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실학자인 최한기(崔漢綺, 1803∼1877)의 <제왕학>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송 효종(宋 孝宗)이 재상을 불러 술을 하사하고 조용히 말했다. “투기(投機, 시기를 보아 큰 이익을 노리는 것)의 기회는 털끝만 한 틈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덕종은 투기의 틈을 줌으로써 일을 그르친 것이 많았다. 그러므로 짐은 매사에 당 덕종을 경계로 삼노라.”』
중국 남송시대의 2대 황제인 송 효종이 당나라 제9대 황제인 당 덕종(唐 德宗)에 대해 평한 내용이다. 당 덕종은 보위에 올라 나름 개혁적 조처로 민생회복을 도모했으나, 말년에 환관들에게 의지해 이른바 ‘환관의 시대’를 열었던 인물이다.
남송을 번영의 시대로 이끈 송 효종이 환관들의 투기를 막지 못하고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당 덕종에 대해 재상에게 이른 내용으로, 즉 재상으로 하여금 환관들이 투기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제하라는 의미였다.
이를 염두에 두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건에 대해 살펴보자. 언론에 실린 내용 요약해본다.
『김의겸 전 대변인은 지난해 7월 자신의 돈 14억원과 국민은행서 대출받은 10억2000만원, 친척에게서 빌린 1억원 등을 동원해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25억7000만원짜리 2층 복합 건물을 매입했다. 이 건물은 재개발되면 새 아파트 한두 채와 상가를 배정받을 수 있어 시세가 35억원을 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야당이나 도하 여러 언론은 김 전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부분에 대해 강도 높게 질타하고 있다. 물론 부동산 투기 문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살펴봐야 할 문제가 있다.
먼저 건물 매입 과정에 김 전 대변인의 돈으로 밝혀진 14억원에 대해서다. 지난해 5월 김 전 대변인이 자신과 가족 명의로 신고한 총 재산은 12억1000만원이기 때문이다. 이를 액면 그대로 살피면 김 전 대변인은 청와대 근무 2개월 만에 근 2억원이란 재산을 증식한 셈이다.
이뿐만 아니다. 건물 시세가 35억원을 호가한다는 부분을 살피면 김 전 대변인은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 근무한 8개월여 기간 동안 근 10억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린 꼴이 된다. 도대체 청와대란 곳이 어떤 기관이기에 이게 가능할까.
각설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사직서를 제출한 김 전 대변인을 위해 오찬을 베풀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또 오찬을 마치고 산책하는 과정서 문 대통령이 김 전 대변인에게 “앞으로 어디서 살 것인가”라고 묻고 이에 김 전 대변인이 “잘 모르겠다”고 답한 걸로 알려졌다.
동 상황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언론에 실렸는지는 모르지만 이 사실만으로도 문재인정권이 얼마나 허술한지 짐작된다. 정상적인 사임이 아닌 부동산 투기로 물의를 일으켜 퇴출 형태로 물러나는 사람, 비록 자신을 수족처럼 따르던 환관이라도 문 대통령의 처사는 너무 다정다감해 보인다.
문 대통령이 베푼 관용은 김 전 대변인의 재산 증식과 부동산 투기보다 더욱 파격적으로 비쳐진다.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명분하에 부동산 수요억제책을 강행해온 문재인정권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앞서 송 효종이 언급했듯 투기는 발본색원해야 한다. 그런데 투기를 근절하겠다는 문 대통령이 오히려 투기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