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1.22 17:47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광주 5·18 묘지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 5·18 희생자들을 민주화 유공자로 예우하고 5·18 묘지를 국립묘지로 승격시킬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 자리서 김 전 대통령은 5·18의 교훈을 “인권침해에 저항한 인권정신, 맨손으로 잔혹한 총칼에 맞섰던 비폭력 정신, 공권력의 공백 속에서도 질서의식을 가지고 치안을 지켰던 시민정신, 항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평화정신”이라 규정했다. 즉 5·18은 인권, 비폭력, 시민, 평화 정신의 발로라는 의미다. 이를 염두에 두고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해보자.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서 열린 제39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서 다음과 같은 열변을 토해냈다.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가 없습니다.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고 있
조선시대 최고의 천재로 나이 다섯에 세종으로부터 출세를 보장받았던, 유자(儒者)인 동시에 불자(佛者)였던 매월당 김시습의 작품 ‘만흥(흥이 이는 대로)’ 중 마지막 구를 인용해본다. 『自繩自縛如蠶蛾(자승자박여잠와)』 자승자박(自繩自縛)은 자신이 만든 줄로 제 몸을 스스로 묶는다는, 즉 자기가 한 말과 행동에 스스로 구속돼 어려움을 겪는 일을 의미한다. 또한 여(如)는 ‘같은’ ‘처럼’을, 잠와(蠶蛾)는 ‘누에나방’을 의미한다. 아울러 동 문장은 ‘내가 나를 묶어 누에나방처럼 되었네’로 번역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필자가 하필이면 김시습의 시 전체도 아니고 마지막 한 구를 인용했을까. 바로 사자성어인 자승자박의 비유법 중 직유와 은유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서다. 이 문장에 필자가 언급하고자 하는 모든 내용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자승자박의 의미는 밝혔고 직유와 은유에 대해 살펴보자. 직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직접적으로 연결하여 표현하며 ‘같이’ ‘처럼’ 등의 연결어를 사용한다. 이에 반해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실린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해산과 관련해 정청래 전 의원이 한 방송에 출연해 언급한 내용을 인용해본다. “한국당이 워낙 막무가내다 보니 참던 국민도 이제 임계점이 넘어버린 것으로, 한국당이 전략·전술을 잘못 쓰고 있다.” 이 대목서 임계점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임계점은 물리학 용어로 저온상서 고온상으로 상변화할 때 저온상으로 존재할 수 있는 한계 온도와 압력을 의미하는데, 정 전 의원은 아마도 경계선의 의미로 임계점을 언급한 듯 보인다. 즉 한국당에 대한 국민들의 참을성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말이다. 여하튼 그의 말의 진위는 차치하고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서 열린 사회원로 초청 오찬서 언급한 내용을 간추려본다.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주요 골자는 ‘선(先) 적폐청산, 후(後) 협치’로 요약할 수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대목으로 문 대통령의 의식 세계를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의도하는 게 정치보복이 아닌 진정한 적폐 청산이라면, 적폐 청산과 협치 중 어느 사안이 우선돼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다. 아무리 양보해 바라봐도 적폐 청산은 협치 후에 가능해보
<조선왕조실록> 인조 2년(1624) 9월30일의 기록을 인용해본다. 『국가는 평소에 삼정승이 육조를 총괄하여 다스리고 육조가 소속 각사(各司)를 규검(糾檢, 위법한 일을 자세히 살피어 찾아냄)하여 치도(治道)를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날 이래로 옥상옥(屋上屋)의 폐단이 생겨 일이 발생할 때마다 국(局)을 설치하여 도감(都監, 국가의 중대사를 관장하기 위해 수시로 설립한 임시 관서)이 한없이 많아지게 되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폐단이 남아 있습니다. 외방(外方)으로 말을 하면 크던 작던 간에 모든 일을 도주(道主)에게 책임지워야 할 텐데, 지금은 여러 도감과 각 아문이 서로들 다투어 호령하는 통에 누구의 말을 따라야 될지 모르게 되었으므로 감사(監司)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콧노래나 부르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사(都事)를 엄선하여 보내면 또한 섭행(攝行, 일을 겸해서 행함)하게 할 수 있을 텐데 으레 구차하게 채워 보내니, 이것이 한갓 시끄럽게 소요만 일으키고 먼 지방에 정령(政令, 정치상 법도와 규칙)이 행해지지 않게 되는 이유입니다.』 상기 내용은 임금인 인조에게 대사헌인 정엽(鄭曄)이 아뢴 말로 옥상옥은 ‘지붕 위에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1999년 8월 중국 베이징서 현대그룹과 북한 측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면서 체결한 관광 세칙과 신변안전보장 관련 합의서 내용을 인용해본다. 