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뜨는 ‘○세권’

얼마 전까지 ○세권 아파트는 높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최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왜일까?

한동안 높은 인기를 끌었던 ‘반세권(반도체+역세권)’ 일대 집값이 맥을 못 추고 있다. 반도체 기업의 투자 확대로 한때 실수요와 갭투자(전세를 낀 주택 매입) 수요가 몰리면서 관련 지역 집값이 뛰었지만, 부동산시장 침체 속 반도체 기업의 업황 부진, 공급 과잉 등으로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갭투자
몰리다…

최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경기도 평택시 고덕동 ‘호반써밋고덕신도시’ 전용 84㎡는 지난해 12월 6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같은 해 4월에는 7억4000만원까지 집값이 뛰었던 면적대로, 8개월 만에 1억4000만원이 빠진 셈이다.

일대 집값 역시 유사한 흐름이다. 같은 동에 있는 ‘고덕국제신도시파라곤’ 전용면적 71㎡는 지난달 5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6억2400만원까지 거래됐지만, 1년 사이 4000만원이 낮아졌다. ‘고덕국제신도시제일풍경채’ 전용 84㎡도 지난달 6억1000만원에 팔려 지난해 최고가 6억5000만원(5월)보다 4000만원 낮은 수준에 거래가 성사됐다.

경기도 이천시도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가 있는 부발읍 일대 집값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 이천시 부발읍 아미리에 있는 ‘현대성우오스타2단지’ 전용 84㎡는 지난해 11월 4억700만원까지 내려 3억원대를 눈앞에 뒀다. 바로 옆에 있는 ‘현대성우오스타1단지’ 전용 84㎡도 지난해 8월 4억원에 거래됐는데 직전 연도 12월 4억2000만원보다 집값이 더 내려갔다.


SK하이닉스와 맞닿아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이천 시내 집값도 맥을 못추는 것은 마찬가지다. 안흥동에 있는 ‘설봉2차푸르지오’ 전용 84㎡는 지난해 8월 4억7000만원에 거래돼 집값이 4억원대로 내려왔다.

새로 분양한 아파트 가격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평택시 장당동 ‘지제역반도체밸리제일풍경채(2BL)’ 전용 84㎡ 분양권에는 웃돈(프리미엄)이 붙어있는 매물도 있지만, 여전히 무피(웃돈이 없는) 매물과 마피(가격이 분양가를 밑도는) 매물도 꽤 있다.

2026년 입주 예정인 이천시 증포동 ‘이천자이더리체’ 전용 84㎡ 분양권 역시 무피 혹은 마피 매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도체 업황 부진, 공급 과잉…
인기 끌던 ‘반세권’ 수요 급감

이는 경기도 내에서도 가장 많은 수준이다. 경기도청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평택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2497가구 있다. 이천시도 1600가구에 달하고, 오산시 역시 1360가구로 1000가구 이상이다.

집값이 부진하고 미분양 물량이 쌓이는 것은 반도체 업황 악화와 시장 침체 때문이다. 평택, 이천 등은 문재인정부 때인 2019년 반도체 벨트 조성 계획이 나오면서 수혜를 입은 곳이다. 2021년엔 집값 급등기와 맞물려 가격이 치솟으면서 갭투자가 활성화돼 외지인 매매 비중도 높았다.

하지만 이후 잇달아 분양이 이뤄지는 등 공급 물량이 급격하게 늘었고 반도체 업황 악화로 삼성전자 등의 공장 투자 계획 등이 틀어지자 부동산시장 수요도 함께 사라졌다.


평택시 고덕동의 경우 삼성전자가 잘되면 집값이 살아나고, 그렇지 못하면 집값도 빠진다. 삼성전자 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지역으로, 그나마 고덕동은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평택 이외 지역의 경우 수요가 더 없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천시 부발읍은 반도체 벨트 얘기가 나온 이후로 ‘반세권’을 앞세워 집값이 큰 폭으로 올랐고 분양도 꽤 많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장 전반이 침체됐고 대통령 탄핵 얘기도 계속 나오고 있는 만큼 당분간 가격이 회복하고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궁궐 인근에 위치해 ‘궁 이름’을 단 아파트를 칭하는 ‘궁세권’과 호수공원을 품은 단지인 ‘호세권’은 최근 뜨고 있다. 역사적 가치와 쾌적한 자연환경을 모두 갖춘 희소성과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주거 편의성이 맞물리면서 프리미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집값 정체
미분양↑

