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DDP서 맨몸으로 쫓겨난 김이경 페소니아 대표

10억 날리고 15억 빚 “서울시가 내 삶 망쳤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희망으로 시작한 일이 절망으로 끝났다. 꿈의 끝에는 텅 빈 공간만 남았다. 날린 투자금과 쌓인 빚이 어깨를 짓눌렀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두려워졌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자식이 눈에 어른거려 죽지도 못했다. 2017년부터 2026년까지, 김이경 카페 드 페소니아 대표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18일 서울 중구 을지로 281 DDP 아트홀 ‘카페 드 페소니아(이하 페소니아)’ 앞에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이들 뒤편 한때 페소니아가 있던 자리는 텅 빈 채였다. 비까지 내리던 이날 김이경 페소니아 대표는 미리 준비해 온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김 대표의 딸도 함께 자리했다.

꿈 찾아서
상경했는데…

김 대표는 페소니아에 강제 집행을 단행한 서울시의 행정을 ‘관제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비판했다. 민간이 운영하고 있던 공간을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회수했다는 주장이다. 또 서울시가 김 대표를 압박하기 위해 카드 압류 등 갖은 수를 사용한 것은 ‘행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법률적 폭력’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목 디스크 등으로 거동이 약간 불편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1시간가량 이어진 인터뷰 내내 말을 멈추지 않았다. 억울함을 호소했고 현 상황에 의문을 드러냈으며 계속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제 더 잃을 것도 없다는 태도였다.

지난달 6일 서울중앙지법은 서울디자인재단이 김 대표 등을 상대로 제기한 건물 인도 등에 대한 1심 소송 결과를 근거로 지난 11일 페소니아에 대한 강제 집행을 단행했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묻자 김 대표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목이 멘 듯 여러 차례 목소리를 가다듬기도 했다.

김 대표는 “목 디스크 때문에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던 도중 직원에게 전화를 받았다. 법원에서 사람들이 왔다고 했다. 택시를 돌려 카페로 갔더니 한 사람이 의자 하나씩만 들고 가도 모든 집기를 다 치울 수 있을 만큼의 사람이 와 있더라. 제발 이러지 말라고, 조금만 더 기한을 달라고 빌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공탁금 3억원을 내라는 말을 (3월)9일에 들었는데 사흘 만에 그 큰돈을 소상공인이 어떻게 마련하겠나. 그사이 서울시가 카드를 압류했고 코로나19도 있었다. 너무한 게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이리저리 노력했지만 결국 그 돈을 마련하지 못해 카페를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2017년 아트홀 카페 차려
지난 3월11일 강제 철거

이날 김 대표는 특수 협박, 공무집행 방해 혐의 등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강제 집행을 막으려는 과정에서 ‘살기 싫다, 죽겠다’고 말하거나 가위를 꺼낸 행위 등이 문제가 됐다. 그는 “누구를 붙잡고 말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내 눈앞에서 내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보니까 너무 절망스러웠다. ‘여기서 살고 싶지 않다. 죽어버리겠다’라고 하니까 누가 신고를 했는지 경찰이 왔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 지방에서 하던 사업을 접고 서울에 올라온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울산에서 입시 학원을 운영하던 김 대표는 2016년 서울 여행을 왔다가 DDP의 텅 빈 공간을 보게 됐다. 당시 통로로 사용되고 있던 자리였다. 그는 “안내데스크밖에 없는 걸 보고 ‘여긴 뭐지, 뭐 하는 곳이지’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2017년 해당 공간에 대한 입찰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디자인재단이 공간을 운영할 사업자를 모집한 것이다. 당시 선정된 곳이 우일TS라는 업체다. 입찰을 따낸 우일TS는 김 대표와 전대차 계약을 맺는다. 다시 말해 서울디자인재단과의 계약자는 우일TS고 실제 운영은 김 대표가 했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이러한 운영 방식이 2020년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으로 뽑는 시점이다. 그는 “그 위법한, 잘못된 입찰로 인해 그다음 계약 전환 과정(2020년)에서도 문제가 생겼고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2023년 퇴거 요청, 2026년 강제 집행까지 모두 2017년 입찰에서 시작됐다는 주장이다.

