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최근 국회에서 “대만 유사시는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존립 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밝힌 이후 중일 관계가 급격히 냉각하고 있다.
현직 일본 총리가 사실상 ‘대만 유사시 무력 개입 가능성’을 공식 언급한 것은 처음으로, 중국은 이를 내정간섭이자 일본의 전략적 선회 신호로 받아들이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사태는 곧바로 외교전으로 확산됐다.
이에 일본 외무성인 가나이 마사아키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17일 오전 이 문제를 중국과 협의하기 위해 중국으로 출발했다. 가나이 국장은 류진쑹 중국 외교부 국장과 만나 중·일 관계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다카이치 총리의 집단 자위권 행사 발언 이후 중국 정부는 일본을 상대로 연일 강경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쉐젠(謝建)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는 지난 8일 SNS를 통해 “멋대로 들이박아 오는 그 더러운 목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 각오가 돼있느냐”며 일본을 공개적으로 위협한 바 있다. 중국 정부는 가나스기 겐지 주일중국대사를 늦은 밤에 초치하기도 했다.
일본 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여론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외교적 결례를 넘어 사실상 협박”이라는 비판이 폭주했고, 일부 의원들은 쉐 총영사를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해 국외 퇴거를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일본 외무성은 “외교관으로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발언”이라며 중국 측의 시정 조치를 요구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브리핑에서 “중국 측에 강하게 항의했고 적절한 대응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일본의 문제 제기를 사실상 일축했다. 중국은 쉐 총영사가 ‘정당한 입장을 밝힌 것’이라는 취지로 옹호했고, 관영 매체들까지 일본의 반응을 ‘과민 대응’이라며 역공에 나섰다.
일본 정부 내에선 중국이 공식적인 징계나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는 것은 최고 지도부 차원의 강경 대응 기조가 확정됐다는 의미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14일 ‘안전 우려’를 이유로 자국민 대상 일본 여행 자제령을 발표했다. 이후 중국국제항공·중국남방항공·동방항공 등 주요 국영 항공사들이 일본행 항공권 무료 취소·변경 조치를 일제히 시행했다. 쓰촨항공·하이난항공 등 민영사도 동참하며 사실상 전면적 여행 제한 조치를 취했다.
홍콩 당국 역시 일본 여행 시 주의를 강화하라고 공지해 중국의 조치와 궤를 같이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 경계가 아닌 경제적 압박 카드로 본다.
중국은 군사 행동에도 나섰다. 중국 해경 함선 편대는 전날(16일) 센카쿠 열도 주변 해역을 통과했으며, 중국 인민해방군도 17~19일 서해 일대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실시하기로 하는 등 일본을 향해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다.
에버코어ISI의 네오 왕 애널리스트는 “중국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 비용을 부과하려는 의도”라고 진단했다.
이에 일본 관광업계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2010년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갈등 당시 일본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중국인 단체 관광객 예약 취소가 잇따라 한 달간 중국발 방일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40% 이상 급감했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 소비는 지난해 일본 전체 외국인 소비의 21.2%를 차지할 정도로 핵심 수입원이다.
중국이 희토류 통제 카드를 다시 꺼낼 가능성도 있다. 일본은 여전히 희토류 수입의 9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강경 대응 배경에는 다카이치 발언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체면을 깎았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 정상이 지난달 말 경주에서 회담을 가진 직후 중국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 신호로 무비자 연장을 발표하고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을 재개하는 등 유화 제스처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이 나오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일본대사를 초치한 것도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번 사안이 체제 차원의 전략 대응 단계로 격상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일본 내부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발언을 철회할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발언을 철회하면 보수층 이탈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안보 전략 유연성을 스스로 좁히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중일 갈등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번지자 한국에서도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선 대만해협 리스크가 본격화할 경우 동북아 안보 지형이 크게 흔들릴 것으로 전망된다. 미·일 동맹과 중국의 대립구도가 선명해지면 한국은 전략적 선택을 요구받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급망 위험 역시 현실적이다. 중국과 일본은 모두 한국의 핵심 무역 파트너로, 중일 간 경제 충돌이 장기화되면 반도체·자동차·정밀부품 등 주요 산업에서 조달 불안이 커질 수 있다.
외교 지형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일본이 중국과의 갈등을 계기로 안보 노선을 강화할 경우 한·미·일 협력 구도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지만, 동시에 한국의 외교적 ‘전략 공간’은 좁아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번 사태가 한국의 안보·경제 환경 전반을 흔드는 지정학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 외교 전문가는 “중일 갈등이 이 정도로 격화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한국이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예측 불가능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까 깊이 우려된다. 특정 진영에 치우치지 않고 국익 중심의 균형 외교를 펼쳐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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