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국민 예능맨’ 유재석의 30년 풀스토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5.11 09:35:11
  • 호수 13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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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메뚜기’ 자세 낮추고 훨훨 날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정상의 자리로 올라가는 것보다 그 자리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정상을 위협하는 2인자들이 치고 올라오려는 노력보다 몇 배는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예계 정상을 10년 이상 군림하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국민 MC 유재석이다. 유느님, 방송 기계 등 독보적인 별명을 갖고있는 유재석이 어느 덧 데뷔 30년을 맞았다. 

장인이라고 하면 한 분야 최소 30년 이상 몸담은 사람을 말한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보다 경험을 통해 갖는 노하우는 이기기 힘들기 마련이다. 예능계에서 한 시대를 주름잡고 있는 유재석의 활약은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는 유재석 시대에 살고 있다. 

방송국 대신
호프집 알바

유재석이 정상의 자리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더욱 더 높게 평가받는 부분은 철저한 자기관리와 함께 미담만 나온다는 점이다. 카메라 앞에서나 뒤에서나 항상 남을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베어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친절하고 모든 것에 감사함을 표하는 유재석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 배경에는 긴 무명시절이 존재했는데 처음부터 탄탄대로의 길을 걷진 못했다.


1991년, 20세 때 KBS <대학가요제>로 데뷔한 유재석은 10년가량 무명 개그맨의 삶을 보냈다. 직업만 ‘개그맨’이었을 뿐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황금 기수로 불리는 KBS 개그맨 7기는 데뷔 초부터 화려했다. 유재석을 제외하고 말이다. 

과거 KBS <무한도전> 팬미팅에서 “무명시절이 길어 스스로 너무 답답했다”며 “제가 예전부터 참 많이 기도했다. 자기 전에, 방송이 너무 안 되고, 하는 일마다 자꾸 어긋나고 그랬을 때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단 한 번만 개그맨으로서 기회를 주시면 소원이 나중에 이뤄졌을때 지금 마음과 달라지고, 초심을 잃고, 만약에 이 모든 것을 나 혼자 얻은 것이라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 누구보다 큰 아픔을 주셔도 단 한마디도 왜 이렇게 가혹하게 하시나요’라고 말하지 않겠다”고 기도했다.

당시 유재석도 절박한 시절이 존재했던 것이다.

유재석은 어렸을 때부터 재미있는 아이였다. 반에서는 오락부장을 도맡아 했고 고등학생 때 친구와 함께 방송에 출연해 홍콩 스타 장국영 흉내를 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월등히 웃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개그맨’의 꿈을 키웠다.

이후 서울예술대학교 방송연예학과에 입학했고 바로 ‘KBS 대학개그제’에 출연했다.  

당시 유재석은 대상 수상자는 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장려상을 받아 크게 실망했다. 당시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또 다른 손으로 귀를 파기도 했다. 이 같은 행동은 장려상 수상에 대한 불만이 은연 중에 나타난 것이었고 그대로 TV에 방영됐다.


그로 인해 선배들이 유재석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으며 ‘건방진 이미지’로 남아 챙겨주지도 않았다. 

대학개그제 장려상 수상에 불만
대사 못 외워 리포터 자리 박탈

유재석은 본인이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비중이 적은 역할을 맡아 출연했지만 대사가 거의 없었고 어렵게 얻은 리포터 자리도 대사를 외우지 못해 그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점점 더 소심해졌으며 개그맨의 길을 포기하겠다는 생각마저 하게 됐다.

일이 없었던 유재석은 6개월간 방송국에 출근하지 않고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벌었다. 이때 박수홍, 김용만, 지석진, 김수용 등 4명이 찾아와 유재석에게 공개녹화 마지막 코너를 같이 하자며 제안했다.

유재석을 포함해 남희석, 김용만, 박수홍, 최승경 등 5명이 함께 ‘스텝 바이 스텝’ 노래에 맞춰 무대서 춤을 선보였다. 과거 <무한도전>을 통해 다시 화제가 됐던 해당 영상을 보면 유재석은 경직된 표정으로 열심히 춤을 추는데 지금의 유재석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매우 어설펐다. 

이후 유재석이 할 수 있었던 건 동물이나 곤충의 탈을 쓰고 나와 지나가는 역할이었다. 훗날 유재석은 탈을 쓰는 게 정말 싫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메뚜기 탈을 쓰고 방송에 나갔는데 그에게 ‘메뚜기’는 첫 캐릭터였다.

이 때도 방송 관계자들은 그를 좋지 않게 평가했다. 시간이 흐른 뒤 유재석은 한 예능을 통해 “PD로부터 ‘C급’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훗날 유재석은 “속으로 ‘D급’이라고 생각했는데 높게 평가해줘서 속으로 웃었다”고 자신을 희화화시키기도 했다. 

