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민주당은 왜 이 법만 늦췄나

트럼프의 25% 관세 뒤에 숨은 침묵의 정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현지시각) 한국에 대한 25% 관세를 전격 거론하자 한국 정치는 즉시 분열된 목소리를 냈다. 이재명정부는 “미국의 불만은 100% 국회 책임”이라고 밝혔고, 국민의힘은 “대통령과 정부가 밀실 합의를 해놓고 국회에 떠넘긴 것”이라고 맞섰다.

그러나 이 소란 속에서 가장 이상한 존재는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다. 모두가 공을 때리고 있지만, 정작 공을 굴릴 수 있는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 정지가 바로 지금 한국이 25% 관세 앞에 서게 된 진짜 이유다.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이 “미국의 불만 100%는 국회 책임”이라고 공개 발언한 순간, 한국은 스스로 워싱턴에 정치적 약점을 노출했다. 미국은 상대국의 내부 균열을 가장 강력한 협상 무기로 쓴다. 지금 미국은 “한국 정부는 합의했고, 국회가 이를 막고 있다”는 메시지를 한국 정부 입으로 확보했다.

이것은 협상 카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든 협상 족쇄다.

이 사태의 핵심에는 ‘대미투자특별법’이 있다. 이 법은 지난해 11월 한·미 합의의 이행 장치로,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던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요구한 제도적 담보다.

한국이 약속한 3500억달러 대미 투자, 그중 2000억달러 규모의 공공투자를 실제로 집행할 수 있도록 기금과 운영체계를 법으로 묶는 것이 바로 이 법이다. 미국이 요구한 것은 말이 아니라 ‘법으로 고정된 이행 능력’이었다.

그런데 이 법은 석 달 동안 국회에 존재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지난 26일이 돼서야 이 법을 발의했다. 트럼프가 25% 관세를 꺼내 들기 직전인데, 이 시간차는 우연이 아니다. 법이 없으면 정부는 미국에 “국회가 막는다”고 말할 수 있고, 민주당은 정부를 공격하면서도 실질적 책임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바로 이 ‘정치적 공백’이 트럼프에게 압박의 명분을 제공했다.

미국이 이 구조를 정확히 읽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29일 밤, 정부의 방미 발언에서 확인된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에 이어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워싱턴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 사람은 트럼프의 25% 관세를 막기 위해 미국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총력 협의에 나선다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인터뷰에서 내놓은 설명은 놀라울 만큼 솔직했다. 여 본부장은 “한국 국회의 입법 과정 때문에 한·미 합의가 이행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미국이 가진 것 같다”고 밝혔고, 김 장관도 “국내 입법 진행 상황에 대한 미국의 불만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미국이 문제 삼는 것이 바로 대미투자특별법임을 정부가 스스로 확인해준 셈이다.

미국이 쿠팡이나 디지털 규제를 관세의 본질로 보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그런 이슈들은 관세 같은 본질적 문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본질은 오직 하나, 대미투자특별법의 국회 통과 여부다. 그런데 이 법은 이제 막 발의됐을 뿐, 아직 국회 논의조차 본격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 법안의 소관 상임위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다. 위원장은 국민의힘 소속이지만, 실제 심사 일정과 안건 처리는 여야 간 합의 구조로 운영된다. 특히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상임위 소위 구성이나 신속한 심사 진행이 어렵다.

결과적으로 이 법안의 처리 속도는 특정 정당 한쪽이 아니라, 국회 다수당과의 협의 구조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질문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민주당은 왜 이 법만 멈추고 있었는가, 정말로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선택이었나, 아니면 미국의 압박이 커질수록 정부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을 지켜보려는 판단이었나? 그 침묵은 결과적으로 트럼프의 협상력을 키우고, 한국 경제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

민주당이 이 법안을 2월 말이나 3월로 넘긴 데에는 또 다른 정치적 계산이 있을 수도 있다. 6·3 지방선거 일정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이 대형 통상 법안을 처리하며 국정 주도권을 다시 쥐고, 동시에 ‘국익을 지킨 책임 여당’ 이미지를 선거 국면에서 부각시키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코스피 5000과 코스닥 사상 최고치는 시장이 한·미 경제 합의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러나 정치가 이 합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이 랠리는 하루아침에 꺼질 수 있다. 25% 관세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시장 전체를 흔드는 충격이 된다.

