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한토지신탁 박종철 대표, 김건희 일가 낙하산 의혹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12.26 16:36:08
  • 호수 15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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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순 양평 개발 사업 담당자의 화려한 복귀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서진 기자 = 김건희 특검의 양평 공흥지구 특혜 의혹 수사의 축을 흔드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대한토지신탁 박종철 대표가 김건희 여사 일가와 연관된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핵심 실무자였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낙하산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에서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종철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본부장 퇴직
대표로 복귀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 여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앞서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은 2021년 후보 검증 과정에서 ‘양평 공흥지구 개발 사업은 대한토지신탁이 직접 시행해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떠넘겼다.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종철 대한토지신탁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해 낙하산 논란에 불을 지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2023년은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체인 대한토지신탁 수장 자리가 모두 교체된 시기다. 이른바 ‘김용현 사단’으로 분류되는 정재관 전 국방부 국회 협력단장이 2023년 1월2일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같은 해 5월2일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 담당자였던 박종철은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한 것이다.

예비역 육군 준장인 정재관 이사장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동기인 육사 38기로 임관했다. 한미연합사 지구사 민군작전처장, 합동참모본부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을 거쳐 2023년 1월부터 운용자산 20조가 넘는 군인공제회를 이끌고 있다.

윤 장모 최은순 관련 공흥지구 사업 핵심 담당
김용현 입김 작용? 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업계에 따르면 정 이사장이 취임할 때부터 공제회 내부에서는 ‘파격적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군 관련 퇴직자들이 가장 선망하는 요직으로 꼽히는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통상 예비역 소장 또는 중장이 선임된다.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이례적으로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자격 기준에는 일반적으로 자본시장법상 임원 자격 결격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자, 신탁 및 건설 관련 분야 10년 이상 근무 경력자,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덕목을 갖춘 자 등이 포함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군인공제회 이사회 채용 추천이다. 이 전형을 거쳐 선발된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채용 추천을 받는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지분 100%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마지막으로 국방부 승인이 남았는데, 군인공제회는 국방부 산하 기업으로, 자회사 대표이사 선임 시 국방부의 취업 추천 지침에 따라 승인을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 선임된 후보자를 대한토지신탁의 주주총회(또는 이사회 결의로 대표이사를 선임하도록 정관에 명시된 경우 이사회)에서 최종 선임한다.

또 기존 대표이사의 연임은 군인공제회 이사회 결정으로 이뤄지며, 통상 1년 단위로 최대 3회까지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 선임 과정은 군인공제회의 주도 아래 공개 채용, 이사회 추천, 국방부 승인, 주주총회/이사회 결의의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잘나가던
전임 자르고

박종철 대표는 전임 이훈복 대표이사가 자리에서 물러난 지 2개월 만에 선임된 인물이다. 대한토지신탁은 2019년 초 이 전 대표가 취임한 이래 재무 건전성 개선, 수익성 제고 등 성과를 올렸다. 이 전 대표는 30년간 대우건설에 몸담으며 쌓아온 경험과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취임 전(2018년) 247억원에 머물렀던 회사의 당기순이익을 2021년 522억원까지 끌어올렸다. 동시에 영업이익은 695억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업계에선 이 전 대표가 회사의 체질 개선과 실적 성장을 이끌었지만, 군인공제회의 이사장이 바뀌며 임기 연장이 어려워졌다고 평가한다.

정 이사장은 윤 전 대통령 당선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중도 퇴임한 전임자의 뒤를 이어받은 인물이다. 앞서 지난 2022년 7월 김유근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새 정부가 출범하고 새로운 군 수뇌부가 갖춰졌다”며 “상황이 변했는데 3년 임기를 채우려는 건 욕심이고 바른 선택이 아니”라면서 중도 퇴임 의사를 밝혔고, 이듬해 1월 정 이사장이 취임한 바 있다.

정 이사장은 지난해 2월까지였던 김 전 이사장의 임기를 채운 뒤 연임 중이다. 군인공제회법에 따라 이사장의 임기는 3년으로 정해져 있으며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해 정 이사장의 임기는 2027년 2월 만료된다.

정 이사장은 12·3 계엄 및 내란 사태 이후 퇴임할 것이 기정사실화됐다가 대선 이후 국방부 장관으로 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부임하면서 남은 임기를 완수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장관과 맺은 과거 인연이 중요한 변수가 됐다는 분석이다.

정 이사장은 김용현 라인의 실세로 윤석열정부에서 자본시장을 호령했다. 김 전 국방부 장관이 계엄 사태 주도자로 지목돼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특검 수사의 핵심 인물로 전락하면서 입지가 흔들렸다. 이런 맥락에서 정 이사장의 퇴임도 군인공제회 안팎에서 기정사실로 여겨져 왔다.

