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일본 첫 여성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

‘여자 아베’ 한국 어떤 영향?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일본 정치사 140년 만에 첫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여자 아베’로 불리는 다카이치 사나에다. 강경 보수 노선을 계승한 그의 등장에 한·일관계에 적신호가 켜지며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다카이치 사나에 총재가 지난 21일 국회에서 제104대 일본 총리로 선출됐다. 일본이 1885년 내각제를 도입한 이래 14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140년 만에
처음 탄생

이날 오후 열린 임시국회 중의원 본회의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총리 지명 투표에서 재적 의원 465명 중 237표를 얻어 과반을 넘기며 1차 투표에서 당선을 확정 지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나루히토 일왕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새 내각을 공식 출범시켰다.

이번 선출로 그는 일본 정치사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총리 취임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당권을 잡았지만, 26년간 연정을 유지해온 공명당이 정치자금 문제를 이유로 연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집권 기반이 흔들렸다.


여소야대의 국회 구도 속에 자민당 단독으로는 과반 확보가 어려워 총리 선출이 불투명했다. 일각에서는 국민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당 연합이 논의되며 2012년 이후 처음으로 비(非)자민당 출신 총리가 탄생할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정국은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가 연정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급변했다. 유신회는 연정 참여 조건으로 ▲오사카 부(副)수도 구상 추진 ▲사회보험료 인하 ▲비례대표 중심 중의원 10% 감원 등 자체 핵심 정책을 수용할 것을 요구했고, 자민당은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양당의 의석은 총 231석으로, 이전 자민·공명 연정 당시보다 10석가량 늘어나면서 정국 안정 기반이 마련됐다. 국회 표결은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진행됐다.

중의원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넘겨 결선 없이 통과됐으나, 참의원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에 1표 부족한 123표를 얻었다. 결선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재는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를 125대 120으로 누르고 최종 지명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1961년 3월7일, 일본 나라현 나라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토요타 계열의 기계회사에서 근무했고, 어머니는 현직 경찰관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세습 정치인이 주류를 이루는 일본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비(非)세습 출신이다. 유년 시절에는 비교적 엄격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저서에 따르면, 그가 성적이 98점을 받았다고 해도 어머니는 “이런 실수를 하는 사람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도 실패한다”고 꾸짖을 정도로 완벽주의자였다고 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후 “그런 환경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보다 예체능과 기계에 더 흥미가 많았다. 초등학교 때 이웃에 살던 음악대학생 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에 눈을 떴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하드록과 메탈 음악에 빠졌다.


영국 밴드 ‘딥 퍼플(Deep Purple)’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록 밴드를 결성해 드럼을 쳤다. 반항심이 강하고 자유로운 성격으로, 수업을 빼먹고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다카이치 총리가 진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반대가 있었다. 1979년 수험생이던 다카이치 총리는 도쿄의 사립대학인 와세다대와 게이오기주쿠대에 합격했으나, 부모는 “여자에게는 돈을 쓸 수 없다”며 진학을 반대했다. 결국 그는 집과 가까운 국립 고베대학 경영학과로 진학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훗날 “당시 일본 사회는 남존여비적 분위기가 강했고, 여성이 도쿄로 유학해 사회로 진출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자국의 전몰자 추도 당연”
뭇매에도 신사 참배 강행

고베대 재학 중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며 대학 생활을 보냈고, 가와사키의 Z400 모델을 즐겨 탔다. 통학에만 왕복 6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오토바이 외에도 드럼, 자동차, 스쿠버다이빙 등 활동적인 취미를 즐겼다.

1984년 고베대학을 졸업한 다카이치 총리는 같은 해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경영 사관학교인 ‘마쓰시타 정경숙’에 입학했다. 파나소닉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설립한 이 기관은 ‘국가를 책임질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운영됐으며, 일본 정치인의 등용문으로 불린다.

다카이치는 입학 동기 중 유일한 여성으로,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실습 과정에서 직접 “전구를 갈아드리겠다”며 세탁기와 TV를 팔기도 했다. 마쓰시타는 그에게 “국가 경영의 이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고, 그는 이 철학을 정치 인생의 기반으로 삼았다.

