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플레이’ 극우 내분의 민낯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3.25 07:29:42
  • 호수 1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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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없으니 점점 산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극우 셀럽들은 미래통합당 시절부터 국민의힘을 파고들어 윤석열 대통령에게 영향을 주고, 국민의힘보다 더 강하게 정치적 담론을 주도하고 있다. 몸집이 커지자 내분도 발생하고 있다. 이들의 내분은 그 거대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표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지지하는 극우 성향 누리꾼들은 디씨인사이드 미국 정치 마이너 갤러리(이하 미정갤)에 모여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미정갤에선 윤 대통령의 변호인단 중 1명인 석동현 변호사에 대한 비방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안으로
삿대질

석 변호사는 지난해 총선서 국민의힘의 공천을 받지 못하자, 전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출마했을 정도로 전 목사와 돈독한 사이였다. 비방의 요지는 “자기 정치만 하고,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비방은 석 변호사가 지난달 19일 “윤 대통령이 헌재 선고에 당연히 승복할 것”이란 발언을 한 후 더욱 심해진 것으로 확인된다. 전 목사의 지지자들은 석 변호사가 창설한 국민변호인단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을 이용해 이권을 챙기는 주식회사”라고 비판했다.

한 종편 매체가 이 상황을 보도하자, 석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을 앞두고, 보수우파 시민들 결집으로 탄핵 공작이 무산될 기미가 확연해지자 좌파들은 초조한지 우파 진영 내부 균열을 시도하는 것 같다”며 “저와 전 목사 사이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전 목사는 석 변호사 외 인물들과 내부 갈등 사례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부정선거론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윤 대통령을 두둔하는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도 최근 전 목사와 갈등을 빚었다.

갈등의 시작은 전 목사가 지난달 1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로 진행한 생방송서 전씨를 비난한 것이었다. 당시 전 목사는 “전씨는 노무현을 존경하고,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한다”며 “역사를 도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지난달 13일 ‘뉴스1 TV’와의 인터뷰서 “전 목사가 ‘광화문에 와 달라’고 두 번이나 전화했다”며 “전 목사의 요청엔 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씨는 “제가 광화문 집회에 가는 순간, 반대 세력이 저와 전 목사를 같이 엮을 것이고, 그러면 진영 전체가 약화할 것”이라며 “더 크게 확장하기 위해 각자의 역할이 나뉘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목사가 전씨를 비난하는 핵심 사유는 그가 손현보 목사가 주도하는 여의도 집회와 석 변호사가 주도하는 국민변호인단서 활동하는 것이었다. 전 목사는 전씨를 비난한 후 “삼일절에 광화문에 나오면 감사드린다”는 말을 덧붙이며 ‘속내’를 드러냈다.

전 목사는 전씨가 불과 몇 달 만에 쌓은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공휴일 대규모 집회를 통해 세를 과시해야 한다”는 ‘대의’ 앞에선 잠시 뭉칠 필요성을 느낀 것인지, 전 목사와 전씨는 물론 여의도 세이브코리아 집회를 주도하는 손 목사까지 뭉쳐 지난달 26일 국회 소통관서 대규모 집회 참여를 약속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일엔 서울 종로서 6만여명의 인파가 시위에 참여했고, 여의도 집회에도 5만여명이 참여했다.


손현보 이어 전한길과
갈등하는 전광훈 목사

그런데 전씨는 집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 목사를 다시 비난했다. 전씨는 지난 5일 유튜브 채널 ‘배승희 TV’에 출연해 “전 목사는 광주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지만, 전한길은 그렇지 않다”며 “전 목사는 내가 ‘5·18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하니까 전한길을 막 씹어버렸지만, 나는 되받아 씹거나 욕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진짜 보수는 전한길에게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가라지는 뭐 하나 잡아서 전한길을 그때부터 욕하기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전씨가 인용한 ‘가라지’는 “알곡은 모아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하고, 가라지는 거둬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 곧 불 심판에 들어가게 한다”는 신약성서 마태복음 13장 구절서 인용한 표현이다.

그러자 전 목사는 유튜브 채널 ‘홍철기TV’서 전씨의 발언을 반박했다. 전 목사는 “우리나라 역사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건국사를 모르면 헛방”이라며, “얘(전씨)는 공무원 문제 풀이, 4개 중 하나 찍는 것 하던 강사여서 역사를 모른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허영심이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자식이 무슨 정치하려고 하냐? 정신 나갔다”고 평가절하했다.

전 목사가 전씨에 대해 강경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 두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긍정 ▲전 목사의 갈등 상대방 두둔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핵심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긍정이었다. 극우 성향 집회서 자주 거론되는 담론 중 하나는 “1980년 5월 광주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음모론이다.