군공 관계자도 “정재관 이사장은 대선 직후 일찌감치 거취를 정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정 이사장은 지난해 2월까지였던 김 전 이사장의 임기를 채운 뒤 연임 중이다. 군인공제회법에 따라 이사장의 임기는 3년으로 정해져 있으며 한 차례 연임이 가능해 정 이사장의 임기는 2027년 2월 만료된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공제회 이사장들이 임기 중 ‘100% 자의로’ 사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스스로 사임하더라도, 끝까지 버티다가 사실상 타의에 의해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과거 안규백 장관과 쌓아온 인연은 이번 잔여 임기 수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본인은 계엄 사태 전면에 나서지 않았으니 상대적으로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이 임기를 계속 이어간다면 2027년 2월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다만 군인공제회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계엄 사태로 군 개혁이 요구되는데 김용현 사단들이 계속 득세한다면 고위인사들의 정치권 줄대기도 끊어지지 않을 거란 걱정이다.

공제회 관계자는 “이사장이 어떤 라인을 타고 부임하면 해당 인사 뿐만 아니라 관련 인력이 줄줄이 주요 보직에 배치된다”며 “공제회는 회원들의 복리후생과 연금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점점 수익률이 떨어지고 부실한 자산이 늘어나는 것은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정치적 외풍을 계속 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일요시사>와 통화에서 “공흥지구 업무는 잘 기억나지 않고, 지금 하는 일도 그때와 비슷하다”며 낙하산 의혹에 대해 모호하게 답했다.

이어 대한토지신탁 측은 “2014년 당시 담당자가 없어 수소문을 해야해 곧바로 답변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들리는 소문을 통하면 실제 담당 업무한 사람은 따로 있고, (박종철 대표가 당사자라고) 와전이 많이 된 것 같다”며 “(박종철 대표가) 이쪽 업계에서 뼈대가 굵은 분이시다 보니 분야 전문가답게 일도 잘하신다. 청탁이나 수혜는 아닌 것 같다. 이전 이윤복 대표의 임기가 제대로 끝나고 오신 거기 때문에 대표직이 우연은 아니라고 본다”고 일축했다.

이어 “수소문해 봤지만 공흥지구 건은 본인이 입사하기도 전의 옛날 문건이라 확인이 어렵다. 당시 사업1본부 담당이었는지도 확인 불가하다”며 답변을 피했다.

한편,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이 윤 전 대통령 장모인 최은순씨와 김진우씨에 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하면서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핵심 실무에 참여했던 대한토지신탁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앞서 두 사람은 지난달에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국고손실) 혐의로 소환돼 조사받은 바 있다.

특검은 지난 24일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 사건과 관련해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과 김 전 여사의 모친 최은순씨, 오빠 김진우씨 등을 기소했다. 김 전 여사 일가가 사업 비용을 줄이기 위해 양평군을 상대로 로비했고 개발 부담금 감면 등 특혜를 받았다는 수사 결과다.

특검은 “전 양평군수인 김선교 의원과 최은순씨, 김진우씨, 전 양평군 주민지원과장 A씨, 현 양평군 공무원 B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 의혹은 김 전 여사 일가 기업인 ESI&D가 2011~2016년 양평군 공흥리 일대 개발사업을 하면서 양평군으로부터 개발 부담금을 면제받는 등 특혜를 받았다는 것이 골자다.

김 의원은 양평 공흥지구 사업을 진행하면서 최씨와 김 전 여사 등의 청탁을 받고 개발부담금 감면을 지시해 약 22억원 상당의 손해를 양평군청에 끼쳤다는 혐의를 받았다. 특검은 최씨와 김 전 여사가 이 과정에서 일종의 로비스트 역할을 한 지역 신문 기자 A씨에게 2억4300만원을 건넨 것으로 보고 두 사람에게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A씨는 도시개발사업 관련 양평군에 청탁 및 알선 명목으로 돈을 받은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김 전 여사의 오빠 김진우씨는 김상민 전 검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사건 증거인 이우환 화백 그림을 자신의 장모 주거지에 숨긴 혐의(증거은닉)도 적용됐다.