관광 시 준수 사항 중 일부다. 『담배는 정해진 장소서만 피우고 꽁초를 정해진 장소에 버려야 한다. 이를 위반할 시 15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 당시 동 조항을 상세하게 살피지 못했는데, 지금 이 시점서 바라보니 북한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할 듯하다. 규제사항에 대해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더 완고하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산, 그것도 다른 산이 아닌 금강산서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즉각 총살형에 처한다가 정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총살형은커녕 오히려 흡연을 권장하는 듯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최근 강원도 고성서, 그리고 여러 산에서 발생했던 화재에 대해 주목해보자. 언론서 고성 화재는 도로변 전신주 개폐기서 발화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여타의 산에서 발생한 화재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규명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산을 벗 삼아 지내는 필자의 입장서 바라볼 때 여타의 산에서 발생한 화재 원인은 흡연으로 인한 결과로 보인다. 이 나라 지형의 특
1952년 8월에 실시된 제2대 대통령선거 당시의 일이다. 대한민국 진보 진영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조봉암이 선거를 앞두고 동 선거에 출마가 유력한,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초대 부통령을 역임했던 이시영을 방문한다. 이승만을 상대로 야권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서 조봉암은 이시영의 출마 여부를 타진한다. 그러나 이시영은 대통령 출마에 뜻이 없다며 조봉암에게 출마를 권유한다. 이를 기회로 조봉암은 야권 단일후보로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한다. 그러자 당시까지 관망세를 유지하던 민주국민당(이하 민국당)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민국당으로서는 조봉암으로 하여금 야권을 대표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국당은 한사코 출마를 고사하는 이시영을 설득하여 민국당 후보로 대통령선거에 참여토록 하고, 결국 조봉암의 야권 후보 단일화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1956년 5월에 실시된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동 선거에 출마했던 조봉암이 민주당 신익희 후보와 야권 후보 단일화를 도모한다. 민주당 역시 신익희가 야권의 단일 후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던 터였다. 하지만 후보 단일화가 되지 않은 상태서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그 일로 조봉암
조선후기의 실학자인 최한기(崔漢綺, 1803∼1877)의 <제왕학>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송 효종(宋 孝宗)이 재상을 불러 술을 하사하고 조용히 말했다. “투기(投機, 시기를 보아 큰 이익을 노리는 것)의 기회는 털끝만 한 틈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덕종은 투기의 틈을 줌으로써 일을 그르친 것이 많았다. 그러므로 짐은 매사에 당 덕종을 경계로 삼노라.”』 중국 남송시대의 2대 황제인 송 효종이 당나라 제9대 황제인 당 덕종(唐 德宗)에 대해 평한 내용이다. 당 덕종은 보위에 올라 나름 개혁적 조처로 민생회복을 도모했으나, 말년에 환관들에게 의지해 이른바 ‘환관의 시대’를 열었던 인물이다. 남송을 번영의 시대로 이끈 송 효종이 환관들의 투기를 막지 못하고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당 덕종에 대해 재상에게 이른 내용으로, 즉 재상으로 하여금 환관들이 투기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제하라는 의미였다. 이를 염두에 두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건에 대해 살펴보자. 언론에 실린 내용 요약해본다. 『김의겸 전 대변인은 지난해 7월 자신의 돈 14억원과 국민은행
최근 <일요시사>서 ‘지하철 노약자석 착석 논란’과 관련해 독자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와 관련 필자는 술을 즐겨 마시는 입장서 음주운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주로 대중교통, 특히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면서 느낀 소회가 있어 피력해보고자 한다. 그런데 사실 이보다 먼저 선결돼야 할 문제가 있다. 노약자석 착석 논란에 앞서 과연 노약자석이 존재할 이유가 있느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다. 여하튼 그를 포함해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1990년대 초반에 일어난 일이다. 철도청은 의정부서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전철 1호선에 대해 기발한 발상을 발표한다.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에 여성들이 당하는 추행을 방지하겠다며 전철 맨 앞 칸과 뒤 칸을 여성전용 칸으로 설치하겠다고 한 것이다. 당시 철도청서 여성전용 칸 설치를 발표했을 때 ‘역시 철밥통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일어났다. 문제가 발생하면 근본적인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일관하는 수준 미달의 저급한 발상 말이다. 당시 그 문제의 본질은 추행을 일삼는 일부 남자들이었다. 당연히 그들에게
