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53)지하 감옥의 끝없는 메아리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5.26 03:00:00
  • 호수 15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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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사장은 눈을 부라리며 명령했다. 아이는 이를 앙다문 채 내리치려는 것 같았으나 마치 팔이 마비되기라도 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사장은 몽둥이를 빼앗더니 용운의 등과 엉덩이를 마구 후려갈겼다.

용운은 피할 생각도 않고 그냥 맞고 있었다.

공동 작전

“너 이 새끼, 이리 와!”


그 아이의 엉덩이는 곧 터져 살과 피가 곤죽이 되었다. 허벅지는 붉고 푸른 구렁이가 지나간 듯 멍이 들고 부풀어올랐다.

“공작!”

사장이 짧게 명령했다. 그것은 을 뜻했다.

그때부턴 누구 하나 사정을 봐주려 하지 않았다. 옆구리가 채였다 싶으면 누군가가 목덜미를 내려쳤고, 코피가 터졌다 싶은 순간 눈두덩에서 번갯불이 일었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봐야 마음뿐이었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주먹과 발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용운은 그대로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고 말았다.

얼마 후 사장이 몰매를 중지시키곤 말했다.


“한 놈은 용서해 주겠지만, 넌 상습범이므로 좀더 고생해 봐. 따라와, 이 자식아!”

용운은 사장에 의해서 본관 지하감방으로 끌려가 갇히게 되었다.

“꼼짝 말고 앉아 반성해, 임마!”

밖에서 문 잠그는 소리와 거의 동시에 용운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만큼의 기력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 난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텅 빈 머릿속에서 그런 소리만 끝없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좁은 지하감방에는 퀴퀴한 악취가 배어 있었다. 햇빛 한 줄기가 그리울 지경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상의 사동(舍棟)은 역시 괴롭긴 했어도 일종의 천당처럼 여겨졌다.

벽 여기저기에 낙서가 새겨져 있었다.

인천 사이다 방문하다.

서울역 앞 양동에서 몸을 팔던 어린 여자애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가난이 죄.


은숙아 보고프다. 사랑도 일종의 아름다운 정신병일까…….

조상님들이여, 어쩌다가 나라를 말아먹었나이까? 아, 망국의 한이여! 1943. 12. 5. 망치. 검찰의 그물엔 피라미는 걸려도 금비늘 잉어는 잘도 빠져나간다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견뎌내자! 독약도 소화시키면 약이 된다.

밤에 용운은 잠들 수가 없었다. 음식물도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배가 고프고 갈증이 심했지만 제대로 누울 공간이 없어 용운은 웅크린 채 이를 물고 견뎌야 했다. 캄캄하고 꽉 막힌 공간은 의식까지도 좁게 조여 왔다.

텅 빈 머릿속 각인
넝마주이 삶 회상


용운은 미칠 것만 같아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눈을 꽉 감아 버렸다.

몽롱한 머리에 문득 거렁뱅이로 떠돌던 한때가 떠올랐다. 용운은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해 자유로웠던 예전의 그 기억이나마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부랑아로 낙인 찍힌 자에게 과연 진정한 자유가 있었던가? 오히려 누명을 쓰고 이 지옥으로 끌려오지 않았던가! 용운은 추억 속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고아원을 탈출한 용운은 다시 거리를 떠돌았다. 그 무렵 가장 흔하던 직업 중의 하나가 넝마주이였다.

서울에만 해도 한 동네에 하나씩은 있다시피 했다. 난지도의 쓰레기장에는 부랑인들이 모인 넝마막들이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늘어서 있었다.

용운은 넝마주이 일을 하기로 했다. 종이 값이 똥값이라 하루 종일 뒤적이며 돌아다녀 봤자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다. 정당하게 작업해서 먹고 살기가 아주 힘들었다.

적당한 물건만 눈에 띄면 사방을 살펴보다 얼른 바구니에 담고는 도망치곤 했다.

어떤 때는 하다못해 한약방 앞에서 말리는 감초 등을 집어 오기도 했고, 설거지하려고 내놓은 그릇이나 좌우간 푼돈이라도 될 만한 것은 마구잡이로 집어왔다.

용운은 그러지 않았다. 무슨 도덕군자라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지랄맞을지 짐작되기 때문이었다.

겨울이면 고기를 실컷 먹게 되었다. 병들어 죽은 개를 쓰레기장에서 주워다 푹 삶아 먹는 것이다. 혹한의 계절은 병들어 떠도는 짐승의 생명을 끊고 그 시체를 부패시키지는 않았다.

막 안에서 절대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었던 조 두목은 측근 몇 명을 위시해 수십 명의 넝마주이들을 거느리고, 그들이 주워온 종이나 깡통 등을 저울로 달아 값을 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쇠푼을 주었다.

몸에 비해 큰 망태를 등에 지고 걷다 보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고향을 떠나 엄마를 잃은 채 이 삭막한 타향 길을 걷고 있을까.

그러노라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지도 모를 이상한 노래가 용운의 입에서 새어 나오곤 했다.

이상한 노래

타박 타박 타박네야 너 어드메 울고 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간다
물이 깊어 못 간단다 물 깊으면 헤엄치지
산이 높아 못간단다 산 높으면 기어가지
명태 줄까 명태 싫다 가지 줄까 가지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우리 엄마 무덤가에 기어기어 와서 보니
빛깔 곱고 탐스러운 개똥참외 열렸길래
두 손으로 받쳐들고 정신없이 먹어보니
우리 엄마 살아생전 내게 주던 젖맛일세……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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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