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도 후반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창립되었을 때 참으로 신선한 감을 지울 수 없었다. 당시 교육계 실정은 언급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부패했고 거기에 더하여 그들이 들고 나온 ‘참 교육’은 한편 혁명적 발상으로 인식되고는 했다. 하여 비록 몸은 동참하지 못할망정 정신적으로는 아낌없는 지지를 실어주었다.
그런데 출범 초기에 지녔던 장밋빛 환상은 서서히 빛이 바래갔다. 먼저 그들이 들고 나온 요구사항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주장했던 사항 중에 학생이 아닌 자신들의 처우 개선에 무게 중심을 싣는 모습에 한동안 멍한 상태에 빠져들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을 때 그들에 대한 시각이 완전히 바뀌어갔다. 아니 전교조가 처음 출범했을 때 표방했던 모든 이야기들이 급격히 거짓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그들의 투쟁방식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들의 투쟁방식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학생들의 수업시간임은 차치하고 거리로 나선 그들의 손에 각목과 쇠파이프가 들린 모습을 보았을 때 참으로 아연하게 생각했다. 참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도구였다. 아울러 그 쇠파이프와 각목을 어떻게 사용할지 유심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필자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불법 행렬을 저지하는 경찰들에게 소지하고 있는 무기를 가차 없이 휘둘렀다. 당시 그 모습을 살피며 한편 망연자실한 느낌마저 일어났다.
그들이 쇠파이프와 각목을 죽일 듯이 휘둘러대는 전경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 자신들의 제자들이었을 터인데 말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킨다는 명분하에 입에 침만 바르면 찾던 제자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결국 그들에 대한 희망을 접어야했다.
이제 최근 서울 도심에서 개최되었던 ‘민중총궐기’ 대회로 시선을 돌려보자. 시종일관 대회를 바라보면서 또 대회가 끝난 이후를 살피며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불현듯 일어났다. 동 행사에서 발생한 폭력과 행사를 주관했던 민주노총 지도부의 올바르지 못한 처신 그리고 행사에 끝까지 참여했던 사람들이 착용한 복면에 대해서다.
앞서도 이야기 한 바 있지만, 폭력은 명분을 심각하게 퇴색시킨다는 부분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에 대해 절대적으로 약자 편에 서야 하는 문학인의 입장에서도 그들이 보인 폭력은 이해하기 힘들다.
왜냐, 비록 경찰이라고는 하지만 넓게 바라보면 자신들의 자식 나아가 우리의 이웃들이다. 그런데 마치 죽일 듯이 폭력을 행사하면서 이루어야 할 명분이 무엇일까. 우리의 이웃을 해하고 이룰 수 있는 그 명분이 과연 온당한가. 아무리 양보해서 바라보아도 이해 불가다.
다음은 동 행사를 주도했던 민노총 지도부의 처신에 대해서다. 독립군처럼 당당한 모습을 보였던 그가 마치 패잔병처럼 도망간 행동은 차라리 안쓰럽기까지 하다. 옥쇄(玉碎)의 각오로 임했더라면 국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당당함은 고사하고 자신의 안위를 추구한 부분은 문학인의 입장에서 살피면 무식하고 치졸한 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어서 행사 참가자들 중 일부가 착용한 괴상한 복면에 대해서다.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가릴 때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존재한다. 비인간적인 행위를 할 때 혹은 상식선에서 용납하기 힘든 행위를 할 때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자 한다. 그래서 미국에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는 KKK단들이 그러했다.
이 사회의 약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게 필자의 평소 지론이다. 그러나 여하한 경우라도 폭력은 금물이다. 하여 그들에게 인도 민족해방운동의 지도자로 비폭력 운동으로 목적을 달성했던 간디를 권한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