필자가 일전에 <일요시사>에 게재했던 칼럼 ‘문재인정권의 지향점은 사회주의인가’의 도입부를 인용해본다. 『문재인 대통령, 아니 문재인정권이 지금까지 보인 행태를 자세하게 관찰해보면 무능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건지, 혹은 치밀한 계산에 의한 행동인지 쉽사리 판단하기 힘들다. 그들이 내놓는, 그리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정책들이 대한민국의 현실과 아울러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 상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행태가 일관되게 동일한 범주서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최근 청와대가 개각명단을 발표하며 출생지를 제외하고 출신고를 발표한 건에 대해 살펴보자. 이와 관련 청와대는 “지연 중심 문화를 탈피해야 한다는 데 사회의 공감대가 있다”며 “출신지라는 게 객관적이지 않아서 그곳서 태어나 오랫동안 성장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출생만 하고 성장은 다른 곳에서 해온 분들도 있다. 불필요한 논란을 끌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고등학교 중심으로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도대체 문재인정권의 행태는 필자의 언급을 뒷받침해주기라도 하듯 황당하다. 무슨 말인지 쉽사리 이해되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임시공휴일에 대해 살펴보자. 임시공휴일은 대통령령 제24828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정부가 수시로 지정하는 공휴일로, 국무회의의 심의 및 대통령 재가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확정된다. 이에 따라 건국 이후 최초로 4·19가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적이 있었다. 5·16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4월19일을 ‘4·19혁명 기념일’로 지칭하여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박정희정권은 왜 4·19를 혁명으로, 또 임시공휴일로 지정했을까. 이는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권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4·19를 혁명으로 지칭하며 임시공휴일로 지정했음은 불문가지다.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임시정부 수립일의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이 논의는 청와대서 시작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서 임시정부 수립의 역사적 의미를 국민들과 함께하기 위한 취지로 4월11일 임시공휴일 지정을 제안했다”며 &l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광화문광장서 열린 3·1절 100주년 행사에서 기념사를 통해 “3·1독립운동의 정신이 민주주의의 위기마다 되살아났다”며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그리고 촛불혁명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힘과 방법으로 우리 모두의 민주공화국을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이 지난해 3월 UAE 현지에서 전자 결재한 헌법 개정안 전문 중 도입부를 살펴보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상기의 두 건의 내용을 살피면 지난 시절 발생했던 사건에 대해 동일한 용어를 사용했다. 3·1과 5·18은 운동, 4·19는 혁명, 그리고 부마와 6·10은 항쟁으로 말이다. 이 대목서 운동, 혁명, 그리고 항쟁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
문재인 대통령, 아니 문재인정권이 지금까지 보인 행태를 자세하게 관찰해보면 무능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건지, 혹은 치밀한 계산에 따라 행동하는 건지 쉽사리 판단하기 힘들다. 그들이 내놓는, 그리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정책들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 상식과 대한민국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행태가 일관되게 동일한 범주서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서 이야기를 풀어보자. 