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넘는 제3지대 근황

춥고 배고픈 여의도 생존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여당도 싫고 야당도 싫다는 중도층이 늘었지만, 이들은 제3지대로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거대 양당 독식 구조가 단단히 뿌리 박힌 한국 정치 제도에서 군소 정당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쉽지 않은 탓이다. 선거판에 태풍을 몰고 온 이들부터 ‘0석’ 원외 정당까지, 여의도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제3지대 근황을 들여다봤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개혁신당은 제3지대 중에서도 ‘그나마 잘 풀린 사례’로 여겨진다.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이준석 대표 등 이름이 알려진 정치인이 당을 이끌면서 중요한 대목마다 주목받았다. 그럼에도 지지율 5%의 벽을 넘지 못하면서 비교섭단체의 설움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고군분투

혁신당은 지난 11일 ‘2025 전당대회 출발식’을 열고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공식 선거 일정을 시작했다. 오는 23일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를 선출할 예정으로 대표 후보로 조국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단독 입후보했다.

앞서 조 비대위원장은 공식 출마 선언을 하며 “지금까지의 조국을 과거의 조국으로 남기고 ‘다른 조국’ ‘새로운 조국’으로 국민과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조 전 비대위원장은 “혁신당을 개혁과 민생, 선거에 강한 이기는 강소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총선에서 국민이 주셨던 마음을 되찾겠다”고 말했다. 공약으로는 ▲거대 양당 독점 정치 종식 ▲검찰개혁·사법개혁 완수 ▲차별금지법 도입 등을 냈다.


이번 전당대회는 수감생활로 빼앗긴 당 대표직을 조 전 비대위원장에게 돌려주는 형식적인 선거에 지나치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선이 확실시되지만 성비위 사태로 차갑게 등을 돌린 민심과 조 전 비대위원장이 사면된 이후에도 한 자릿수에 머무르는 지지율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혁신당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방정치의 교두보를 만들겠다고 자신했지만, 한 석도 얻지 못한다면 추후 정치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개혁신당은 보수 집결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국민의힘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자 갈 곳 없는 보수 지지층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개혁신당은 10·15 부동산 대책 등을 내놓은 이재명 대통령을 타깃으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40대인 이 대표는 정치인 중에서도 어린 편에 속하는데 개혁신당 지지층도 대부분 2030 남성이다. 2030 남성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던지는 것”이라며 “이 대표는 10년, 20년 뒤 이들이 사회의 주류가 됐을 때를 기다리는 것 같다. 기득권이 된 지지층을 기반으로 대권을 꿈꾸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국·이준석 빼면 ‘텅’…사실상 1인 정당
김문수와 손잡은 이낙연 정치 부활 가능성은?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결국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서는 혁신당과 개혁신당이 각각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국민의힘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군소 정당에서 1인자가 되느니, 더 큰 정당에서 정치 자산을 쌓는 것이 대권주자로서도 유리하다는 점에서다.


두 정당 모두 단박에 선을 그었다. 앞서 조 전 비대위원장은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통해 “설익고 무례한 흡수 합당론에 흔들리지 않도록 강철처럼 단단한 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혁신당 역시 ‘내란 정당’ 꼬리표를 단 국민의힘과 손잡을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다.

민주당과 국민의힘도 이들과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혁신당이 리스크를 많이 안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혁신당 의원을 개별로 접촉해 민주당으로 영입할 수 있겠지만 통째로 흡수해 합당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봤다. 한 국민의힘 의원 역시 “이 대표는 배신자로 낙인이 찍혀 다시 당으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며 “당을 떠난 것도 모자라 새로운 둥지를 꾸렸으니 당에서도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양당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 시대를 여는 것을 모토로 한 새미래민주당(이하 새미래)도 지지율이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고군분투하는 모양새다. 이낙연 전 총리라는 거물급 인사를 중심으로 꾸려진 정당이지만 그가 정치 일선에서 물러서면서 급격히 동력을 잃었다.

