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르포> 한겨울 쫓겨나는 판자촌 사람들

“대책이라…얼어 죽을 수밖에요”

[일요시사 취재 1팀] 김철준 기자 = 서울 곳곳에 남아있던 판자촌과 달동네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가 주택 공급을 위해 개발하려 하고 있지만 오랜 기간 삶의 터전을 갑자기 빼앗긴 주민들의 원성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무허가 건축물이라 낮은 보상금에 개발 이후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에 주민들은 눈물 흘리고 있지만 서울시는 물러나지 않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2017년 서울에 있는 모든 판자촌 개발계획을 세운 후 첫 삽 뜨기를 앞두고 있다. 서울 곳곳에 남아있던 판자촌의 재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는 셈이다. 계획이 수립된 지 4년이 지났지만 거주민들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말까지 
이주·철거

서울시에 따르면 ‘강남 최대 판자촌’이라 불리는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은 최고 25층, 3520세대 대단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이 곳은 2011년 서울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개발 방식을 놓고 갈등이 이어지다 2016년에서야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최근 가구 수를 늘린 변경안을 확정했다.

시는 올해 말까지 이주·철거 작업을 마치고 내년 착공에 돌입할 계획이다.

서초구 방배동 ‘성뒤마을’도 최고 20층 1600세대 아파트 단지로 재탄생한다. 성뒤마을은 당초 최고 7층에 813세대 아파트 단지로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서울시는 토지 활용도를 높인다는 취지로 용적률을 높였다. 시는 내년 착공에 돌입해 2028년에 완공할 계획이다.


노원구 중계동의 ‘백사마을’은 최고 20층, 2437세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신을 앞두고 있다. 백사마을은 1960년대 후반 청계천 일대 서울 도심 개발 여파로 철거민들이 이주하며 형성된 주거지다.

백사마을은 2008년 개발제한구역이 해제되고 이듬해 재개발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낮은 사업성을 이유로 손을 떼며 사업이 멈춰 섰다. 그러던 중 SH공사가 사업시행자로 변경되며 사업은 다시 본궤도에 올랐고, 내년 착공 및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성북구 정릉동 정릉골은 1411세대 규모 고급형 테라스 하우스로 재탄생할 계획으로 내년 하반기 착공에 돌입한다. 아울러 서대문구는 홍제동에 있는 낙후지역인 ‘개미마을’ ‘홍제4재개발 해제구역’ ‘문화마을’ 일대를 묶어 신속통합기획 재개발로 추진하기로 했다.

개발계획은 수립됐지만 지자체 및 정부와 거주민들의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일요시사>는 구룡마을, 성뒤마을, 개미마을을 찾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26일 성북구 최대 판자촌이라 불리는 성뒤마을을 찾았다. 도로변에 있는 고물상을 지나치고서야 도착한 윗성뒤마을은 개미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적막함 속에 비 내리는 날씨와 더불어 각목 등으로 막힌 대문과 찢어진 현수막이 분위기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2017년 개발계획 따라 첫 삽 임박
끝나지 않은 갈등…낮은 보상금 고수

가벽으로 이뤄진 집들은 대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문에는 “기존 거주자의 이주에 의해 공가 폐쇄된 주택으로서 무단침입, 점유, 사용 또는 훼손 시 형법 제319조(주거침입) 및 제366조(재물손괴)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음을 알려드린다”는 서울주택공사의 안내문만이 붙어있었다.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아랫성뒤마을도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몇몇 가구는 이주를 마쳐 윗성뒤마을과 마찬가지로 안내문이 붙어있었고 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70~80대 노인들 뿐이었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주민은 “이주해야 한다는 안내는 서울주택공사에서 2년 전부터 받아왔다”며 “하지만 그들이 지급한다는 이주비로는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정년이 지난 사람들로 폐지를 줍거나 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며 “갖고 있는 목돈도 없어 주택단지가 건설된 이후에 분양권이나 입주권을 준다고 해도 다시 들어올 수도 없는 상황인데도 서울주택공사는 내년 초부터 공사를 시작해야 하니 여기(성뒤마을)를 떠나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서울주택공사의 보상금 대부분은 토지주에게 몰렸다”며 “실제로 성뒤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적은 보상을 받았다. 때문에 적은 보상금에 60년 넘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지방으로 가게 됐다”고 토로했다.

