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온상’ 미성년 랜덤채팅 실태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9.14 11:01:55
  • 호수 12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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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소녀 노리는 검은 유혹

[일요시사 취재2팀] 구동환 기자 = 온라인은 익명성이 주는 자유로움이 존재한다.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랜덤채팅에 접속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런 점을 악용해 범죄를 일으키고 있다. 청소년들이 위험에 빠지기 쉬운 ‘랜덤채팅’의 실태를 파헤쳐봤다.
 

미성년자 범죄의 온상이었던 랜덤채팅 앱이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고시됐다. 지난 10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불특정 이용자 간 온라인 대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랜덤채팅 앱에 대한 제재를 3개월간의 유예 기간을 둔 후 오는 12월1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익명 보장
철통 보안

랜덤채팅 앱은 별도의 인증절차 없이 간단한 정보만 입력하면 가입할 수 있다. 앱 접속자들끼리 무작위로 일대 일 대화가 가능하므로 나이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여가부는 실명이나 휴대전화 번호에 대한 인증 기능이 없거나 대화 저장, 신고 기능 등 안전한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가 없는 앱들은 유예 기간 동안 개선 조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유해표시 의무를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성인인증 절차를 마련하지 않으면 최고 징역 3년 또는 3000만원의 벌금을 물 수 있다.

윤효식 여가부 청소년 가족정책실장은 “이번 랜덤채팅 앱의 청소년 유해 매체물 결정을 통해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화서비스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한다”며 “랜덤채팅 앱뿐만 아니라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 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모니터링)을 통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 착취 행위 등 불법행위가 근절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랜덤채팅 앱은 가출청소년이 많이 사용한다. 집에서 나온 이들은 익명이라는 가면을 쓴 채 임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다. 이 앱은 청소년들에게 있어 가정불화, 친구 관계, 연인 관계, 개인적인 고민 등 말하지 못하는 부분을 소통할 수 있는 메신저 기능을 갖고 있다. 

이 점을 이용해 청소년들을 노리는 성인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하 형정원)이 지난해 랜덤채팅 앱에서 이뤄진 2230명의 대화를 분석한 결과, 상대가 미성년 이어도 대가를 제공하고 성적인 만남을 요구하는 등 성적인 목적으로 대화를 하는 경우가 76.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 상대방이 미성년임을 인지한 뒤에도 대화를 지속하는 비율도 61.9%에 달했다.

여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형정원에 의뢰해 3년 주기로 실시하는 이번 조사에선 온라인서 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위험을 파악하기 위해 처음으로 랜덤채팅 앱의 대화 패턴과 성매매를 조장하는 내용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심층 분석했다.

2012년 무작위 채팅 우후죽순 생겨
성적인 목적으로 대화 76% 웃돌아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중 ‘랜덤채팅 앱 현황 분석’ 결과 여성가족부,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5월부터 11월까지 실시한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399개 랜덤채팅 앱 가운데 77.7%가 만 18살 이상 ‘성인’ 등급으로 설정돼있으면서도 실제로 본인 인증을 요구하는 비율은 26.3%에 불과했다.

연구자가 13·16·19·23살 여성으로 가장해 랜덤채팅 앱에 접속한 뒤 조사 대상자 2230명과의 대화를 수집·분석했는데, 대상자의 10명 중 9명이 30대 이하로 나타났으며 이들 중 21.4%는 미성년자에게 대가를 제공하는 성적인 만남을 요구했다.


성적인 내용을 담은 채팅(12.3%)을 하거나 음란 사진과 영상을 공유(7%)하는 경우도 있었다.

랜덤채팅 앱은 2012년 초부터 성행하기 시작했다. 랜덤채팅 앱 1세대로는 앱은 ‘심톡’ ‘살랑살랑 돛단배’ ‘부엉이 쪽지’ ‘두근두근 우체통’ ‘하이데어’ ‘1km’ 등 수십여 개다. 이들 앱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이용자를 연결하는 일종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 ⓒpixabay

다만 기존에 알던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상대를 연결하거나, 주변에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개하는 등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또 나이와 성별 정도만 입력하면 대부분 사용할 수 있었다.

