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1.22 17:47
작금에 정치판, 한마디로 난장(亂場)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 논란을 포함하여 여야 가리지 않고 밥그릇 싸움, 총선에서의 공천 지분 확보와 관련하여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를 바라보면서 묘한 생각이 떠오른다. 혹여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 모두가 약속한 게 아닌가 하는, 즉 곤궁하기 이를 데 없는 현 상황에 국민들이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못하도록 일부러 저들이 난장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여하튼 이 난장 중에 필자의 시각으로 보아 돋보이는 인간은 당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다. 최근 김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 출마 사수를 주장하면서 유사시 대권후보군으로 등장할 수 있는 인사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표방하는 대의정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며 아무런 연고도 없는 험지로 출마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의 강권에 따라 부산 해운대 출마를 희망했던 안대희 전 대법관은 김 대표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였고 종로에 출마 결심을 굳혔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일정 부분 양보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김 대표가 주장하는 험지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새누리당 약세지역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유명세를 바
지난 가을 모처럼 아내와 함께 지인이 운영하는 야외 카페를 찾았었다. 한참 단풍에 취하며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중에 옆이 소란스러웠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참으로 기막힌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어림잡아 네댓 살은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장난감 총을 들고 어미와 아비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겨누며 ‘탕탕’ 소리를 내자 그 어미, 아비 되어 보이는 인간들은 그에 따라 그야말로 리얼하게 죽는 시늉을 연발하고 있었다. 일이 그 선에서 마무리되었으면 좋으련만 이 겁 대가리 상실한 녀석이 우리 테이블까지 와서 나와 아내에게 그 짓거리를 해댔다. 이거 저거 생각할 겨를도 없이 육두문자가 튀어 나갔고, 결국 모처럼의 데이트를 망친 적이 있었다. 너무 비약이라 평할지 모르나 정치판에 등장한 이후 안철수란 인간을 바라보면 장난감 총을 들고 설쳐대던 그 아이가 연상된다. 그렇게 자란 그 아이에게 온 세상은 저의 놀이터고 다른 사람들은 저의 놀이에 희생양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보인 안철수의 행동이 이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그러니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지지를 발표하고 제 멋대로 놀다가 투표 당일 미국으로 날아 가버렸고, 무소속으
최근 새누리당 박대동 의원의 전직 비서관인 박모씨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월급 가운데 120만원을 13개월에 걸쳐 상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어 “월급을 내놓으라고 강압한 적이 없고 사실이 왜곡되거나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의 해명이 나오는 순간 또 다른 전직 비서관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 역시 “8개월 동안 월급 가운데 120만원씩을 냈다”고 말했다. 다만, 이 돈에 대해선 “박 의원이 몰랐고 자진해서 운영비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던 새누리당이 여론의 뭇매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박 의원에 대해 진상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그래야 할 일이지만 수시로 불거지는 새누리당의 급여 착취 행태와 그에 대한 당의 대처를 살피면 의외의 반응이 아닐 수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령 박 의원 전 비서진들의 발언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김무성 대표가 있는 새누리당이 박 의원을 단죄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발생한다. 지난 시절 필자와 한나라당에서 이름만 바뀐 새누리당 사이에 실제로 있었던 일 때문이다.
