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사정권’ 재계 금수저들 공개

10원이라도…탈탈 턴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국세청이 칼을 빼들었다. 이른바 수백원 규모의 주식을 보유한 금수저들의 자금 출처를 꼼꼼히 파악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살생부에 오른 이들은 긴장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향후 자산 승계 수단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에 따라 금수저 주식부자에게 눈길이 쏠리는 상황이다.
 

국세청은 지난달 24일 고액 금융자산 보유 미성년자와 연소자 등을 대상으로 증여세 등 탈루 혐의가 짙은 268명을 선정해 세무조사를 실시할 방침을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는 자력이 없는데도 고액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미성년 주식부자가 주요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관측된다.

미리 증여
절세 꼼수

소득이 없는 미성년자가 주식을 변칙적으로 증여받는 경우 강도 높은 세무조사 대상 명단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은 금융조사 등 자금출처 조사를 통해 조사대상자 본인의 자금원천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필요에 따라 직계존비속의 자금흐름과 기업자금 유출 및 사적유용, 비자금 조성행위 등도 면밀히 들여다 볼 방침이다. 또 증여세 탈루 여부와 함께 증여자의 사업소득 탈루여부 등 자금 조성 경위와 적법성도 주요 조사 대상에 포함될 예정이다.

통상 미성년 주식 부자들은 주식을 장내에서 매수하거나 증여받는 방식으로 자산규모를 키웠다. 일각에선 성장할 법인의 주식을 미리 증여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지배력을 높이는 것은 편법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세금을 낮추는 방법으로 주식이 이용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밖에 자녀출자법인 끼워넣기와 과다한 이익 분배, 일감 몰아주기 부당 지원 등의 특수관계자 간 부당거래를 검증하고 있는 상태다.

자력 없는데 고액 금융자산 보유
미성년 주식부자 268명 세무조사

이에 따라 미성년 주식부자들에게도 눈길이 쏠리는 상황이다. 한미약품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의 경우 임성기 회장의 손자와 손녀들이 나란히 주식을 가지고 있다. 

주식을 가지고 있는 명단을 살펴보면 임성연(2003년생), 임성지(2006년생), 임성아(2008년생), 김원세(2004년생), 김지우(2007년생), 임후연(2008년생), 임윤지(2008년생), 임윤단(2013년생) 등이다. 

성연군이 68만4574주, 지분율 1.08%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성지양, 성아양, 원세군, 지우양, 후연군, 윤지양 등이 각각 66만8671주, 1.05%의 지분율을 보이고 있다. 윤단양의 경우 1774주로 가장 지분이 적다. 

지분이 가장 많은 성연군의 주식 가치는 지난 2일, 종가 기준 524억원에 달해 역시 금수저라는 말이 나왔다. 


문배철강도 약관의 나이의 주요주주를 두고 있다. 1973년 설립된 문배철강은 철강재의 제조 및 판매를 목적으로 한다. 지난해 156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성인이 된 배승준씨는 문배철강의 2대 주주다. 그가 2대 주주로 오른 데는 핏줄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배종민 문배철강 회장의 장남이다. 승준씨는 성인이 되기 전 대거 회사 지분을 확보, 회사 승계를 위한 밑그림을 마쳤다.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지분은 292만9100주다. 지분율은 14.29%로 1대주주 배 회장(15.05%)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그가 가진 지분의 가치는 지난 2일, 종가 기준 113억2097만원 수준이다. 아버지 배 회장과의 지분율 차이가 1% 미만이라 향후 승준씨가 회사를 승계할 것으로 보인다.

승준씨 외에도 윤경, 윤선, 윤정씨가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지분율 0.60% 수준으로 회사 내 지배력은 약하다.

삼영무역 역시 미성년자가 주요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삼영무역은 1959년에 설립돼 화공약품 수출입업과 전자제품 판매업을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기준 2573억원, 80억원을 기록했다. 

