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받는 특검 불가론 막전막후

안 되는 줄 알면서…날리는 공수표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유한기의 사망이 정계에 다시 특검 바람을 일으켰다. 정계는 검찰의 잘못된 수사 방식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특검 도입’이란 칼로 난도질을 하는 중이다. 그러나 진행 상황은 그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고,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검을 도입했어야 할 시간이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 지난 10일 집 근처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자택에서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유 전 본부장은 수사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날 새는데…
큰소리 땅땅

유 전 본부장은 화천대유의 관계사인 천화동인으로부터 2억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몇 달간 검찰의 수사를 받아왔다. 검찰은 돈을 받고 화천대유의 편의를 봐준 것이 아니냐는 ‘뇌물죄’를 그에게 적용하려 했다. 만일 검찰의 주장이 입증됐다면 유 전 본부장은 최소 10년 이상 형을 살아야 했다.

그가 뇌물을 받았다고 의심받는 시점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이다. 당시 유 전 본부장은 구속 수감 중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더불어 성남시의 실세로 알려져 있었다.

지역 주민들은 유한기와 유동규를 ‘유투’라 부르며 그들의 영향력을 높게 평가했다. 이 때문에 정계에선 이른바 ‘유투’의 혐의가 입증되면 이 후보도 대장동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 예측했다.


그런 그가 영장실질심사 나흘을 앞두고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그의 죽음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다. “강압수사 때문에 자살한 것 아니냐” “돈을 받았으니 자살한 것이 아니냐” “이번에도 꼬리 자르기 아니냐” 등 관심 있게 사건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이런저런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그동안 비슷한 사례를 많이 봐왔던 탓이다. 검찰은 그동안 언론의 주목을 끌만한 유력 정치인들의 사건을 많이 다뤄왔고, 그때마다 빈번하게 의혹 당사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들의 죽음은 늘 수사팀을 난항으로 빠져들게 했다.

가까이에서 찾으면 작년 ‘옵티머스 복합기 대납 사건’ 사례가 있다. 당시 검찰은 옵티머스의 주가 조작 사건을 수사하던 중,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의 측근인 이모씨를 유력 관련인으로 보고 참고인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이씨는 옵티머스 측으로부터 이 전 대표의 종로 사무실 복합기 사용 요금 76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아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고발당한 상태였다. 그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얼마 후, 이씨는 서울중앙지검 근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이어졌고, 이 전 대표는 해당 사건에서 사실상 빠지게 됐다.

유한기 사망 이후 다시 불거져 
양당 서로에게 ‘책임 떠넘기기’

그 외에도 상상인저축은행 관련 피고발인,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 참고인, 청와대 감찰반원 출신 검찰수사관, 군납 비리 의혹을 받던 육군대장 등 지난해에만 수많은 사람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수사는 그때마다 난항에 빠져갔다.


이번 유 전 본부장의 사례도 비슷한 경우다. 검찰은 현재 대장동 과잉 수사 논란에 직면해 있고, 이 후보에게 이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수많은 설왕설래 속에서 이 후보는 직접 유 전 본부장에 대한 애도 소식을 전했다. 그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극단적 선택에 대해 비통한 심정”이라며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특검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죽음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 때문이고, 이를 위해서는 특검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이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설계자 1번 플레이어를 두고 주변만 탈탈 터니 이런 거 아니겠나”며 “권력 눈치를 보며 미적거린 검찰의 장기 수사와 이제 와서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의 미진한 수사 상황을 비판하며 특검 도입에 대한 우회적인 주장을 한 것이다.

유 전 본부장의 죽음으로, 정계에는 특검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양당은 이번 사건에 대한 논평에서 검찰의 미진하고 과격한 수사에 의심을 보내는 것과 동시에 특검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그들의 태도에 의아함을 보내는 사람도 많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특검법 도입을 양당의 후보와 핵심 인사들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요시사>는 특검이 늦어진 것에 대한 이유를 들어보기 위해 양당 모두를 취재했다. 취재 결과 ‘책임 떠넘기기’였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게 유리한 내용만 담은 특검법이 발의됐기에 거부한다는 입장이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표리부동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권혁기 공보부단장은 “국민의힘 쪽이 발의한 특검법을 보셨나 반문하고 싶다. 그 특검법에는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수사가 빠져있었다. 대장동 사건을 수사하려면 시작점인 저축은행부터 종착지인 화천대유 로비사건까지 수사해야만 한다는 게 민주당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국민의힘 측이 특검법 발의를 저축은행과 관련한 것을 빼고 했고, 최근에야 윤석열 후보가 모두 진행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발의된 특검법 자체가 국민의힘 측에 유리하게 진행되게 짜 맞춰졌기 때문에 민주당은 동의할 수가 없었고, 그 때문에 시간이 늦어지는 것이라는 논리다.

대선후보만 
모르고 있나

그가 말하는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화천대유 ‘봐주기’ 의혹이다. 화천대유는 당시 대장동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1000억원대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고, 이를 대출받는 과정에서 불법 수수료를 지급하는 등 위법행위를 여러 개 저질렀다.

수사 기록에 따르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대검 중수부는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사건을 뭉갰다. 이 사건은 4년 뒤 수원지검 특수부가 재수사하며 비로소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문제는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중수부의 주임검사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라는 점이다. 민주당 측은 이때 윤 후보가 수사를 제대로 진행했더라면 화천대유가 대장동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지 못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특검 수사 대상에는 부산저축은행이 반드시 들어가 윤 후보도 수사선상에 있어야 한다고 성토하는 중이다.

