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민주당 조기 대선 시나리오

탄핵이 먼저냐 판결이 먼저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참모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원하던 대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이제 윤 대통령이 임기 레이스를 완주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0)다. 현실이 된 조기 대선에 더불어민주당의 시곗바늘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을 이틀 앞둔 지난 12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굳은 얼굴로 기자회견 단상에 올랐다. 한 대표는 “대통령은 군 통수권을 비롯한 국정운영서 즉각 배제돼야 한다. 윤 대통령이 임기 등의 문제를 당에 일임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어겼다”며 “탄핵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배신한
대통령

한 대표는 “대통령이 조기 퇴진 의사가 없음이 확인된 이상 즉각적인 직무 정지가 이뤄져야 한다. 더 이상의 혼란을 막아야 한다”며 “이제 그 유효한 방식은 단 하나뿐이다. 다음 (탄핵소추안)표결 때 우리 당 의원이 본회의장에 출석해서 소신과 양심에 따라 표결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담화서 “당에 모든 걸 위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국민의힘이 제시한 두 가지 퇴진 로드맵을 사실상 거부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한 대표의 감정이 실렸는지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해결책이 없다는 판단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문제는 곧바로 이어진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였다. 이제까지 국민의힘은 내분을 겪으면서도 고개를 숙이며 성난 민심을 달래려 애썼지만 윤 대통령의 선전포고가 탄핵의 도화선이 됐다는 평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며 퇴진 뜻이 없음을 거듭 밝혔다. 이어 “지금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서 국헌 문란을 벌이는 세력이 누구인가”라고 반문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탄핵 남발이 국정을 마비시켰다고도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급기야는 범죄자가 스스로 자기에게 면죄부를 주는 ‘셀프 방탄 입법’까지 밀어붙이고 있다”며 “원전 생태계 지원 예산을 삭감하고 체코 원전 수출 지원 예산은 90%를 깎았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나라를 망치려는 반국가 세력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에 대해서는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를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이 엉터리”라는 점을 내세웠다.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는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이나 강제수사가 불가능하므로 국방부 장관을 통해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들(야당)은 이제 곧 사법부에도 탄핵의 칼을 들이댈 것이 분명했다”며 “비상계엄령 발동을 생각하게 됐다. 국민에게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광란의 칼춤’에 맞서 국민을 위해 싸우겠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국민을 대상으로 선전포고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담화 직후 입장문을 내고 “윤석열의 정신적 실체가 재확인됐다”며 “헌정수호를 위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고 실패할 계엄을 기획했다는 발언은 극단적 망상의 표출이고 불법 계엄 발동의 자백”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이미 탄핵을 염두에 두고 헌재 변론 요지를 미리 낭독해 극우의 소요를 선동한 것”이라며 “나아가 관련자들의 증거인멸을 공개 지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제 발로 걷어찬 2년 반
벚꽃 대선? 장미 대선? 곳곳 변수

이와 관련해 한 민주당 중진 의원 역시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모든 내란 혐의를 반박하며 보수 세력도 아닌 일부 극우 세력 결집을 통해 방어막을 짜는 것 같다. 판단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집과 아집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국민을 이기겠다는 군사 독재의 모습이 보인다. 전두환 때랑 어쩜 이렇게 흡사한지 너무나도 충격을 받았다”고 한탄했다.

국민 10명 중 7명꼴로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절반이 넘는 민심이 돌아섰으니 기댈 곳은 의회뿐이었다. 남은 건 탄핵 저지선을 겨우 지켜낸 여당의 단일대오였지만 표결을 앞두고 하나둘 이탈표가 나오자 당의 분열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결국 지난 14일 국민의힘서 약 스무명 가량의 이탈표가 나오면서 탄핵 저지선이 완전히 붕괴됐다.

국민의힘은 2월 퇴진 후 4월 대선, 3월 퇴진 후 5월 대선 등 두 가지 안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앞서 정치권 고위 관계자들은 언론을 통해 “윤 대통령이 하야가 아닌 탄핵이 낫다고 이야기했다”는 말을 전했다. 비록 직무가 정지된 상태지만 헌법재판소서 법적 대응을 하는 방안이 낫다고 판단한 셈이다.

아울러 윤 대통령 본인이 법조인 출신인 만큼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과 절차상 적법성을 직접 설명할 것이란 관측에도 무게가 쏠렸다.

국회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면 대통령 직무와 권한 행사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서 탄핵 심판 절차가 이뤄진다. 헌법재판소법 제38조는 ‘헌재는 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보면 탄핵 의결부터 선고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은 6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91일이 걸리는 등 심리 기간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만일 윤 대통령이 하야를 택하면 대통령직은 궐위 상태로 직무는 정지되고 60일 이내에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 현재 윤 대통령은 내란죄 피의자인 만큼 수사 중 긴급체포 및 구속 가능성도 완전히 닫혀 있지 않다. 이처럼 정국이 하루가 다르게 흘러가면서 좀처럼 조기 대선 날짜를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째깍째깍
법원 시계

민주당은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당장 조기 대선을 준비하기보다 헌법재판소 심판 준비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집권플랜본부 기획상황본부장을 맡은 김영호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헌법재판관은 보수·중도·진보로 구분됐는데 결국 법리를 따져 국민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에는 국민 여론에 당이 더욱 귀를 기울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거대 야당으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국정을 안정시키는 것을 중점으로 하되 대통령의 공백을 채워가면서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목소리를 잘 반영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민주당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조기 대선 시나리오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이른바 ‘6·3·3원칙’이다. 현재 이 대표가 받는 재판들 가운데 가장 먼저 판결이 나오는 건 지난달 15일 1심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다.

