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판박이’ 일본 자민당 본색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10.20 13:38:12
  • 호수 15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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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지진’ 흔들리는 열도 보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일본 자유민주당이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를 선출하자, 연정 상대 공명당은 연정 탈퇴를 선언했다. 자유민주당의 위기는 우익 포퓰리스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남긴 문제점으로부터 비롯됐다. 자유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같은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1999년 10월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과 연정을 구성한 이후 자민당의 오랜 파트너였던 공명당이 지난 10일, 연정에서 탈퇴했다. 자민당과 공명당의 균열은 지난 4일,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가 선출된 이후 불거졌다. 불과 6일 후 공명당이 실제로 연정에서 이탈하면서, 지난 15일 예정됐던 일본 총리 선거는 오는 21일로 연기됐다.

이대로
정권교체?

자민당이 일본 정계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때 이 선거는 자민당 신임 총재가 신임 총리로 인준되는 형식적인 선거였다. 하지만 자민당·공명당 연합은 지난해 10월 제50회 중의원 총선거와 지난 7월 제27회 참의원 통상선거에서 연이어 참패해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만을 얻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지난해 11월 중의원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시 총리로 취임했다. 이는 야권의 묵인이 있어 가능했다. 공명당까지 이탈한 상황에서 자민당 총재가 곧바로 총리로 취임하긴 어려웠다.

중의원 27석을 보유한 원내 4당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지난 10일, 총리직 도전을 선언했다. 중의원 148석을 보유한 원내 2당 입헌민주당은 “다마키 대표를 새 총리로 지지할 수 있다”면서 호응했다.


국민민주당은 지난 2020년 구 입헌민주당·구 국민민주당 등이 합당해 현 입헌민주당을 구성하는 데 반대하면서 창당됐다. 따라서 입헌민주당의 다마키 대표 지지 의사는 정권교체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야권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제기될 당시 돌았던 시나리오에 따라 일본 야권의 연합이 언급됐을 때의 구도에 따라 ▲입헌민주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 ▲공명당의 중의원(전체 465석) 의석 보유 수를 합치면 235석이다. 만약 이들이 모두 뭉치면, 자민당은 2009년에 이어 또 정권을 잃을 수도 있었다.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가 지난 10일 연정 탈퇴 후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공명당이 다카이치 총재에게 요구한 연정 유지 조건은 ▲자민당 내 비자금 및 연루 의사 정리 ▲정치자금 제도 개선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 ▲과도한 외국인 배척 반대 등이었다.

이는 모두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지난 2022년 사망하기 전까지 당을 지배한 여파로 불거진 문제들이었다. 자민당 정치인들은 파티를 개최해 모금한 정치자금을 보고서에 정직하게 기재하지 않았다. 이에 지난 2022년 공산당에서 처음 문제를 제기했고, 이 문제를 조사한 가마와키 히로시 고베가쿠엔대학 교수가 도쿄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한 후 <요미우리신문>이 2023년 11월 보도하면서 수면 위에 올랐다.

이후 자민당은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이끄는 지공회를 제외한 모든 당내 파벌을 형식적으로 해체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후속 대책은 뜨뜻미지근했다. 자민당 내에서 탈당 권고가 내려진 의원은 불과 2명이었고, 그 외 연루 의원들은 ▲당원 자격정지 ▲당무 정지 ▲계고 등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다카이치 총재는 자민당 내 파벌 중 가장 많은 연루자가 나온 세이와정책연구회(이하 아베파)의 핵심이자 아베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됐다. 또 다카이치 총재는 정치자금 관련 논란의 핵심이었던 하기우다 고이치 의원을 당 간사장 대행으로 기용했다.

‘아베 후계자’ 등장 “연정 파기” 선언
공명당 조롱한 아소 다로 영향력도 여전


아베파는 오랫동안 극우 정치 논란을 일으켰던 당내 보수 방류 핵심 파벌이었다. 포퓰리즘에 치중해 극우 정치 논란까지 이어졌다. 아울러 다카이치 총재는 ▲이민 규제 강화 ▲영주권 규제 강화 ▲외국인 부동산 매입 규제 ▲경제 안보법 강화 ▲엄격한 난민 심사 등 외국인 관련 정책을 드러냈다.

공명당은 불교 계열 일본 신흥 종교 창가학회를 배경으로 창당됐고, 평화주의를 주장한다. 따라서 공명당은 연정 유지와 관련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와 과도한 외국인 배척 반대를 협상 조건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갈등의 핵심은 역시 돈이었다.