지금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미국 측에 ‘한국 국회의 정치 상황’을 설명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그러나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설명이 아니라 결과다. 법이 통과됐는가, 아니면 아니었는가 하나뿐이다. 외교관이 아무리 뛰어도, 국회가 멈추면 국가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런데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직까지 민주당의 그 어떤 지도부도 이 사안에 대해 책임 있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미투자특별법이 한·미 경제 관계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고, 미국이 이를 이유로 25% 관세까지 거론하는 상황인데도 국회 다수당의 공식 입장은 들리지 않는다. 이 침묵 자체가 워싱턴에는 “한국 정치가 합의 이행을 원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

특히 국회 외교·통상 현안을 가장 앞에서 다뤄야 할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침묵은 더 뚜렷하다. 그는 특검법이나 정치 쟁점에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목소리를 내지만, 정작 한·미 통상과 25% 관세라는 국가적 사안 앞에서는 아무 책임 있는 발언도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전략적 계산이든 회피든, 그 공백의 비용은 고스란히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전가된다.

대미투자특별법은 26일 민주당이 발의했지만 이후 소관 상임위원회나 당 차원의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 법은 단순한 통상 법이 아니다. 이것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약속을 지키는 국가인지, 정치가 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지다.

국회가 이 법을 붙잡고 침묵하는 동안, 트럼프의 25% 관세는 이미 협상 카드가 아니라 청구서가 되어 날아오고 있다. 방아쇠는 워싱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국회 안에 있다.

