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고액연봉 10인’ 대해부

로열패밀리는 받는 돈도 다르네∼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지난해 사업보고서가 공개됐다. 고액연봉을 챙긴 임원들의 보수에 눈길이 쏠렸다. 회사의 성과나 규모에 따라 책정되는 보수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의외로 많이 챙겨가는 임원에게는 ‘과연 적정한가?’라는 물음표가 찍힌다. 눈길을 끄는 고액연봉자를 확인했다.
 

기업들은 지난달 말을 기점으로 대부분 사업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고액임원들의 보수도 확인됐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상장회사는 5억원 이상 임원은 개인별 보수와 그 구체적인 산정기준 및 방법을 공개해야 한다.

부자끼리
친척끼리

재계 임원들의 연봉은 시장 규모나 매출, 성장 기여도에 따라 법인이 기준을 세워 보수를 결정했다. 그 기준은 천차만별. 그렇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고액연봉자들이 존재한다.

오치훈 대한제강 대표이사가 13억400만원을 챙겼다. 동종업계인 세아제강 대표이사가 6억5000만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 가운데 급여는 6억3000만원 수준이었다. 상여금 역시 6억3000만원으로 급여만큼 챙겼다. 

기타소득은 4400만원 수준. 업계에서는 급여만큼 챙긴 상여금에 관심이 집중됐다. 회사측이 밝힌 상여 기준은 다음과 같다. 


성과금 지급기준에 따라 매출액·영업이익으로 구성된 계량지표와 기타 경영활동으로 구성된 비계량지표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기준 연봉의 0∼100% 내에서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회사에서는 오 대표가 지속적인 글로벌 경기 침체와 전 세계적 보호무역주의 확대 등의 어려운 경영환경서 임직원들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의사 소통하고 조직을 이끌었다고 판단했다. 

또 426억원의 영업이익 성과를 창출한 점과 현장인력 육성 및 안전작업장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안정적인 생산에 기여한 점을 고려해 상여금 액수를 책정했다.

그 결과 대한제강은 오 대표에게 줄 수 있는 상여금의 최대치를 몰아줬다. 과연 오 대표가 이같은 상여금을 받기에 적절한가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지난해 대한제강의 개별 기준 실적을 살펴보면 매출액 1조1410억원, 영업이익 426억원, 당기순이익 271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매출액만 전년대비 2978억원 증가했을 뿐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60억원, 92억원 감소했다. 

어려운 대외상황을 감안해야겠지만 수익성이 악화된 가운데 경영자에게 최고 수준의 상여금을 준 부분에 대해서는 뒷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오 대표가 회사의 오너이기 때문에 과도한 상여금이 책정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오 대표는 대한제강의 지분 18.38%를 가지고 있는 최대주주 신분이다.


실적은 뒷걸음 상여금은 앞걸음
같은 임원 다른 연봉…도대체 왜?

오 대표와 친인척 관계인 오형근 사내이사 역시 오 대표와 유사한 비율의 보수액이 책정됐다. 오 사내이사는 지난해 11억9800만원의 보수를 챙겨 고액보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급여와 상여금은 각각 5억7800만원 수준이었다. 오대표와 마찬가지로 급여만큼의 상여금을 챙긴 것. 이에 따라 오 사내이사의 보수가 적절한가에 대해 뒷말이 나올 상황이 됐다.

오너 일가가 고액 임원보수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경우는 또 있다. 삼양홀딩스의 경우 회장과 친인척이 5억원 이상의 보수를 챙겼다.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은 20억6600만원의 보수를 챙겼다. 

그의 동생 김량 부회장은 13억600만원을 보수로 받았으며, 김 회장의 사촌인 김원 부회장은 13억2000만원이 보수로 책정됐다. 이들은 상여금도 적지 않았다. 김 회장은 총 보수 가운데 8억2000만원이, 김원, 김량 부회장은 각각 5억원이 상여금으로 지급됐다. 1년치 급여의 절반 가까이를 상여금으로 챙긴 셈이다.

상여금은 2016년 실적을 기준으로 책정됐다. 이사보수한도 금액 내에서 영업이익, cashflow로 구성된 계량지표의 달성률을 반영해 보상위원회의 결의에 따라 기준연봉의 0∼100% 내에서 지급했다. 

