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아니 문재인정권이 지금까지 보인 행태를 자세하게 관찰해보면 무능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건지, 혹은 치밀한 계산에 따라 행동하는 건지 쉽사리 판단하기 힘들다.
그들이 내놓는, 그리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정책들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 상식과 대한민국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행태가 일관되게 동일한 범주서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서 이야기를 풀어보자.
문 대통령이 최근 포용국가 사회정책 대국민 보고 행사에서 “우리 정부의 목표는 혁신적 포용국가”라며 “모든 국민이 전 생애에 걸쳐 기본생활을 영위하는 나라가 포용국가 대한민국의 청사진”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여러 언급이 있었는데 두 가지만 인용해보자.
“오늘 발표된 계획이 차질 없이 추진되면 2022년이면 유아부터 어르신까지, 노동자부터 자영업과 소상공인까지, 장애가 있어도 불편하지 않게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남녀노소 없이 기본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다”와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 누구나 돈 걱정 없이 원하는 만큼 공부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꿈을 위해 달려가고, 노후에는 안락한 삶을 누릴 토대서 이뤄지는 도전·혁신이 경제를 혁신성장으로 이끌 것”이라는 대목이다.
전체 내용도 그렇지만 상기 내용을 접하자마자 본능적으로 강한 의심이 일어났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는 2022년이 되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사회주의로 전환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울러 그가 강조한 포용국가가 결국 사회주의가 아닌가 하는 의심 말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상생을 중시 여기는 필자도 지금 이 시점의 우리 사회에는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또한 그로 인해 빈부격차가 격심한 우리 사회는 오히려 사회주의가 더 합당할 수도 있다.
또 문 대통령의 말대로 이뤄진다면 사실 사회적 약자인 필자의 입장서도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다. 대놓고 환영할 수는 없지만 은근히 지지를 보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이 그를 감당할 수 있느냐다.
이를 위해 조선중기 북인의 영수로 영의정을 역임했던 이산해(李山海, 1539∼1609)의 <아계유고(鵝溪遺稿)>에 실려 있는, 임금인 선조에게 올린 글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만약 임금이 사람을 등용하는 도리가 포용(包容)하는 데에만 있다고 하신다면, 그것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자가 있는 자를 포용하시고 관괴(띠의 일종. 관과 괴는 둘 다 사초과에 속하는 풀로 관은 도롱이와 삿갓을, 괴는 돗자리를 짜는 원료)와 같이 미천한 인물도 버리지 않아서 어질거나 어리석거나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모두가 각각 자기의 기량을 다 펼칠 수 있는 것은 성세(盛世)의 일입니다. 지금은 국가의 실정이 어렵고 조정이 초창기여서 관리의 완비를 요구할 수가 없으므로 오로지 인재를 얻는 것을 급선무로 삼고 있는 마당에 어찌 보잘것없는 사람을 길러서 현인의 진출로를 혼잡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산해는 포용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했다. 바로 ‘성세의 일’이라고 말이다. 성세는 난세의 반대말로 어진 군주가 다스리는 태평한 시대를 의미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실정이 성세일까.
이에 대해 십중팔구는 고개를 가로저을 듯하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난세로 간주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용에만 혈안이 돼있다면 결국 왜의 침략으로 수도인 한양을 버리고 도망갔던 선조 꼴이 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