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잠룡들의 예능 나들이 손익계산서

웃기는 정치인 무조건 좋을까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대한민국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20대 대통령을 가리기 위한 각 당의 경선이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모든 후보가 정책을 바탕으로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 후보를 공격하거나 상대 후보의 공격에 방어한다. 때론 인상을 붉히는 일도 발생한다.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건 이성보다 정서다 보니 공방을 하는 중에도 이미지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기에 가장 좋은 플랫폼은 예능 출연이다. 차기 유력 대권후보들이 예능 나들이에 나서고 있다. 

총과 칼을 들고 국민을 통치하던 군부 독재 시절만 하더라도, 국가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정치인이 TV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과 웃음을 나누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방송사에 보도 지침을 내리는 주인에겐 아마 격에 맞지 않는 행위라고 판단했을 공산이 크다. 

선거철 
통과의례

전두환 전 대통령의 6·29 선언 뒤 직선제가 실현되고, 민주 정권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정치인은 없었다. 최초의 연결고리는 1996년 MBC <이경규가 간다>였다. 

새벽 3시가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당시 DJ(고 김대중 전 대통령)를 만나기로 한 <이경규가 간다>의 이경규는 출근하는 DJ 맞아 갑작스럽게 인터뷰를 진행한다.

흔쾌히 ‘합시다’라고 수락한 뒤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72세의 DJ는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서태지를 언급하고, 고 이희호 여사와 공원을 산책하는 등 특유의 소탈한 모습과 탈권위를 보이면서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당시 시청률은 40%가 넘을 정도로 화제성이 강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07년 고 노무현 대통령은 MBC <느낌표>에 권양숙 여사와 함께 출연해 대중과 직접 소통했다. 권 여사와 첫 만남부터 데이트를 이어가게 된 이야기,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사연과 이를 통해 연설하러 다니면서 큰 효과를 받았다는 추억 등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아무리 예능이라 하더라도 대통령과의 만남이다 보니, MC들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청와대 주요 인사들이 방청객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도 생경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신비주의에 둘러싸인 정치인의 사적인 영역이 드러나면서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화제가 됐을 뿐 아니라 정권의 지지율에도 적잖은 효과가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치인이 예능에 출연하는 건 국가적 이벤트에 해당하는 사안이었다. 국정을 처리하느라 바쁜 정치인들이 예능에서 소탈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개개인에게 효과적인지 의문이었을 뿐 아니라, 방송사 역시 이 같은 기획에 미진했다.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 아니고서는 정치인이 굳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그러한 인식을 바꾼 대표적인 인물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의사부터 공대 교수까지 거친 특이한 이력이 있던 안 대표가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하면서 예능과 정치의 연결고리가 끈끈해졌다.

당시 연예인 신변잡기식 방송에서 벗어나 사회 저명인사의 출연을 통해 프로그램의 변화를 꾀하던 <무릎팍도사>의 눈에 안 대표가 눈에 띈 것.

제작진은 2008년부터 안 대표에게 섭외를 제안했다. 당시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안 대표는 강연과 인터뷰가 물밀 듯이 쏟아졌고, 카이스트 석좌교수로서 강의를 우선순위로 둬 “제안은 감사하지만, 적절치 않은 상황”이라며 출연을 고사했다.

<이경규가 간다>부터 <집사부일체>까지
정치와 예능 사이에 얽힌 연결고리는?

집요한 <무릎팍도사> 제작진은 1년이 지난 후에도 꾸준히 출연을 요청했다. 당시 회사 임원들조차 출연을 막았다는 후문이다.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안 대표(당시 박사)가 나가면 희화화될 수 있다는 게 논리였다.

반대로 카이스트 학생들은 출연을 반겼고, 안 대표는 고민 끝에 출연을 결심했다. 그렇게 역사적인 방송이 만들어진 것. 

방송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특이한 이력의 안 대표가 살아온 길과 진정성 있는 이야기에 찬사가 이어졌다. 