1987년 그는 미 연방의회 연구원(Congressional Fellow) 자격으로 워싱턴 D.C.의 패트리샤 슈뢰더 당시 민주당 하원의원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당시 슈뢰더 의원은 대일 강경파로 유명했으며, 미·일 무역 마찰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이 경험은 다카이치 총리에게 외교 감각을 익히는 계기가 됐다. 1989년 귀국 후에는 일본경제단기대학 국제경영론 전임 교수를 지냈고, 이후 아사히TV와 후지TV 방송에 출연하는 등 정치 평론가로 얼굴을 알리고 앵커로 활동했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건 1992년부터였다. 제16회 참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다음 해 중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32세로,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는 이례적인 행보였다.

1996년 자민당에 입당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1998년 오부치 게이조 내각에서 통상산업정무차관으로 입각했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서는 경제산업부대신을 맡으며 중앙정치 무대에서 입지를 다졌다.

2006년 출범한 제1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내각부 특명담당상으로 첫 입각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와는 1993년 국회 입성 동기로,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의 모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지지하는 모임’ 등 보수 성향 모임에서 함께 활동하며 정치적 교류를 이어왔다.


아베 총리의 궤양성 대장염으로 인한 사임 이후 그와 잠시 정치적 거리를 뒀으나, 제2차 아베 내각 출범과 함께 핵심 측근으로 복귀했다.

이 시기부터 그는 ‘여자 아베’로 불렸다.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총무상 등을 맡으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책 노선을 충실히 계승했다. 총무상으로 재직한 기간은 통산 4년에 달하며, 이는 역대 최장 기록이다. 그는 재임 중 방송의 공정성 문제를 언급하며 “편향된 방송이 지속될 경우 전파 이용 정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발언해 논란을 낳기도 했다.

강경 보수파
우향우 가나

정치적 성향 면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자타공인 ‘강경 보수파’다. 그는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군사력 강화,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 등을 주장하며 아베 신조 전 총리의 국가안보 노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또 사회보험료 인하, 오사카 부수도 구상 등 일본유신회가 추진하는 지역균형 정책에도 협력적인 입장을 보였다.

2021년과 2024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경제안전보장’을 내세워 기술력 보호와 안보 연계를 강조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파 해체 이후에도 전 아베계 의원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자민당 내 보수 결집의 구심점이 됐다. 기시다 내각에서 경제안보담당상으로 재입각한 뒤에도 “국가의 주권과 기술 자립은 일본의 생명선”이라며 국가 중심 경제정책을 강조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정치적 롤모델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다. 젊은 시절부터 대처를 ‘정치적 스승’으로 여겨 자서전을 여러 번 읽었고, 실제로 대처와 직접 만난 적도 있다.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파란색 정장과 진주 목걸이를 착용하며 대처의 스타일을 따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언론은 그를 “일본의 철의 여인”이라 불렀고, BBC 역시 “대처를 닮은 일본의 첫 여성 총리 후보”로 소개했다.

다카이치 총리 하면 남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다카이치 총리의 남편인 야마모토 다쿠 전 중의원 의원은 일본 정치사상 첫 ‘퍼스트 젠틀맨’이 됐다. 후쿠이현 출신으로, 1990년 첫 당선 이후 8선을 지낸 중견 정치인이다. 오랜 의정활동 동안 농림수산 부대신, 자민당 부간사장 등을 지내며 정책통으로 이름을 알렸다.

다카이치 총리와의 인연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다카이치 총리의 비서가 야마모토 의원 사무실로 옮긴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서로의 정치 철학과 생활 태도에 공감대를 쌓으며 가까워졌다.

야마모토는 1년여 만에 다카이치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한다면 내가 후보가 되겠다”며 청혼했고, 결혼까지 하게 됐다.

야마모토는 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평생 맛있는 것을 먹게 해주겠다”는 말로 프러포즈했다고 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훗날 자신의 SNS에 “처음엔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결혼 후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적기도 했다.