문 대통령이 최근 포용국가 사회정책 대국민 보고 행사에서 “우리 정부의 목표는 혁신적 포용국가”라며 “모든 국민이 전 생애에 걸쳐 기본생활을 영위하는 나라가 포용국가 대한민국의 청사진”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여러 언급이 있었는데 두 가지만 인용해보자. “오늘 발표된 계획이 차질 없이 추진되면 2022년이면 유아부터 어르신까지, 노동자부터 자영업과 소상공인까지, 장애가 있어도 불편하지 않게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남녀노소 없이 기본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와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 누구나 돈 걱정 없이 원하는 만큼 공부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필자가 정치판을 접고 소설가로 변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0년대 초반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딸아이가 책을 읽으면서 자꾸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아이가 읽고 있는 글 내용을 살펴보았다. 상당히 눈에 익은 내용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바로 이상(본명 김해경)의 작품 <날개>였다. 그를 살피자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책을 달라해 표지를 살펴봤다. 책 표지 하단에 ‘초등학생이 읽어야 할 권장도서’라는, 그야말로 기막히는 글귀가 시선에 들어왔다. 이상의 <날개>는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무대 배경은 과거 서울역 주변 양동에 존재했던 창녀촌이다. 말인즉 미성년자들에게는 금서라는 이야기다. 여하튼 그를 살피고 즉각 그 책을 출간한 단체에 전화를 걸어 그 작품이 어떻게 초등학생들이 읽어야 할 권장도서인지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상대로부터 시원한 답변은 듣지 못하고 시정 조치하겠다는 말을 듣고 통화를 마쳤다. 결국 그 일은 이상의 작품을 통해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자 했던 사람들의 야욕이 빚어낸 결과물이라 판단 내리고, 아울러 이상이 정말 자신의 작품이
이달 27일과 28일에 걸쳐 베트남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는 일로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호들갑을 떨고 있다. 물론 자당의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일과 중첩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던 8명의 인사들이 경선 연기를 주장했다.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급기야 5명이 사퇴했다. 그 사유가 거창하다. 북미정상회담으로 인해 전당대회의 흥행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 한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6·13지방선거 하루 전 싱가포르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것과 똑같은 상황”이라며 “이는 한국당 전당대회 효과를 감살(감쇄)하려는 정부·여당의 술책”이라고 주장했고, 결국 후보까지 사퇴했다. 역시 홍준표답다. 그렇다고 홍 전 대표의 주장을 마냥 묵살할 수만은 없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에게 따라 붙은 천운(天運) 때문이다. 홍 전 대표가 지적한 선거 기간을 앞둔 시점에 북미정상회담도 그러하지만, 문정권의 고비마다 연계해 발생된 일들 때문에 그렇다. 각설하고 한국당 일부 인사들의 행태가 참으로 황당하다. 먼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나자 당나라의 침공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부여 풍의 관할에 있던 성들을 함락시키며 주류성으로 돌진하는 한편 본국에 지원군을 요청하여 다방면으로 거세게 압박하기 시작했다. “전하!” 늦은 밤이었다. 복신이 연인인 수경과 함께 잠자리에 들려 할 즈음에 수경이 복신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은근한 미소를 보였다. 왕위의 꿈 “전하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이제 장군께서 백제의 임금이 되셔야지요.&r
간혹 지인들이 필자에게 5·16이 혁명인지 쿠테타인지 묻고는 한다. 그러면 필자는 곧바로 답한다. “우리말로는 혁명이고 외래어로는 쿠테타”라고. 그러면 상대방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이어서 이렇게 얘기한다. “혁명이든 쿠테타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로 인해 나라와 국민에게 어떠한 변화가 찾아왔느냐가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시간을 조선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조선조 역사를 살피면 문재인정권의 시각에 비춰볼 때 두 건의 혁명과 두 건의 쿠테타가 있었다. 두 건의 혁명은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과 광해군을 권좌서 밀어낸 인조반정이다. 또 문정권 시각으로 바라볼 때 두 건의 쿠테타는 고려 왕조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역성 혁명과 자신의 조카인 단종을 보위서 밀어내고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던 수양대군, 세조의 계유정난이다. 그런데 이 두 종류의 사건, 즉 혁명과 쿠테타의 결과는 흥미롭게도 상이하게 나타난다. 우리 역사에서 비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아 쿠테타의 주역이 된 태조 이성계와 수양대군 세조에 대해 혹평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 그들은 쿠테타를 통해 권력을 잡음으로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의 질의응답 시간에 있었던 한 기자의 발언에 대해 찬사와 비난이 엇갈리고 있는데, 그 내용을 먼저 인용해본다. “신년사에서 성장을 지속시키겠다, 개천서 용 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여론이 냉랭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현실경제는 얼어붙어 있다. 