그래서 극우 집회서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 중 하나가 ‘5·18 유공자 명단 공개’였다. 전 목사의 관점서 보면, 노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5·18을 긍정하는 우파 논객은 돌연변이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전씨가 주로 참석하는 집회는 손 목사의 여의도 집회였다. 전 목사와 전씨가 화합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낮았다.

전 목사와 손 목사가 갈등한 계기는 전 목사·전씨의 갈등 사례와는 다르다. 이들은 원래 각별한 사이였다가 지난해 10월 이후 사이가 틀어져 극언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전 목사가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는 과정서 연행되거나 교단의 제명 시도가 있었을 때, 손 목사는 전 목사를 적극적으로 두둔했다.

그러다가 손 목사가 지난해 10월27일 차별금지법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을 때, 전 목사가 참석 요청을 거절하면서 돈독했던 친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갈라지는
유튜버들

전 목사는 집회 개최 전 자신의 유튜브 방송서 “손 목사는 광화문에 100만명이 모이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 집회는 1000번 해봤자 헛방인 집회”라고 비판했다.

이어 “거대 야당이 김건희 특검법과 명태균 게이트로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강성 교단의 숙원인 차별금지법 반대보다 부정선거론 확산과 윤 대통령 지키기를 우선으로 내세운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었다.

전 목사는 역으로 손 목사에게 자신의 집회에 참석할 것을 요구했고, 전 목사와 손 목사는 서로의 집회에 참석하기로 합의한다. 하지만 전 목사는 합의를 깬 후 독자적인 집회를 개최했다. 이어 손 목사 주최 집회를 일컬어 “사탄의 집회” “성령이 떠난 집회”라며 맹비난했다.


이후 손 목사는 전 목사에게 욕설을 퍼붓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이들의 관계는 파탄 났다. 각각 광화문과 여의도서 따로 집회가 진행되는 상황이 이어지자, 서로에 대한 극언도 넘쳐났다. 전 목사는 이 과정서 진짜 속내로 해석될 수 있는 일부 현실적인 문제를 언급했다.

전 목사는 지난 1월17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서 “손 목사 뒤엔 박한길 애터미 회장이 자금줄 역할을 한다”며 “박 회장은 교회를 중심으로 다단계 장사를 해서 돈이 많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 회장이 지난해 10월 예배에도 100억원을 기부했다고 한다”며 “한국교회 전체를 다단계 아래에 줄을 세우려고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진짜 애국심 때문에 기부한 거라면, 하나로 뭉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손 목사를 비판했다.

전씨는 이런 상황서 혜성처럼 등장해 손 목사의 강력한 우군이 됐다. 전 목사를 두둔하는 신혜식 ‘신의한수’ 대표는 지난 1월26일 유튜브 방송서 “서울서부지법 사태로 인해 전 목사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손 목사가 전씨를 영입하는 등 세를 확장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전 목사는 “집회서 영리사업을 한다”는 의혹을 이전부터 받고 있었다. 전 목사의 집회에선 노인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각종 영리사업 관련 서명을 받는다. 주최 측은 참석자들에게 “이 서명에 1000만명이 동참하면 탄핵이 무산된다”면서 ▲1000만 조직을 위한 자유마을 ▲퍼스트모바일 ▲<자유일보> ▲선교카드 ▲광화문온 ▲너알아TV ▲<FNL뉴스>에 한꺼번에 가입하는 서명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겉과 속
다르다

이 중 퍼스트모바일은 사랑제일교회와 관련 있는 알뜰폰 통신업체로써, 전 목사 스스로 지난해 4월 자유통일당 유튜브 채널서 “내가 70억원을 주고 만든 회사인데, 통신사를 옮기면 요금을 절반만 내게 해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알아TV’에선 신도들에게 통신사 이동을 요구하면서 “참여하지 않으면 생명책서 이름을 지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자유일보>는 전 목사의 딸이 발행인으로 등록됐다. 광화문온은 건강식품 등을 판매하고 있고, 홍보 동영상엔 ‘전광훈 목사 강추 상품’이란 문구가 언급된다.