이후 메뚜기 탈을 쓴 리포터를 비롯해 <서세원쇼>의 대표 코너인 토크박스 출연을 통해 인지도를 쌓았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은 행운이 굴러 들어왔다. 당시 인기 최고스타였던 고 최진실이 PD들에게 “메뚜기 탈을 쓴 사람이 재미있다. 한 번 써보라”고 말했던 것이다. 

유재석의 <동거동락>에서 MC로만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 시작은 패널을 겸했다. 그는 해당 프로그램 최초의 탈락자이기도 했다.

프로그램 초창기를 보면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깐족거리는 입담으로 시청자들의 항의까지 받았을 만큼 얄미운 캐릭터였다. 당시 서바이벌에서 탈락한 후 민망한 표정으로 남은 멤버들의 배웅을 받으며 하차했던 그가, 바로 다음 회차 오프닝에서 완전한 MC 역할로 돌아왔다며 능청 떨던 장면은 유재석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놀면뭐하니>
새로운 도전 

본업인 개그나 리포터 활동에서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그였지만, 특유의 맛깔스러운 입담과 진행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던 <동거동락>을 만난 것은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했다.


이후 유재석은 MC로서 입지를 점점 넓혀갔다.

강호동과 이휘재, 김한석과 함께한 <공포의 쿵쿵따>, 김용만과 함께 <느낌표> 등 맡은 프로그램들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예능계에서 승승장구했다. 이후에도 <위험한 초대> <천하제일 외인구단> <진실게임> 등에서 깐족거리는 MC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이때만 해도 유재석은 촐싹거리는 MC였다.

이후 김제동과 함께 <해피투게더>, 강호동과 함께 <X맨을 찾아라>에서는 게스트를 초대하면서부터 자상하고 편안한 이미지로 변했다. 이때부터 유재석에게 국민MC란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주로 인지도가 알려지지 않은 연예인을 초대해 캐릭터를 심어주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유재석 마음속에는 꼭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처참한 시청률로 오래가지 못했던 <천하제일 외인구단>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모자란 사람들이 모여 대한민국 지존에게 도전한다’였다. 유재석은 본인처럼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땀 흘리며 도전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뛰어다니는 유재석의 표정을 보면, 그에게 세트장은 놀이터였다.


결국 2005년 유재석은 운명의 프로그램을 만나게 된다. 예능계의 한 획은 그은 <무한도전(당시 무모한도전>이다. <천하제일 외인구단>의 콘셉트와 비슷한 이 프로그램은 유재석은 정형돈, 노홍철, 표영호, 이정 등이 출연해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는 등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을 그렸다. 

이후에도 목욕탕 물 나르기, 전철과 100m 달리기 등 해괴망측한 대결을 벌였다. 처참한 시청률로 인해 종영 위기까지 몰렸으나 PD는 물론, 간판까지 바꾸면서 <무한도전>은 금세 자리를 잡더니 MBC와 유재석을 대표하는 예능프로그램으로 우뚝 섰다.

2005년 KBS에서 <해피투게더 프렌즈> 이후 2006, 2007, 2009, 2010년에 <무한도전>과 <공감토크쇼 놀러와>로 MBC를 평정했고, 2008년~2009년에는 <일요일이 좋다 패밀리가 떴다>, 2011년~2012년에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으로 SBS 연예대상까지 거머쥐면서 방송 3사 연예대상을 모두 수상했다.

게다가 2013년에는 예능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인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도 수상했다. 유재석은 2005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2년 연속’으로 대상 트로피를 가져간 ‘전인미답의 개그맨’이 됐다.

날개 달아준
<무한도전>

유재석의 꾸준함은 프로그램의 생명력과 함께한다. 드라마와 달리 예능은 시청률로 인해 오래 갈 수도, 짧게 끝날 수도 있는데 유재석이 맡았다 하면 짧게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는 MBC <놀러와> <무한도전>, SBS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KBS <해피투게더> 등과 함께했다. 한 예능 PD는 “유재석을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다. 유재석과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궤변처럼 들리는 이 말은 유재석 출연으로도 시청률이 보장된다는 의미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유재석의 위상이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대표작이던 <무한도전>의 종영과 <런닝맨> 시청률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유재석 위기론이 나왔다. 마침 쿡방, 관찰예능이 전성기를 맞이할 쯤이었다.

당시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자신의 페르소나인 유재석을 가만두지 않았다. 유재석이 김태호 PD에게 전화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인 “놀면 뭐하니?”라는 말을 착안해 프로그램을 론칭한다.

<무한도전> 초창기처럼 <놀면 뭐하니>는 ‘릴레이 카메라’라는 생소한 콘셉트가 시청자에게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유재석이 매번 새로운 것에 도전하자 시청자들은 반응하기 시작했다. 다른 멤버 없이 유재석 혼자 <무한도전>이나 다름 없었다.