“여보, 내년에 실시되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면 안 돼!” 곁에서 TV를 시청하던 아내로부터 느닷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저 사람 얼굴 보기 싫어서 그래.” 아내가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선을 주자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제안한 혁신 전당대회 개최 요구를 거부한 문재인 대표에게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잠시 그 장면을 주시하다 그냥 웃어넘겼다. “왜 그래. 당신도 저 사람 탐탁지 않게 생각하잖아.” “물론 그랬었지. 그런데 내가 잘못 본 듯해.” “무슨 소리야?” “저 사람은 인간적으로 문제 있다기보다도 정치와는 전혀 연결 지을 수 없는 사람이야.” 안철수란 인간이 처음 정치판에 등장하면서 ‘새 정치’니 ‘큰 정치’니 하는 것들을 외쳐댔다. 정말 가소롭게 보였다. 정치의 ‘정’ 자도 모르는 인간이 새 정치, 큰 정치를 외쳐댔으니 당연한 처사였다. 그런 연유로 그냥 시큰둥하게 바라보았
기독교를 믿는 딸 아이가 은근하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아빠는 왜 기독교, 아니 종교를 믿지 않는 거야?” “왜 믿어야 하는데?” “교회 다니면 천당도 가고 영생도 얻을 수 있잖아.” “그래서 아빠는 종교, 특히 기독교를 믿지 않는 거야.” 아이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일이 축복이겠니 아니면 저주겠니?” 아이가 역시 이해하기 힘든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빠는 그냥 한바탕 재미나게 살다가 때가 되면 미소 지으며 죽을 거야. 아니 죽음이 아니지. 영원한 자유지.” 아이의 눈에는 철저한 무신론자로 비춰질 지 모르지만, 나는 아내와 아이가 종교, 특히 정통 불교나 기독교를 신앙으로 가지는 일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더해서 오히려 권장하는 편이다. 왜냐, 종교가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내가 인지하고 있는 불교나 기독교는 공히 지고지순한 무조건적인 사랑,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그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그를 아가페라
우리 시대 민주화 운동의 거목이셨던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시자 고인을 회고하며 이구동성으로 찬사를 쏟아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군정을 종식하고 문민정부를 세운 인물’로,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신념의 지도자’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여러 평가가 이어지지만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회고하는 부분은 ‘민주화를 위해서 온 몸을 던졌던 대통령’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다. 아울러 김 전 대통령의 공과를 떠나 이 부분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리라 본다. 그런데 이외의 찬사가 세간의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발언이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위대한 개혁 업적을 만드신 불세출의 영웅이셨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나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다. 고인 가시는 길을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고 말했다. 상기에서 살펴지듯 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두 가지 의미심장한 발언을 토해냈다. 김 전 대통령은 불세출의 영웅이고, 자신은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는 부분이다
1980년도 후반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창립되었을 때 참으로 신선한 감을 지울 수 없었다. 당시 교육계 실정은 언급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부패했고 거기에 더하여 그들이 들고 나온 ‘참 교육’은 한편 혁명적 발상으로 인식되고는 했다. 하여 비록 몸은 동참하지 못할망정 정신적으로는 아낌없는 지지를 실어주었다. 그런데 출범 초기에 지녔던 장밋빛 환상은 서서히 빛이 바래갔다. 먼저 그들이 들고 나온 요구사항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주장했던 사항 중에 학생이 아닌 자신들의 처우 개선에 무게 중심을 싣는 모습에 한동안 멍한 상태에 빠져들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을 때 그들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바뀌어갔다. 아니 전교조가 처음 출범했을 때 표방했던 모든 이야기들이 급격히 거짓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그들의 투쟁방식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들의 투쟁방식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학생들의 수업시간임은 차치하고 거리로 나선 그들의 손에 각목과 쇠파이프가 들린 모습을 보았을 때 참으로 아연하게 생각했다. 참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도구였다. 아울러 그 쇠파이프와 각목을 어떻
