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구 요양병원 환자 사망 미스터리

팔 부러뜨리고 방치…결국 죽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수년 전 쓰러진 이후 의식을 찾지 못했기에 ‘언젠가’라고는 생각했지만 ‘지금’이 될 줄은 몰랐다. 유족은 고인이 입소해있던 요양병원의 관리 부실을 문제 삼았다. 그날, 요양병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구에서 학원 강사 일을 하던 송경희씨가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진 건 2021년 12월8일. 당시 경희씨는 심한 두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지인과의 카카오톡 대화방에도 ‘약을 먹었는데도 머리가 너무 아프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있었다. 당시 38세였던 경희씨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간호사가…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2~3번의 수술을 받은 이후 경희씨는 재활병원에서 2년을 지내다 요양병원에 입소했다. 지주막하출혈로 뇌가 손상돼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사망 전 마지막으로 머물던 대구의 C 요양병원에 입소한 시기는 지난해 4월이다. 경희씨의 어머니가 막내딸과 가까운 거리에 있기를 원해 집 근처로 정했다.

유족에 따르면 경희씨의 상태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의식이 돌아올 기미는 없었지만 죽음이 임박할 정도의 상황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희씨는 지난 6일 오전 4시경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사망했다. C 요양병원에서 상급병원인 N 병원으로 옮겨지고 10일째 되던 날이었다.

향년 43세, 투병 생활을 시작한 지 4년여 만이었다.

갑작스럽게 딸이자 동생을 잃은 유족은 C 요양병원에서 일어난 일이 경희씨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경희씨의 팔이 골절됐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유족에게 뒤늦게야 알렸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C 요양병원이 팔이 부러진 경희씨를 방치하는 사이 상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11일 대구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경희씨의 언니 송모씨는 “그 일(골절)이 없었다면 동생은 지금도 살아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진단서와 소견서, 사망진단서 등을 꺼내 보였다. 그와 함께 경희씨가 사망하기 전 상황을 적은 기록도 내밀었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동생의 죽음이 미심쩍어 이리저리 움직인 결과물이었다.

송씨가 전원 직후 N 병원에서 뗀 진단서에 따르면 경희씨는 상완골(어깨에서 팔꿈치까지 이어지는 긴 뼈)이 부러졌다. 폐쇄성 골절로 뼈가 부러졌지만 피부나 점막은 찢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N 병원 의사는 “수술적 치료가 필요함”이라고 진단했다.

경희씨의 팔이 부러진 시기는 지난달 23~24일로 추정된다. C 요양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골절이 확인된 건 지난달 24일이다.

지주막하출혈로 의식 없이 4년
큰 병원 옮기고 열흘 만에 숨져

하지만 C 요양병원 병원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골절이 일어난 시기와 원인에 대해서는 확답하지 않았다. 간호사가 경희씨의 팔에 수액을 놓으려다가 골절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있지만 확실한 원인으로는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반면 유족은 지난달 23일에 경희씨의 팔이 부러졌다고 주장했다. 의료진이 주사를 놓는 과정에서 경희씨의 팔을 세게 잡아당겨 부러뜨렸다는 것이다. 송씨는 “간병인인지, 간호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면회 갔다가 팔에서 ‘뚝’ 소리가 난 뒤에 동생 얼굴이 벌게졌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유족이 문제 삼은 부분은 또 있었다. 바로 전원 시기다. 경희씨가 N 병원으로 옮겨진 건 지난달 28일로, 팔 골절이 확인된 때(지난달 24일)와 닷새나 차이가 있다. 유족의 주장대로 지난달 23일에 팔이 부러졌다면 6일 만에야 상급병원으로 이송된 셈이다. C 요양병원의 환자 방치 의혹이 불거질 수 있는 대목이다.

송씨는 “우리가 화가 나는 건 팔이 부러진 것도 그렇지만 C 요양병원의 후속 조치다. 팔이 부러진 게 확인된 직후 정형외과가 있는 병원이나 큰 병원으로 옮겼으면 분명 살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족에 따르면 경희씨가 N 병원에 옮겨져 검사한 결과 염증 수치와 간 수치가 높아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한다.