계량지표 측면에서는 2016년 매출액 2조3114억원 및 영업이익 1410억원의 성과를 달성한 점이 반영됐다.

에넥스 오너 일가인 박유재 회장과 박진규 부회장이 각각 5억원 이상의 고액 보수 챙겨 공시 개별공시 대상이 됐다. 이들은 부자로 각각 9억6000만원, 8억4000만원을 보수로 챙겼다. 이들은 총 보수 가운데 대부분은 급여였다. 

박 회장과 박 부회장의 보수는 전년대비 각각 1억1950만원씩 상승했다.

전문경영인이
더 챙기기도

회사는 이사보수 지급기준에 따라 임원급여 테이블을 기초로 직무, 직급(대표이사 회장), 근속기간(47년), 리더십, 전문성, 회사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제약회사 유나이티드도 부자가 고액연봉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아버지인 강덕영 대표이사는 7억9700만원을 보수로 챙겼다. 급여로는 5억3200만원이 책정됐다. 상여금은 급여의 50% 수준인 2억6500만원이다. 


그의 아들인 강원호 대표이사는 6억5900만원을 지난해 보수로 가져갔다. 이 가운데 급여는 4억4000만원, 상여는 2억1900만운 수준이다.
 

문제는 이들 부자가 가져간 보수총액이 전체 이사·감사 보수총액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는 점이다. 유나이티드에는 총 8명이 있는데 이들의 보수를 모두 합하면 21억6800만원 수준이다. 1인당 가져가는 보수는 2억71000만원이지만 강 대표이사 부자의 보수가 대거 포함돼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보수는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 부자 역시 오너 일가라는 점에서 오너 입김에 의한 오너 일가 몰아주기 임금체계라는 비판이 제기될 여지가 있다.

유나이티드의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강덕영 대표이사의 지분률은 27.99%로 최대주주 신분이며, 강원호 대표 역시 3.27%로 유나이티드문화재단(5%)에 이어 3대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비철금속 생산업체인 풍산은 류진 회장에게 29억500만원을 지난해 보수로 챙겨줘 오너 독식의 임금 체계의 회사라는 뒷말이 나왔다. 류 회장이 챙긴 보수는 나머지 임원 6명에게 지급된 보수 총합 13억2800만원을 크게 웃돌았다.

그는 지난해 보수의 대부분인 25억2500만원을 급여로 받았다. 나머지는 상여금이 3억8000만원이었다. 전문경영인인으로슨 최한명 부회장이 유일하게 8억3200만원을 보수로 받아 5억원 이상을 챙긴 고액 연봉자에 포함됐다. 


그는 이 가운데 7억2300만원을 급여로, 1억900만원을 상여 명목으로 받았다.

류 회장은 풍산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오너다. 그는 풍산의 지분이 없지만 36.14%의 지분율로 최대주주 신분인 풍산홀딩스를 통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류 회장은 풍산홀딩스 지분 32.50%를 확보해 최대주주 신분이다. 

회사 측은 이들의 임금 체계에 대해 “이사회결의에 의한 임원보수지급규정에 따라 책정됐다”고 설명했다.

리노공업 역시 오너의 연봉이 총 이사, 감사의 보수 총액을 크게 웃돌았다. 오너는 이채윤 대표이사다. 그는 사실상 리노공업을 지배하고 있는 오너로 평가된다. 리노공업 34.66%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 신분이다. 

이 대표의 보수는 지난해 11억227만원이 책정됐다. 이사, 감사 전체 보수총액은 18억7284억원이었다. 이들의 보수를 크게 상회한 셈이다. 이 대표의 급여 6억원은 임원 급여 관리규정 및 2017년 이사보수한도액의 범위 내에서 수행직무를 반영해 결정한 6억원을 12등분해 매월 지급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상여금은 5억원으로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등을 평가해 성과급을 기준연봉의 0∼100% 범위 내에서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영원무역의 성기학 회장도 13억원을 보수로 챙겼다. 눈길을 끄는 것은 강보합세의 실적에도 급여의 30% 수준인 3억원이 상여금으로 지급됐다. 급여는 10억600만원이다. 회사 측은 상여금 결정은 두 가지 지표를 고려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우선 계량지표 관련 당년도 연결 매출액 및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각각 0.4%, 0.9% 증가함에 따라 전년도 실적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을 달성한 점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보합세 수준에 머물렀는 데도 상여금이 대폭 지급된 것이 적정한지 여부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일한 만큼 보상
과연 적정한가?