트로트를 부르는 ‘유산슬’, 라면을 끓이는 ‘라섹’, 드럼치는 ‘유고스타’ 외에도 치킨을 만드는 ‘닭터유’, 비와 이효리와 함께 댄스 노래 부르는 ‘유두래곤’ 등이 있다. 부캐(두 번째 캐릭터) 활용법을 누구보다 잘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유산슬이 부른 ‘사랑의재개발’ ‘합정역 5번출구’와 유두래곤이 린다G(이효리 부캐)와 비룡(비 부캐)의 ‘다시 여기 바닷가’는 음원차트를 점령했다. <놀면 뭐하니>서 닭터유가 치킨을 만들 때 치킨집에 전화 주문을 하면 주문이 밀려 늦게 오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처럼 TV 시청률이 하락세를 보이면서도 유재석의 파급력에는 영향이 없었다.

유일한 12년 연속 연예대상 
초심 지키는 따뜻한 개그맨

연예계에서 개그맨은 배우, 가수 등과 비교해 우스꽝스러운 이미지 때문인지 위상이 높진 않다. 하지만 유재석은 달랐다. 이따금씩 배우가 유재석이 진행하는 예능에 나와 팬심을 드러내거나 ‘유라인(유재석의 예능 인맥)’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유재석은 개그맨들 중에도 드물게 ‘연예인의 연예인’으로 통한다. 

유재석은 무명시절부터 ‘초심을 지키겠다’고 기도했다. 힘들 때 자신을 선택해준 제작진과 주위 동료들을 잊지 않은 그는 미담 제조기로 통한다. MBC <라디오스타>나 JTBC <아는형님>에서 출연한 게스트가 유재석에 대한 미담을 풀어놓으면 금세 MC들은 지루해했다.

그만큼 유재석의 미담은 흔한 에피소드기 때문이다. 

유재석과는 정반대 캐릭터인 장동민도 과거 예능에서 유재석 미담을 밝힌 바 있다. 유재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장동민은 머뭇거리다가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힘들 때 장동민은 일면식도 없는 유재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동민은 첫 마디로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국민MC니까 내 이야기 좀 들어달라. 속이 답답해서 말할 사람이 없어서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재석은 “동민아, 잘 찾아왔다”며 흔쾌히 전화를 받았고 한 번도 장동민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다 들어준 뒤 “네 상황이 아니라 이해한다고는 못하겠다. 내가 어떻게 너를 감히 이해하겠니”라고 담담히 말했다. 

장동민은 “그날 이후 방송에 임하는 자세를 완전 다르게 하고 열심히 해서 오늘까지 잘될 수 있었다. 정말 내 인생을 바꿔준 사람”이라며 “이 이야기는 방송에서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사적이라도 얘기 안 한다. 괜히 라인 타려는 것도 같고... 그렇게 생각하실 분도 아니지만 그렇게 느낄까봐 싫었다. 방송 인터뷰할 때 일부러 안 좋다고 얘기했다. 나랑 안 맞는다고”라고 하며 속내를 드러냈다.

이어 “사람들이 왜 ‘유느님’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만약에 나중에 유재석이라는 사람이 정말 방송을 그만두고 싶다면 그때 밝히려고 했던 이야기”라며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후배 챙기는
미담 제조기

유재석은 일면식도 없는 후배가 일방적으로 찾아와도 따뜻하게 받아주고, 힘든 것을 토로해도 이야기가 끝날 때 까지 들어주고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유재석이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초심, 겸손, 자기관리 등의 많은 요소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따뜻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성실의 아이콘’ 박수홍도 데뷔 30주년 

박수홍도 SNS를 통해 데뷔 30주년 소감을 남겼다. 박수홍은 지난 6일, 다홍이의 SNS를 통해 30주년 소감을 전했다. 

박수홍은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이 데뷔 30주년이었네요. 많은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라며 “존경하는 국진이형님, 용만이형, 수용이형, 그리고 연락해서 걱정해주고 힘주는 재석이, 승경이, 우리 모든 7기 동기들 30주년 축하하고 그동안 고생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응원해주시는 다홍이러버 수다홍이들도 모두 고맙습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박수홍은 자신이 운영하는 반려묘 다홍이 SNS에 “전 소속사와의 관계에서 금전적 피해를 본 것은 사실”이라며 해당 소속사가 박수홍의 친형과 형수 명의로 운영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렇게 30년의 세월을 보낸 어느 날, 제 노력으로 일궈온 많은 것들이 제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됐다”며 “이에 큰 충격을 받고 바로 잡기 위해 대화를 시도했지만, 현재까지 오랫동안 답변을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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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