먼저 궁궐과 가까운 입지는 단순한 공원이 아닌 궁궐의 역사 정원과 자연을 일상 속에서 경험할 수 있어 상징성이 크다. 여기에 궁궐 인근 아파트는 서울 도심서도 중심 입지를 자랑하는 만큼 주거 편의성도 우수하다. 대중교통과의 연계가 뛰어나 우수한 교통 접근성을 제공하고, 직주근접성도 좋으며 업무지구와 상업지구와의 접근성도 탁월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경희궁 자이’는 지난해 10월 3단지 전용면적 84㎡가 20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이는 동일 면적의 입주 초기 가격(2017년 4월, 10억2000만원) 대비 10억원 이상이 오른 가격이다.

‘덕수궁 롯데캐슬’도 지난해 6월 전용면적 82㎡가 15억6900만원에 거래되며, 입주 초기(2016년 9월, 5억6400만원) 대비 10억원 이상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경희궁 롯데캐슬’ 역시 전용면적 84㎡가 지난해 7월 16억6000만원에 거래되며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는 분양가(7억원 후반대) 대비 2배 이상 상승한 금액이다.

분양시장서도 궁궐 인근 아파트에 수요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3월 분양한 경희궁 인근 ‘경희궁 유보라’는 1순위 청약서 57가구 모집에 7089건이 접수되며 평균 경쟁률 124.4 대 1을 기록했다. 특히 전용 59㎡ 타입은 164.2대 1의 최고 경쟁률을 보였다.

호수공원이 인접한 ‘레이크 프론트’ 아파트도 인기가 치솟고 있다. 수요자들의 소득수준 증가와 그에 따른 라이프스타일 변화가 맞물려 보다 품격 있고 쾌적한 주거공간에 대한 니즈가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성성호수공원이 인접한 천안시 서북구 성성동 소재의 ‘천안푸르지오레이크사이드’(2023년 5월 입주) 전용 84㎡는 지난해 12월 6억15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 2020년 7월 분양 당시 책정된 분양가(4억1000만원)와 비교하면 4년여 만에 2억원 이상 급등한 셈이다.

궁궐 인근 위치 ‘궁세권’
호수공원 품은 ‘호세권’

옥정호수공원이 가까운 양주 옥정신도시 일원의 ‘양주옥정신도시제일풍경채레이크시티1단지(2023년 4월 입주)’ 전용 84㎡ 역시 지난해 말 분양가(3억7640만원) 대비 1억원 이상 오른 5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호수공원 인근 아파트는 지역 부동산시장도 앞에서 이끌고 있다. 광교호수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광교중흥S클래스’ 전용 84㎡는 지난해 8월 16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같은 해 국민평형 기준 수원시 영통구 최고가에 해당한다.

세병호를 품은 세병공원이 인접한 ‘포레나전주에코시티’ 전용 84㎡ 역시 지난해 11월 6억5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지면서 전주시 덕진구 아파트 최고가 1위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청약시장서도 호수공원 인근 단지로의 수요 쏠림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청약홈 자료를 보면 지난해 6월 전북 전주서 분양한 ‘에코시티 더샵 4차’는 특별공급을 제외한 354가구 모집에 6만7687명이 몰려 1순위 평균 191.2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지방서 분양한 단지 중 가장 높은 경쟁률로, 세병호를 품은 세병공원 바로 앞에 위치해 호수 조망(일부 가구)이 가능한 점이 인기를 끌었다는 분석이다.

역사 정원
일상서 경험

한 부동산 전문가는 “궁궐 인근 아파트는 역사적 상징성과 도심 속 자연환경, 그리고 우수한 교통망 등으로 인해 지속적인 수요가 예상된다”며 “서울 도심 특성상 공급이 많지가 않고, 그에 따라 희소성은 더 부각되고 있어 앞으로도 부동산시장서 높은 가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호수공원 주변에 위치한 아파트는 쾌적한 주거환경이 구현되는 것은 물론 수변을 따라 조성돼있는 각종 생활편의시설도 쉽게 이용할 수 있어 정주환경이 우수한 것이 특징”이라며 “호수 조망이 확보된 경우 차별화된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는 데다, 대외적으로는 고급 아파트라는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에도 유리한 만큼 수요자들의 선호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분양 중이거나 앞두고 있는 궁세권·호세권 아파트.