2020년 첫 계약이 만료된 이후 계약을 다시 진행하는 과정에서 김 대표는 ‘공유재산 유상 사용·수익 허가(연장)’라는 이름의 계약서를 받았다. 기존 계약을 3년 연장하는 내용으로, 지금까지 김 대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계약서이기도 하다.

코로나도
견뎠는데…

김 대표는 “(계약 내용이) 위·수탁에서 사용수익 허가로 바뀌고 갑과 을에서 사용자와 수익자로 바뀌고 그랬다. 왜 (이전과) 다른 계약서를 가지고 왔는지 물었을 때 공유재산법 같은 얘기를 했는데 일반인은 그런 걸 잘 모르지 않나. 이게 아니면 연장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제대로 인식도 못 하고 ‘이렇게라도 해야 하나 보다’라는 생각에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계약의 대가는 3년 뒤에 나타났다. 2023년 해당 계약을 근거로 서울디자인재단과 서울시는 페소니아에 퇴거를 요청했다.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여파가 어느 정도 가라앉아 조금씩 카페가 정상화되던 시점이었다.

김 대표는 “(서울시 등은) 공유재산 물품관리법을 내세우면서 1회밖에 연장이 안 된다고 말했다. 위·수탁 계약 기간이었던 2017년부터 소급 적용해, 2020년에 3년 연장 계약을 맺은 걸로 갱신이 완료됐다는 것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면 공유재산의 허가 기간은 사용 허가를 받은 날부터 시작되니까, 2020년에 최초 계약이 돼서 2023년에 한 차례 더 연장할 수 있었다. 추가로 5년은 더 카페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서울시 측과 페소니아는 10건이 넘는 소송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서울시 측은 페소니아가 무단으로 공간을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불법 점유, 알박기 등의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반면 페소니아는 계약이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또 2020년 계약 전환 과정에서 서울시 등이 공청회나 전수조사 등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랬다면 이렇게 불리한 계약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퇴거 요청 이후 우리가 나가지 않자 2025년 초부터는 카드 사용을 막은 것도 모자라 다른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던 타지점의 보증금까지 압류했다”며 “서울시가 소상공인을 상대로 엄청난 압박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실제 페소니아는 카드를 사용할 수 없어 현금으로만 결제가 이뤄졌다고 한다.

2023년 이후 억울함만을 호소하던 김 대표가 실제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경부터다. 그는 “2년 동안에는 민사로만 대응해서 절차니, 뭐니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다 행정소송의 존재를 알게 됐고 공유재산 문제는 행정소송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2025년) 처음 알았다. 서울시가 우리를 쫓아내기 위해서는 단순 계약 만료가 아니라 행정처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 처분이 없었다. 절차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 나만?
호소해도…

그러면서 “서울시의 논리대로라면 계약서에 있는 기간이 딱 끝나면 서울시에 있는 모든 공유재산을 다 불러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페소니아만 다른 업체들과 계약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도 그 시기에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곳은 다 사용수익 허가로 돼 있는데 우일한테만 괄호 치고 연장이라고 돼 있었다. 또 다른 곳은 절차에 따라 입찰을 진행했는데 우리만 과정과 상황에 대한 안내 없이 수의 계약으로 묶어 놨다. 위법한 절차”라며 “다른 업체는 10년으로 계약 변경이 이뤄졌는데 우리만 위법한 구조 그대로 3년으로 묶어뒀다”고 거듭 주장했다.

김 대표는 서울시의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아 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2월에는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기자회견도 진행했다. 국회 소통관에서 진행된 ‘공공시설 임대·관리 부당 행정 서울시청 및 강남구청 규탄 기자회견’에서 김 대표는 “공공의 이름으로 시민을 몰아내는 행정을 중단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별다른 반향은 없었고 이후 한 달여 만에 페소니아는 철거됐다. 김 대표는 10억원 이상을 손해 봤으며 서울시의 퇴거 요청(2023년) 이후 진 빚이 15억원가량이라고 주장했다. 11명에 이르던 직원의 월급도 아직 다 주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마이너스 통장 이자만 한 달에 600만~700만원”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소송을 하는 데 2억원가량 썼다. 그 돈이면 카페를 하나 차리고도 남는다. 또 버티는 과정에서 들어간 직원 급여 등 개인 돈으로 끌어다 쓴 것을 따지면 또 매장 하나를 차리고도 남는다. 이걸 버틸 수 있는 자영업자, 소상공인이 몇이나 되겠나. 차라리 그냥 때려치우고 나와서 새로 시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전했다.