그동안 <일요시사>를 통해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역사 기록들이 여러 부분에서 잘못되었고 또한 역사를 바라보는 어처구니없는 시각에 대해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런데 그 모두를 압도하는, 정말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까지 왕의 직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해서다. 연산군은 엄연히 임금으로서 11년 간 보위에 앉았었고 광해군은 무려 15년 간 임금이었다. 두 사람은 반정에 의해, 연산 임금은 중종반정으로 광해 임금은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군으로 강등되었고 지금도 대군(大君)도 아닌 군(君)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왕의 자리에 올라보지도 못한 인물들이 왕의 시호를 받은 사례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성종의 아버지인 덕종을 필두로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 정조의 양부인 진종, 정조의 친아버지인 사도세자 즉 장조 그리고 헌종의 아버지인 익종이 그들이다. 한편 생각하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임금 자리에는 앉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왕의 시호를 보유하고 있건만 보위에 앉아 일순간을 풍미했던 두 사람을 지금도 군으로 기록하는 일은 크나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런지 역사에서 사례를
한국사 국정 교과서 대표 집필진으로 선정된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6월 국사편찬위원회와 신라사학회가 개최한 ‘삼국통일의 현재적 의의’ 학술회의에서 신라에 의한 삼국 통일과 관련해 발언한 내용이다. “우리 국민이 단일민족으로서 한 정부를 최초로 이룩한 신라 통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때가 됐다.” 그런 그가 국정 교과서 대표 집필진으로 선정된 이후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라의 통일 문제를 크게 부각시켜보려 한다”고 일성을 터트렸다. 그의 지난 해 발언 그리고 최근 발언을 살피면 불현듯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떠오른다. 아울러 일전에도 김부식의 그릇된 역사관에 대해 짧게 지적했듯이 심한 우려가 일어난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김부식처럼 상당히 편협 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언급한 단일민족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신라의 통일 문제를 부각시키겠다고 한 부분이다. 먼저 당시 사회가 단일민족이었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는지 우리 집, 즉 황(黃)씨의 족보 속 내용을 들여다보자. 『황씨는 중국 한나라 광무제(光武帝)의 한학사(漢學士) 황락(黃洛)의 후손들이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에 맞추어 산 이야기 한번 해보자.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에 걸쳐있는 북한산의 명칭에 대해서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산이라는 명칭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거부 반응을 나타낸다. 무슨 사연이 있어 그런지 북한산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자. 북한산이 문헌상 최초로 등장하는 시기는 삼국 시대 초기다. 삼국사기 본기 온조왕에 관한 기록이다.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 유리가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오간·마려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백성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드디어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가 살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상기의 기록을 살피면 한산이란 지명과 부아악이 등장한다. 한산은 지금의 서울 지역을 지칭하는 말로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정복한 이후 한강 이북을 ‘북한산주’라 명하였고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이후 한강 이남, 당시 경기도 광주 지역을 ‘남한산주’로 표기했었다. 아울러 지금의 북한산은 ‘부아악’으로 등장한다. 부아악은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업고 있는 형상
주로 역사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필자에게 간혹 지인들이 질문하고는 한다. 우리 역사 최고 인물은 누구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내가 박 전 대통령을 우리 역사 최고의 인물로 평가하는 사유는 단순하다. 나, 즉 일개 백성에 지나지 않는 나도 당당하게 인간군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데에 따른다. 우리 역사에서 박 전 대통령이 경영하기 전까지, 아니 내가 어린 시절 이 땅에 백성은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무늬만 인간으로 존재했었다. 그러나 박정희란 인물의 등장으로 이 땅의 백성들도 맹자의 지론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발현 된다’는 맛을 보게 된다. 그런 연유로 박 전 대통령에게 많은 과실이 있지만, 그에 앞서 이 대목을 우선순위에 두고 응답한다. 각설하고,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일을 맞이하여 오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다. 다수의 사람들이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을 미워했다는, 심지어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자세히, 아니 그냥 대충 살펴도 천만에다. 박 전 대통령은 오히려 김 전 대통령을 좋아했다고 봄이 타당
