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차기 대선 다크호스 우원식 국회의장

'어대이?' 독주 깰 잠룡 기지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신뢰도 측면서 여야 차기 대선후보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보다 높게 나타날 정도다. 정치권서 우 의장은 조용하고 온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습기살균제와 노동자 인권 문제 등 해결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비상계엄 해제 당시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 담장을 넘었다.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청에 돌입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여야 의원들이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으나 절차를 지키려는 리더십이 빛났다. 30년 정치 인생이 드디어 주목을 받았다는 평가다. 실제 우 의장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높게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빛난 리더십
호감 급상승

한국갤럽이 지난 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계 주요 인물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우 의장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56%로 전체 1위를 기록했다.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6%에 불과했다.

우 의장의 신뢰도는 여야 차기 대선후보나 한덕수 권한대행보다 높았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신뢰한다’ 41%, ‘신뢰하지 않는다’ 51%였고, 한 권한대행은 ‘신뢰한다’ 21%, ‘신뢰하지 않는다’ 68%였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신뢰한다’ 15%, ‘신뢰하지 않는다’ 77%였다.

우 의장은 20대서 60대까지 비교적 폭넓게 신뢰받았으며, 민주당 지지층과 진보층에서는 신뢰의 비율이 81%에 달했다. 이 대표는 40대와 50대서만 신뢰도가 50%를 웃돌고 있지만 그 외 연령대에서는 비신뢰가 더 많았다.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과 보수층서 43%, 34%의 신뢰를 받았다.


이는 비상계엄과 계엄 해제 등 수습 과정서 우 의장의 리더십이 재평가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우 의장은 67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국회 담장을 넘어 계엄 해제를 이끌었다.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청에 돌입하고, 국회 직원들과 보좌진이 이를 막아서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여당 의원들이 계엄 해제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했음에도 우 의장은 침착하게 “절차적 오류 없이 해야 한다. 아직 안건이 안 올라왔다”며 절차를 지키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우 의장은 “이런 사태에서는 절차를 잘못하면 안 된다”고 여야 의원들을 설득했다.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은 190명 의원의 찬성으로 가결됐고, 그렇게 계엄 정국은 마무리됐다.

우 의장은 지난 1957년 9월18일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서 아버지 우제화씨와 어머니 김례정씨 사이서 9남매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우씨는 황해도 연백군 출신이고, 누나 둘은 북한에 살아 있다고 한다. 201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모친인 김씨가 남측 최고령자(당시 나이 96세)로 참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헤어진 지 60년 만에, 상봉을 신청한 지 15년 만에 누나 정혜씨와 상봉이 이뤄지기도 했다.

우 의장은 서울경동초등학교, 서울 성수중학교,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에 진학했다. 1977년 연세대학교 기독학생회 회장에 취임했고, 같은 해 학생 운동으로 박정희정부 퇴진 운동을 벌이다 징집됐다.

이듬해 2월25일 육군에 입대해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제60훈련단서 공병(야전건설 특기)으로 복무했고, 1980년 7월24일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1981년 3월 전두환정부 반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연세대학교서 제적됐다.


계엄부터 해제까지 의장석서 침착함 빛나
여야 친화적 협의 주도…때론 단호·강경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서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김대중 지지운동에 참여했다. 이듬해엔 문동환, 박영숙, 임채정, 이해찬 등 재야 민주화운동가 98명이 결성한 평화민주통일연구회(이하 평민연)를 통해 평화민주당에 입당하면서 현실정치에 참여한다.

평화민주당 인권위원회 민권부국장을 맡은 우 의장은 군부독재 정권의 인권유린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88-89인권백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1991년 지방선거서 신민주연합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노원구 제4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 재검표 끝에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 선거구서 당선된 임채정 제14대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임용됐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노원구 제3선거구에 출마해 민주자유당 송정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우 의장은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 선거구에 출마해 한나라당 권영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이후부터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제17대 국회서 4년간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으로 약자를 위한 정치의 길을 밟았다.