다카이치 총재와 사이토 대표는 당수 회담을 진행하면서 협상했다. 다카이치 총재가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던 요구 조건은 정치자금 문제였다.

자민당 일각에선 “공명당의 요구를 수용하면, 지방의원들이 대표로 있는 자민당 지부에서 기부금을 받지 못하고, 지역 내 자민당의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공명당은 “자민당의 정치자금 논란 때문에 득표가 줄어 큰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실적 이해득실 문제가 첨예하게 달라 양당은 결국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또 공식적으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공명당에 제일 치명적이었을 문제는 자민당 및 아베 전 총리 일가와 통일교의 오랜 밀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공명당이 창가학회 기반 정당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연정 상대의 핵심 구성원이 다른 종교와 밀착해 정치적 이익을 주고받은 사실이 확인됐고, 전직 총리 암살 사건으로까지 연결됐다.

공명당으로선 명분상으로라도 가만히 두고 보기 어려웠을 개연성이 있다.

공명당이 선호했던 자민당 총재 후보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하 농림상)이었다. 고이즈미 농림상은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기조를 이어받아 무파벌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자민당 내 파벌 정치에 약했던 이시바 총리가 당선되는 과정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 당시엔 선거대책위원장이었기 때문에 그는 패배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빠른 중의원 해산 결단 덕분에 더 큰 패배를 막을 수 있었다”는 일각의 평가도 있었다. 이시바 총리에게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던 사람은 바로 고이즈미 농림상이었다.

사이토 대표는 연정을 파기한 후에도 고이즈미 농림상에 대해선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다. 사이토 대표는 지난 10일 연정 파기 후 NHK와의 인터뷰에서 “고이즈미 농림상과는 정치자금 관련 규제 강화와 관련해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베파’
핵심 파벌

고이즈미 농림상도 같은 날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공명당과 고이즈미 농림상의 반응은 다카이치 총재를 더욱 궁지로 몰려는 조치로 이해됐다.


반면 다카이치 총재는 당직 인선에서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이끄는 지공회 인사들도 발탁했다. 아소 전 총리는 부총재를 맡았고, 스즈키 슌이치 전 재무상은 간사장으로 발탁했다. 평소 망언 제조기로 유명한 아소 전 총리는 공명당에도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지난 2023년 9월 후쿠오카 강연 도중 공명당 간부들을 일컬어 “가장 움직이지 않는 암적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가 공명당을 비난했던 이유는 “공명당이 일본 정부의 반격 능력 보유 방침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었다. 공명당의 연정 파기엔 지공회 인사 발탁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공명당과의 결별은 자민당에 큰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였다. 공명당이 자민당에 소중한 파트너였던 핵심 이유는 종교 정당 특유의 조직력이었다. 공명당의 조직력은 선거에서 당 규모 이상의 영향력을 보여줬다. 자민당과 공명당은 서로의 후보가 출마한 지역구엔 공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자민당도 공명당 특유의 조직력에 많은 덕을 봤다.

공명당의 연정 탈퇴 선언 이후 일본 정계에선 다양한 이합집산 시나리오가 거론됐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시나리오는 야권이 모두 뭉쳐 정권을 차지하는 방안이었다. 지난 1993년 제40대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자, 7개의 야당이 뭉쳐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를 필두로 한 내각을 출범시켜 정권을 차지했던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각료 배분 문제부터 원활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결국 호소카와 내각과 후임 하타 쓰토무 내각은 합쳐서 불과 1년도 이어지지 못했다. 다마키 대표는 원내 4당 대표라서 설령 총리가 되더라도 스스로 탈당했던 입헌민주당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다.


계엄 이후
난맥상 비슷

이합집산에 따른 조율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 당시처럼 정권교체의 흐름이 오랫동안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다카이치 총리 취임을 방치한 후 여소야대 정국 속 자민당의 몰락을 유도해 완전히 정권을 접수하자”는 구상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다카이치 총재가 총재직만 유지하고, 이시바 총리가 유임하는 일명 ‘총총 분리’ 가능성도 거론됐다. 문제는 “이시바 총리가 이를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이었다. 의원내각제 정치 체제에서 집권당 수장이 아닌 총리의 위상·영향력이 얼마나 낮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이시바 총리로선 현재 자민당의 난맥상이 아베·아소 전 총리로부터 비롯된 것이라서 할 말이 많았다. 두 전직 총리는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취임 이후부터 사실상 상왕으로 군림하면서 자민당의 현재 난맥상을 만들었다. 자민당에서 형식적으로라도 파벌을 해체할 당시, 이에 홀로 불만을 품고 협조하지 않아 여전히 지공회 수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도 아소 전 총리다.