조선왕조실록 세조 3년(1457년) 6월22일 기록이다. 『노산군(단종)이 영월로 떠나가니, 임금이 환관 안노에게 명하여 화양정에서 전송하게 하였다. 노산군이 안노에게 이르기를, “성삼문의 역모를 나도 알고 있었으나 아뢰지 못하였다. 이것이 나의 죄이다” 하였다.』 다음은 세조 3년(1457년) 10월21일 기록이다. 『명하여 송현수는 교형에 처하고…. 노산군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매어서 졸하니, 예로써 장사지냈다.』 단종이 영월로 귀양 가면서 일개 환관에게 자신의 죄를 토로했다는 부분도 그렇지만 장인인 송현수 등이 죽임을 당하자 슬픔에 겨워 자살했고 이어 예를 갖추어 장사를 지냈다는 부분을 살피면 그저 쓴 웃음만 나온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상기의 기록은 물론 정설로 알려진 내용들이 모두 거짓이라는 점이다. 먼저 실록 기록과 관련하여 귀양 가는 시점을 살펴본다. 실록에 따르면 단종이 한여름인 음력 6월22일(양력으로 치면 7월 말경)에 한양을 떠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단종이 귀양지인 영월에서 남긴 작품을 살피면 커다란 차이를 드러낸다. 유배지인 영월의 자규루에 올라 지은 글 중 일부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조선 중기 형조판서·우의정 등을 역임했던 김구(金構)의 졸기에 관한 두 개의 기록을 살펴보자. 먼저 숙종 30년(1704년) 12월18일 기록이다. 『김구는 관찰사 김징(金澄)의 아들로 젊을 때부터 문한(文翰, 문필)이 넉넉하고 민첩하였으며,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청환(淸宦:학식이나 문벌이 높은 사람에게 시키던 규장각·홍문관·선전 관청 등의 벼슬)과 현직(顯職:실무를 보는 문무관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자질과 성품이 명철하고, 재지(才旨)가 더욱 뛰어나 누차 바쁘고 번거로운 직임을 맡았으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지체함이 없었으며, 임관(任官)이 직무에 적합함이 많았다. 또 말주변이 능숙하여 임금과 면대해 아뢸 때에는 간곡하고 자상하니, 임금이 경청하였다. 정승에 임명된 지 얼마 안 되어 모친상을 당해서는 상을 감당하지 못하였는데, 임금이 병세의 위독함을 듣고 심지어 내시를 보내어 육식을 권했으니, 융숭한 총애가 이와 같았다. 졸할 때 56세요, 뒤에 충헌(忠憲)이란 시호를 내렸다.』 다음은 숙종실록보궐정오 29년(1703) 12월13일 기록이다. 『김구는 명민하고도 정력이 있으며, 사람 사귐에 유
김무성 씨가 새누리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지금까지 보인 행적을 살피면 그야말로 가관이다. 딴에는 뭔가 거창한 일, 본인이 부르짖는 혁신을 하겠다는 듯 말하지만 필자의 시선에는 그저 제 욕심 차리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그가 주장한 ‘다가오는 제 20대 총선은 새누리당 주도로 치르겠다’는 발언에 대해 살펴보자. 물론 그의 발상은 옳고 당연히 그렇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치현실에서 과연 그렇게 일이 이루어질까. 천만에다. 즉 상기의 사고는 더도 덜도 아닌 딱 경상도식 발상에 불과하다. 경상도 지역이야 새누리당의 철옹성으로 당 공천 획득 과정이 곧 본선이니 당 주도로 선거를 치른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그러나 경상도를 제외한 지역 특히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에서도 당 주도로 선거를 치룰 수 있을까. 필자의 짧지 않은 경험으로 살필 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이야기다. 총선에서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 당락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청와대 즉 정권의 성패에 달려 있다. 물론 소속 정당과 인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비중에 있어서 정권의 성패가 압도적이라는 이야기다. 굳이 그 사유를 나열
어린 시절 시험에 자주 출제 되었던 문제들이 기억난다. ‘대한민국 국보 1호는 무엇인가?’와 ‘대한민국 보물 1호는 무엇인가?’다. 물론 각각의 답은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이다. 이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를 거쳤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발생한다. 조선 건국 당시 이성계가 한양에 도성을 건설하면서 세운 4대문 중 하나에 불과했던 숭례문과 흥인문이 과연 대한민국 국보와 보물을 대표하는가 하는 생각 말이다. 아울러 이와 관련하여 각계에서 국보 1호를 변경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문화재위원회는 국보의 지정번호가 서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변경을 묵살하고 있다. 물론 문화재위원회의 ‘철밥통’식 사고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 많은 국보와 보물을 상대로 중요도를 측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또한 말 많은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예견되는 그 반대급부의 지탄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1호의 경우는 상기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전혀 다른 의미를 주고 있다. 즉 1호는 국보와 보물 중에서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소중한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를 맞이하여 정치에서 잠시 벗어나 일반 시사로 눈을 돌려본다. 그런 차원에서 서울 근교에 있으며 수도권 주민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남이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 남이섬에 대해 일반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모 방송조차 크게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남이섬의 행정구역에 관해서다. 다수의 사람들은 남이섬이 경기도 가평에 속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입구 즉 선착장만 가평이고 남이섬은 춘천으로 강원도에 속한다. 둘째, 모 방송국 역사프로그램에서도 혼돈을 빚은 남이섬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다. 섬 이름이 남이가 된 데에는 두 가지 사유를 든다. 하나는 남이 장군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남이 장군의 귀양지였기 때문이라 한다. 먼저 남이 장군의 무덤이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다. 남이 장군은 조선 8대 임금인 예종 치세 때 대역죄에 연루되어 거열형을 당했다. 거열형은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을 몸통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최고의 형벌이었다. 아울러 거열형은 군기시(현재 서울 시청역 부근)에서 집행하고 수급은 그곳에 일정 기간 효수된다. 효수 기간이 끝나면 이미 갈가리 찢어진 여러 신체와 함께 새남터(서울 용산