대표적으로 공공기관서 전체 직원의 2% 이상 장애인 의무 고용을 법제화해 장애인도 교사가 될 수 있는 통로를 열었다.

지난 2005년 우 의장이 대표발의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의해 의무고용 대상서 제외됐던 법관, 헌법 연구관, 공립 유치원·초등학교 교사, 정무직 및 일부 기술직 공무원 분야에도 장애인 의무고용 원칙이 적용됐다. 2007년 주한미군기지 반환 협상의 문제점과 미군의 기름 유출에 따른 환경오염 치유를 위한 국회 청문회를 이끌었고, 반환 협상의 부당함과 미군의 환경오염 은폐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2013년 ‘남양유업 갑질 사태(남양유업 대리점 상품 강매 사건)’와 같은 연이은 대기업 갑질 사건이 벌어지자 ‘갑의 횡포를 막고, 을의 눈물을 닦아주자’라는 목적을 갖고 을지로위원회가 결성됐다. 을지로위원회는 각종 불공정·부당 행위로부터 자영업, 중소기업, 간접고용 비정규직 등 을(乙)의 권리를 보호하고 갈등을 중재했다.

조용·온화
약자 우선

2017년 전당대회 이후부터는 전국위원회로 승격됐다. 남양유업 사태 외에도 우 의장은 대기업 기술 편취로부터 중소기업 보호, 학교 비정규직 처우개선 예산 확보 및 정규직화 추진, 우체국 택배 기사 처우개선, 국회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용산 화상 경마 도박장 폐쇄 타결,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보상 중재, 간접고용 비정규직 위험의 외주화 개선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성과를 냈다.

을지로위원회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제1호 경제민주화 공약이 됐다. 이를 바탕으로 ‘당·정·청 을지로민생회의’를 만들어 민생과제 해결을 위한 당·정·청의 공조·협력체계를 구축했다. 또 자영업, 중소기업, 노동자 등 현장 전문가들이 함께 민생과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민생연석회의’ 출범을 주도하여 카드 수수료 1%대 인하, 편의점주 최저수익 보장 및 상생협력 확대, 제로페이 활성화, 택배 노동자 과로사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 등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를 내는 데 기여했다.

2017년 5월16일,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서 홍영표 의원을 61표 대 54표로 꺾고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제19대 대통령선거)으로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안정적인 출범을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내대표 당선 이후 야당과의 타협과 유화적 메시지 전달에 앞장섰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인준을 위해 당시 국민의당을 상징하는 색깔인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야당과의 협치를 주문했던 게 있다. 이를 근거로 추경안 통과, 헌법재판소장 임명 등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강조한 협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야당과의 협치 행보를 보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서 서울특별시 노원구 을 선거구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해당 지역구에 단수공천을 받아 4선에 도전했다. 상대는 한때 같은 당 동지로서 노원구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지휘한 미래통합당 이동섭 전 의원이었지만, 이변 없이 62%의 득표율을 얻고 큰 차이로 4선에 성공했다.

노동자 위한
입법 주도

20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는 이 대표 지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이재명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이 대표와 회동서 불평등, 불균형,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정신을 실천할 사람이 아니면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고 우리는 이길 수 없다며, 강력한 사회경제개혁을 해낼 사람을 통해서만 우리는 승리하고 정권 재창출을 해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제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출마했으나 경선 상대가 6선의 추미애 의원이라서 패배할 가능성이 크게 점쳐졌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국회의장 후보자로 선출됐다.

우 의장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상임위원장 문제로 충돌하자 합의를 위해 최대한 노력했지만 결국 의견 차이가 전혀 좁혀지지 않자 국회법에 따라 국회를 개원해 논란의 중심이던 법사위원장을 포함해 11개의 상임위원장을 선출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과거의 의장들과 달리 현장 친화적 행보를 자주 보였다.