다카이치 총재가 사퇴하고, 이시바 총리가 두 직책 모두 유임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당시 이시바 총리는 이미 사임 의사를 밝혔다. 게다가 당내 영향력이 미약해 아베파·아소파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당내 혼란의 여파를 내각 지지율 하락으로써 홀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도 여전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 외에도 다카이치 총재 사퇴 후 고이즈미 농림상이 새 총재가 돼 총리 선거에 출마하는 구상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다카이치 총재의 사퇴를 전제로 하는 구상은 다카이치 총재의 정치적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자민당이 처한 현 상황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 드러난 난맥상과 비슷하다. 다카이치 총재가 선출된 것 자체가 국민의힘에서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정치인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쌍권 체제’ 출범 ▲강경 보수 성향 김문수 전 대선후보 선출 ▲강경 보수 세력의 지원으로 장동혁 대표 선출 등 흐름으로 이어진 것과 비슷하다.

특히 다카이치 총재는 아베 전 총리의 핵심 측근이었다. 마치 권 전 원내대표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나 당 대표로 선출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자민당·국민의힘 모두 통일교 밀착 의혹
과도한 우익 포퓰리즘도 선거 연패 이유

양당의 문제점을 드러낸 핵심 요소가 통일교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3대째 통일교와 밀착했단 사실이 밝혀진 아베 전 총리는 통일교에 과도하게 몰두한 어머니로 인해 피해를 본 야마가미 데쓰야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권 전 원내대표는 통일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혐의로, 한학자 통일교 총재도 지난달 구속됐다. 국민의힘과 통일교의 밀착 의혹은 여전히 김건희 특검의 핵심 수사 내역으로 통하고 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 등 장외에서 강경 보수 집회를 주도하는 세력과도 명백하게 절연하지 못하고 있다.

양당이 당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아베 전 총리와 윤 전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해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아베 전 총리 사망 이후 자민당은 연이어 선거에서 패배했고, 공명당이 연정에서 탈퇴해 정권을 빼앗길 위험에 처했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구속된 여파는 국민의힘도 함께 치르고 있다. 대선 패배에 이어 수시로 정당해산심판 회부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당내 의원 상당수는 3대 특검(김건희·내란·채 상병)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도 자민당과 국민의힘은 과거와 제대로 절연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자금 문제를 직접 이유로 공명당으로부터 탈퇴 선언을 들은 것처럼, 김건희 특검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명태균 게이트 연루 관련 수사도 이어나가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와 이시바 총리가 아베파·지공회와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그들의 압박·뒷감당에 시달리다가 사퇴를 선언했다는 것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이들과 고이즈미 농림상은 중도층을 설득할 능력을 갖추고 있고, 공명당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하지만 이들은 당내 강경파의 영향력을 이기지 못해 사퇴·총재 선거 낙선이란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국민의힘에서도 탄핵에 찬성한 정치인은 대선후보·당 대표 경선서 연이어 낙선하는 등 구상했던 당내 혁신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진보 대결이 명확한 정치 구도에선 중도층 설득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강경파는 선명 노선을 주장하면서 정치적 순혈성을 강조한다. 이는 당내 외연 확장을 차단하면서 강경파만 득세하는 정당으로 축소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을 잡아 당의 이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이다. 현 상황은 정당의 존재 목적 자체가 흔들리는 불상사로 이어질 수 있다.

중도층 설득
대단히 중요

아베 전 총리는 우익 포퓰리스트였다. 국민의힘 주변을 휘감는 강경 보수 유튜버도 포퓰리스트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장 대표는 그들의 도움으로 대표가 된 후 그들과 명확하게 절연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강성 포퓰리즘은 중도층의 비호감으로도 연결된다.

국민의힘이 정권을 잃었듯이 자민당도 정권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 당을 뿌리까지 장악한 강경 보수와 토착 세력은 혁신을 방해한다. 국민의힘에선 더는 당 혁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다카이치 총재는 공명당의 연정 탈퇴를 눈앞에 두고도 정치자금 문제 정리를 분명하게 선언하지 못했다. 다카이치 총재는 강경 보수 성향 일본유신회와 연정 합의를 통해서 오는 21일 총리 취임이 확실시된다. 다만 부패와의 절연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부패와의 절연은 보수 세력의 시대적 과제일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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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