안철수 신드롬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였다. 당시 정치권에 혐오를 느끼던 국민은 새로운 인물론을 부각하며 안 대표를 정치권으로 호출했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안 대표의 지지율은 50%가 넘었다. 정치권에 발을 담그지도 않은 신인에게 이러한 지지를 보내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당시 변호사이자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였던 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단일화한 이후 그를 향한 국민의 지지는 더욱 강해졌다. 가히 예능이 배출한 정치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하락세를 거듭했고, 최근 서울시장 선거 경선 과정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에 패배하는 등 지금에야 그에 대한 지지가 예년만큼은 아니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의 존재감은 정치권에 중요하게 작동한다.

안 대표의 삶이 예능 프로그램 출연 이후 완전히 달라진 것을 미뤄봤을 때 예능이 정치인에게 어떤 효과를 주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비슷한 시기 팟캐스트의 시초인 <나는 꼼수다>의 역할도 정치와 예능이 끈끈해지는 데 일조한 프로그램이다. 당시 진보진영의 정치인들은 <나는 꼼수다>에 나와 정책적 기조를 설명하는 것은 물론 권력에 대한 가치관, 개인사를 털어놓고, 때로는 첨예한 논란에 적극 해명하기도 했다. 

“계파가 누가 있냐” “리더십 부재에 대한 평가에 어떻게 생각하느냐” “꼭 당신이 이 직책을 맡아야 하느냐” 등 후보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거침없이 던졌다. 당황하면서도 유려하게 넘어가는 장면에서 팬덤이 생기기도 했다. 진보진영 인사들이 대중에 각인되는 계기가 됐다. 

예능이
낳았다

진보진영에서 강세를 보인 팟캐스트 대안 언론의 서포트를 받은 사람들은 국회에 진입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정치가 시작됐다.

아울러 JTBC <썰전>도 정치가 대중의 일상에 스며들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MC 김구라를 중심으로 진보와 보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토론 과정은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박진감이 있었다. 서로 의견이 나뉘어 싸우다가도 국가의 중차대한 문제 앞에서 화합하는 장면은 정치의 묘미를 전달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정치와 예능이 결합된 방송 프로그램으로 대표적인 예다. 

2012년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했다. 당시 보수 진영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중학교 시절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사진을 공개했고, 문 대통령은 특전사 시절 사진을 공유하며, 격파 시범을 선보이기도 했다. 

각각 친근하고 소탈하거나,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이미지를 연출했다. 예능이 정치인의 이미지 제고에 활용됐다. 

이후에는 국내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치인이나 혹은 유력 후보의 예능 진출은 통과의례가 됐다. 지방선거나 총선 등 국내 굵직한 선거에서 예능에서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방송사나 정치인으로서 이득이 되는 것이 많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국민의힘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4월 재보궐선거를 3개월 앞두고 TV조선 <아내의 맛>에 출연했다. 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성남시장 시절 SBS <동상이몽2>에 출연해 남편 이재명의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관찰 예능으로 토크쇼와는 달리 집안에서의 사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정치인의 일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에서 대중은 해당 인물의 매력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중의 반응이 크자 미디어 비평 전문가들은 대중을 호도한다며 비판했다.

대중의 눈
못 속인다

예능에서 짜여진 모습을 실제로 믿는 대중이 많다면서 위험성이 높다는 게 요지였다.

최근에는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예전만큼 높은 파급력을 갖지는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지율이 급반등 된다거나, 정치적 논란이 완벽하게 해소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이미 대중이 정치인의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분리하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에, 안철수 대표나 DJ와 같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보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기존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데만 효과를 본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밥 영상과 같은 효과를 보는 시대는 지나갔다. 국민 대다수가 정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치인의 공과 사를 구분해내는 능력이 생겼다”며 “현재 예능 출연은 각 후보의 인기를 검증하는 차원이다. 엄청난 효과를 보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했다. 