물론, 이 같은 영리사업은 전 목사만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은 지난달 16일 유튜브 분석 사이트 ‘플레이보드’를 통해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 10곳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과 1월 두 달 동안 이들이 슈퍼챗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6억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곳은 두 달 동안 월 1억원이 넘는 수입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은 “7개 채널 모두 슈퍼챗 수입과 함께 별도의 계좌로 후원금 명목의 수익을 내고 있었다”며 “특히 5개 채널은 개인 명의의 계좌서 별도의 후원금을 모금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각종 수입에 대한 세금 신고 및 과세가 정당하게 이뤄지는지 국세청의 신속하고 강력한 점검이 필요하다”며 “필요한 경우 이른 시일 내 특별세무조사가 실시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 사이의 내부 분열이 외부에 노출될 때도 있다. 지난 1월27일엔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가 활동 중지를 선언했다. 신 대표와 배 대표에 대해선 “윤 대통령 체포·구속을 막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만 거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집회의 성격에 대한 이견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 대표는 활동 중지 선언을 하면서 “집회에 2030세대가 나오면, 기존 광화문의 6070 평화 집회와는 다른 성격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틀딱(노인 비하 표현) 프레임을 깨기 위해 예쁘고 잘생긴 2030세대 친구들만 집회 연단에 올렸다”며 “정말 오랫동안 준비했던 인원들이고, 댄스팀도 우파 집회에 서기 힘들어 해서 섭외할 때 돈을 두 배씩 줬다”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영향력이 국민의힘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전신 미래통합당 시절부터 지적되던 문제였다. 지난 2020년 총선 직후 미래통합당서 불거지기 시작했던 부정선거 음모론의 진원지도 극우 유튜버들이었다.

탄핵 결과도 안 나왔는데
자금줄 문제로 상호 비난

미래통합당서 선대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조성은씨는 지난 2020년 4월 공개된 <신동아> 인터뷰서 “미래통합당은 언론 대신 보수 유튜브 채널을 정론지로 생각하고 있었다”며 “보수 유튜버들의 주장을 민의나 대중의 반응으로 착각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국민의힘 대표 재임 당시 “극우 유튜버들과 모조리 결별할 것”이라고 선언했던 바 있다. 이 의원은 지난달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극우 유튜버들이 주장하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당내에 퍼진 이유에 대해 “총선 패배 이후 황교안 전 대표를 중심으로 책임론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나왔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를 애청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이 의원이 대표직서 물러나자 상황은 다시 달라졌다. 극우 유튜버 중 1명의 가족이 대통령실 7급 공무원으로 채용됐을 정도로 극우 유튜버는 국민의힘과 정권 내부서 영향력을 키웠다. 전 목사가 장외집회 외에 몰두하는 영역도 유튜브 활동이었다.

이젠 “탄핵 심판 선고 승복 여부는 국민의힘이 아닌 전 목사와 전씨의 승복 선언으로 좌우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보수 성향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는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보다 전씨와 전 목사의 영향력이 더 강하다”며 “권 원내대표의 헌재 결정 승복 선언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 대통령·전 목사·전씨가 승복 선언을 해야 강성 보수층도 따른다”고 강조했다.

장 소장은 지난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서도 오세훈 서울시장이 탄핵 찬성 뜻을 번복한 것과 관련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들이 전씨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국민의힘과 극우 유튜버는 구조적으로 한 몸이나 다름없게 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정부의 정치적 몰락 과정에선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 등 일부 극우 유튜버들의 극단적 친일 성향으로부터 영향받은 것으로 보이는 정치적 움직임이 다수 포착됐다.

중도층의 민심을 잃어 제22대 총선서 크게 패배했지만, 윤 대통령은 오히려 그들의 세상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이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극우 유튜버들의 평소 주장이 가득 담긴 담화문을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장 소장의 지적대로 국민의힘 대선주자들도 극우 성향 논객과 유튜버의 영향력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극우 집단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정치인이 평소 목말라 하는 자금·인력 등을 갖추고 있다. 중도층 민심은 여론조사 지표와 선거 결과 외엔 확인하기 어렵고, 정치인이 직접 피부로 느낄 만한 물적 기반을 제공하지 않는다. 결국 극우 집단이 제공하는 단기적인 이익이 주는 유혹서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앞으로도 국민의힘이 극우 집단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은 전 목사와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지난 1월10일 탄핵 반대 집회 발언으로 확인할 수 있다. 5선 중진 윤 의원은 고개를 빳빳이 세운 전 목사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대선주자
눈치 보기

그러자 전 목사가 윤 의원에게 건넨 덕담은 “윤상현이 최고래요. 잘하면 대통령 되겠어”였다. 그는 “윤 대통령이 이번에 살아나면 외무부 장관 시켜달라고 하라”면서 윤 대통령 복귀 이후 내각 인사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러자 윤 의원은 “너무나도 존귀하신 전광훈 목사님”이라면서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이 상황은 현실을 넘어선 국민의힘의 미래를 보여주는 전 국민 집단 예지몽이었을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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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