▲창경궁 롯데캐슬 시그니처= 롯데건설이 서울시 성북구 삼선5구역 재개발을 통해 선보이는 ‘창경궁 롯데캐슬 시그니처’가 무순위 청약을 실시한다. 이번 무순위 청약은 부적격 세대 또는 중복청약 등의 사유로 발생한 84㎡ 타입 잔여 45가구다. 거주 지역에 상관없이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청약 통장 없이 청약이 가능하다. 단, 청약 신청은 1인 1건만 가능해 2건 이상 청약 시 모두 무효 처리된다. 입주는 2027년 4월 예정.

서울 성북구 삼선동2가에 지하 4층~지상 18층, 19개 동, 총 1223가구의 대단지로 조성된다. 우선 롯데건설의 차별화된 설계가 돋보인다. 남향 위주의 배치와 판상형 맞통풍(일부 타입 제외) 설계를 적용해 개방감과 채광, 통풍을 극대화했다. 드레스룸, 다용도실, 파우더룸 등 공간 활용도를 높인 설계도 특징이다.

또 피트니스클럽, 실내골프클럽, 스크린골프, 스터디룸, 키즈룸, 북카페, 1인 독서실, 게스트하우스 등 최신 트렌드에 부합하는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이 마련될 예정이다.

단지는 중심업무지구로의 뛰어난 직주근접성을 갖춘 입지로 평가받는다. 3~4인 가구 가족단위 수요층의 선호도가 높은 전용면적 84㎡ 타입의 물량이 나오면서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높다. 여기에 정부가 무순위 청약 제도를 빠르면 2월부터 무주택자나 해당지역 거주자만 청약할 수 있도록 변경하는 법안을 발표하기로 밝히면서, 유주택자의 경우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있다.

도보권에 4호선 한성대입구역과 6호선·우이신설선 환승역인 보문역이 자리해 트리플 역세권이란 평가를 받는다. 창경궁, 종묘, 창덕궁, 성북천 분수광장, 삼선공원, 마로니에공원 등이 인근에 있다. 단지 옆에는 낙산공원, 한양도성길 등 다수의 녹지 공간이 있어 도심 속에서도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다. 여기에 도보로 통학 가능한 삼선초, 한성여중, 한성여고, 경동고 외에도 반경 1㎞ 이내 다수의 초·중·고교가 자리해 우수한 교육 환경도 갖췄다.

▲e편한세상 성성호수공원= DL이앤씨는 충남 천안시 서북구 업성도시개발(업성동 일원)에서 호수 조망이 가능한 ‘e편한세상 성성호수공원’을 분양한다. 단지 바로 남측으로 성성호수공원이 위치해 있어 호수공원 조망이 탁월하다. 여기에 단지와 호수 사이에 약 3만여㎡ 규모의 근린공원이, 단지 동측으로는 녹지축이 추가로 조성될 예정이다.

단지 서측으로는 4만여㎡ 성성호수공원 방문자센터가 있는 것을 비롯해 성성호수공원 방문자센터 주변으로도 공원 면적이 확장될 계획이 있어, 단지 동측·서측·남측 삼면으로 약 8만여㎡의 녹지공원 속에서 쾌적한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다.

품격 있고
쾌적한 주거

성성호수공원은 52만8000여㎡ 규모로 기존 업성저수지 수질개선 작업과 수변생태공원 조성사업을 통해 2022년 개장했다. 4.1㎞에 달하는 생태탐방로를 비롯해 자연관찰교량인 성성물빛누리교, 생태체험숲 등 휴식과 문화체험이 가능한 친환경 복합문화공간으로 ‘천안 8경’ 중 하나로 꼽힌다.

입지 여건도 우수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등 각급 학교가 도보거리에 신설 예정이다. 이마트, 코스트코 등 대형마트와 성성지구 내 기 조성돼있는 다양한 생활 인프라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단지 인근 준주거지역에 근린생활시설이 조성된다. 단지 내에도 근린생활시설이 함께 조성돼 입주민들의 편의성을 높일 전망이다.

<webmast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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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