2023년 계약 전환 과정
“절차 위법했다” 주장

이어 “이런 악법한 구조로 소상공인을 절차도 없이 밀어내는데도 이길 수가 없다. 나와 시민은 서울시에 세금을 내고, 서울시는 세금이 엄청 많지 않나. 그러니까 변호사를 쓰고 공무원끼리 협조하면 내가 그 조직을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너무 막막하다. 뭘 해서 빚과 이자를 갚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거나 우체국에서 오는 문자 같은 걸 받을 때마다 가슴이 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어떤 소송이 또 들어올지, 압류가 들어올지 하루하루가 진짜 너무 견디기 힘든 삶”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 억울함을 호소하고 소송을 진행하는 이유를 묻자 “시작을 했으니까”라는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그는 “그전까지는 그냥 억울하다고 생각해 싸웠는데 2025년에 절차가 위법이라는 걸 알고 싸우는 방향을 바꾸게 됐다. 남들에게 이 잘못된 구조를 알리지 않으면 누가 들어오더라도 망하고 나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선택적 행정 아니냐. 필요 없을 때는 더 쓰라고 허가해 주고 필요하면 소송으로 빼앗고. 이런 구조면 공유재산 운영은 안 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지금은 가만히 나둬도 소상공인이 고사하는 시기다. 지난 18일에 같이 기자회견을 진행한 ‘마음 편히 장사하고픈’이라는 모임이 있다. 민간 임대차 보호법 10년을 이끈 단체다. 근데 그 단체에서 지금 너무 할 일이 없다고 했다. 장사가 잘돼야 자리를 두고 나간다, 안 나간다 소송이 벌어지는데 지금은 가만히 놔둬도 망하기 때문에 소송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상공인에게 퇴거는 죽음과 같다. 나는 이런 일이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법을 바꾸든지, 소상공인을 보호해 주든지 해야 한다. 그래서 견디는 거다. 내가 더 잃어버릴 게 있나”라고 했다. 이어 “애들이 눈에 밟힌다. 아들과 딸이 있는데 공부도 해야 하고 취업도 해야 한다. 빚만 남겨주고 갈 순 없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죽지 못해
살고 있다”

김 대표는 “2023년에 오세훈 서울시장실을 두 번 방문했다. 코로나 기간 3년 동안이나 견뎠다, 이렇게 자영업자를 쫓아내면 안 되고 직원들의 삶까지 망가뜨리면 안 된다, 재난 관련 법을 적용해서 계약을 연장해 달라, 갱신해 달라고 호소했다. 비서관이나 보좌관이 아니라 오세훈 시장이 직접 나한테 나가라고 하면 두 손 두 발 들고 나가겠다. 그러니 시장님이 목소리를 내달라고까지 호소했다. 하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방치돼있던 공간을 살려서 돈을 투자하고 활성화해 놨더니 그제야 활용도를 찾고 빼앗아 가려고 하는 게, 절차도 없이 빼앗아 가려고 하는 게 오 시장이 말하는 ‘약자와의 동행’인지 모르겠다. 오세훈 시장하고 1대 1로 만나서 대화하고 싶다. 오세훈 시장의 말이 맞으면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반대’ 서울시 입장
“페소니아 측 억지”

서울시 관계자는 <일요시사>의 취재에 ‘법대로’ 처리했다고 답했다. 강제 집행을 진행한 주체는 서울시가 아니라 법원이며 모든 절차는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명도소송 1심 판결문에 자세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부는 김이경 페소니아 대표와 전대차 계약을 맺은 우일TS가 위탁 목적물(페소니아 공간)을 사용․수익할 수 있는 권리는 2023년 3월27일에 만료됐다고 판시했다. 서울시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법원에서 서울시의 주장을 모두 인정했다”며 “페소니아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원실 등을 통해 각종 자료 요구가 이어졌는데, 막상 자료를 받은 이후에는 별말씀이 없다. 페소니아 측 주장대로 소상공인을 쫓아낸 게 아니라 법원에서 판결했고 그에 따라 법원에서 집행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대로 처리했다”

이어 “페소니아 측에서는 서울시가 소송을 남발하고 언론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적반하장이다. (서울시가) 명도 소송을 제기한 것은 그분들이 안 나갔기 때문에 저희가 공무원으로서, 재단 직원으로서 법에 의해서 한 거다. 무단으로 점유하고 나가지 않는데, 저희가 가만히 있어야 되나”라고 말했다.

