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 사재기 5가지 의혹과 진실

“음원 사재기란 있을 수 없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OO처럼 나도 사재기 좀 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가수 박경은 열사의 위치에 올랐다.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었던 사재기 의혹을 공론화시킨 박경을 향해 대중은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반대로 박경이 거론한 가수들에게는 ‘사기꾼’ 프레임이 씌워졌다. 그중 가장 비난을 받는 팀은 데뷔 18년차 ‘바이브’다. ‘사재기 의혹’이 공론화된 지 1달여 만에 바이브 소속사는 설명회를 열고 그간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 사진제공=메이저9

남성 듀오 바이브와 가수 벤 등이 소속된 연예기획사 메이저9은 지난 7일 12시와 4시, 두 번에 걸쳐 설명회를 진행했다. 그 배경에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방영이 있다. <그알> 제작진과 약 6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는 메이저9의 황정문 대표는 “<그알> 제작진이 사재기 의혹에 관한 내용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악의적이고 편협한 방송 보도를 진행했다.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음원 1위
떼돈 번다

이 설명회가 있기 전 대부분 기자는 ‘음원 사재기’의 빈틈을 찾아내겠다는 야심을 갖고 현장을 찾았다. 바이브 소속사를 비롯해 박경이 거론한 가수들과 소속사, 관련 바이럴 마케팅 업체를 ‘사재기 업체’로 확신한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두 타임 내내 날이 선 질문이 던져졌다. 메이저9은 설명할 수 있는 부분서 최대한 설명했고, 대부분 막힘이 없었다.

놀라운 점은 메이저9이 공개한 자료의 범위였다. 자사 직원들에게도 밝히지 않을 법한 광고 집행 비용, 매출, 순이익 등의 회계자료를 모두 공개했을 뿐만 아니라, 소위 ‘영업비밀’의 근간이 되는 음악 시장과 SNS 관련 빅데이터, 타 가수의 광고 집행 비용 등 매우 민감한 내용을 대거 공개했다. 이 내용이 공개됐을 때 타 소속사 가수들은 아주 큰 타격을 받을 만한 내용도 포함돼있었다.

그간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타 회사의 비난마저도 감수하고 진행한 설명회였다.


설명회 관련 기사화가 이뤄졌음에도, 대중은 사재기 의혹의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여전히 바이브와 메이저9의 소속 가수들과 의혹을 받는 가수들을 향한 비난이 거세다. 앞서 문화관광부를 비롯해 지니뮤직, 가온차트 등 정부 기관서 음원 사재기의 실체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음에도, 사재기 실체에 대한 대중의 의혹은 여전히 강하다.

황 대표는 “멜론이나 지니의 로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조사한 정부기관서도 숱하게 사재기가 아니라고 말했음에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여전히 의혹이 존재하고 있는 배경에는 음원 1위의 실제 매출 크기와 일부 주요 음원 사이트의 알고리즘, 변화하고 있는 음원 사이트 정책 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고 해석된다”고 밝혔다.
 

▲ 가수 아이유

사재기의 실체가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대중의 의혹은 크게 다섯 가지다. 음원 사재기에 대한 의혹과 진실을 나눠봤다.

현재 대중에게 존재하는 가장 큰 함정은 음원 1위로 인한 매출의 범위다. 약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공전의 히트를 친 곡은 10억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음원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이 늘어남에 따라 기존 플랫폼인 멜론과 지니 등 음원 사이트를 통해 얻는 수익은 약 2억원대로 줄어들었다. 한 달 내내 1위를 하더라도 2억5000만원을 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알> 악의적 편집에 반발
최소 10억 필요…안 하고 말지~

일간 1위는 약 70만서 90만의 이용자가 노래를 들었을 때 가능하다. 국내 음원사이트 이용자 수 추이를 쉽게 알 수 있는 가잇썸닷컴에 따르면 현재 의혹을 받는 가수 벤과 닐로, 우디는 물론, 의혹이 없는 아이유나, 방탄소년단도 1위를 하는 기간에는 약 70만에서 90만의 정도를 넘나든다.