성뒤마을 입구 대로변부터 이어져있는 고물상 단지는 성뒤마을 재개발에 더욱 격노하고 있다. 사당역 1번 출구서 지도를 따라 성뒤마을주택단지로 향하면서 볼 수 있는 현수막은 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성뒤마을상인연합회는 남부순환로(8차로)를 따라 설치한 펜스에 ‘SH는 들어라! 현실적 보상 안 하면 죽어도 이주 못한다!’ ‘서울시와 SH는 우리 소상공인들을 다 불태워 죽일 셈이냐!’라고 적힌 새빨간 현수막을 내걸고 서울주택공사의 제안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상인연합회 소속 업주들은 서울주택공사가 토지주들에게는 보상을 제대로 해줬지만 20~30년 넘게 땅을 임차해 장사하던 상인들에게는 최소 수천만원서 최대 2억원 정도의 헐값 보상안을 내밀었다고 토로한다. 서울주택공사가 지장물 조사를 마친 후 이들이 생업에 활용하던 기계 등 물품을 실제 가치보다 낮게 금액을 책정했다는 것이다.

고물상
부지는?

이들은 낮은 보상금을 받기보다 인근에 고물상·석재상 등 지금 운영하고 있는 사업을 운영할 부지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고물상 업주는 “1960~1970년대 강남 개발로 이곳으로 이주해 온 주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땅을 임차해 고물상 사업을 시작했다”며 “지금까지 쭉 해오던 사업을 그만두라고 나가라면서 정원형 주택단지가 들어온다는 부지 주변에 벤츠 사업장, 버스 및 택시 회사에 넘기며 기만하고 있다”며 “택시·버스가 공익 목적 사업장이라 부지를 마련해줬다고 하는데 벤츠와 가스충전소도 공익 목적 사업장이라고 판단해 부지를 마련한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격분했다.

이어 “서초구와 강남권서 하루에만 280~320톤가량 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는 우리도 공익성을 띈 환경미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우리에게 대체 부지를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는 성뒤마을 고물상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사업을 영위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할 방침이다. 게다가 현행법에 따라 고물상들에게 이전비와 영업손실 명목의 배상안을 충분히 제시했다는 입장이다.


현재 성뒤마을은 자진 이주 기간이다. 상인회와 서울주택공사는 명도소송도 진행 중이다. 일반적으로 명도소송 기간이 6개월서 8개월가량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성뒤마을 주민과 상인들은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마을을 비울 수밖에 없다. 60년가량 살던 집터와 생업에 대한 마땅한 대책도 없이 쫓겨나게 되는 셈이다.

명도소송은 부동산 인도명령 신청 기간이 지나거나 채무자·소유자 또는 점유자 등 인도명령을 받는 사람 이외의 사람이 해당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는 경우에 매수인이 그 부동산을 점유하기 위해 넘겨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명도소송 판결이 나고 집행문이 발효되면 강제집행해 해당 부동산을 점유할 수 있다.

강남 최대 규모의 판자촌인 구룡마을과 지자체, 서울주택공사의 갈등은 더 심하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10m 망루를 세우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분양권용
농성 아냐”

지난달 23일 강남구청서 거주 사실 확인서 발급을 거절하자 구룡마을 주민들이 망루를 설치하고 그 위에 올라 농성을 펼치다가 6명이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들의 농성은 거주 사실을 인정받고 분양권을 획득하기 위한 과열된 투기꾼들의 모습처럼 비쳐졌다.

하지만 <일요시사>가 지난달 26일 직접 가본 구룡마을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구룡마을은 단순히 분양권 등 돈이 목적이라기보다 목숨을 건 사투 직전의 모습 같았다.


<일요시사>는 마을 망루 앞에서 구룡마을 지역주택조합 추진위원장인 유귀범씨를 만났다. 유씨는 “구룡마을은 1986년 아시안게임 때 생겨나기 시작해서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주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며 “36년 동안 이곳을 지키고 있었고 정부도 주민들을 30년 넘게 방치해 왔다”고 일침했다.