한창 경선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이재명·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SBS <집사부일체>에 출연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후보는 밥을 직접 해주는 형님 리더십을 부각시켰고, 각종 논란에서도 호탕하게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비교적 순한 이미지인 <집사부일체> 패널의 공격에 웃음으로 대응했다. 

언변에 능하지 않은 윤 후보는 현안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과거 검사가 되는 과정과 검찰 시절의 모습, 평소 생활 등 인간 윤석열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게스트에 따라 장소와 내용 모든 것이 바뀌는 <집사부일체>의 윤석열 편은 관찰 예능이 더러 섞인 SBS <돌싱포맨>과 비슷한 형태의 포맷이었다. 

반대로 이재명 후보는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집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집사부일체> 패널과 만난 이 후보는 각종 논란에 해명하는 시간으로 할애했다. 현 후보 중 가장 의혹 거리가 많은 그는 <집사부일체>를 해명의 기회로 만들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약점 보완에 매력 어필도 쉬워”
“결정 못한 지지자 얻을 기회도”

직설적인 화법을 갖고 있고, 언변에 화려한 그가 어떤 형태로 예능을 활용하려 했는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재명 후보의 <집사부일체>는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나 tvN <유퀴즈 온더 블록>과 같은 토크쇼 형태였다. 

이낙연 후보는 유일하게 아내 김숙희씨와 함께 나왔다. <집사부일체> 패널과 식사를 하면서 평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유머감각 면에서 단점이 있는 이 후보에게 편안함을 주면서 재미의 영역을 아내를 통해 만들어낸 것.

정덕현 평론가는 “<집사부일체>의 포맷을 보면서 각 후보가 어떤 면을 부각시키려 하고 숨기려 하는지 각각의 장단점을 읽을 기회가 됐다”며 “윤 후보는 리더십을 드러내고,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려 했고, 이 후보는 의혹을 정면돌파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낙연 후보는 인간적인 면모의 보완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일종의 팬 서비스 형태로 변화했다. 선거철 표를 달라고 국민을 만나고 다니는 것의 또 다른 형태”라며 “예능 출연이 화제성 면에서 약간의 효과는 있겠지만, 대세를 바꿀 정도로 큰 역할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와 예능 간에는 이해관계가 정확히 맞물린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약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을 방송을 통해 보완할 수 있으며, 전문 방송인의 립 서비스를 받으면 대중에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연예인이 비슷한 성질을 가진 직업군이라는 점으로 봤을 때, 정치인에게 있어 예능 출연은 실보다 득이 크다.

이로 인해 경쟁후보가 나오는 방송에 자신이 나오지 못하면 심하게 반발하는 경우도 생긴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나쁠 것은 없다. ‘뜨거운 감자’인 유력 정치인이 방송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화제성을 가질 뿐 아니라 시청률도 크게 오른다. 방송 후에는 수많은 시사프로그램에 방송 장면을 바탕으로 리뷰하는 방송도 급격히 늘어나, 프로그램 홍보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새로운 시청자를 흡수하는 새로운 기회다. 

팬 서비스
립 서비스

한 방송 관계자는 “비록 예년만큼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정치와 예능은 서로 윈윈 전략을 짜나가고 있다. 굵직한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예능 출연은 이어질 전망”이라며 “다만 정치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대중을 호도하는 식의 역기능은 보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집사부’ 못 간 홍준표 왜?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이 물밀 듯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홍준표 국민의 힘 대선 후보도 예능에 출연해 일상을 드러냈다. 

앞서 정치권에서는 지상파 방송인 SBS <집사부일체>에 보수 진영의 윤석열 후보, 진보 진영의 이재명‧이낙연 후보만 출연하는 것에 대해 홍준표 후보가 서운해할 것으로 점쳤다.

그런 상황에 홍 후보는 TV조선 <와이프 카드 쓰는 남자>(이하 <와카남>)으로 반전을 꾀했다.