1위가 되려면 아이디가 90만개가 필요한데, 아이디 하나에 1만원이라고 하면, 약 100억원이 소비된다. 아이디 10만개 정도가 있어야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는데 그마저도 10억원이 필요하다. 현 음원 시장은 사재기로는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다.


황 대표는 “압도적인 음원 1위를 하면 5억원은 나올 줄 알았는데, 바이브 ‘가을 타나 봐’나 벤의 ‘180도’, 우디의 ‘이 노래가 클럽서 나온다면’ 모두 2억원대였다. 아마 다른 가수들도 비슷할 것”이라며 “행사로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데, 우디 같은 가수는 히트곡이 하나다. 히트곡 하나로는 행사에 참여하기 쉽지 않다. 대학교 행사만 하더라도 히트곡 네 곡은 필요하다. 히트곡 하나 있는 가수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메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최근 국내 음원 사이트 등은 2015년 이전에 아이디 확보를 통해 스트리밍 건수를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회원가입 시 휴대폰 인증을 필수로 게재했다. 아이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또 다른 휴대폰이나 일명 대포폰이 필요하다는 게 메이저9 측의 설명이다.

김상하 메이저9 부사장은 “소위 대박이 터져봐야 2억원이 최대인 시장을 위해서 수많은 대포폰을 왜 만드나. 비용 차이가 심하다. 나라면 사재기 제안이 들어와도 거절할 것”이라며 “사재기를 한 뒤에 후불제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음원이 1월에 발매돼도 4월에 모두 정산이 되고 5월에나 금액을 지불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모든 돈이 제작사로 가는데, 제작사가 돈을 안 주면 사재기 업체는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사재기 업자가 스스로 경찰에 신고할 수 있겠나. 이건 정산 구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 사진제공=MBC

‘우디서 숀도 안대고 닐로 먹어’라는 말이 있다. 가수 우디, 숀, 닐로는 음원 사재기 의혹을 받는 대표적인 가수다. 갑작스럽게 히트곡을 터뜨리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이들이 히트곡을 남긴 배경 중 하나가 바이럴 마케팅이다. 바이럴 마케팅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통해 음원 영상을 최대한 노출해서 음악을 홍보하는 것을 말한다.

건강식품이나 의약품, 뷰티, 마약 베개를 비롯한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서 활용하고 있는 마케팅 기법이다.

바이럴은 연막
실제는 기계픽?

최근 들어 바이럴 마케팅은 국내 거의 모든 가수가 사용한다. 심지어 바이럴 마케팅 업체를 공격한 가수 중 일부는 바이럴 마케팅으로 성공했거나 1500만원대의 광고비를 집행했다. 사재기를 공론화시킨 가수 박경의 KQ엔터테인먼트도 소속된 타 가수를 홍보하기 위해 바이럴 마케팅 업체와 접촉했다.

이렇듯 모든 가수가 바이럴 마케팅을 시도하지만, 성공 확률은 10%에 그친다. 다만 음원 바이럴 마케팅 전문 업체인 딩고, 리메즈, 포엠, 와우 등 총 네 곳의 성공 확률이 약 30%에 이른다. 이들은 바이럴 마케팅을 접목한 타겟 마케팅을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부사장은 “페이스북은 1020 남성이 90% 이상 사용하는 플랫폼이다. 이들은 카카오톡 대신 페이스북 메신저로 소통한다. 특히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가장 많이 이용하는데, 이때 이들이 듣기 좋은 감성의 노래를 노출한다. 거기서 인기를 얻고 음원 사이트서 플레이리스트에 입력하는 것”이라며 “음원 사이트는 대부분 한 달 이용권을 사용한다. 따로 돈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유입이 많은 것이다. 우리가 성공 확률이 높은 건 다른 회사서 타켓 마케팅을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바이럴 마케팅은 연막이고 뒤에서 매크로를 돌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매크로는 <그알>서도 소개됐듯이 반복작업을 자동화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음원 사재기의 경우 한 컴퓨터로 수없이 많은 컴퓨터를 통제해 수없이 많이 생성한 아이디로 종일 특정한 곡을 듣는 것을 일컫는다. 하지만 멜론을 비롯한 음원 사이트들은 이러한 매크로 공격에 방어하는 기술을 지속해서 키워왔다.