지난주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말의 향연, 즉 말장난에 대해 지적했는데 공교롭게도 다시 그 상황을 이어야 하는, 필자로서는 불운한 일이 발생했다. 마약을 상습 복용했고 그 일로 구속까지 되었던 이모씨와 둘째 딸의 결혼을 허락한 일과 관련해서다. 기자회견에서 김무성 대표의 발언이다. “여러분도 뭐 다 경험이 있겠지만 자식은 못 이긴다. 자식이 사랑한다고 울면서 결혼 꼭 하겠다는데 방법이 없었다.” 글쎄, 자식 키우는 나는 아직 이런 경험이 없고 주변에서도 볼 수 없었는데 김 대표의 발언을 살피면 그의 주변에는 이런 일이 허다한 모양이다. 여하튼 그 이야기는 제쳐두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발언에 대해 살펴보자.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난감했다. 하여 아내에게 그에 대해 자문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해. 상대가 상습적으로 마약을 했는데!” 괜히 아내에게 어리석은 질문했다가 한소리 듣자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당신 만약 우리 아이가 그러면 어떻게 할래?”“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잖아.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해.”“혹여라도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 건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지난해 새누리당 대표 선출을 위해 실시됐던 전당대회를 돌아보자. 대회 시작 전부터 서청원, 김무성 의원 간 양자대결로 굳어지리라는 일반의 예상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서청원 의원이 압도적으로 당선되리라 보았다. 두 사람의 정치 역정과 더불어 역량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이 부분에서 김무성 의원은 서청원 의원에게 속된 말로 ‘쨉도 되지 않는’ 그런 상대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두 사람은 격, 즉 차원이 달랐다. 외관상 드러난 경력은 물론이고 자력으로 정치판에 뿌리 내리고 한 시대의 질고를 온 몸으로 겪었던 서 의원과 YS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신데렐라처럼 등장했던 김 의원은 근본적으로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대회가 진행되는 과정에 돌발변수 아니, ‘사(詐)’가 끼기 시작했다. 이전까지의 관리형 대표가 아니라 20대 총선에서의 공천권 나아가 차기 대선과 연결되면서 관리가 아닌 권력의 문제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서 의원의 압승이 아니라 패배를 감지했고, 결과 역시 그대로 나타났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와 관련하여 한때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그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령씨의 일본 동영상 사이트와의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면서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피면 크게 두 가지로 축약된다. 하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이제 잘 살게 됐으니 한국의 힘으로 피해자를 모셔야 한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관해 한국 외교부 등이 문제 삼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혈손이 어떻게 부모를, 자신의 선조를 참배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 과정에 일왕을 지칭할 때 ‘천황폐하’라는 일본어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역시 정치권에서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흡사 하이에나처럼 반응을 보였는데 야당의 모 의원이 이를 두고 “우리나라는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해서 오늘날 친일파 후손들이 정치를 비롯한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한국 사회를 친일파가 장악하는 현실”이라며 “천황폐하, 황국시민, 멸사봉공, 혈서로 충성을 맹세한 일제 강점기 만주군관학교 출신인 박정희의 친일행각과 박근령의 ‘천황폐하 일본만 타박해 죄송하다’
북의 도발이 거세지기 시작한 8월21일 저녁 아내와 함께 자리했다. “여보, 나 자원입대하려하는데 어떨까?”“왜 갑자기 그런 소리해?”“명색이 문학인으로서 김정은의 장난에 더 이상 놀아나고 싶지 않아.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꼴 더 이상 보여주기도 싫고. 또 군에 있는 아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 그래.” 아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그런데 당신 나이가 있는데 군에서 받아주겠어?”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내 몸을 보여주었다. 젊은 시절 여러 운동에 심취했었고 이후에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을 오르며 꾸준히 몸 관리를 해왔던 터였다. 아내가 미끈한(?) 내 몸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한마디 한다. “하기야 당신 정도면 지금도 충분히 전쟁에 참여해도 되지. 그리고 어린 아이들보다 전쟁터에서는 당신이 유리할 수 있지.” “그러면 당신이 허락하는 걸로 알겠어.” “허락이 뭐야, 지금 내 심정도 그런데 당신이야 오죽하겠어.” 이어 다음날인 22일 평소 존경하는 어르신과 점심을 함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