지난 6월19일에 입장문을 통해 이달 23일까지 협상을 마무리해달라고 최후 통첩을 날렸다. 결국 국민의힘이 6월24일에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의 사직 선언 및 7개 상임위를 수락하는 등 항복을 선언하면서 줄다리기 같았던 상임위 논쟁은 일단락 됐다.

한 달여 뒤 국회의장으로서 야당에는 방송4법 단독 입법과 방통위원장 탄핵 논의 중단을, 정부·여당에는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을 중단하고 방송4법에 대해 범국민협의체를 만들어 논의하자는 중재안을 제안했다. 이후 민주당에서는 중재안을 수용했지만 국민의힘서 중재안을 거부했다.

우 의장은 “상황의 변화가 없다면 의장은 본회의에 부의된 법안에 대해서 내일부터 순차적으로 처리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고 지난 7월25일 채상병 특검법과 방송4법 등을 순차적으로 처리했다.

지난 3일 우 의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자정을 넘긴 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의원들을 소집했다. 회의는 우 의장 개인 유튜브 계정으로 중계했다.

군사정권 반대 시위로 투옥…대학교 제적
DJ 지지하며 ‘거목’ 이해찬과 정치의 길

오전 1시경 190명의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에 참석한 상황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의결을 진행했고, 만장일치로 가결되자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이므로 군경 병력은 철수하라”고 촉구했다.

그 후 안건이 상정되자마자 속전속결로 계엄 요구 해제안을 가결시켰다. 이 과정서 일부 의원들이 언성을 높이며 보채자 “안건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라. 본 의장도 마음이 급하지만 절차는 지켜야 할 것 아니냐. 이런 사태는 절차가 잘못되면 또 그것도 문제”라며 5선 중진다운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우 의장은 BBC와의 인터뷰서 “만약에 이런 사태가 생기면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지, 또 법적인 요건은 어떻게 되는지, 이런 걸 숙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 14일에는 윤 대통령 탄핵 2차 표결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탄핵 의결서에 공식 서명을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탄핵소추의결서 정본 및 등본에 공식 서명이 완료되자, 정본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정청래 의원을 통해서 헌법재판소로 송부됐다.

등본은 국회사무총장이 대통령실로 전달됐다. 탄핵소추의결서에 서명까지 모두 마친 이후, 열흘 만에 퇴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우 의장은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 문제와 관련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국회의 인사청문 절차가 마무리되는 즉시 임명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 의장은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서 “국회·대통령·대법원장이 3인씩 선출해 구성하는 9인의 헌법재판관 중 국회서 선출한 3인은 대통령의 형식적 임명을 받을 뿐 실질적 권한은 국회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회 입법조사처는 국회의 선출 및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헌법재판관의 경우, 대통령의 임명권은 형식적 권한에 불과하므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는 게 가능하다고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 역시 어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국회의장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절차와 취지에 맞춰 국정 혼란을 수습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5선 중진
카리스마

현재 여야는 한 권한대행이 공석인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를 두고 엇갈린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이 궐위가 아닌 직무 정지 상태므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한 권한대행이 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 등 야당은 공석인 헌법재판관 3명의 추천 주체는 국회고, 한 권한대행은 임명장 결재 절차만 밟는 수동적 역할을 하는 만큼 이들이 반드시 임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11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세기의 이혼소송’ 노소영-2심 판사 수상한 인연 추적