국민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하다. 대통령이 계속해서 이와 관련해서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데도 현 정책에 대해 기조를 바꾸지 않고 변화를 갖지 않으려는 이유에 대해 알고 싶다. 그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근거는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다.” 이에 대한 문 대통령의 답변 내용이다.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왜 필요한지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불평등 구조를 바꾸지 않고선 지속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하다. 그에 대해 오늘 신년사를 통해 30분 내내 말씀드렸고 필요한 보완들을 얼마든지 해야 하겠지만, 정책기조는 유지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이미 충분히 드렸기 때문에 새로운 답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07년에 실시된 17대 대선 당시의 일이다. 당시 경제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허경영은 보통의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의 파격적인 공약들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실례를 들어보자. 처녀와 총각이 결혼하면 결혼수당으로 남녀 각 5000만원씩 지급,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월 70만원 지급, 출산수당으로 출산 때마다 3000만원씩 지급, UN 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2007년 당시 상황에 비춰볼 때 그가 내놓은 공약은 황당하게 비춰졌다. 그런데 현 시점서 오로지 생색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문재인정권의 실상을 감안하면 ‘UN 본부 판문점 이전’ 부분만 제외하고 전혀 설득력이 없는 공약도 아니다. 각설하고 최근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이 “대통령 집무실을 현 단계서 광화문 청사로 이전할 경우 청와대 영빈관, 본관, 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 기능 대체부지를 광화문 인근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1호를 사실상 백지화하겠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17년 1월 “대통령 집무 청사를
우리 헌법 제19조를 살피면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돼있다. 흘낏 살피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참으로 애매하다. 양심 혹은 양심에 따른 행동 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이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표준 국어대사전은 ‘양심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 정의내리고 있다. 역시 추상명사인 양심처럼 상당히 추상적이다. 그렇다면 양심은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을 지칭할까. 이를 살피기 위해 두 건을 실례로 들어보자. 먼저 라이프성경사전서 규정하고 있는 양심의 정의를 인용해본다. 『사물의 선악(善惡)을 구별하고 판단하는 마음의 기능이나 도덕적인 정서, 또는 하나님의 뜻을 통찰하고 죄를 책망하며 선을 추구하려는 선한 능력을 말한다. 헬라어 ‘쉬네이데시스’는 ‘쉰(함께)’과 ‘에이도(알다)’의 합성어로서 ‘같은 생각’ ‘공통의 깨달음’, 즉 민족·언어·신분·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조선왕조실록 태종 15년(1415) 7월10일 기록이다. 『수령이 흉년을 만나 백성을 굶주려 죽게 하는 자는 파출할 것을 이조에서 상소하다. “목민(牧民)의 직임은 구황(救荒)하는 것이 급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대소 수령이 매양 흉년을 만나면 여러 방법으로 백성들을 진휼해 굶주려 죽는 일이 없게 한 자는 감사(監司)가 포장(褒奬)해 상등으로 삼아 그 실적을 갖춰 계문해 서용하고, 임기가 차지 않은 자는 한 자급(資級)을 더하며, 구황하지 못해 경내 인민이 하나라도 굶주려 죽는 일이 있게 하면 비록 다른 일에 쓸 만한 것이 있더라도 곧 파출(罷黜)을 행하도록 하는 것으로써 길이 항식(恒式)을 삼으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상기 글에서 ‘목민의 직임은 구황하는 것’이라는 대목을 살펴보자. 목민은 임금이나 고을의 수령이 백성을 다스림을 뜻하고, 구황은 흉년이 들어 기근이 심할 때 나라서 진제미(賑濟米, 진휼하는 데 쓰는 쌀)를 내어 구제하던 일을 의미한다.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국가와 국민 간의 관계다. 국민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국가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국민의 안녕을 책임져야 한다. 조선 역사를 살피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