실제 영원무역의 지난해 개별 기준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947억5642만원으로 전년 962억3277만원보다 14억7634만원 감소했다.

또한 오너 일가라서 보수를 많이 챙겨간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영원무역은 지분 50.52% 가지고 있는 영원무역홀딩스가 최대주주 신분인데 이 회사를 성 회장 및 특수관계인이 46.24%의 지분으로 지배권 강한 상황이다.

영원무역의 이사·감사는 총 8명인데 이들의 보수를 합하면 27억9000만원이다. 성 회장이 가져가는 보수 절반을 조금 웃도는 금액으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비계량지표로서는 어려운 시장 여건에서도 대표이사 회장으로서의 리더쉽 발휘해 안정적인 경영성과 달성을 고려했 결정했으며, 주주총회서 승인한 이사보수 한도 내에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부도덕한 CEO 논란을 일으킨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9억1800만원을 보수로 받았다.

회사측이 최 회장의 밝힌 연봉지급 기준은 주주총회 결의로 정한 지급한도 범위 내에서 임원보수규정에 따른 것이다. 또 직무·직급, 근속기간, 리더십, 전문성, 회사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기본급 등으로 총 9억1800만원으로 결정하고 연간 12등분해 매월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가 CEO 자질이 의심되는 경영인이라는 점에서 보수가 적절한지 물음표가 찍힌다. 한진해운 회장이었던 최 회장은 한진해운이 자율협약 신청을 발표하기 전 미공개 정보를 미리 파악해 지난해 4월 두 딸과 함께 가지고 있던 한진해운 주식을 전량 매각해 10억원 상당의 손실을 피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급여만큼 책정된 보너스”
 “사고 쳐도 빵빵한 월급”

그 결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는 최 회장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최 회장 측은 항소장을 내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최 회장은 현재 옥중 경영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가 챙긴 보수가 5명 인원의 이사·감사 전체 보수총액 12억5278만원의 8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인사가 회장이라는 이유로 과도한 보수를 챙겨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윤영달 해태제과식품 회장의 사위인 신정훈 대표이사도 고액 연봉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2005년 4월부터 회사의 경영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해 보수로 15억3300만원을 가져갔다. 

윤 회장보다 많은 보수수준이다. 윤 회장은 5억원 미만의 보수를 받아 개별 보수액 공시대상이 아니다. 신 대표의 급여가 대부분(15억3200만원)이었는데 산정 기준은 임원보수관련규정(이사회결의)에 따라 직무직급(사장), 근속기간(13년), 리더십, 전문성, 회사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결정했다. 

해태제과식품서 유일하게 고액 보수임원으로 전문경영인이 꼽힌 점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일반 경영인으로서 코오롱의 안병덕 사장이 보수로 36억8140만원을 챙겨 눈길을 끌었다. 그가 받은 보수는 이웅렬 회장이 받은 8억원을 크게 웃도는 액수였다. 다만 그의 보수총액에는 퇴직금이 포함돼있다. 

그가 받은 보수 가운데 퇴직소득은 31억2171만원이다. 회사 측은 안 사장의 퇴직금과 관련 임원퇴직금지급규정에 따라 월보수 4166만원과 재직기간 및 직급별 지급배수를 곱해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4년 1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재직했으며, 이 기간이 퇴직급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급여는 이 회장이 받은 8억보다 적은 5억원을 챙겨갔다. 상여금은 없었다.

오너 일가 몰빵
임금체계 비판

재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 오너 일가가 임원으로 있는 경우 전문 경영인을 두는 경우보다 많은 보수를 가져가는 것으로 보인다”며 “과연 오너 일가의 경영 능력이 출중한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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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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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