[단독] ‘세기의 이혼소송’ 노소영-2심 판사 수상한 인연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SK 최태원 회장과 이혼소송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김시철 부장판사의 특수관계가 드러났다. 1조4000억원의 재산분할 판결을 이끈 김 부장판사의 부친 고 김동환 변호사는 과거 ‘5·18 특별법’ 반대 등을 통해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을 미화한 인물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관장 이혼소송에 연관된 법조계 인맥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재판부 쇼핑’이라는 수식어가 떠오르는 이유다. 상고심서 본격 심리가 진행되고 있는 이혼소송의 2막은 ‘노태우 비자금’ 카드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실제로 재판부는 비자금 실체에 관한 심리도 하지 않은 채 노 관장 측 주장만 받아들이면서 재산분할 판결을 냈다. 1조4000억 재산분할 재판 승소의 절실함은 잠들어 있던 노태우를 깨웠다. 노 관장은 아버지의 비자금 카드를 꺼내 소송서 대승한 듯 보였다. 이후 비자금 불법 은닉 문제가 꼬리를 잡혀 3건의 고발이 접수돼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군사정권범죄수익 국고환수추진위원회(환수위)는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을 맡은 김시철 서울고법 가사2부 부장판사를 탄핵하라고 주장했다. 환수위는 지난 10월21일 ‘노태우 불법 비자금 노소영 재산으로 인정한 김시철 판사 탄핵해야’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탄핵 촉구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김 부장판사는 이혼소송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0억원과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노 관장의 재판부 쇼핑의 결과로 만들어진 대승이라는 의혹이 나오는 대목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토록 공교로운 핀셋 배당을 할 수 있는지, 그 재판부 배당 과정에 대해서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봤다. 노 관장 이혼소송서 재판부는 3중 특수관계를 지닌 법조 마피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노태우는 취임 초기 본인 재산이 5억원 정도라며 ‘보통 사람’이라는 슬로건으로 당선됐다. 그러다 돌연 퇴임 전후 본인이 만든 불법 비자금이 5000억원대에 달한다고 스스로 밝혀 국민의 공분을 샀다. 당시 국민들은 그가 제시한 ‘보통 사람’이라는 슬로건에 빗대어 ‘엄청난 돈을 보유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보돈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힘써야 할 대통령의 권한을 ‘불법 비자금 모금’에 사용한 것이다. 노 관장은 이혼소송을 통해 아버지가 축적한 비자금 중 일부가 SK그룹 성장판을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설립한 미래회를 통해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다. 판사 부친, 노태우와 돈독한 사이 형은 노 관장과 국제미래학회 주축 노 관장에게 승기를 건넨 김 부장판사의 부친 김동환 변호사는 노태우의 경북고 1년 후배다. 김 변호사는 소비자 권익을 위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변호사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동시에 노태우를 옹호한 인물이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1934년 신의주 출신으로 부산중학교와 경북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인 1956년 7회 고등고시에 합격하고 1957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이후 군 법무관과 판사를 지낸 뒤 1963년부터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또 김 변호사는 노태우 일당이 광주 사태를 일으킨 후 탄생한 5공화국 때부터 국가정책 자문위원, 선관위원, 공정거래위원, 소비자보호위원 등을 지냈다. 본격적으로 노태우가 집권한 6공화국 들어서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KBS 이사도 맡게 된다. 당시 김 변호사는 5·18 책임 문제로 곤경에 처한 노태우를 방어하는 최전방에 나섰다. 5·18 특별법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1995년 12월호 <한국논단>에 김 변호사는 ‘5·18 특별법 안 된다. 위험한 발상 5·18 특별법’이란 제목의 기고를 하게 된다. <한국논단>은 1989년에 창간되어 2014년까지 발행된 극우성향 월간 시사지다. 