또 “연 10억원의 매출이 나오는 곳에서 사용료를 한 푼도 안 내고 3년 넘게 무단 점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저희가 소송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한다면 그거야말로 직무유기다. 사용료를 내지 않으니까 변상금을 부과하고 나가지 않으니까 명도소송을 진행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세훈 시장이 해당 공간을 홍보관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페소니아를 쫓아냈다는 김 대표의 주장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된다. 그러려고 했다면 이렇게 3년 이상 소송을 진행하면서 시간을 끌지 않았을 것”이라며 “소송도 저희가 제기한 것보다 페소니아 측에서 제기한 게 더 많다”고 말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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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5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참패했다. 국민의힘의 수도권 참패 기류 속에서 홀로 승리한 오 시장은 국민의힘에 불어올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과연 오 시장은 성공적인 시정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지난 4일 오전 개표 결과, 국민의힘은 광역자치단체장 기준 서울·대구·경북·경남 등 4곳 수성에 그쳤다.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지지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최소한의 수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졌잘싸’ 최소 수성 이로써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상 첫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은 48.94%를 득표해 48.34%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원오 후보를 가까스로 물리쳤다. 방송사들의 출구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오 시장을 약 5% 앞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개표 후 13시간이 지난 시각부터 정 후보를 역전해 신승을 거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월 이후 역동적으로 중앙정치에 개입했다. 공천 과정에서는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윤 어게인’에 기반한 강경 보수 노선을 유지하려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이어 당에 절윤(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을 요구했고,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개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에 반대한다”는 등 절윤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후에도 오 시장은 당과 거리두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 시장이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요구했던 것 중 하나는 혁신 선거대책위원회 설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자 오 시장은 한동안 당의 상징색인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누볐다. 그는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당 필승결의대회와 지난달 12일 진행된 서울시당 선대위 발대식 모두에 장 대표를 초청하지 않았다. 오 시장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한 취지는 “마음은 고맙지만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오 시장은 지난 3월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모시고 싶다. 변신한 모습으로 지원 와 주시길 촉구한다”며 “국민의힘 자체가 중도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오 시장은 서울시당을 배경으로 서울 내 자치구를 둔 의원들과 함께 선대위를 구성해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렀다. 그리고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의 승리는 정치학적으로 정치의 개인화 현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정치의 개인화는 정당 등 집단적 배경이 아닌 정치인 개인의 리더십 등 이미지가 정치 과정의 핵심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통적인 지지 세력 외엔 국민의힘이라는 브랜드가 호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는 국민의힘과 오 시장을 분리해서 평가한 후 오 시장을 지지했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브랜드가 오 시장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오 시장은 당과 거리를 두면서 개인 지지 기반이 잠식되는 것을 최대한 막은 셈이다. 지방선거와 함께 진행된 경기 평택을 보궐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유의동 후보가 승리했다. 유 후보는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의 지지 선언 외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언론이 주목한 핵심은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후보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갈등·상호 폭로였다. 유 후보의 승리는 범여권의 내분 속에서 어부지리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뒤베르제 법칙에 따르면, 단순다수대표제와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유 후보를 상대로 여유 있게 승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참패 속 홀로 선 오…당과 거리 두고 5선 신승 유 어부지리·한 자력 생존…장동혁 책임론 불씨 하지만 두 후보가 화합하지 못하면서 평택을 선거구도는 다당제로 전개됐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각각 일정한 경쟁력을 가진 채 분열했기 때문에 범여권 지지자의 표심은 사실상 양분됐다. 