선거법 위반의 경우 벌금 100만원 이상 형을 확정받으면 피선거권이 박탈돼 향후 5년간 대선 출마가 불가능하다. 지난달 21일 이 대표는 해당 사건의 1심 선고에 불복해 항소했다. 위증교사 사건에 대해서는 1심서 무죄를 받았다. 그러나 2심서 뒤집힐 가능성이 있어 무엇 하나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6·3·3원칙이란 ‘1심은 기소 후 6개월, 2·3심은 전심 후 3개월 이내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적용할 경우, 이 대표는 내년 5~6월쯤 확정 판결을 받게 된다. 국민의힘서 6월 대선을 고집한 이유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야당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6·3·3원칙이 반드시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일 2심이 진행되는 과정서 추가 신문 등이 이뤄지거나 탄핵안이나 특검법 표결을 위해 이 대표가 국회 본회의에 참석할 경우 재판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2심서 별도로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고 소송기록 접수통지도 받지 않은 점 등을 꼬집으며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법률자문위원장은 “형사소송법상 이 대표 또는 변호인이 소송기록 접수통지를 수령해야 사건이 개시된다”며 “그런데 이 대표는 지난 9일 발송된 소송기록 접수통지를 아직 수령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1심을 선고한 지 한참 돼가는데 아직도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는 건 소송기록 접수통지를 회피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설명이다.

잠룡들
대기 중

홍준표 대구시장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비상계엄으로 인한 직권남용죄는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내란죄 프레임은 탄핵을 성사시켜 사법 리스크로 시간이 없는 이 대표가 조기 대선을 추진하기 위한 음모적인 책략”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을 압박하는 동시에 외신과 접촉을 늘리고 민생·경쟁·안보 정상화를 내세우며 대권주자로서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성난 여론을 의식한 법원이 속도를 조절하고, 조기 대선 일정이 판결보다 빠르게 잡힐 경우 민주당은 이 대표를 선두로 대권 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이 대표의 판결이 먼저 나오는 경우다. 이 대표라는 구심점이 사라지면 민주당 전체가 혼란에 빠질 우려도 제기된다.

정당은 집권을 목표로 하므로 민주당이 이 대표에게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빠르게 플랜 B를 세우고 다음 인재를 물색해야 한다.

차기 대권주자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한동훈-조국 순으로 지지율이 높았다. 이 대표와 한 대표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졌지만 진보진영 차기 대권주자 1·2위 모두 사법 리스크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이 대표의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지만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경우 지난 12일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대법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그동안 불구속 상태서 재판을 받았던 조 전 대표는 실형이 확정됐기 때문에 수형 생활을 해야 한다. 의원직 박탈은 물론 차기 대선 출마도 불가능해졌다.

한 혁신당 관계자는 “조 전 대표는 처음부터 2026년 치러질 21대 대선을 바라보지 않았다”며 “지지자는 그의 사법 리스크를 알면서도 대표로 뽑아줬다. 2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22대 대선의 판도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가 2년을 채울지, 중간에 사면·복권될지는 알 수 없다. 형을 마친 뒤 혁신당에 복귀할지, 민주당에 흡수될지도 미지수다.

판결 기다리는 이, 배지 잃은 조
“시간은 우리 편” 마음 졸이는 여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은 이 대표 한 사람만 보이지만 민주당은 어떻게 해서든 대권주자를 만들어낸다. 주로 외부서 사람을 영입하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은 당 안팎을 가리지 않고 원석을 찾아 가공한 뒤 서사를 붙여 주인공으로 만든다”며 “진보진영은 보수보다 차기 대권주자를 찾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원외의 움직임도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우선 친문(친 문재인) 적자로도 불리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지난 6일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급거 귀국했다. 비상계엄이 선포 및 해지된 지 3일 만으로 당초 예정보다 귀국 날짜를 앞당긴 것이다.

이날 김 전 지사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국민과 함께하겠다”며 조기 귀국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계엄 사태로 대한민국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며 “이 위기를 초래한 무모한 권력에 대한 탄핵은 거스를 수 없는 국민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국회를 찾아 우원식 국회의장과 이 대표와 면담을 했다. 지난 12일에는 경남 봉하마을을 찾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다.

김 전 지사는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 위기를 빨리 해소하는 데 함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구체적으로 뭘 할지는 그 속에서 찾겠다”고 말을 아꼈다.

대권 잠룡인 김부겸 전 총리도 지난 7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여당의 불참으로 무산되자 “결국 집권여당은 국민을 배신했다. 차가운 광장서 국민은 ‘윤석열 퇴진’을 외치고 있다”며 “참혹했던 비상계엄의 밤 윤 대통령은 이미 자격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민주당이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비상계엄 사태에 관여된 국무위원을 ‘무더기 탄핵’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줄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김 전 총리는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민주당으로 넘어올 여지를 봉쇄해버리는 하책”이라며 “국가 운영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훨씬 훌륭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숨겨둔
묘수라도?

대선 시점을 미루려는 자와 당기려는 자의 치열한 수 싸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질서 있는 조기 퇴진’ 대신 ‘빠른 퇴진’을 택한 친한(친 한동훈)계는 “범죄 혐의를 받는 이 대표가 차기 대통령이 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떠안았다. 민주당은 “하루라도 빨리 내란 수괴 윤 대통령을 물리치고 정권을 안정화하겠다”고 맞섰다.

조기 대선 주도권을 누가 먼저 쥐느냐가 관건이다. 국민의힘은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자”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바닥난 인내심에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을 과연 어떻게 설득할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