지난해 9월 유일한 현역 의원이었던 김종민 의원이 탈당하면서 원외로 밀려났다.

새미래도 혁신당과 마찬가지로 한때 민주당과의 합당설이 나왔지만 지난 조기 대선서 이 전 총리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당시 이 전 총리는 “한 사람의 사법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모두 장악하는 괴물 독재 국가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며 지지 배경을 설명했다.

이 전 총리가 우클릭을 시도하자 민주당에서는 “크게 실망했다”는 기류가 이어졌다. 우선 민주당 박경미 대변인은 “권력을 향한 탐욕에 신념과 양심을 팔아넘긴 사람이 괴물이 아니면 무엇이냐”며 “국민에게 총구를 겨누며 헌정 질서를 유린하려고 한 독재 세력과 결탁해놓고 독재를 우려하느냐? 온갖 궤변으로 자신의 내란 본색을 정당화하는 모습이 참으로 뻔뻔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금은 이재명 시간” 받아들인 한계
거대 양당에 가려져도 ‘지선’ 노린다

비명(비 이재명)계인 박용진 전 민주당 의원도 “이 전 총리가 괴물 독재 국가를 막기 위해 김문수 후보와 손잡는다고 하셨는데, 계엄으로 내란을 실행하려 했던 괴물 독재 잔당 세력과 손을 잡으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 완전히 길을 잃으셨다”고 꼬집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이 전 총리는 정치 1선에 서는 대신 SNS를 통해 지지자들과 소통을 이어왔다.

최근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이 전 총리는 “인생과 사회, 국가와 세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저의 공부와 사색과 경험을 여러분과 나눌 것”이라며 “주제를 특정 분야로 묶어놓지 않고, 여러분과 국가에 도움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말씀드리겠다. 온라인·오프라인을 통해 여러분과 즉석에서 묻고 답하는 시간도 갖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정치판에 복귀할 가능성은 적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지금은 ‘이재명의 시간’일뿐더러 노선을 잃은 새미래가 다시 도약하기에는 당을 향한 국민의 관심도가 다른 군소 정당보다 현저히 낮다는 설명이다.


정치 스펙트럼에서 가장 왼쪽을 맡은 진보당은 내년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고대하고 있다. 진보당은 매번 선거 때마다 선거 지역을 찾아 담배꽁초를 줍고 농촌 일을 돕는 등 바닥 민심 훑기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2022년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1명 ▲광역의원 3명 ▲기초의원 17명 등을 당선시키는 기록을 세웠다. 이후 재보궐선거에서는 ▲광역의원 1명 ▲기초의원 1명이 추가로 당선됐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해 “광역단체장을 반드시 포함한 지방자치단체장을 최소 5곳 이상에서 당선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경기도지사 후보군으로 이름을 올린 진보당 홍성규 대변인은 경기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돌봄 3법 제정’을 주장하는 등 지방선거를 위해 몸풀기에 나섰다는 관측도 나온다.

생활 밀착형으로 특정 선거에서 강하지만 전국으로 확대되기 어렵다는 게 진보당의 가장 큰 단점이다. 현재 4석인 진보당은 기본소득당(1석), 사회민주당(1석)과 마찬가지로 비교섭단체인 군소 정당의 현실에 부딪혔다.

묵묵히

한 군소 정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나 “지금은 이재명의 시간”이라며 확장성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각자 자리에서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구석구석을 살피는 게 우리 일인데 아무래도 국민의 관심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그러다 보니 점점 존재감이 흐려지고, 존재감이 미미하니 중앙 정치에서 밀리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양당제인 한국의 정치 제도에서 제3지대를 향한 표는 사표가 된다. 군소 정당에 한 표를 던지려다가도 내가 싫어하는 당의 후보가 당선되는 걸 막기 위해 큰 정당으로 손이 간다”며 “춥고 배고프지만 지지자와 당원들이 남아 있는 한 제3지대는 계속해서 굴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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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