반면 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는 김 후보와 조 후보만 한 경쟁력을 갖지 못해 유 후보의 표를 결정적으로 잠식하지는 못했다. 김 후보·조 후보·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 등 진보 성향 범여권 후보들은 각각 28.77%·27.44%·2.95%를 득표했다. 반면 유 후보는 34.83%를, 황 후보는 6.19%를 득표했다. 이 때문에 유 후보는 다수 대결 구도 속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평택을 결과는 뒤베르제 법칙의 기계적 효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줬다. 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의석을 차지한다. 유 후보는 34.83%를 득표하는 데 그쳤지만, 범여권 후보들이 분열하면서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범여권 후보의 분열은 뒤베르제 법칙이 기대하는 심리적 효과인 사표 방지를 위한 유력 후보 결집 효과 실현을 방해했다. 따라서 유 후보의 승리는 국민의힘의 조직적 승리라기보다, 범여권 분열과 단순다수대표제의 기계적 효과가 맞물린 결과에 가까웠다.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민주당 하정우 후보를 물리치고 신승했다. 이로써 한 전 대표는 오 시장과 함께 자력으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지난 2월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던 장 대표 등 당권파는 매우 치명적인 내상을 입은 것이다. 통상적인 정치적 관례대로라면 선거에서 대패한 당 대표 등 지도부는 일괄 사퇴의 길을 걷는다. 이후엔 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돼 당의 혼란을 수습한 후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선거 이전부터 “장 대표는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3일 SBS 선거 방송에 출연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나는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자유한국당 패배를 예고하는 출구조사 발표를 듣는 즉시 사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장 대표가 억울해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로는 “상당수 후보들이 장 대표에게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으므로 장 대표로서는 할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지난 4일에도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장 대표를 강제로 사퇴시킬 수단은 사실상 없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청년 최고위원을 포함한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이 사퇴하거나 궐위되면 지도부가 무너진 것으로 간주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된다. 치열한 혈투 치명적 내상 국민의힘 선출직 최고위원은 신동욱·김민수·양향자·김재원·우재준 최고위원이다. 이들 중 신동욱·김민수·김재원 최고위원은 전반적으로 장 대표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 물론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장 대표의 거취를 어떻게 결정할지에 따라서 신 최고위원과 김재원 최고위원은 유동적인 결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 친윤계로서는 장 대표를 섣불리 사퇴시켰다가 오 시장이 당권 장악까지 시도하는 더 큰 강풍을 맞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동안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사퇴시킨 후 신 최고위원을 얼굴로 내세울 수도 있다”는 설이 돌아다녔지만, 말 그대로 설로 끝났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가 충돌했던 지난 1~2월에도 충돌했던 핵심 요소는 절윤 등 노선 변경 여부였을 뿐, 장 대표의 거취는 아니었다. 인위적인 지도부 붕괴는 사실상 어렵다. 최고위 자체가 장 대표에겐 벙커로 작용하기 때문에 장 대표가 버티면 끌어낼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대구·경북·경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대체로 이 지역을 기반으로 삼는 구 친윤계는 참패 속에서도 당내 발언권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반대로 대구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45.05%를 득표하는 등 핵심 지역 기반 대구에서도 예전과 다른 정치적 정서가 확인됐다. 따라서 구 친윤계로서는 “지역 기반 수성을 위해 당에 변화를 줘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과 “장 대표가 관례대로 사퇴해야 한다”는 판단이 교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하마평에 올랐던 신 최고위원 등 대안 인물을 찾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옹립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윤 어게인’ 정서를 등에 업은 강경 보수 세력과 영남권에 기반을 둔 구 친윤계가 양대 축을 형성한 과두적 구조에 가깝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과두제의 철칙’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과두제의 철칙은 “조직이 커질수록 민주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미헬스가 지적했던 근거는 ▲관료화와 분업 ▲대중의 무관심과 무능력 ▲지도부의 권력 독점 등이었다. 이 중 국민의힘에 작용하는 것은 관료화와 권력 독점이라고 할 수 있다. 관료화로 인해 지도부에 권력이 집중되고, 지도부는 권위 유지를 위해 정보·자원을 통제한다. 구 친윤계 대안 옹립? 