여성들로부터 좋지 못한 지지율을 얻는 그는 <와카남>에서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풀고 설거지를 하는 등 가정적인 이미지를 드러냈다. 그는 “여성분들이 오해를 좀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지속적으로 약점으로 거론된 여성 표심을 잡기 위한 방송 출연이었다고 평가했다. <와카남> 시청률은 1부 5.6%, 2부 4.6%로 기존 방송보다 소폭 상승했다.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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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대구에 부는 ‘김부겸 바람’ 해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등장하자 보수의 심장인 대구가 좌우로 흔들리고 있다. 광폭 행보에 나선 김 전 총리를 바라보는 대구 시민들도 양가감정이 교차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1995년 민선 시장 선출 이래 대구에서 단 한 번도 시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구 민심이 심상치 않은 만큼 최초의 진보 대구시장이 탄생할지 이목이 쏠린다. 대구는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광역자치단체이다. 지난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 후보는 대구에서 23.22%(37만9130표)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반면 국민의힘 대선주자였던 김문수 후보는 67.62%(110만3913표)를 기록했다. 이처럼 대구는 윤석열정부 퇴진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조차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약세를 보이는 지역이었다. 적절한 타이밍 그런 대구에서 최근 국민의힘이 힘을 못 쓰고 있다. 지도부를 중심으로 당이 지리멸렬하는 사이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대구시장에 출사표를 던졌고, 민주당이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우위를 선점했다. 지난달 30일 김부겸 후보는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발전, 그것이 저의 마지막 소명”이라며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김 후보는 대구에 당선된 경험이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2012년과 2014년 각각 제19대 총선·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대구광역시장)에서 낙선했으나 2016년 제20대 총선을 통해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에서 당선됐다. 이후 제21대 총선에서 또다시 낙선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김 후보는 캠프 해단식에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면목이 없다”면서도 “포기하지 않겠다. 새로운 날들을 향해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던 바 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김 후보가 다시 대구 전면에 등장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대구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며 “굳이 이런저런 수치를 열거하지 않겠다. 대구의 정치, 한 당이 독식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후보는 “정치인이 일을 안 한다. 일 안 해도 서울에서 공천만 받으면 또 된다. 대구 시민을 표 찍어주는 기계로 취급한다”며 “요즈음 시장 공천 과정을 보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냐는 생각이 든다. 지금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모습은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지금 대구에 필요한 사람, 김부겸이다. 나를 잘 써달라. 김부겸과 함께 대구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날 김 후보는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도 공개했다. 김 후보는 “대구시장에 출마하는 김부겸으로서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겠다”며 “경기도 군포 초선 시절부터 해왔던 대로 제 전화번호를 공개하겠다. 대구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 달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의힘을 버려야 진짜 건강한 보수가 살아난다”며 “이번 선거는 대구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지역주의 극복과 지역 균형 발전이 제 마지막 소명이다. 대구 시민과 함께 대구의 미래 희망을 찾겠다”고 강조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보수 심장’ ‘민주당’ 없는 민주당 동진 전략 지난 3일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중앙당의 만장일치로 김 후보를 대구광역시장 후보자에 선정했다. 