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정치판을 접고 소설가로 변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0년대 초반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딸아이가 책을 읽으면서 자꾸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아이가 읽고 있는 글 내용을 살펴보았다. 상당히 눈에 익은 내용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바로 이상(본명 김해경)의 작품 <날개>였다. 그를 살피자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책을 달라해 표지를 살펴봤다. 책 표지 하단에 ‘초등학생이 읽어야 할 권장도서’라는, 그야말로 기막히는 글귀가 시선에 들어왔다.
이상의 <날개>는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무대 배경은 과거 서울역 주변 양동에 존재했던 창녀촌이다. 말인즉 미성년자들에게는 금서라는 이야기다.
여하튼 그를 살피고 즉각 그 책을 출간한 단체에 전화를 걸어 그 작품이 어떻게 초등학생들이 읽어야 할 권장도서인지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상대로부터 시원한 답변은 듣지 못하고 시정 조치하겠다는 말을 듣고 통화를 마쳤다.
결국 그 일은 이상의 작품을 통해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자 했던 사람들의 야욕이 빚어낸 결과물이라 판단 내리고, 아울러 이상이 정말 자신의 작품이 그런 식으로 활용되는 걸 반길까 싶은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던 적이 있다.
실례를 하나 더 들어보자. 필자가 소설가로 변신할 즈음의 일이다. 신춘문예 당선작을 살피던 중 역시 기막힌 글을 발견하게 된다. 대한민국 유력 일간지 시 부문 당선작인데 세상 짧게 살지 않은, 배울 만큼 배운 필자가 살펴봐도 아리송하기 그지없었다.
인생 경험도 그다지 많지 않은 당선자의 작품치고는 너무나 난해했다. 심지어 그 작품을 쓴 당사자가 자신이 무엇을 썼는지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까지 일어났었다.
결국 전혀 내용을 알 수 없는 그 작품이 어떻게 당당하게 당선됐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한 심사위원장의 작품 중에서 그 작품과 유사한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주요 언론사 문화부장으로 재직하는 친구에게 그 이유를 묻자 웃으면서 “심사위원장이 자신의 작품을 넘겨주어 당선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당연히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냐”고 되묻자 그런 일이 종종 있단다.
앞서 필자가 겪었던 두 가지 실례를 들었지만 현재 이 나라 문학계는 필자가 감히 아사리판으로 지칭하는 정치판이 무색할 정도다. 이는 필자가 독고다이를 고집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문학이 이렇게 천대받는 걸까. 그 가장 큰 이유는 문학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여기고 싶다. 문학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의 한 영역으로 무엇보다 사상, 즉 철학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 문학서 사상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오로지 탁월한 언어사용 능력이 판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이유로 문학의 본질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패거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최영미 시인과 고은 간 법원 공판과 관련해 ‘고은 시인 명예회복 대책위원회’가 ‘고은 문학’을 들먹였다. 동 사건에 제 삼자의 개입도 난해하지만, 그 용어 역시 기막히다. 다시 그들에게 한마디만 하자. 문학은 한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며, 또한 패거리지어 하는 학문도 아니라고 말이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