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검찰 권한 줄이기에 몰두했다. 그 결과 검찰개혁은 문정부의 상징이자 목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불과 한 달 남짓 상황에서 여권이 검찰개혁의 마지막 카드인 ‘검수완박’을 들고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3월4일 검찰총장 자리에서 내려왔다. 법에 보장된 2년 임기를 4개월여 남긴 시점이었다. 이후 윤 당선인은 정치권에 입문, 8개월 만에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되더니 지난달 9일 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권한 주자”
당시 윤 당선인의 사퇴 원인으로 여권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추진이 꼽혔다. 윤 당선인은 사퇴 전날인 지난해 3월3일 “지금 진행 중인 검수완박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는 헌법정신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고 국가와 정부의 헌법상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검수완박은 현재 검찰에 남아 있는 6대 중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을 다른 기관으로 옮기고 검찰에 기소권만 남기는 것을 골자로 한다. 중대범죄수사청, 특별수사청 등의 기관을 새로 만들어 6대 범죄 수사권을 넘기자는 것.
현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소청법’, 황운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중수청 설치법’, 이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별수사청 설치법’ 등이 국회에 계류돼있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처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특히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서는 검수완박 처리로 검찰개혁을 완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박주민 의원은 “당내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있고 그것(검수완박)을 추진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민주당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김용민 의원은 자신의 SNS에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고,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공약이기도 한 검찰개혁은 이제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시 처럼회 민형배 의원도 “정치교체나 언론개혁도 중요하다. 다만 혹여 검찰발 쿠데타로 개혁이 좌초될 수 있어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며 “검찰개혁, 더는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적었다.
수사권·기소권 완전 분리
문 임기 한 달 남았는데…
앞서 민주당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4일 “검찰개혁 등 문재인정부의 마지막 입법 과제로 대두되는 문제들에 대해 당은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개혁 완수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면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의 완전한 분리를 강조한 것이다.
문제는 민주당의 이 같은 행보가 윤 당선인의 검찰 관련 공약과 완전히 배치된다는 점이다. 윤 당선인은 ‘검찰의 독립성 강화’를 골자로 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구체적으로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총장에 예산 요구(편성)권 부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24조 폐지 ▲검경 책임 수사제 도입 등이다.
검찰청법 8조는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조항이다. 윤 당선인은 문정부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발동한 3건의 수사지휘권이 악용됐다는 입장이다.
공수처법 24조는 공수처가 공수처 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사건을 가져올 수 있고, 타 기관이 고위공직자 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공수처에 즉시 통보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 당선인은 이 조항을 독소조항으로 규정,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경 책임 수사제 도입은 수사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송치 전 경찰의 자율적 수사’ ‘송치 후 검사의 직접 보완 수사’로 절차를 단순화하는 게 핵심이다.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윤 당선인의 공약대로면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은 ‘인사권’밖에 남지 않는다. 실제 검찰 권력의 비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반면 민주당의 검수완박은 검찰의 손발을 아예 잘라버리는 작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에 대한 윤 당선인과 민주당의 시각이 완전 극과 극에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검수완박 카드를 다시 들고 나온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직후 검찰개혁에 대한 수위를 높이다 검수완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윤 당선인 취임 이후 다시 거대해진 검찰이 문재인정부와 이재명 상임고문에 대한 ‘보복수사’를 할 것이라는 우려가 검수완박 형태로 나타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보복수사 전에 처리하자”
“6월 지방선거도 망칠라”
실제 검찰은 고발 3년여 만에 ‘산업부 블랙리스트’ 등 문정부 관련 수사를 재개하고 있다. 여기에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 사건 등에 대한 수사도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이렇게 되면 검찰의 칼끝이 이 상임고문은 물론 문 대통령을 향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시간이 많지 않다. 윤 당선인이 취임한 후에 법안이 처리되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국회 172석의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민주당은 법사위에서도 전체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검수완박 관련 법을 처리하는 데 물리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은 없다는 뜻이다.
민주당이 의지를 보인다면 한 달 남짓 남은 문 대통령의 임기 내에 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여론, 그리고 그와 맞물린 6월 지방선거가 걸림돌이다. 민주당 내부에서 온건파를 중심으로 검수완박 법안 처리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장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6월1일 지방선거는 차기 정부 출범 3주 만에 진행되는 대형 선거다.
이미 대선에서 한 차례 진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도 패배하면 급격한 내분에 휩싸일 수 있다.
원내대표 선출 전 검찰개혁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도 “검수완박은 여유 있게 검토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드러낸 상태다. 박 원내대표는 “현 정부 내에서 어느 정도까지 할지 내부 합의에 따라 이행 경로를 만들어가면 된다”며 “당 내부부터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권한 뺏자”
국민의힘 측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에 ‘결사반대’ 입장을 보였다. 국민의힘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정권 말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대못 박기”라며 “부디 거대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더는 민심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민주당의 검찰개혁을 비판했다. 검수완박 법안을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가 6월 지방선거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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