속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런 점을 악용해 범죄를 일으키고 있다. 청소년들이 위험에 빠지기 쉬운 ‘랜덤채팅’의 실태를 파헤쳐봤다.
 

미성년자 범죄의 온상이었던 랜덤채팅 앱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고시됐다. 지난 10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불특정 이용자 간 온라인 대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랜덤채팅 앱에 대한 제재를 3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둔 후 오는 12월1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익명 보장
철통 보안

랜덤채팅 앱은 별도의 인증절차 없이 간단한 정보만 입력하면 가입할 수 있다. 앱 접속자들끼리 무작위로 일대 일 대화가 가능하므로 나이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여가부는 실명이나 휴대전화 번호에 대한 인증 기능이 없거나 대화 저장, 신고 기능 등 안전한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가 없는 앱들은 유예 기간 동안 개선 조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유해표시 의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성인인증 절차를 마련하지 않으면 최고 징역 3년 또는 3000만원의 벌금을 물 수 있다.

윤효식 여가부 청소년 가족정책실장은 “이번 랜덤채팅 앱의 청소년 유해 매체물 결정을 통해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화서비스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한다”며 “랜덤채팅 앱뿐만 아니라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 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모니터링)을 통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 착취 행위 등 불법행위가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랜덤채팅 앱은 가출청소년이 많이 사용한다. 집에서 나온 이들은 익명이라는 가면을 쓴 채 임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다. 이 앱은 청소년들에게 있어 가정불화, 친구 관계, 연인 관계, 개인적인 고민 등 말하지 못하는 부분을 소통할 수 있는 메신저 기능을 갖고 있다. 

이 점을 이용해 청소년들을 노리는 성인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하 형정원)이 지난해 랜덤채팅 앱에서 이뤄진 2230명의 대화를 분석한 결과, 상대가 미성년 이어도 대가를 제공하고 성적인 만남을 요구하는 등 성적인 목적으로 대화를 하는 경우가 76.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 상대방이 미성년임을 인지한 뒤에도 대화를 지속하는 비율도 61.9%에 달했다.

여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형정원에 의뢰해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이번 조사에선 온라인서 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위험을 파악하기 위해 처음으로 랜덤채팅 앱의 대화 패턴과 성매매를 조장하는 내용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심층 분석했다.

2012년 무작위 채팅 우후죽순 생겨
성적인 목적으로 대화 76% 웃돌아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중 ‘랜덤채팅 앱 현황 분석’ 결과 여성가족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실시한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399개 랜덤채팅 앱 가운데 77.7%가 만 18살 이상 ‘성인’ 등급으로 설정돼있으면서도 실제로 본인 인증을 요구하는 비율은 26.3%에 불과했다.

연구자가 13·16·19·23살 여성으로 가장해 랜덤채팅 앱에 접속한 뒤 조사 대상자 2230명과의 대화를 수집·분석했는데, 대상자의 10명 중 9명이 30대 이하로 나타났으며 이들 중 21.4%는 미성년자에게 대가를 제공하는 성적인 만남을 요구했다.


성적인 내용을 담은 채팅(12.3%)을 하거나 음란 사진과 영상을 공유(7%)하는 경우도 있었다.

랜덤채팅 앱은 2012년 초부터 성행하기 시작했다. 랜덤채팅 앱 1세대로는 앱은 ‘심톡’ ‘살랑살랑 돛단배’ ‘부엉이 쪽지’ ‘두근두근 우체통’ ‘하이데어’ ‘1km’ 등 수십여 개다. 이들 앱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이용자를 연결하는 일종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 ⓒpixabay

다만 기존에 알던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상대를 연결하거나,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개하는 등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또 나이와 성별 정도만 입력하면 대부분 사용할 수 있었다.