비자금 꺼내다 이 기고서 그는 죄형법정주의와 공소시효 원칙 등을 주장하며 ‘적어도 나라와 국민 생활의 안정을 바라고 민주주의의 확고한 정착을 기원하는 국민이라면 5·18 특별법의 제정이라는 것을 곰곰이 따져보고 이에 관한 찬반의 태도를 결정해야 할 것’라며 5·18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5·18 특별법은 광주 사태를 일으켜 총칼로 진압한 노태우 일당들을 처벌하자며 국민 대다수가 원하는 법이었는데, 김 변호사는 이 법의 제정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절친인 노태우를 보호하기 위한 사수대 역할을 자진하며 미화에 앞장서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1990년 12월 <매일경제>에 ‘냉전의 벽 아직 남아 있다’는 기고를 통해 ‘역사적으로 기록될 중대한 사건임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며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회담은 크게 평가되고 여러 각도서 분석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라며 극찬했다. 두 사람의 돈독한 관계는 김 변호사의 부모상에 현직 대통령이던 노태우가 직접 조문을 하며 공고히 했다. 1989년 9월 김 변호사 부친상에 노태우가 직접 조문을 했다는 것은 이례적으로 해석됐다. 지난 2022년 노태우가 사망했을 때 김 변호사도 직접 조문하며 마지막까지 빈소를 지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 부장판사가 ‘노태우 비자금’을 엄격하게 파헤쳐 심리하지 않은 것에 관해 법조계 한 관계자는 “김시철 부장판사가 노소영이 제기한 노태우 비자금 300억이 불법으로 은닉돼왔음을 재판 과정서 충분히 알았음에도 심리하지 않은 이유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노 관장과 김 부장판사의 형인 김시범 안동대 교수는 국제미래학회서 각각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국제미래학회는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제롬 글렌과 김영길 한동대 총장이 초대 공동회장을 맡고 국내외 전문 영역별 미래학자 100여명이 함께 참여해 2007년 10월 국내에 본부를 두고 설립된 국제적인 학회’로 소개된다. 빈소를 지키다 홈페이지 임원 조직에 따르면 노 관장은 미래예술위원장을, 김 교수는 미래전통문화위원장을 각각 맡고 있다. 특히 2015년 12월에 있었던 국제미래학회의 ‘대한민국 미래보고서 출판기념회’는 노 관장과 김 교수가 나란히 참석한 행사로 재조명받고 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진대제 전 정통부 장관, 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 등이 참석하기도 했다. 특히, 노 관장의 변호사를 맡으면서 최 회장에 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이상원 변호사는 법무법인 평안 소속으로 노태우의 부인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인 박철언 전 정무장관 사위다. 박철언은 노태우와 같은 경북고등학교 출신으로 노태우 사망 당시 빈소를 지킨 사람이다. 이 변호사의 부인 박지영은 미래회 현 회장이자 박 전 장관의 큰딸로, 노 관장과는 6촌 관계다. 노 관장의 미래회는 노태우의 하나회처럼 겉으로는 봉사를 내세우고 있다. 최근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에 언급되는 임주현 한미약품 그룹 부회장과 김방은 예화랑 대표가 소속됐던 단체다. 미래회는 노 관장을 지키는 사수대 역할도 했다. 전 미래회 회장이었던 김흥남은 노 관장 이혼 기사에 최 회장을 비난하는 악성 댓글부대를 주도했다. 광림교회 권사인 김흥남은 미래회의 2대 회장까지 지냈을 만큼 노 관장과 돈독하다. “이 비자금이 네 비자금이냐” ‘보통 사람’ 노태우의 모순 김 전 미래회 회장은 네이버 카페 ‘조강지처가 뿔났다’를 개설해 카페 회원들에게 사실이 아닌 악플을 유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법원은 2019년 초 김씨에게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 벌금 1억원을 최종 판결한 바 있다. 당시 김 전 회장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사람도 노 관장의 이혼소송 변호를 맡은 이 변호사였다. 김 부장판사는 노 관장 측에 매우 유리하면서도 최 회장에겐 불리하도록 재판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장판사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파경 과정, 최 회장의 재산 형성 과정 등을 약 50분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가사사건 판결 시 일반적으로 판사들이 결론에 해당하는 주문을 선고하고 판결 취지를 간략히 설명하는 것과 달리 김 부장판사는 선고공판을 비공개로 하지 않고, 일부 출입기자를 법정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또 법정에 들어오지 못한 출입기자 50여명에게 중계 법정서 선고를 지켜볼 수 있도록 선심을 베풀기도 했다. 