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오너 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백신 명가' 녹십자는 지난달 기준 총 15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중 오너일가 지분이 있으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회사는 '녹십자엠에스'와 '녹십자이엠'이다. 두 회사는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적지 않은 실적이 '안방'에서 나왔다.
2003년 설립된 녹십자엠에스는 체외진단용시약, 의료기기, 혈액백 등 의약 관련 제품 제조 및 판매 업체다. 지난해 녹십자로부터 인계한 일부 영업부문도 영위 중이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본점을, 충청북도 음성군에 제조시설을 두고 있다.
2007년부터 급증
문제는 자생력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분석 결과 매출의 상당 부분을 내부거래로 채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수백억원의 고정 매출을 올렸다.
녹십자엠에스는 지난해 매출 550억원 가운데 125억원을 계열사들과의 거래로 올렸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매출 대비 내부거래율은 23%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전의 상황은 완전 다르다. 계열사가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사실상 지속이 어려울 정도였다. 녹십자엠에스는 2010년 매출 293억원을 모두 녹십자에서 채웠다. 내부거래율이 100%인 것이다. 상품 납품, 용역 계약 등을 통해서다.
녹십자엠에스의 계열사 의존도가 처음부터 높았던 것은 아니다. 2006년까지 내부거래율이 50%를 밑돌다 이듬해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거래 금액도 수십억대에서 수백억대로 늘었다. 녹십자엠에스가 계열사와 거래한 매출 비중은 2006년 44%(총매출 108억원-내부거래 47억원)였다. 이후 2007년 91%(140억원-127억원)로 오르더니 2008년 100%(213억원-213억원), 2009년 99%(277억원-276억원)까지 치솟았다. 녹십자가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녹십자엠에스는 녹십자 등 계열사들을 등에 업고 거둔 안정된 매출을 기반으로 꾸준히 몸집을 키워왔다. 설립 이후 줄곧 적자를 내다 2007년 흑자로 전환, 이듬해부터 매년 10억∼50억원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거뒀다. 총자산의 경우 2004년 58억원에서 지난해 267억원으로 7년 만에 4배 이상 불었다. 같은 기간 24억원이던 총자본은 115억원으로 5배 가까이 늘었다.
녹십자엠에스는 이를 토대로 최근 3년간 해마다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했다. 2009년 4억5000만원, 2010년 5억4000만원, 지난해 5억6000만원을 배당했다. 이중 일부를 대주주인 오너가 챙겼다.
매출 100% 녹십자에 의존 "매년 수백억 거래"
허일섭 회장 지분 소유…짭짤한 배당금도 챙겨
2001년 설립된 녹십자이엠은 병원, 연구실험실, 제약공장, 클린룸 등 특수건물 공사업체다. 제약·의료시설의 기계설비 시공 및 유지보수 용역 사업도 한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녹십자 사옥에 본사가 있다.
녹십자이엠도 매출의 절반 이상을 내부거래로 채우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계열사 매출 비중이 50%에 달했다. 총매출 261억원에서 내부거래액이 131억원이나 됐다. 일거리를 준 '식구'들은 녹십자(84억원)와 녹십자이씨(36억원), 녹십자엠에스(9억원), 지씨제이비피(1억원) 등으로 공장신축, 리모델링, 생산시설, 기계설비 등의 공사를 맡겼다.
녹십자(53억원), 녹십자이씨(90억원), 녹십자엠에스(4억원), 지씨제이비피(1억원) 등 계열사들은 2010년에도 녹십자이엠의 매출 258억원 중 149억원(58%)에 이르는 일감을 퍼줬다. 녹십자이엠의 내부거래율은 ▲2005년 63%(220억원-138억원) ▲2006년 51%(331억원-169억원) ▲2007년 85%(426억원-360억원) ▲2008년 91%(436억원-398억원) ▲2009년 54%(200억원-107억원)로 나타났다.
녹십자엠에스와 녹십자이엠의 내부거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너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녹십자엠에스 최대주주는 50.91%(381만8040주)의 지분을 보유한 녹십자다. 이어 허일섭 녹십자 회장이 21.91%(164만3520주)로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나머지 27.18%(203만8440주)는 기타 주주들이 소유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일부 특수관계인 지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녹십자이엠은 녹십자홀딩스(94%·18만8000주) 자회사다. 녹십자홀딩스는 녹십자 지주회사로, 허 회장 10.88%(511만7770주) 등 24명의 오너일가가 각각 0.1∼3.3%씩 친인척 지분이 총 40%에 이른다. ‘허씨 가족’들이 녹십자홀딩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녹십자이엠을 지배하는 셈이다. 고 허영섭 전 회장의 지분(13.18%·619만6740주)도 아직 남아있다.
허 회장은 허 전 회장의 동생으로 형과 함께 지금의 녹십자를 일군 장본인이다. 고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주의 5남(장남 허정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 3남 허동섭 한일시멘트 회장, 4남 허남섭 서울랜드 회장) 중 차·5남인 허 전 회장과 허 회장은 녹십자·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를 같이 맡는 등 모범적인 '형제경영'으로 녹십자를 이끌었다. 형제는 B형 간염백신, 유행성출혈열 백신, 수두 백신, 신종플루 백신 등을 개발해 녹십자를 백신분야에서 세계 10위권 제약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꾸준히 몸집 키워
허 전 회장은 1970년 녹십자 전신인 극동제약에 공무부장으로 입사한 뒤 1980년 대표이사 사장, 1992년부터 회장직을 역임했다. 부인 정인애씨와 사이에 장남 허성수 전 녹십자 부사장과 차남 허은철 녹십자 부사장, 3남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상무를 뒀다. 2009년 세상을 떠난 허 전 회장의 '지휘봉'을 이어받은 허 회장은 1979년 녹십자에 입사한 후 1988년 한일시멘트 이사를 거쳐 1991년 다시 녹십자로 자리를 옮겼다. 부인 최영아씨와 사이에 진성·진영·진훈씨 3형제를 뒀다.
녹십자 일가는 허 전 회장의 타계 이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장남 허성수 전 부사장과 그의 모친 정인애씨가 유산을 두고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최근엔 물밑에서 허영섭·허일섭 두 집안 간 지분확보 신경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녹십자엠에스·녹십자이엠 기부는?>
받을 땐 '왕창' 나눌 땐 '찔끔'
녹십자 계열사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녹십자엠에스와 녹십자이엠은 기부를 얼마나 할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녹십자엠에스는 지난해 600만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이는 당시 매출(550억원)의 0.01%에 불과한 금액이다. 2010년엔 매출(293억원) 대비 0.03%에 해당하는 1000만원을 기부했다.
녹십자이엠은 지난해 1300만원을 기부했다. 매출(261억원) 대비 0.05%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매출 258억원을 올린 2010년엔 1700만원(0.07%)만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