반면, 국민의힘 김경진 상임공보특보단장은 “민주당이 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축은행 사건은 이미 2011년에 수사해서 2012년에 재판 결과가 난 사안”이라며 “이 후보가 겉으로는 적극적으로 특검을 도입하자고 시늉하고 있지만, 정작 특검 절차를 진행해야 할 원내대표가 협의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후보와 원내대표 둘이서 역할 분담을 해서 결과적으로는 특검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켕기는 게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겠나 생각한다. 유동규 전 본부장이 체포된 날 통화한 게 이 후보의 최측근인 정진상이라고 밝혀지지 않았나. 당장 대장동 관련 특검을 하면 분명히 이 후보 관련 비리가 나올 것”이라 덧붙였다.

실제로 정진상 전 성남시 정책실장은 유 전 본부장이 구속되기 직전 그와 통화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정 전 실장은 “녹취록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상황에서 평소 알고 있던 유 전 본부장 모습과 너무나 달라 직접 확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통화에서 유 전 본부장에게 잘못이 있다면 감추지 말 것과 수사에 충실이 임할 것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반대도 없고
도입도 없고

그러나 유 전 본부장은 정 전 실장의 조언과는 달리, 그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창문 밖으로 던지는 등 기행동을 펼쳤다. 국민의힘 측은 이것이 정 전 실장을 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이유로 반대했던 양당이 최근에는 특검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사실상 지금 시점에서 대선 전 특검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당장 지금이라도 여야가 기적적으로 합의해 특검팀을 빠르게 꾸린다고 쳐도 수사는 대선일인 내년 3월9일을 훌쩍 넘기고 나서 종료된다.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특검팀의 수사 결과를 듣는 데까지 적어도 100일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여야가 합의한 특검팀이 꾸려지고 수사 개시까지만 하는 데도 평균 약 40일이 걸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특검은 43일이 걸렸고, 국정 농단 때는 34일이 걸렸다. 드루킹 특검은 꼬박 37일이 소요된 바 있다.

수사가 개시된 후에도 특검팀은 약 3주간 수사에 착수하지 못한다. 상설특검법 10조 1항엔 ‘특검은 임명된 날부터 20일 동안 수사에 필요한 시설의 확보, 특별검사보의 임명 요청 등 직무 수행에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다. 이 경우 준비기간 중에는 담당 사건에 대해 수사를 해선 안 된다’고 명시돼있다.

특검팀은 개시 후 20일 동안 수사 준비만 해야 하는데, 이때 담당 사건에 대해 수사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준비 기간이 끝난 후 특검팀에게 주어진 수사 기간은 총 30~70일이다. 이 기간은 대통령 승인 여부에 따라 10~30일 연장도 가능하다. 이때는 수사팀의 역량에 따라 수사 결과를 내놓는 시점이 더 짧아질 수도, 더 길어 질수도 있는데, 그간의 사례들은 적어도 40일 이상 걸릴 것이라 말해주고 있다.

내곡동 사저 특검은 약 40일, 국정 농단 특검은 수사하는 데만 약 70일 이상, 드루킹 특검은 약 50일이 걸렸다. 수사 종료 후 발표까지 유권자들은 적어도 한 달 반은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만 한다.

특검 수사 종료까지 100일
대선까진 90일도 안 남아

평균치를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특검팀 꾸리는 데 40일, 수사 준비 20일, 수사기간 40일을 더하면 약 100일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빠르게 합의해 12월 셋째 주 월요일(20일)에 특검팀 준비를 시작한다 해도 최종 수사 결과는 백일 후인 내년 3월29일에나 나온다.

대통령선거가 3월9일에 시작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너무 늦은 날짜다. 유권자들이 공정한 정보를 갖고 대통령 투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대선후보들은 서로 경쟁하듯 특검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18일 “조건을 붙이지 않고 아무 때나 합의해서 특검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윤 후보를 겨냥해 “본인이 잘못한 게 없으면 피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윤 후보는 지난 11일 “말장난 그만하고 바로 특검에 들어가자”며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등을 다 포함해서 하자고 말한 것이 언제냐. 정말 자신 없으면 못하겠다고 말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후보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서 특검을 주장한 시점은 대선 전 특검 도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시작한 지난달 둘째 주부터다. 그전까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한 이유 등으로 특검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던 양당 후보가 대선 전 수사 종료라는 데드라인이 지나자 갑자기 적극적인 태도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법조인 출신인 두 후보가 특검 데드라인이 지난 것을 알았기 때문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검 시행이 이미 늦은 것 아니냐는 <일요시사>의 질문에 양당의 공보팀은 각기 다른 대답을 내놨다. 국민의힘 김 단장은 “그런 골치 아픈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현실적으로 특검이 ‘불가능한 상황’ 비슷하게 됐다. 적어도 두 달 전에는 출범을 했어야 했는데 시간이 너무 흘렀다. 한 달 반 후에는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들어가는데, 특검을 현실적으로 시작하기 어려운 국면을(민주당과 이 후보가) 만들어놨다”고 이미 늦은 특검을 인정했다.

반면, 민주당의 권 부단장은 수사 종료 시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누가 범인인지가 꼭 대선 전에 밝혀져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잘못된 발상”이라며 “양 후보 모두 범인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대선 전에 끝나야 하는 것도 강박성에 사로잡힌 생각이다. 철저히 수사해서 누가 범인인지를 공정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 수사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이미 늦은 특검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수사 데드라인에 큰 의미를 두면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누구도 특검을 반대하지 않는데, 누구도 특검을 도입을 행동으로 옮기려 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끝난 얘기

지금 시작해도 대선 전에 수사 결과 발표가 불가능한 특검을 양당의 후보들은 정치적인 메시지로 연일 떠들어대고 있다. 그들의 메시지가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어 갈지는 미지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들이 날리는 ‘특검 주장’은 이미 공수표가 됐다는 점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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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