이를 시작으로 김 후보는 광폭 행보를 보였는데, 특히 김 후보는 ‘민주당’이라는 여당 프리미엄을 전면에 세우는 대신 “김부겸을 도구로 써달라”는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김 후보는 대구·경북(TK)의 상징인 박근혜·박정희 마케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있고 대구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꼈다면 과오 논쟁을 넘어 대구의 미래를 향한 논쟁으로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포용의 정치를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 가능성을 열어둔 데 이어 ‘박정희컨벤션센터’ 공약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는 KBS에서 김 후보의 박 전 대통령 예방에 대해 “대구 현실에 대한 판단으로 존중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측근인 국민의힘 유영하 의원이 회동의 전제 조건으로 ‘박 전 대통령의 실질적인 명예회복 방안’을 언급한 데 대해서는 “당 차원의 명예회복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조명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출마 선언문을 보면 김 후보는 민주당을 강조하는 대신 대구의 발전 방향만 이야기했다”며 “김 후보가 민주당 출신인 것을 모르는 대구 시민은 없다. 그럼에도 ‘내란’ ‘계엄’ 등 예민한 단어를 빼버림으로써 시민들은 김부겸이란 인물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 김 후보는 국민의힘을 비판한다. ‘지금까지 국민의힘이 대구시장을 해 왔는데 대구가 뭐가 바뀌었냐, 그건 국민의힘이 무능해서’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준다. 절대 왼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현재 보수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분위기가 안 좋다. 그때는 TK를 제외하고 몽땅 내줬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처절하게 패배할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명확하게 ‘절윤’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워낙 김 후보가 전략을 잘 세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빼고 ‘경제’ 넣고 홍준표 전 대구시장도 참전했다. 홍 전 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대구에 도움이 된다면 당을 떠나 정치꾼이 아닌 역량 있는 행정가를 뽑아야 한다”며 김 후보를 추켜세웠다. 그는 “부산은 스윙 보터 지역이라 민주당이 가덕신공항도 해주고 해수부도 이전해 주지만, 대구는 막무가내식 투표를 하니까 민주당 정권이 도와주지도 않고 버린 자식 취급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후임 대구시장이 능력 있고, 중앙정부와 타협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김부겸 전 총리를 언급한 것”이라며 “민주당을 지지한 게 아니라 김부겸을 지지했다고 봐주시면 한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의 지지율이 연일 상승하면서 안정궤도에 돌입했다는 평이 나온다. TBC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8~29일 대구 시민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는 차기 대구시장 적합도 49.5%를 기록해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15.9%)을 큰 격차로 앞섰다. 김 후보와 국민의힘 후보 간의 1대1 가상 대결에서도 추 의원과 맞붙을 경우 52.3% 대 36.6%로 오차범위 밖 우세를 보였다.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전화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김 후보는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하 방통위원장)과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컷오프되자 반발 차원에서 대구 시민이 역결집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오름세를 보이면서 이 같은 현상은 단순 역결집이 아니라 실제 보수 민심에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민주당도 김 후보 지원사격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8일 대구에서 최고위원 회의를 열고 김 후보를 ‘제2의 노무현’ ‘제2의 이재명’이라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노무현이 종로 꽃길을 마다하고 부산 가시밭길에 도전했듯이 김부겸도 군포 꽃길을 마다하고 대구 가시밭길에 내려왔다”며 “김부겸도 이재명도 대구·경북 사람이고 민주당에서 비주류였다”고 말했다. 이날 정 대표는 당정 차원에서 지역 숙원사업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이 지난 대구 타운홀미팅에서 TK 신공항 건설, 취수원 문제 등 대구 숙원 사업 추진 의사를 밝혔다”며 “그 의지는 앞으로 예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팍팍 깎이는 현지 민심 TK 통합에 대해선 “국민의힘이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통합이 멈춰 섰다”며 “김 전 총리와 힘을 합쳐 통합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화답하듯 김 후보는 “이 대통령이 대구에 중요한 약속을 했고, 정 대표도 ‘무엇이든지 다해드림센터장’이 되겠다고 했다. 