그간 구 친윤계는 “당의 이익보다 자신의 권력 자산을 보존하려고 한다”는 비판적 평가를 받아왔다. 장 대표가 구 친윤계의 사퇴 공세에 맞설 수단은 당헌·당규가 벙커로 만든 지도부의 견고함밖에 없다. 영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국민의힘에서는 역설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기반이 영남에 과도하게 집중돼있기 때문에 연이은 선거 패배라는 외부적 충격이 발생할수록 당내 권력구조 강화로 회귀하려는 관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구 친윤계에 대해서는 “당을 파벌·지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한 오 시장은 지금까지 구 친윤계와 장 대표 모두를 상대해 왔던 한 전 대표와는 다르다. 한 전 대표는 구 친윤계와 강경 보수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가 국민의힘 복당 이후 당권 장악을 거쳐 대권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복당은 역설적으로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복당하더라도 국민의힘 내 소수 계파인 친한(친 한동훈)계 수장에 불과하다. 목표로 삼을 당권·대권 도전을 위해선 당내 구 친윤계의 거부감을 누그러트릴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따라서 한 전 대표는 당선돼 자력 생존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태풍 속의 찻잔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사상 최초로 서울시장 5선에 사실상 자력으로 성공한 오 시장이야말로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장 대표는 당 대표직 유지와 생존이 급박하기 때문에 수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당 대표이기 때문에 자신의 노선을 변혁하려는 모순을 저지를 수도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의 차기 권력구도는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여러 쟁점을 놓고 충돌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몇 달 안으로 결정해야 할 논점만 해도 ▲장 대표 등 지도부의 거취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여부 및 위원장 임명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 시점 등이며, 이것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최고위는 장 벙커…영남 기반 구 친윤도 셈법 복잡 복당 벽 마주할 한…‘오세훈계’ 편성 당 흔드나 국민의힘 내 수도권 거점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무너졌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따라서 오 시장이 잔존한 수도권 내 비친한계 성향 중도보수계열 인사들을 규합해 오세훈계를 구성할 수도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광역자치단체장이 직접 정당 대표를 맡기는 어렵다. 오 시장으로서는 오세훈계를 구성해 참신한 개혁 이미지를 표방할 수 있는 대리인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그 대리인으로, 친한계로 알려졌지만 서울시당위원장으로서 당권파와 겨뤄가면서 오 시장과 호흡을 맞춘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과 서울 내 험지인 도봉갑에서 당선돼 서울시장 선거전에서도 민주당 정 후보 저격 활동에 집중했던 김재섭 의원 등을 거론한다. 이에 맞서 구 친윤계는 전통적인 논리를 동원해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6년 이후 영남권 중심 구 친윤계의 논리는 “수도권이야말로 늘 국민의힘 선거 패배의 원흉”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오세훈계가 새롭게 편성된다면, 사안에 따라 오세훈계와 친한계가 구 친윤계의 공세에 공동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장 대표의 정치적 수명이 이 사태에 아예 참전할 수 없을 정도로 끝난 것은 아니다. 그의 정치적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변수는 이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관리 논란에서 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서울 송파구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일각에선 재투표까지 주장하고 있다. 당장 직면한 참패의 여파를 수습하고 당을 뭉치게 하는 데 있어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위기를 통제 가능한 외부의 독립된 실체로 분리해 내부적 결집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경 보수 집단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민의힘에선 오히려 내부를 겨냥한 칼이 될 수도 있다.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면 부정선거론의 영향력이 당 안에서 강해질 수 있고, 역설적으로 장 대표의 영향력이 강해지도록 돕는 생명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선은 대권에? 부정선거론과 장 대표의 영향력 유지가 겹쳐지면,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일시적으로 연합해 대응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민의힘에선 네 갈래 권력 투쟁인 ‘사국지’가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크게는 영남·강경 노선과 수도권·확장 노선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를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대구·경북 중심 구 친윤계 ▲지도부란 벙커에 있는 친 장동혁계(당권파) ▲친 한동훈계 ▲무계파·수도권 중심 친 오세훈계 등으로 편성될 수도 있다. 계파의 세분화 가능성 중심에는 오 시장이 있다. 태풍의 눈이 된 오 시장은 과연 성공적인 서울시정 수행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오 시장이 대권에 시선을 두고 있다면, 두 마리의 토끼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