실제로 2015년 전에는 중국을 비롯한 해외서 공장을 만들어 특정 가수의 곡 순위를 높이려는 시도가 있었다.

김 부사장은 “2015년 이전에는 실제로 사재기가 존재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음원 사이트의 기술력이 높아졌고, 알고리즘 자체도 변해서 절대 통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멜론의 한 관계자는 “멜론은 수년 전부터 비정상적인 이용 패턴에 대해 모니터링과 필터링 시스템을 갖추고 강화해왔다.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함께 시스템보안, 신규 패턴 추가 등을 통해서 다양한 움직임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론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 중 하나는 장덕철이나 닐로, 숀, 우디와 같은 무명 가수들이 어떻게 아이유나 방탄소년단, 엑소, 트와이스와 같은 거대 팬덤을 거느린 아이돌을 상대로 더 높은 음원 성적을 거두냐는 것이다.

무명 가수가
팬덤을 이겨?

연예인을 위해 방송 방청 및 콘서트 등 적극성을 보이는 수십만 명의 팬덤을 어떻게 노래만으로 승부해 이길 수 있냐는 부분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는 음원의 스트리밍 카운트 방법만 이해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멜론에 따르면 실시간 스트리밍은 한 시간에 1번씩 카운트되며, 일간은 하루에 한 번씩 카운트된다. 한 개인이 A라는 곡이 좋아서 수백 번을 들어도 실시간으로 카운트되는 것은 하루에 총 한 번이다. 결국 ‘많이 듣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듣는 것’이 유리한 알고리즘이다. 이로써 무명 가수도 아이돌을 상대로 더 높은 음원 성적을 거둘 수 있다.
 

▲ 걸그룹 트와이스

최소 10만 아이디가 필요한 이유도 이러한 알고리즘 때문이다.


황 대표는 “내부적으로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음악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집단의 인구를 600만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중의 아이돌 팬덤은 어림잡아 100만명이다. 약 20% 미만인데, 우리는 20% 미만이 아닌 나머지 80%와 소통하고 있다. 아이돌 팬덤이 크다고 하지만 집에서 페이스북을 하는 1020이 더 많을 것이다. 특히 우리는 페이스북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1020 남성을 겨냥한 타겟 마케팅을 했고, 이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또 음원 사이트서 1위를 하는 것이 과거의 위상과는 차이가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과거에는 워낙 많은 대중이 사용하는 플랫폼이었기 때문에 인기 척도의 역할도 수행했으나, 최근 유튜브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멜론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50대가 왜
닐로 음악을?

김 부사장은 “특히 아이돌의 경우 퍼포먼스를 통한 시각적인 효과 때문에 아이돌 팬덤은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소비한다. 그러다 보니 음원 사이트에서는 자연스럽게 밀려나고 있다. 유명 아이돌그룹이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음원 사이트서 성적이 좋지 못한 이유는 사재기 때문이 아닌 플랫폼 사용의 이동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방송을 시작한 TV조선 <미스트롯>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트로트가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4050 이상의 세대서 가수 송가인을 향한 사랑은 극진했다. 50대 이상서 종일 송가인의 노래를 듣는 문화가 있을 정도로 송가인 신드롬은 대단했다. 이런 와중에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닐로가 송가인을 제치고 멜론 50대 순위서 1위를 차지한 사진이다.

이 사건 이후로 멜론에선 나이대별 차트 순위를 삭제했고, 의혹은 점점 짙어졌다.