이 보증수표를 믿고 대구를 메딕시티, AI·로봇 수도, 미래 모빌리티 산업 선도 도시로 만들어 그 약속을 시민의 삶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전략은 ‘민주당’을 빼고 대신 ‘대구 발전’ ‘민생’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9일 김 후보는 후보 등록을 마친 뒤 취재진들과 만나 1호 공약을 소개하는 등 민생·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1호 공약으로 대구의 지역 경제 발전을 꼽으며 “지역의 주요 기관과 단체, 어른들께 조속히 인사를 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대구 곳곳을 마주하며 지역의 어려움과 스스로의 부족함을 동시에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최대 현안인 인구 유출 문제를 언급하며 “젊은이들이 떠나는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굳어져서는 안 되는데 이를 막지 못하는 현실에 시민들이 아픔을 느끼고 있다”며 “그만큼 책임감이 무겁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 일자리 해결과 경제 도약에 집중할 것”이라며 “대구의 절실한 요구를 예산과 법률로 뒷받침하겠다는 것이 핵심 공약”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안방마저 내줄 상황에 몰렸다. 김 후보가 우후죽순 치고 나가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당내 교통 정리에서조차 애를 먹으면서 표가 갈릴 위험에 처한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싸움이 일어나는 만큼 여의도에서는 ‘김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장동혁 대표’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나온다. 국민의힘을 향한 대구의 실망감은 숫자로도 나타났다. 지난 9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은 54%,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30%로 집계됐다. 특히 TK에서 여당 44%·야당 34%로 집계되면서 국민의힘에서도 위기감을 감지한 모양새다. 잘나가는 김 멍 때리는 장 대구 달서병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은 “대구 여론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라며 “모두 기득권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이 대구시장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 의원은 MBC 라디오를 통해 최근 대구 민심에 대해 “그동안 국민의힘에 대한 불만으로 ‘이번에는 갈아보자’고 했지만 대안이 없어 ‘미워도 다시 한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민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에 반이재명 정서가 강했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다. ‘윤석열보다는 이재명이 잘한다’, 심지어 ‘얄밉게 잘한다’는 사람도 있다”며 여기에 “김부겸이란 대안도 있어 대구 민심이 그 대안으로 옮겨가기 직전”이라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국민의힘 지도부의 안일한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인데도 당은 ‘무난히 여섯 명(예비 후보) 중 한 명을 뽑으면 된다고 하고 있다”며 “자칫 잘못하면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으로 ‘김부겸을 통해 이익이라도 챙기자’라고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주호영, 이진숙을 다독거려서 될 문제가 아니다. 6명 중에서 뽑힌 후보가 김부겸을 이기기 힘들 만큼 대구 민심은 훨씬 더 나쁘다”며 “상황이 이렇기에 보수 기득권에 안주하는, 보수 결집으로 이기겠다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은 무소속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혔으며, 가처분이 기각된 주호영 의원은 “항고심을 지켜본 뒤 거취를 판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주 후보는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장애물은 장동혁 대표 체제 그 자체”라며 국민의힘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기까지 했다. 앞서 주 의원은 지난달 26일 법원에 컷오프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고 법원은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이후 주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장 대표를 향해 “민심을 붙잡을 대책도, 보수를 다시 세울 노선도, 국민 앞에 사과하고 변화를 약속하는 모습도 없다”며 “대신 곳곳에서 공천 작당만 벌였다는 비판만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대구 현장에서도 장 대표가 싫어 국민의힘을 못 찍겠다는 말이 적지 않다. 장 대표가 먼저 결단해야 한다”며 “비상대책위원회든 선거대책위원회든 새로운 책임 체제를 즉각 구성하라”라고 장 대표의 후퇴를 촉구했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의 변수는 시민들의 막판 결집력이다. “당장 내일 선거가 치러지면 김부겸을 찍겠다”는 이들조차 투표소에 들어가면 “그래도 보수를 찍어야지”라는 마음으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삼진 아웃? 다만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런 ’습관성 투표‘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 관계자는 “‘보수가 큰일 났다’ ‘대구가 위험하다’라는 위기의식이 있어야 이들이 똘똘 뭉쳐 결집하고 표가 된다”며 “지금은 장 대표가 위기 그 자체다. 그래서 ‘이번에는 김부겸 한번 믿어보자’는 기대감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14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상황)과 지금은 다르다. 보수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가면서 보수 지역 민심도 그에 맞춰가는 것”이라며 “김 후보가 크게 실수하지 않는 이상 ‘이대로라면 대구가 민주당에 뺏긴다’라는 위기감보다 ‘그래도 보수를 먼저 살려야지’라는 여론이 형성될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