김 부장판사의 노력으로 이혼소송의 프라이버시가 담긴 판결 내용이 외부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혼소송은 노태우 비자금서 촉발된 1400억원에 달하는 불법 은닉 비자금에 대한 관심으로 번졌다. 5·18 기념 재단과 환수위 등은 3건의 검찰 및 국세청 고발 등으로 분노를 드러냈다. 결국 노태우 비자금을 개인 재산으로 인정한 김 부장판사를 탄핵해 달라는 탄핵 청원이 국회 법사위에 제출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변호사 친족 재판부 쇼핑 법조계는 “노태우 비자금은 이미 1997년 대법원이 확정판결하면서 추징, 국고로 환수되도록 돼있는데, 노소영 등 그 가족에게 개인 재산으로 인정해 준 판결은 국민 눈높이에 전혀 맞지 않는 것 아니냐”며, “이 같은 구조는 사법부 자체 시스템적으로 재판부 기피 대상이 돼야 할텐데, 그런 자정 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아서 국민들은 ‘누가 봐도 이상한 재판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노소영 이혼소송서 나타난 법조 마피아 의혹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 수 밖에 없다”면서도 “사법부에 이 같은 연결고리가 나온 점에 대해 법조인들 스스로 국민들의 신뢰를 잃지 않았는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노소영의 아트센터 나비, 정부 보조금 횡령 의혹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 관한 정부 보조금 부정 수령과 횡령 의혹이 제기됐다.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환수위)는 지난 18일 문화관광체육부에 아트센터 나비의 이 같은 의혹을 조사해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환수위는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아트센터 나비는 매년 국민 혈세인 7억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아왔지만, 방만 경영뿐 아니라 횡령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며 “아트센터 나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고 보조금을 집행한 관련 기관과 해당 책임자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해 국민 혈세 낭비의 실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수위에 따르면 아트센터 나비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맞춰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전시 등 행사 활동 실적이 저조하다는 설명이다. 지난 5년간 전시회를 연 기간이 총 230일로, 연평균 46일에 불과해 보조금 수령을 위해 형식적으로만 운영해온 합리적 근거가 된다는 게 환수위의 주장이다. 아트센터 나비의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아트센터 나비는 지난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약 34억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 환수위는 ”최근 불거진 직원의 20억원 횡령 사건과 임대료 미지급 소송 등을 감안할 때 내부적으로 자금 운용 실태가 매우 문제 있어 보인다”며 “핵심 사업이 예술작품 전시인데 1년에 고작 한 달 남짓만 전시를 할 정도로 활동도 없고 임대료도 수년간 미납된 상태로, 그 많은 지원금은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다는 것인지 미스터리”라고 지적했다. 아트센터 나비는 최근 5년간 약 34억원을 지원받았음에도 이 기간 누적적자가 48억원에 달한다. 이 기간 자산도 200억원에서 145억원으로 급감했다. 아트센터 나비는 그간 적자가 쌓이는 와중에도 이사진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총 6명의 이사진 중 노 관장을 포함한 3명은 5년 이상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2022년 감사보고서를 보면 당시 16명에게 지급된 고정성 인건비가 7억7000만원에 달한다. 직전해 지원받은 정부보조금(7억8978만원) 전체와 맞먹는 액수다. 아트센터 나비가 정부 지원금을 전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환수위는 “노 관장이 지원금을 본래 목적에 맞지 않는 용도에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적자에 허덕이는 미술관이 지원금으로 운영 목적에 맞지 않는 투기성 돈 굴리기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트센터 나비는 금융상품평가손실 및 외환차손으로 2022년 8억210만원, 지난해 6억688만원의 평가손실을 봤다. 2022년 80억7769만원이었던 아트센터 나비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6억4959만원으로 급감했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