처음엔 모르는 사람끼리 대화를 나누고, 만나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등 긍정적인 기능을 했다. 하지만 이용자 중 일부가 익명성을 악용해 이들 앱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채팅 앱에는 본인 확인 절차가 없어 음란성 메시지나 노골적으로 성관계 상대를 찾는 메시지를 거리낌 없이 보낼 수 있다.

상대방이 음란 이용자를 신고하더라도 이용제한 외에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그런데 신고된 이용자가 앱을 삭제하면 기록도 지워지기 때문에 앱을 재설치할 경우 이용제한도 의미가 없어진다.

채팅 앱이 이렇게 변질되면서 불건전한 의도를 가진 사람만 이용자로 남는 상황이 됐다. 현재 각종 스마트폰 채팅 앱은 사실상 음란정보의 창구나 잠자리 대상을 찾는 도구로 전락했다.

취지는
좋았으나…

안드로이드 기반의 심톡 등 일부 앱은 성관계 대상을 찾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서 심톡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심톡 여자’ ‘심톡 홈런’(성관계 성공을 의미하는 은어), ‘심톡 조건’ 같은 말이 뜰 정도다. 친구에게 성매매를 시키다 구속된 오양 등이 이용한 것도 심톡이다.

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한 만남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한다. 전화번호 외에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범죄 의도를 가지고 대포폰을 이용한다면 유일한 정보인 전화번호마저 의미가 없어진다. 

오프라인으로 만나서도 신상을 속이게 된다면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범죄 노출의 우려가 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채팅으로 성인끼리 만나거나 성관계를 맺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스마트폰 채팅으로 남성을 만난 여성이 잠재적인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우려된다. 인터넷 남성 커뮤니티나 유흥정보 사이트에는 스마트폰 채팅으로 여성을 만난 경험담이 ‘어플 작업녀 후기’ ‘어플 홈런기’라는 글도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글을 올리는 남성은 여성을 만난 과정과 채팅 내용, 성관계 내용까지 자랑스럽게 올린다. 심지어 자신의 글이 사실임을 증명하려고 상대 여성의 나체를 몰래 촬영해 인증사진으로 올리는 경우도 있다. 채팅으로 남성을 만난 여성은 자신도 모르게 나체사진이 찍히고, 그것이 인터넷에 떠돌아 피해자가 된다.
 

▲ ⓒpixabay

랜덤채팅 앱을 규제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스마트폰 보급 초기부터 꾸준히 있었다. 2012년 당시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선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본인 인증 조처를 하도록 하고, 청소년 성매매 암시·유발 정보를 발견했을 때 삭제 또는 전송 중지하는 의무를 규정했다. 

그러나 인터넷기업협회는 랜덤채팅이 아동·청소년 성매매 등의 범죄 통로로 이용되는 것은 본래 서비스 제공의 목적이 아닌 악용 사례 중 하나로써 서비스 자체가 불법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실시간 대화 형식의 서비스 전체서 음란정보가 유통되는 것이 명확한 상황이 아님에도 ‘가능성’만으로 규제하는 것은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측면으로, 이 같은 반대에 부딪쳐 랜덤채팅의 규제를 위해 제안된 아청법 일부개정안은 모두 폐기됐다. 

속고 
속이고

이 때문인지 랜덤채팅으로 인한 미성년자 성범죄는 해가 가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런 채팅앱이 각종 범죄의 통로가 됐다.

최근 전모가 드러난 전주 살해 사건 용의자 최신종씨는 지인 외에도 부산에 거주하는 생면부지 여성을 살해했는데, 랜덤채팅을 통해 부산 여성을 전주까지 유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착취물 제작·유포가 드러나며 공분을 산 N번방 가해자들도 랜덤채팅을 통해 피해자들을 유인하기도 했다. 랜덤채팅을 통해 황당한 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남성 A씨는 자신을 여성으로 속이며 “당하고 싶다. 만나서 상황극을 할 남성을 찾는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후 연락해온 남성 B씨에게 아무 원룸 주소를 알려줬다. 이후 B씨는 해당 원룸을 찾아가 애먼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다.