두 사람은 2017년 한 차례 이혼했지만, 2021년 재결합했다. 정치적 견해 차이가 원인이었다. 당시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야마모토는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를 지지했다. 총재 선거에서 상반된 선택이 부부 관계에 균열을 만들었지만, 4년 뒤 다카이치 총리가 다시 총재 선거에 출마하자 야마모토가 전면적으로 지원에 나섰다.

비세습 출신
앵커 정치인

재혼 후에는 남편이 성을 ‘다카이치’로 변경해 법적 이름이 ‘다카이치 다쿠’가 됐다. 일본 부부는 같은 성을 써야 한다는 민법 조항에 따라 정해진 결과였다.

당시 이 결정은 일본 사회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여성의 이름을 남편이 따르는 사례는 전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야마모토는 “다카이치가 사회적으로 활동할 때 본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남편이 그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부부가 각자의 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제안한 적이 있지만, 현행 법률 개정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부부는 법적으로 같은 성을 사용하면서도, 공적 활동에서는 각자의 성을 사용하기로 절충했다.

야마모토는 오랜 정치 경력에도 불구하고, 다카이치가 총리에 오르기 전부터 일관되게 조용하게 지원해주는 역할을 자처해 왔다.

지난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재활 치료 중에도 다카이치 총리의 일정과 주요 연설문을 챙겨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총리 선출 직후 인터뷰에서 “아내가 일본의 첫 여성 총리가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퍼스트 젠틀맨으로서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든든히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총리의 배우자가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스텔스 남편’이 되겠다는 말을 남겼다.

실제로 다카이치 총리는 일정 대부분을 혼자 소화한다. 그는 “남편의 존재가 아내의 정치 행보에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야마모토는 최근 인터뷰에서 “정치인 다카이치 사나에는 누구보다 완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며 “비판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언급했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여러 자리에서 남편을 “가장 믿을 수 있는 조언자”로 소개하며, 총리 취임 이후에도 돈독한 관계를 보여줬다.

“이 대통령과 회담 희망”
한일 관계 중요성 강조

한편, 다카이치 총리는 한국에서 이미지가 좋지 못한데, 그 이유는 역사 의식에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각료 재직 시절부터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정기적으로 참배해 왔다. 지난 8월15일 종전 80주년 기념일에도 예외 없이 신사를 찾았다.

다카이치 총리는 기자단의 “한국이나 중국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각국이 자국의 전몰자를 추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외교 문제로 비화될 사안이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서로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는 세계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 한국과의 문제에서 항상 강경한 태도를 보여왔다. 1994년 초선 의원 시절,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가 일본의 침략 전쟁에 대해 사죄하자 “50년 전 지도자가 한 일을 잘못이라 단정하고 사과할 권리가 총리에게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무엇을 근거로 침략이라고 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면 일본을 대표해 사과하는 건 곤란하다”고 주장해 보수층의 지지를 얻었다. 이후에도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며 “침략이라는 단어는 일본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말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 A급 전범이 합사된 신사에 대해 그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정치인의 책무”라고 주장해 왔다. 다만 총리 취임 직후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과 외교 일정을 의식해 공물만 봉납하며 한발 물러섰다.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외교적 파장을 고려한 현실적 선택”이라 해석했다. 독도에 관해서도 다카이치 총리는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정부 대표를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주장해 한국의 반감을 불러왔다.

중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국에 대해서도 “군사력 확장은 위협”이라며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 이에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 산하 <뉴탄친>은 다카이치를 “여성판 트럼프”라 부르며 “중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일삼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중국 외교부는 그의 취임에 공식 축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고, 같은 날 볼리비아 신임 대통령에게만 축하를 전했다. 반면 미국은 환영 일색이다.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은 “미·일 동맹을 강화하길 기대한다”고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도 “지혜와 강인함을 갖춘 지도자”라며 칭찬했다.

여성판
트럼프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일본의 중요한 이웃이며, 미래지향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김을 좋아하고, 한국 화장품도 사용한다”며 친근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또 “이재명 대통령과 조기 회담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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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