서류상 ‘시행사’는 민간업체인 ESI&D였지만, 실제 현장에서 누가 사업을 주도했는지에 대해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2014년 체결된 토지신탁계약 이후 대한토지신탁이 공사, 자금 관리, 시공사 선정 등 실질적 집행 권한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그림자 시행사’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2014년 5월 27일, ESI&D와 대한토지신탁은 공흥지구 부지를 기반으로 분양형 토지신탁 계약을 체결했다. 겉으로는 ‘신탁대행 업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계약서에는 공사 도급 계약, 공사비 지급 방식, 공사 금액, 일정 등 핵심 의사결정 사항을 대한토지신탁과 “사전 협의”하도록 명시돼 있었다.

단순 관리 영역을 넘어 사업 핵심 권한 일부가 신탁사로 이전된 구조였다. 토지신탁업의 본래 기능은 개발 리스크를 줄이고 자금·공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이지만, 공흥지구의 경우 토지 소유자와 시행사가 아닌 신탁사가 실제 사업 실행 주체인지 여부로 논란이 발생한 지점이다.

인허가는 ESI&D···실행은 토지신탁
‘김건희 오빠’ 역할 떠넘긴 구조

초기 구역 지정·인허가 절차는 모두 ESI&D가 주도했다. 양평군 도시계획 문서에서도 사업시행자로 ESI&D가 기재돼있다. 그러나 인허가 후반부에 접어든 2014년, 사업의 실질 운영은 신탁 계약 체결과 함께 대한토지신탁이 인수했다.

시공사 선정, 공사 착수, 개발비 집행 등 사업 실행 파트는 신탁사가 전면 관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서류상 시행사는 ESI&D, 실제 시행사는 대한토지신탁”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대한토지신탁 측은 “토지신탁은 시행 사업 자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위탁자가 맡긴 업무를 처리할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고생했다”
날개 달아줘

사업이 난항을 겪으며 사업시행자와 신탁사 사이에 미묘한 책임 공백이 발생했다. ESI&D는 “신탁사가 공사·분양·자금 관리를 맡아 실질적 시행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고 대한토지신탁은 “우리는 시행사가 아니고, 인허가·기본설계·사업 기획은 모두 ESI&D의 역할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문제는 해당 구조가 의도적으로 설계된 ‘경계 영역’이라는 점이다. 시행사는 인허가 책임만 갖고, 신탁사는 공사 실무를 담당해 각자가 민원·비용·법적 책임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였다. 사업이 지연되고 정치적 논란까지 겹치면서, 이제는 그 ‘회색지대’가 오히려 사업 투명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도시정비·신탁업계 전문가들은 공흥지구 구조를 ‘이중 시행 이관’의 전형으로 평가한다. 문제 발생 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할 여지가 커진다는 것이다.

한 신탁업 전문 변호사는 “토지신탁은 본질적으로 안정적 사업 관리 모델이지만, 시행자·위탁자와의 역할 경계가 지나치게 모호하게 설정되면 법적 분쟁은 피할 수 없다”며 “공흥지구는 그 위험이 현실화된 사례”라고 지적했다.

문제 생기면
누구 책임?