지난해 7월에는 광주서 20대 2명이 알고 지내던 미성년자 3명을 채팅 앱을 통해 성매매하도록 하다가 적발됐다. 미성년자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채팅앱에 접속하는 경우도 있다. 채팅앱에 접속해 여성이라고 표기만 하면 “용돈을 주겠다”는 등 성매매 암시 글이 1분 만에도 수십 개의 쪽지가 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서 유통되는 랜덤채팅 앱은 대략 300∼400개로 파악된다. 현재 상당수의 랜덤 채팅 앱은 특별한 아이디를 만들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회원가입 이후에는 상대방의 어떠한 인적사항도 확인되지 않으며 무작위 채팅이 이뤄진다. 최근의 앱들은 GPS를 이용해 서로 간의 거리를 알려주고 쪽지를 주고받으면서 대화 당사자끼리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때문에 제3자의 개입이 없다. 또 한쪽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차단하면 그동안의 모든 대화가 삭제되기 때문에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 같은 점 때문에 성매매의 온상이 되고 있다. 

가상의 신분으로 가입이 가능한 탓에 야한 사진과 영상, 성매매 제안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특히 일부 앱은 미성년자의 가입을 차단하는 기능이 없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매매에도 이용될 소지가 크다.

N번방·성매매 등 범죄 수단 활용
신고당해도 재설치하면 의미 없어

한 청소년 상담사는 “가출청소년의 경우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성매매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같은 랜덤채팅 앱을 이용해서 나이를 속이거나 조건이 맞는 상대를 찾아내 성매매를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미성년자 성매매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14236호)에 의거, 처벌받게 된다. 또 법 제13조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이상 5000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제15조에서는 알선 영업행위 등에 따라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의 장소를 제공하는 행위를 업으로 하는 자, 정보통신망서 알선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업으로 하는 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성매매 행위에 적용할 수 있는 조항들이다.

그러나 랜덤채팅 대화 내용은 사용자가 지우는 순간 대부분 삭제되기 때문에 경찰이나 관계당국서 단속이 쉽지 않다. 또 가입 전 이용자들의 정보를 저장해두지 않는 앱의 특성상 사고가 발생해도 수사가 어렵다고 경찰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런 문제점이 지속되자 송봉규 한세대학교 산업보안학과 교수가 조건 만남, 온라인 그루밍, 아동 성 착취, 아동 성적 학대, 디지털 성범죄 대상이 되는 ‘아동·청소년 대상 랜덤채팅’에 관한 책을 지난 5월 출간했다.

송 교수는 “성매매는 범죄이고, 성매매알선은 범죄행위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불법 사업”이라며 이뤄지고 있는 구조에 대해 다뤘다. 송 교수는 구매자와 판매자, 성매매 알선업자와 업소 운영자를 중심으로 변화하는 성매매 구조를 분석했다.

성매매라는 불법 사업은 인터넷,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 사이버 공간(기술)으로 간판없는 공간(무점포)으로 이동하는 형태로 진화해 사업비용과 단속의 위험성은 낮아지고 수익은 안정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사이버공간이라는 기술을 바탕으로 현실 공간에 성매매업소가 없거나 간판이 없는 공간으로 단시간에 이동하거나 오피스텔처럼 일시적으로 운영이 가능한 형태의 성매매인 조건 만남, 다양한 마사지업, 오피, 보도방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300∼400개
간단한 개설

또 다른 합법적 사업과 동일하게 불법적 사업인 성매매알선도 사이버 공간이 현실 공간을 지배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송 교수의 분석대로 이 같은 불법적 사업영역은 10대 조직폭력배와 가출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 청소년에게도 불법 기회를 줬고 인터넷 채팅 웹사이트를 시작으로 랜덤채팅 앱을 통한 아동·청소년 조건만남은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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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