2000년생인 이호준군은 삼영무역의 지분 28만6052주를 확보했다. 호준군은 이승용 대표의 장남이다. 지분율을 1.74%로 삼영무역의 지배력이 공고한 상황은 아니다. 아버지인 이 대표는 20.86%의 지분율을 보이고 있다. 

다만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지분가치는 일반 직장인이 모으기 힘든 액수다. 지난 2일, 종가 기준 50억2021만원 수준. 호준씨의 누나인 이현지(22)씨 역시 삼영무역의 주식 27만1659주를 가지고 있다. 지분율은 16.5% 수준으로 47억6761만원 수준이다.

주식증여 후
일감 몰아줘

조선내화도 이번 국세청의 금수저 조사 기조에 눈길이 쏠리는 기업이다. 조선내화는 오너 일가의 미성년자가 주요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이화일 조선내화 명예회장의 손자인 문성군은 조선내화 주식 4만760주를 가지고 있다. 지분율은 1.02%로 34억원에 해당하는 규모다. 
 

2004년 생인 문성군은 현재 중학교에 다닐 나이다. 

2009년생인 서준군은 1만2336주를 가지고 있다. 지분율은 0.31%다. 지난 2일 종가 기준으로 10억원 규모의 주식이다.

특히 조선내화는 내부거래로 인해 말이 나오는 기업이다. 조선내화와의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조선내화이엔지는 오너 일가들이 지분 100%를 보유 중이다. 사실상 개인회사인 셈.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이인옥 회장의 누나 이명륜씨가가 가장 많은 49.06%의 지분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인옥 회장과 동생 이인천 대한세라믹스 대표가 각각 23.44%다. 나머지 4.06%는 아버지 이화일 명예회장의 몫이었다. 지난해 조선내화이엔지의 매출은 410억원이다. 문제는 270억원이 내부거래였다는 점이다.  매출의 65%가량이 내부거래에 의존했다. 조선내화에 기댄 매출액이 264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GS그룹은 편법 주식 증여가 걸린 바 있어 주목받고 있다. GS 오너 일가는 미성년 자녀에게 편법 증여를 했다가 세무당국으로부터 거액의 증여세를 부과받았다. 이에 이들은 국세청의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진행했지만 패소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강석규 부장판사)는 허용수 GS EPS 대표(부사장)의 자녀와 허승조 전 GS리테일 부회장의 자녀가 세무 당국을 상대로 “177억원대 증여세 부과를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서 최근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원고들은 특수관계에 있는 조부나 부로부터 대외적으로 공표되지 않은 석유화학공장 건설 정보를 이용해 가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분을 유상취득했다”고 판시했다.

GS그룹은 주요 대기업집단 가운데 미성년 친족이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지난 12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기업 집단 별 주식소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1일 기준 9개 대기업 총수의 미성년 친족 25명이 상장 계열사 11곳, 비상장 계열사 10곳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GS그룹의 미성년 친족 5명은 GS와 GS건설 주식 915억원을 보유했다. 1인당 평균 183억원 수준이다.

이는 다른 대기업 집단보다 큰 액수다. 두산그룹 미성년 친족 7명은 두산, 두산건설, 두산중공업 등 주식 43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LS그룹에서는 미성년 친족 3명이 LS와 예스코 주식 40억원을 가지고 있다. 효성그룹은 미성년 친족 2명이 효성 주식 32억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긴장하는 
로열패밀리

고려아연 역시 다수의 미성년자 주식을 가지고 있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의 주요 계열사다. 1974년에 설립돼 아연괴 제조 및 판매를 주요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6조5966억원이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8947억원, 6340억원 수준이다. 고려아연에 미성년 주식 부자가 다수 있는 것은 최창영 고려아연 회장과의 관계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미성년자인 이들이 자력으로 주식을 보유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최 회장과 친인척 관계인 08년생 최수연양은 1799주, 손자인 09년생 최승민군은 1799주, 2004년생 최진하양은 1068주, 최윤하양은 1068주를 각각 가지고 있다. 

