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사람이 미래다.’ 두산그룹의 대표 기업광고 문구다. 그러나 광고는 광고일 뿐 현실과는 뚜렷한 괴리를 보였다.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 정황이 드러났다. 20대 신입사원도 명퇴압박에 시달리는 이곳은 두산그룹의 핵심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다.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두산인프라코어에 다니는 20대 직장인이 명예퇴직을 당했다는 글이 게재됐다. 일반적으로 회사가 경영난을 겪을 경우 차부장급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신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단행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신입도 대상
커뮤니티의 글이 사실로 밝혀지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7일 희망퇴직 공고문을 내고 18일까지 국내 전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신청서를 접수했다.
회사 측은 글로벌 경기침체, 건설기계 시장 축소 등의 여파로 매출 감소와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사업 정상화를 위해 희망퇴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중국 경기 침체 등으로 올해 3분기 누적 2465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2년 전 2013년 당기순손실 1009억원에 비해 적자 규모가 2배 넘게 확대됐다.
두산인프라코어의 구조조정 사실이 드러나자 경영난의 책임을 과도하게 사원에게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희망퇴직 대상자 가운데 23세의 여자 신입사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은 인원 감축 대상자 3000명 가운데 40% 선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40%까지 인원이 감축되면 부서 자체가 사라지는 곳도 있을 전망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이번 구조조정으로 올해에만 네 차례 인원을 감축했다. 지난 2월과 9월, 11월에 이어 네 번째 구조조정이다. 2월에는 180명의 직원이 짐을 쌌고, 9월에는 200명, 11월에는 450명이 회사를 떠났다.
회사 내부 분위기는 침통하다. 이미 과장·대리급 대부분이 퇴직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산인프라코어의 한 직원은 “이번 인원 감축 대상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얼마 안 있어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 직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며 “하루라도 빨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까지 나서서 급한 불을 끄는 모양새다. 박 회장은 지난 16일 서울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새벽에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희망퇴직에 신입사원까지 포함하는 것은 좀 아니다”라며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 보호조치를 하라고 오늘 새벽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희망퇴직 제외 대상 신입사원 연차에 대해선 “1∼2년차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선을 긋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말을 아끼겠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또 “건설기계 세계 1위 회사 캐타필라 역시 3만 명 이상 감원을 하는 등 건설·기계업이 예상치 못하게 굉장한 불황인 게 사실이다”라며 “그룹 차원에서 인프라코어 인력을 최대한 흡수하려고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희망퇴직이 필요하다고 보고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얼마나 어렵길래…20대 직원 명퇴압박
문제 확산되자 부랴부랴 ‘없던 일로’
회사의 오너까지 나서서 비판적인 여론을 잠재우려 했지만 논란은 거세질 전망이다. 구조조정의 방식이 비상식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28세에 희망퇴직을 권고 받은 A씨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회사가 협박조로 사람들을 겁박해서 못 견디고 나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A씨에 따르면 회사 측은 희망퇴직을 거부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노무교육’을 실시했다. 노무교육에 참여한 참가자는 휴대전화를 반납해야 했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심지어 화장실을 자주가면 경고장을 발부한다라는 사측의 겁박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노무교육이 퇴사압박프로그램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현재 두산인프라코어는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 26명을 대기발령시키고 A사설 취업컨설팅업체를 고용해 ‘변화관리역량향상교육’이라는 명칭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3개월간 진행된 이 교육에는 9월 2차 희망퇴직 대상자였던 사무직 직원 26명이 참여했다. 인사팀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해당 역량향상 교육을 기존 압박ㆍ스트레스 방식의 효과성 미흡을 보완, 전반기는 심리적 압박을 (하는) 퇴직유도 프로그램 실시, 후반기에는 회유는 및 전직지원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대상자 퇴직 유도라고 설명했다.
교육을 위해 두산인프라코어가 해당 업체에 1인당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300만 원이다. 26명의 퇴사거부직원에게 총 7800만 원의 비용을 들여 ‘퇴사압박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경우 불법적인 노동자 찍퇴 논란으로 확대될 수 있다.
갖가지 의혹이 제기되면서 두산그룹 전체의 이미지 실추가 불가피한 모습이다. 두산그룹의 캐치프레이즈 ‘사람이 미래다’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사람이 미래다’를 비꼰 ‘퇴직이 미래다’, ‘직원은 사람이 아니다’ 등의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공든탑 와르르
퇴직 대상자에 오른 한 직원은 “회사가 경영난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원 감축 과정에서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며 “사실상 강제 퇴직 조치로 회사에 대한 반감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