처음엔 모르는 사람끼리 대화를 나누고, 만나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등 긍정적인 기능을 했다. 하지만 이용자 중 일부가 익명성을 악용해 이들 앱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채팅 앱에는 본인 확인 절차가 없어 음란성 메시지나 노골적으로 성관계 상대를 찾는 메시지를 거리낌 없이 보낼 수 있다.

상대방이 음란 이용자를 신고하더라도 이용제한 외에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그런데 신고된 이용자가 앱을 삭제하면 기록도 지워지기 때문에 앱을 재설치할 경우 이용제한도 의미가 없어진다.

채팅 앱이 이렇게 변질되면서 불건전한 의도를 가진 사람만 이용자로 남는 상황이 됐다. 현재 각종 스마트폰 채팅 앱은 사실상 음란정보의 창구나 잠자리 대상을 찾는 도구로 전락했다.

취지는
좋았으나…

안드로이드 기반의 심톡 등 일부 앱은 성관계 대상을 찾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서 심톡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심톡 여자’ ‘심톡 홈런’(성관계 성공을 의미하는 은어), ‘심톡 조건’ 같은 말이 뜰 정도다. 친구에게 성매매를 시키다 구속된 오양 등이 이용한 것도 심톡이다.

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한 만남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한다. 전화번호 외에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범죄 의도를 가지고 대포폰을 이용한다면 유일한 정보인 전화번호마저 의미가 없어진다. 

오프라인으로 만나서도 신상을 속이게 된다면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범죄 노출의 우려가 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채팅으로 성인끼리 만나거나 성관계를 맺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스마트폰 채팅으로 남성을 만난 여성이 잠재적인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부분은 우려된다. 인터넷 남성 커뮤니티나 유흥정보 사이트에는 스마트폰 채팅으로 여성을 만난 경험담이 ‘어플 작업녀 후기’ ‘어플 홈런기’라는 글도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글을 올리는 남성은 여성을 만난 과정과 채팅 내용, 성관계 내용까지 자랑스럽게 올린다. 심지어 자신의 글이 사실임을 증명하려고 상대 여성의 나체를 몰래 촬영해 인증사진으로 올리는 경우도 있다. 채팅으로 남성을 만난 여성은 자신도 모르게 나체사진이 찍히고, 그것이 인터넷에 떠돌아 피해자가 된다.
 

▲ ⓒpixabay

랜덤채팅 앱을 규제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스마트폰 보급 초기부터 꾸준히 있었다. 2012년 당시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선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본인 인증 조처를 하도록 하고, 청소년 성매매 암시·유발 정보를 발견했을 때 삭제 또는 전송 중지하는 의무를 규정했다. 

그러나 인터넷기업협회는 랜덤채팅이 아동·청소년 성매매 등의 범죄 통로로 이용되는 것은 본래 서비스 제공의 목적이 아닌 악용 사례 중 하나로써 서비스 자체가 불법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실시간 대화 형식의 서비스 전체서 음란정보가 유통되는 것이 명확한 상황이 아님에도 ‘가능성’만으로 규제하는 것은 과잉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측면으로, 이 같은 반대에 부딪쳐 랜덤채팅의 규제를 위해 제안된 아청법 일부개정안은 모두 폐기됐다. 

속고 
속이고

이 때문인지 랜덤채팅으로 인한 미성년자 성범죄는 해가 가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런 채팅앱이 각종 범죄의 통로가 됐다.

최근 전모가 드러난 전주 살해 사건 용의자 최신종씨는 지인 외에도 부산에 거주하는 생면부지 여성을 살해했는데, 랜덤채팅을 통해 부산 여성을 전주까지 유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착취물 제작·유포가 드러나며 공분을 산 N번방 가해자들도 랜덤채팅을 통해 피해자들을 유인하기도 했다. 랜덤채팅을 통해 황당한 범죄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남성 A씨는 자신을 여성으로 속이며 “당하고 싶다. 만나서 상황극을 할 남성을 찾는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후 연락해온 남성 B씨에게 아무 원룸 주소를 알려줬다. 이후 B씨는 해당 원룸을 찾아가 애먼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다.