최 회장과 친인척 관계인 이승원군과 이세림양도 1088주를 보유했다. 이들은 각각 2005, 2009년생이다. 이들이 가진 지분율은 각각 0.01% 수준이지만 개인인 2% 지분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이들의 지분가치는 수억원 대에 달한다.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최수연양의 지분은 7억7357만원 수준이고, 가장 적은 이세림양의 지분 가치는 4억원 수준이다.

소득 없이 수백억 지분 소유
각종 편법 현미경 조사 예정

샘표식품 역시 최근 미성년 손자, 손녀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눈길이 쏠렸다. 지난 1월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박진선 샘표 대표이사의 부인 고계원씨는 특수관계자 6명에게 각 3만주씩 총 18만주를 증여했다. 

증여일 기준 주가로 환산하면 총 66억8000만원 상당이다. 각각 10억원 상당의 주식이 돌아간다. 

수증자는 ▲박용주(82년 7월14일 출생) ▲이수진(79년 12월22일 출생) ▲이수진(79년 12월 22일 출생) ▲이신영(78년 1월12일 출생) ▲박준기(12년 6월23일 출생) ▲박현기(16년 12월13일) ▲이세현(17년 2월6일 출생) 등이다. 
 

주주명부에도 변동이 생겼다. 증여전 샘표식품의 지분 구조는 샘표 주식회사가 49.38%로 최대주주이고, 고영진씨가 5.73%로 2대주주, 고씨가 4.62%로 3대주주였다. 하지만 이번 증여로 고씨의 지분율은 0.68%로 낮아지면서 박용주씨(0.82%)보다 지분이 줄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수증자 가운데 10살도 채 넘지 않는 어린이가 있다는 점이다. 그 중에는 태어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아기도 포함됐다. 

박준기·현기 어린이는 미취학아동이다. 이들은 오너 4세인 박용학 통도물류 이사의 자녀다. 만으로 1세가 채 안된 이세현양은 샘표 대표이사의 손녀다. 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서민들은 평생 모으기도 힘든 액수를 손에 쥐게 됐다.

직계존비속 자금흐름 추적
차명·비자금 조성도 조사

고씨는 ‘세대생략 증여’를 통해 부를 이전했다. 세대생략 증여란 조부모가 자녀 세대를 건너 뛰고 손자·손녀 세대에 재산을 넘겨주는 것을 말한다. 다만 세대생략 증여의 경우 세대를 건너뛰는 것을 할증된 증여세율이 적용된다. 

상속세법 및 증여세법 57조에 따르면 조부모가 한세대를 거르고 증여를 하는 경우 증여세율이 30% 할증된다. 

가령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증여할 증여재산의 과세표준이 10억원이면 증여세의 세율은 10%가 적용돼 1억원의 세금을 납부해야 하지만 한 세대를 건너뛰고 손자에게 바로 증여하면 1억3000만원의 세금이 발생한다. 

그러나 조부모가 아들에게 증여하고 아들이 손자에게 증여를 하면 2억원의 세금이 발생하기 때문에 어차피 손자에게 증여할 재산이라면 세대를 건너뛰고 세금을 증여하는 방식이 유리하다. 

이런 점 때문에 세대생략 증여는 최근 논란이 되는 ‘합법적 세금 탈루’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또 미성년자인 오너 일가에 주식을 증여하는 사안은 여러가지 측면서 꾸준히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오너 일가가 미성년자에게 주식을 증여하면 성년이 될 때 발생하는 배당금 및 주식가치 증가분에 대한 증여세가 없어서다.

결과 따라
세금 폭탄
 

한 재계 관계자는 “주식 증여 자체를 문제 삼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서 갖가지 꼼수가 비일비재했던 만큼 과세당국의 이번 세무조사 실시로 긴장하는 기업인들이 많을 것”이라며 “과세 당국의 성과에 따라 과세규모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