양평 공흥지구에서 대한토지신탁은 토지를 맡아 관리·대행하고, 공사·시공사 선정·자금 집행 등 실행 단계에서 실질적으로 개입한 주체였다. 형식적으로는 시행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사업 진척에 필요한 의사결정의 상당 부분이 신탁사를 거쳐 이뤄진 점에서 실질적 영향력은 시행사에 준한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반대로, 초기 인허가 구조를 모두 ESI&D가 주도한 점에서 법적 시행 책임은 여전히 ESI&D에 있다는 반론 역시 존재한다. 결국 공흥지구 논란의 본질은 “누가 시행사였느냐”가 아니라 “누가 실제 사업을 굴렸고, 그 권한과 책임을 얼마나 투명하게 행사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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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지방선거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쏟아지던 폭발적인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정작 핵심은 비껴가는 모양새다. 지난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대형 정치 이벤트였던 만큼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이미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은 압승으로 국정 운영에 동력을 더하고자 했고,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궤멸 직전에 몰려 있던 보수 진영은 ‘샤이 보수’를 기대하며 유권자에게 읍소했다. 사상 초유 참정권 침해 결과는 절묘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때 판단하는 광역단체장 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16개 시도 중 12곳을 석권했다. 하지만 서울을 내줬고 국민의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도 빼앗지 못했다. 선거 운동 초반 16개 시도를 전부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라 민주당의 실망은 더욱 컸다. 특히 서울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울시장을 내주면서 중간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고, 지방선거 직전 상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여파가 지지율을 흔들었다. 여기까지는 지방선거 이후 늘 나타났던 여파였다.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로 선거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각,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선거를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태 이후 선관위의 대응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선관위는 투표지가 부족한 투표소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6월5일 투표지를 추가로 송부한 투표소는 67개, 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곳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사흘 뒤인 6월8일 140개 투표소에 추가 투표용지가 송부됐고, 이중 91곳에서 투표지가 부족했다는 발표로 바뀌었다. 3일 만에 각각 거의 두 배씩 늘어난 것이다. 결국 조현욱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6월10일~19일)간의 조사 끝에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를 권고한다”며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등 12명을 지목했다. 채용 비리 의혹·소쿠리 투표 투표지 부족 사태로 민심 폭발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며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선관위가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으며 송파구선관위가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의 과거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10년여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선거 기간 휴직자의 증가로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소쿠리 투표’ 사건 등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차례의 선거 중 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6·3 지방선거 당일 선관위 직원 179명이 휴직 상태였다. 휴직자의 71%는 육아휴직(127명), 일반 질병(30명), 가족 돌봄 및 해외 동반 휴직(8명), 유학·병역 및 노동조합 전임자(1명) 등의 사유였다. 특히 최근 4년 새 진행된 다섯번의 선거에서 두 차례 이상 휴직한 직원이 97명으로 집계됐다. 2회 휴직자는 77명, 3회 휴직자는 19명이다. 다섯번의 선거 중 4번이나 휴직한 직원도 있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대다수가 육아 휴직자인 만큼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제71조에 따르면 자녀 양육 및 임신·출산을 사유로 공무원이 휴직을 신청하면 임용권자는 휴직을 명해야 한다. 선관위 직원들의 휴직을 강제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쌓이고 쌓인 국민 분노 하지만 선관위의 항변은 국민의 분노를 꺼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선관위 자체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방패 삼아 각종 문제를 피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독립성이 생명인 기관이기에 감찰을 받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체적으로 덮고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던 것이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선관위의 채용 비리 의혹이었다. 2023년 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자녀가 ‘아빠 찬스’를 통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혜 채용 의혹이 전방위로 번지자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독립성을 근거로 자체 조사를 고집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자 선관위는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권익위가 2023년 이전 7년여 동안 선관위의 경력 채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58명의 부정 합격 의혹 등 총 353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권익위는 고의성이 의심되거나 상습적으로 부실채용을 진행한 28명을 고발하고 가족 특혜나 부정 청탁 여부 등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한 312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일각에서는 권익위와 국회 국정조사만으로는 선관위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관위의 조사 수용 방침 자체가 자신들이 그 범위를 정하는 방향으로 잡힌 점도 논란 거리였다. 결국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전반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선관위와 감사원 사이의 충돌이 시작된 지점이다. 독립성만 앞세웠다 실제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기까지 선관위의 저항은 상당했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를 일단 수용하면서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감사원에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를 감사할 권한이 있는지를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그사이 감사원은 2024년 4월 선관위 내부에 부정 채용이 만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조직 전반에 걸쳐 채용, 인사, 복무 등 관계 법규를 무시하거나 이를 용인하는 행태가 관행화된 상태였다.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자녀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빈번했고, 채용 담당자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선거철 경력 경쟁 채용을 직원 자녀들이 손쉽게 국가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들여다본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 경쟁 채용 167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된 위반 건수만 800여건에 달했다. 당시 감사원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사안은 신속한 수사 착수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감사원이 내놓은 결과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단으로 무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권한이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권한은 행정부 내부의 통제 장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바, 정부와 독립된 헌법 기관인 국회·선관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감사원이 실시한 직무감찰은 헌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해 부여받은 선관위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상 독립기관’ 내세워 헌재 판단까지 ‘난공불락’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법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선관위 직원 A씨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견책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A씨에게 경징계 이상의 처분을 요구했고, 선관위는 징계를 의결, 견책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21년 10월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징계시효 3년이 지난 2025년 3월 징계를 의결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시효는 성폭력 범죄 등이 아닌 기타 징계 사유의 경우 3년이다. 다만 감사원이 조사 개시를 통보하면 시효가 정지된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감사 자체가 위법이기에 조사 개시 통보를 시효 중단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 대해 인용한 점을 들어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판단은 당시에도 선관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선관위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이어져 ‘올림픽 공원’ 시위 사태 발생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지난달 7일 출범한 선관위 특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선관위 특검팀(특별검사 이태한)은 지난 7일 출범 한 달째를 맞아 강제수사, 포렌식 검증, 관련자 소환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비롯해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의 해외 출장 유용 의혹, 투표함 입찰 담합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도 커 특검의 본 수사 기간은 90일이며 필요한 경우 30일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장 150일 간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단 인력 충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대범죄수사청 청장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선거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검은 어떨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