트럼프의 25% 관세 언급은 한국 정치 전체를 향한 신호일 수도 있다. 민주당은 그동안 특검법이나 주요 쟁점 법안에서는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처리했다. 트럼프가 지금 주시하고 있는 것은 그 속도가 대미투자특별법 앞에서만 멈춰 서 있다는 것이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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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오세훈 차기 대선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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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5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참패했다. 국민의힘의 수도권 참패 기류 속에서 홀로 승리한 오 시장은 국민의힘에 불어올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과연 오 시장은 성공적인 시정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지난 4일 오전 개표 결과, 국민의힘은 광역자치단체장 기준 서울·대구·경북·경남 등 4곳 수성에 그쳤다.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지지자들의 지원에 힘입어 최소한의 수성을 한 것으로 보인다. ‘졌잘싸’ 최소 수성 이로써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상 첫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은 48.94%를 득표해 48.34%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원오 후보를 가까스로 물리쳤다. 방송사들의 출구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오 시장을 약 5% 앞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지만, 개표 후 13시간이 지난 시각부터 정 후보를 역전해 신승을 거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3월 이후 역동적으로 중앙정치에 개입했다. 공천 과정에서는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윤 어게인’에 기반한 강경 보수 노선을 유지하려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 이어 당에 절윤(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을 요구했고,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개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귀에 반대한다”는 등 절윤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후에도 오 시장은 당과 거리두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 시장이 후보 등록을 거부하면서 요구했던 것 중 하나는 혁신 선거대책위원회 설치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자 오 시장은 한동안 당의 상징색인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 차림으로 현장을 누볐다. 그는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하기도 했다. 지난 4월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당 필승결의대회와 지난달 12일 진행된 서울시당 선대위 발대식 모두에 장 대표를 초청하지 않았다. 오 시장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를 거절한 취지는 “마음은 고맙지만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오 시장은 지난 3월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모시고 싶다. 변신한 모습으로 지원 와 주시길 촉구한다”며 “국민의힘 자체가 중도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오 시장은 서울시당을 배경으로 서울 내 자치구를 둔 의원들과 함께 선대위를 구성해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렀다. 그리고 5선에 성공했다. 오 시장의 승리는 정치학적으로 정치의 개인화 현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정치의 개인화는 정당 등 집단적 배경이 아닌 정치인 개인의 리더십 등 이미지가 정치 과정의 핵심이 되는 현상을 말한다. 전통적인 지지 세력 외엔 국민의힘이라는 브랜드가 호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는 국민의힘과 오 시장을 분리해서 평가한 후 오 시장을 지지했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브랜드가 오 시장에게 도움이 되기보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오 시장은 당과 거리를 두면서 개인 지지 기반이 잠식되는 것을 최대한 막은 셈이다. 지방선거와 함께 진행된 경기 평택을 보궐선거에서는 국민의힘 유의동 후보가 승리했다. 유 후보는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의 지지 선언 외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언론이 주목한 핵심은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후보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의 갈등·상호 폭로였다. 유 후보의 승리는 범여권의 내분 속에서 어부지리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뒤베르제 법칙에 따르면, 단순다수대표제와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유 후보를 상대로 여유 있게 승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참패 속 홀로 선 오…당과 거리 두고 5선 신승 유 어부지리·한 자력 생존…장동혁 책임론 불씨 하지만 두 후보가 화합하지 못하면서 평택을 선거구도는 다당제로 전개됐다. 김 후보와 조 대표가 각각 일정한 경쟁력을 가진 채 분열했기 때문에 범여권 지지자의 표심은 사실상 양분됐다. 반면 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는 김 후보와 조 후보만 한 경쟁력을 갖지 못해 유 후보의 표를 결정적으로 잠식하지는 못했다. 김 후보·조 후보·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 등 진보 성향 범여권 후보들은 각각 28.77%·27.44%·2.95%를 득표했다. 반면 유 후보는 34.83%를, 황 후보는 6.19%를 득표했다. 이 때문에 유 후보는 다수 대결 구도 속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평택을 결과는 뒤베르제 법칙의 기계적 효과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줬다. 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의석을 차지한다. 유 후보는 34.83%를 득표하는 데 그쳤지만, 범여권 후보들이 분열하면서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범여권 후보의 분열은 뒤베르제 법칙이 기대하는 심리적 효과인 사표 방지를 위한 유력 후보 결집 효과 실현을 방해했다. 따라서 유 후보의 승리는 국민의힘의 조직적 승리라기보다, 범여권 분열과 단순다수대표제의 기계적 효과가 맞물린 결과에 가까웠다. 부산 북구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민주당 하정우 후보를 물리치고 신승했다. 이로써 한 전 대표는 오 시장과 함께 자력으로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지난 2월 한 전 대표 제명을 주도했던 장 대표 등 당권파는 매우 치명적인 내상을 입은 것이다. 통상적인 정치적 관례대로라면 선거에서 대패한 당 대표 등 지도부는 일괄 사퇴의 길을 걷는다. 이후엔 비상대책위원회가 설치돼 당의 혼란을 수습한 후 전당대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선거 이전부터 “장 대표는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 3일 SBS 선거 방송에 출연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나는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자유한국당 패배를 예고하는 출구조사 발표를 듣는 즉시 사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장 대표가 억울해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유로는 “상당수 후보들이 장 대표에게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으므로 장 대표로서는 할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지난 4일에도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장 대표를 강제로 사퇴시킬 수단은 사실상 없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청년 최고위원을 포함한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4명 이상이 사퇴하거나 궐위되면 지도부가 무너진 것으로 간주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된다. 