50대 차트의 경우 모집단의 수도 많지 않을 뿐더러 10대나 20대의 부모님인 경우가 많고, 점포를 운영하면서 1위부터 100위까지 스트리밍을 켜놓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게 메이저9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들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최근 10대와 20대서 인기를 얻은 곡이 4050서도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아이유나 엑소, 트와이스 등 10대들이 좋아하는 곡들에서 4050 역시 비슷한 그래프를 보였다.

매크로는 불가능
“우리는 억울합니다”

김 부사장은 “현재 17세 이하 미성년들 부모의 평균 나이는 40대다. 미성년자의 경우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부모님 ID 혹은 가족 ID로 듣는 경우가 많다”며 “이로 인해 17세 이하 미성년자들에게 인기 있는 곡은 음원 플랫폼에 가입자 기준으로 40대 쏠림현상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박경의 발언에 힘이 붙은 건 또 다른 가수들의 증언 덕분이었다. 가수 성시경은 전주를 빼라고 한 업체가 있었다고 밝혔고, 래퍼 타이거JK, 밴드 술탄 오브 디스코의 멤버 김간지와 말보는 실제로 사재기 업체를 만났다고 주장했다.

메이저9은 성시경과 타이거 JK, 김간지, 말보의 사례를 요목조목 짚었다. 먼저 성시경의 경우 전주를 빼라고 요구를 한 건 최근 트렌드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황 대표는 “성시경이 말한 내용을 보면 당사자가 바이럴 업체를 만난 것 같다. 다만 대화의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최근 10대 남성의 경우 15초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데, 그 전주가 길면 듣지 않는다. 최근 성공한 곡 대부분이 전주 없이 노랫말이 바로 나온다”며 “이런 점이 뮤지션들에게는 지탄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죄는 아니지 않냐”고 호소했다.
 

▲ ▲▲ 닐로-송가인 ⓒ리메즈 엔터테인먼트, TV조선

타이거 JK는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실제 사재기 업체의 관계자였을 수 있으며, 김간지는 바이럴 마케팅 업체의 수익 배분을 잘못 이해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간지는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서 ‘사재기 업체의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으나 차후 기자들의 인터뷰 문의에는 응하지 않았다.

가장 관심을 끈 대목은 말보다. 가수 말보는 <그알>에 출연해 사재기 업체 관계자를 만났었다고 밝혔다. 그는 약 3억원서 3억5000만원가량을 요구받았다고 밝혔다. 방송서 말보는 “행사장서 몰래 접근한 사람이 있었다. 두 가수가 곧 음원을 내는데 1위 하는 걸 보고 결정해라고 말했다고 했고, 이후 실제로 두 가수는 1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만났다. 전화번호는 없었고 카톡으로만 얘기했다. 결국에 사재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기꾼이
고여 든다

이에 김 부사장은 말보가 사기꾼을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보와 친분이 있는 사람을 통해 알아봤는데, 말보가 만났다고 한 사람은 와우 대표였다. 실제 그 대표는 말보를 알지도 못했다. 그리고 말보가 말한 A가수는 와우가 아닌 리메즈와 마케팅을 진행했고, 또 다른 가수는 포엠과 진행했다. 와우랑은 상관이 없었다. 그런 거로 봐서 말보는 사기꾼을 만난 것 같다. 지금 실제 사재기 업체 관계자를 만났다고 하는 가수들은 사기꾼들에게 피해를 본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약 7시간에 걸쳐 음원 사재기 의혹에 대응한 메이저9은 “우리야말로 사재기가 근절되길 바란다. 의혹을 받고 있는 가수들이 사재기를 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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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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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 처리됐다. 지급보증을 섰던 롯데건설은 우빈산업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넘겨 받으면서 49%를 확보했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이 보유한 19.5%는 롯데건설로부터 양도받은 것이다. SPC 빛고을 내에서 롯데건설의 발언권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1명은 앤유 대표인 정모씨의 아내로 추정된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