지난해 7월에는 광주서 20대 2명이 알고 지내던 미성년자 3명을 채팅 앱을 통해 성매매하도록 하다가 적발됐다. 미성년자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채팅앱에 접속하는 경우도 있다. 채팅앱에 접속해 여성이라고 표기만 하면 “용돈을 주겠다”는 등 성매매 암시 글이 1분 만에도 수십 개의 쪽지가 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내서 유통되는 랜덤채팅 앱은 대략 300∼400개로 파악된다. 현재 상당수의 랜덤 채팅 앱은 특별한 아이디를 만들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

회원가입 이후에는 상대방의 어떠한 인적사항도 확인되지 않으며 무작위 채팅이 이뤄진다. 최근의 앱들은 GPS를 이용해 서로 간의 거리를 알려주고 쪽지를 주고받으면서 대화 당사자끼리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때문에 제3자의 개입이 없다. 또 한쪽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차단하면 그동안의 모든 대화가 삭제되기 때문에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 같은 점 때문에 성매매의 온상이 되고 있다. 

가상의 신분으로 가입이 가능한 탓에 야한 사진과 영상, 성매매 제안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특히 일부 앱은 미성년자의 가입을 차단하는 기능이 없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매매에도 이용될 소지가 크다.

N번방·성매매 등 범죄 수단 활용
신고당해도 재설치하면 의미 없어

한 청소년 상담사는 “가출청소년의 경우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성매매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 같은 랜덤채팅 앱을 이용해서 나이를 속이거나 조건이 맞는 상대를 찾아내 성매매를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미성년자 성매매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14236호)에 의거, 처벌받게 된다. 또 법 제13조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이상 5000만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제15조에서는 알선 영업행위 등에 따라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의 장소를 제공하는 행위를 업으로 하는 자, 정보통신망서 알선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업으로 하는 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스마트폰 채팅 앱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 성매매 행위에 적용할 수 있는 조항들이다.

그러나 랜덤채팅 대화 내용은 사용자가 지우는 순간 대부분 삭제되기 때문에 경찰이나 관계당국서 단속이 쉽지 않다. 또 가입 전 이용자들의 정보를 저장해두지 않는 앱의 특성상 사고가 발생해도 수사가 어렵다고 경찰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런 문제점이 지속되자 송봉규 한세대학교 산업보안학과 교수가 조건 만남, 온라인 그루밍, 아동 성 착취, 아동 성적 학대, 디지털 성범죄 대상이 되는 ‘아동·청소년 대상 랜덤채팅’에 관한 책을 지난 5월 출간했다.

송 교수는 “성매매는 범죄이고, 성매매알선은 범죄행위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불법 사업”이라며 이뤄지고 있는 구조에 대해 다뤘다. 송 교수는 구매자와 판매자, 성매매 알선업자와 업소 운영자를 중심으로 변화하는 성매매 구조를 분석했다.

성매매라는 불법 사업은 인터넷,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 사이버 공간(기술)으로 간판없는 공간(무점포)으로 이동하는 형태로 진화해 사업비용과 단속의 위험성은 낮아지고 수익은 안정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사이버공간이라는 기술을 바탕으로 현실 공간에 성매매업소가 없거나 간판이 없는 공간으로 단시간에 이동하거나 오피스텔처럼 일시적으로 운영이 가능한 형태의 성매매인 조건 만남, 다양한 마사지업, 오피, 보도방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300∼400개
간단한 개설

또 다른 합법적 사업과 동일하게 불법적 사업인 성매매알선도 사이버 공간이 현실 공간을 지배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송 교수의 분석대로 이 같은 불법적 사업영역은 10대 조직폭력배와 가출청소년뿐만 아니라 일반 청소년에게도 불법 기회를 줬고 인터넷 채팅 웹사이트를 시작으로 랜덤채팅 앱을 통한 아동·청소년 조건만남은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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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