치열한 혈투 치명적 내상 국민의힘 선출직 최고위원은 신동욱·김민수·양향자·김재원·우재준 최고위원이다. 이들 중 신동욱·김민수·김재원 최고위원은 전반적으로 장 대표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 물론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장 대표의 거취를 어떻게 결정할지에 따라서 신 최고위원과 김재원 최고위원은 유동적인 결정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 친윤계로서는 장 대표를 섣불리 사퇴시켰다가 오 시장이 당권 장악까지 시도하는 더 큰 강풍을 맞이할 수도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동안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사퇴시킨 후 신 최고위원을 얼굴로 내세울 수도 있다”는 설이 돌아다녔지만, 말 그대로 설로 끝났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가 충돌했던 지난 1~2월에도 충돌했던 핵심 요소는 절윤 등 노선 변경 여부였을 뿐, 장 대표의 거취는 아니었다. 인위적인 지도부 붕괴는 사실상 어렵다. 최고위 자체가 장 대표에겐 벙커로 작용하기 때문에 장 대표가 버티면 끌어낼 수 있는 정상적인 방법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대구·경북·경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대체로 이 지역을 기반으로 삼는 구 친윤계는 참패 속에서도 당내 발언권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반대로 대구에서 민주당 김부겸 후보가 45.05%를 득표하는 등 핵심 지역 기반 대구에서도 예전과 다른 정치적 정서가 확인됐다. 따라서 구 친윤계로서는 “지역 기반 수성을 위해 당에 변화를 줘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과 “장 대표가 관례대로 사퇴해야 한다”는 판단이 교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하마평에 올랐던 신 최고위원 등 대안 인물을 찾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옹립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윤 어게인’ 정서를 등에 업은 강경 보수 세력과 영남권에 기반을 둔 구 친윤계가 양대 축을 형성한 과두적 구조에 가깝다. 이탈리아의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는 ‘과두제의 철칙’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과두제의 철칙은 “조직이 커질수록 민주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미헬스가 지적했던 근거는 ▲관료화와 분업 ▲대중의 무관심과 무능력 ▲지도부의 권력 독점 등이었다. 이 중 국민의힘에 작용하는 것은 관료화와 권력 독점이라고 할 수 있다. 관료화로 인해 지도부에 권력이 집중되고, 지도부는 권위 유지를 위해 정보·자원을 통제한다. 구 친윤계 대안 옹립? 그간 구 친윤계는 “당의 이익보다 자신의 권력 자산을 보존하려고 한다”는 비판적 평가를 받아왔다. 장 대표가 구 친윤계의 사퇴 공세에 맞설 수단은 당헌·당규가 벙커로 만든 지도부의 견고함밖에 없다. 영남을 수성했기 때문에 국민의힘에서는 역설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기반이 영남에 과도하게 집중돼있기 때문에 연이은 선거 패배라는 외부적 충격이 발생할수록 당내 권력구조 강화로 회귀하려는 관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구 친윤계에 대해서는 “당을 파벌·지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한 오 시장은 지금까지 구 친윤계와 장 대표 모두를 상대해 왔던 한 전 대표와는 다르다. 한 전 대표는 구 친윤계와 강경 보수 성향 지지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가 국민의힘 복당 이후 당권 장악을 거쳐 대권에 도전할 것이란 예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복당은 역설적으로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복당하더라도 국민의힘 내 소수 계파인 친한(친 한동훈)계 수장에 불과하다. 목표로 삼을 당권·대권 도전을 위해선 당내 구 친윤계의 거부감을 누그러트릴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따라서 한 전 대표는 당선돼 자력 생존했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태풍 속의 찻잔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사상 최초로 서울시장 5선에 사실상 자력으로 성공한 오 시장이야말로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장 대표는 당 대표직 유지와 생존이 급박하기 때문에 수성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당 대표이기 때문에 자신의 노선을 변혁하려는 모순을 저지를 수도 없다. 따라서 국민의힘의 차기 권력구도는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여러 쟁점을 놓고 충돌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몇 달 안으로 결정해야 할 논점만 해도 ▲장 대표 등 지도부의 거취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여부 및 위원장 임명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개최 시점 등이며, 이것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최고위는 장 벙커…영남 기반 구 친윤도 셈법 복잡 복당 벽 마주할 한…‘오세훈계’ 편성 당 흔드나 국민의힘 내 수도권 거점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무너졌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따라서 오 시장이 잔존한 수도권 내 비친한계 성향 중도보수계열 인사들을 규합해 오세훈계를 구성할 수도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광역자치단체장이 직접 정당 대표를 맡기는 어렵다. 오 시장으로서는 오세훈계를 구성해 참신한 개혁 이미지를 표방할 수 있는 대리인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그 대리인으로, 친한계로 알려졌지만 서울시당위원장으로서 당권파와 겨뤄가면서 오 시장과 호흡을 맞춘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과 서울 내 험지인 도봉갑에서 당선돼 서울시장 선거전에서도 민주당 정 후보 저격 활동에 집중했던 김재섭 의원 등을 거론한다. 이에 맞서 구 친윤계는 전통적인 논리를 동원해 맞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6년 이후 영남권 중심 구 친윤계의 논리는 “수도권이야말로 늘 국민의힘 선거 패배의 원흉”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오세훈계가 새롭게 편성된다면, 사안에 따라 오세훈계와 친한계가 구 친윤계의 공세에 공동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장 대표의 정치적 수명이 이 사태에 아예 참전할 수 없을 정도로 끝난 것은 아니다. 그의 정치적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변수는 이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용지 관리 논란에서 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서울 송파구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일각에선 재투표까지 주장하고 있다. 당장 직면한 참패의 여파를 수습하고 당을 뭉치게 하는 데 있어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위기를 통제 가능한 외부의 독립된 실체로 분리해 내부적 결집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경 보수 집단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민의힘에선 오히려 내부를 겨냥한 칼이 될 수도 있다.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면 부정선거론의 영향력이 당 안에서 강해질 수 있고, 역설적으로 장 대표의 영향력이 강해지도록 돕는 생명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선은 대권에? 부정선거론과 장 대표의 영향력 유지가 겹쳐지면, 오 시장과 구 친윤계가 일시적으로 연합해 대응할 수도 있다. 따라서 국민의힘에선 네 갈래 권력 투쟁인 ‘사국지’가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크게는 영남·강경 노선과 수도권·확장 노선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를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대구·경북 중심 구 친윤계 ▲지도부란 벙커에 있는 친 장동혁계(당권파) ▲친 한동훈계 ▲무계파·수도권 중심 친 오세훈계 등으로 편성될 수도 있다. 계파의 세분화 가능성 중심에는 오 시장이 있다. 태풍의 눈이 된 오 시장은 과연 성공적인 서울시정 수행과 국민의힘 체질 개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오 시장이 대권에 시선을 두고 있다면, 두 마리의 토끼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