이어 “방관만 일삼던 정부가 도시개발법에 의해서 땅을 강제 수용하고 개발한다고 하며 우리를 거주민으로 취급도 안 하고 있다”며 “지금 강남구청에서는 구룡마을이 주거지가 아니라 간이공작물로 사람이 아닌 가축 등을 키우는 곳으로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양재대로 478(개포동)’이라는 주소에 등록됐고 주민세도 내고 있는데 갑자기 주민으로 인정을 안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행법(토지보상법)에 따르면 무허가 판잣집 건축물 거주자는 토지보상을 못 받지만 예외적으로 1989년 1월24일 이전부터 실거주가 확인되면 토지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분양권을 원한다고 보고 있지만 이들은 그저 간이공작물에 사는 가축이 아니라 사람 대우를 받고 싶은 것으로 보였다. 더 나아가 이들은 구룡마을 단지에 주민 주택타운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씨는 “사람들은 거주민들이 거주 사실을 인정받고 분양권을 받기 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분양권을 받게 되더라도 주변 부동산 시세를 고려하면 개발이 완료된 이후 다시 구룡마을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차라리 현대화된 구룡마을을 만드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간이공작물은 거주 인정 안 돼”
“편법 아닌 현행법 따라 해달라”

2020년도 국토부 훈령을 보면 도시개발지구에 사는 거주민에게는 토지를 조성 원가로 매매할 수 있다는 조항이 존재한다. 해당 훈령은 지난 5월에 법제화됐다. 유씨는 “간이공작물로 거주 사실 자체를 인정 못 받고 있으니 거주 사실을 인정받은 후 법에 따라 개발지구의 땅을 사는 것이 지금 망루를 설치하고 농성을 벌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많은 건설사와 협의를 통해 땅을 살 수 있게 되면 건설사가 땅을 사고 건물을 지은 후 해당 건물을 담보로 건설사에 공사대금을 납부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평균 10평의 집을 생각했을 때 지금 구룡마을 개발계획에 있는 용적률(250%)로는 약 800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거주민 주택타운 건립이 가능하다”며 “평수를 낮추거나 용적률을 올리면 지금 거주하는 약 1000세대 모두 수용할 수 있게 된다”고 부연했다.

유씨는 이제야 노인들의 행보에 관심을 가져주니 더욱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열의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는 “6개월 동안 강남구청에 시위를 해도 관심이 없다가 망루를 설치하니 여기저기서 인터뷰 등 취재하러 왔다”며 “우리가 편법으로 하자는 게 아니고 현재 행정상 거주가 등록돼있고 현행법상 토지를 조성 원가에 사겠다는 게 우리 행동의 핵심임이 널리 알려지고 지자체서도 인정해줬으면 한다”고 하소연했다.

갈등의 또 다른 불씨도 존재한다. 다수의 주민들은 위원회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분양권 획득을 추진하고 있다. 한 구룡마을 주민은 “분양권을 위해 수년 전부터 협상을 해왔는데 갑작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주민들(위원회)이 생겨났다”며 “지금 시위에 참석하는 주민들은 거주 사실이 인정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 사람들 때문에 거주 사실이 인정된 사람도 피해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룡마을의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위원회 소속 한 주민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곳에 찾아오기 전까지는 농성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위원회 외 주민들도 힙을 합쳐 서울시에 우리 요구를 관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는 판자촌과 달동네를 비교하기 위해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한 개미마을도 찾았다. 앞서 방문한 판자촌들과 달리 개미마을은 패널과 나무, 가벽 등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아닌 벽돌로 지어졌지만 무허가인 건물들이 언덕에 줄지어 있었다. 

달동네
사정은?

한 개미마을 주민은 “1950년대 6·25전쟁 후 피난민과 실향민들이 이곳 인왕산 자락에 천막을 치고 거주하기 시작한 이 마을은 토지 구분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토지 소유권도 불분명하다”며 “지난 2010년대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나왔지만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고, 서대문구청장이 개미마을 내 들어설 공동전원주택인 타운하우스에 원주민들이 살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입주에 필요한 돈이 없어 사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호소했다.

<일요시사>가 만난 주민들 모두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삶의 터전서 강제로 떠나게 된 점을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는 개발 속도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에 적게는 20년, 많게는 40년 넘게 살아온 주민들과 협의를 통해 오랜 과제를 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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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