송씨는 “(7월)24일에 동생 팔이 골절됐으니 병원에 와서 (의사와) 면담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25일에 엄마가 찾아갔더니 주치의가 점심 먹으러 갔다고 해서 기다리다가 돌아왔고, 26일에는 주치의가 쉬는 날이라고 해서 만나지도 못했다. 골절됐다는 사실만 알았지, 동생의 상태가 심각한지 어떤지 정확한 내용을 몰랐다. 그러다 월요일인 28일에야 그것도 사무국장이 (주치의에게) 바꿔준 전화로 동생 상황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고 허탈해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송씨와 사무국장, 주치의 등 3자간 통화는 28일 오후에 이뤄졌다. 주치의는 송씨가 “(동생의 팔 골절이) 실금 정도인지”를 묻자 “폐쇄성 골절”이라면서 “그대로 두면 뼈 끝이 신경도 찌르고 혈관도 찌르고 근육도 찌르기 때문에 일단 응급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또 “수술이 필요한 상황 아니냐”는 송씨의 질문에는 “이런 경우에는 수술해야 하는데 송경희씨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기에 정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종합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고 그다음에 수술하든지, 수술은 위험하다든지 진단을 받아봐야 한다”고 답변했다.

유족이 경희씨의 상태와 의료적 조치의 필요성을 주치의에게서 처음 들은 순간이다.

실제 송씨는 “그 얘기를 왜 오늘에서야 하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주치의는 “여태까지 보호자를 만나려고 내가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보호자가 안 와서 내가 말을 못했지” “저는 만나려고 했는데 보호자가 없어서 이야기를 못했을 뿐”이라는 등의 말을 했다.

이후 송씨가 경희씨의 전원을 결정하고 사무국장이 병원을 수배하겠다고 했다. 경희씨가 N 병원으로 옮겨진 건 28일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골절 닷새 만에 자세한 설명
관리 부실로 ‘욕창’ 심해져

C 요양병원 병원장은 “병원과 송경희님 보호자 사이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일 처리나 진행이 미흡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송경희님의 (팔) 골절이 원내에서 발생한 건 맞다. 우리가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송경희님의 강직 상태가 굉장히 심해서 간병이나 의료적 처치를 하다가 골절될 수도 있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송경희님의 팔이 부러진 시기를 특정할 수 없는 건 육안상으로는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 가운데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있고, 송경희님처럼 거동이 어려운 분들은 골절이 발생해도 수술할 수 없는 때도 있다. 그 경우 보호자가 그냥 있겠다고 결정하기도 한다”고 부연했다.

경희씨의 죽음이 골절과 관계 있다는 유족의 주장에 대해서는 “유족의 마음을 심정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골절과 사망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팔이 골절되기 전에도 경희씨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병원장은 “우리 병원에 입소한 뒤에도 폐렴과 패혈증으로 한두 번은 정말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컨디션이 계속 안 좋았다”고 설명했다.

유족은 학대 의혹도 제기했다. 송씨는 “동생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간병인,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번에 팔이 부러진 것처럼 동생을 함부로 다룬 게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N 병원에 갔을 때 간호사로부터 ‘욕창이 너무 심하다’는 말도 들었다”고 주장했다.

병원장은 “(송경희님이) 강직이 심하고 컨디션이 안 좋으니 의학적으로 필요한 처치를 하거나 간병할 때 골절이 발생할 수 있는 상태”라고 거듭 말하면서 “(학대는) 절대 아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코로나19 이후 면회가 자유로워지면서 병실에 보호자가 왔다 갔다 하기에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욕창에 대해서도 “입소할 때부터 욕창이 있었고 강직이 심해 체위 변경도 어려워 좀 더 진행됐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송씨는 “동생이 죽고 병원에 여러 번 연락했는데 답이 없었다. 심지어 장례 첫날 상복을 입고 찾아갔을 때도 병원 관계자를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 언론 취재가 시작되니 이제야 계속 만나자고 전화가 온다. 내가 만나자고 했을 때 찾아와서 병원 과실을 인정하고 자초지종을 차근차근 말했으면 이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소통 오류”

그러면서 “동생이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얼굴이 많이 망가졌다. 강직도 심해서 자세도 뒤틀린 상태였고. 그런데 입관할 때 보니까 장례지도사님이 곱게 화장도 해주고 자세도 바르게 펴주셨다. 쓰러지기 전 얼굴이 보이더라. 동생 얼굴이 편안해 보여서 그나마 위안이 됐다”면서 “지금은 사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 놓아버린 느낌”이라고 허탈하게 웃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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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