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구린’ 파타야 살인사건 전모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5.20 13:21:00
  • 호수 14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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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죽이고 협박 “정말 나쁜 놈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한국인 관광객이 살해된 이른바 ‘파타야 살인사건’과 관련해 현지 교민들이 불안감을 드러냈다. 앞서 유가족은 지난 7일에 실종 신고했지만, 끝내 파타야의 한 저수지서 드럼통 안에 담긴 노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부검 결과, 시신은 사망한 지 3~4일이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달 30일, 관광차 태국에 입국한 노씨의 행방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묘연해졌다. 노씨는 지난 3일(현지시각) 오전 2시경 방콕에 위치한 클럽 ‘루트66’ 앞에서 2명의 한국인 남성과 함께 차를 타고 파타야로 이동하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납치라고 보기에 어려운 행동이었다. 

수면제 투약 후···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범행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앞서 용의자들은 이날 오후 방콕의 유흥지 RCA의 한 술집에 노씨를 불러 약을 먹인 것으로 추정된다. 의식이 흐려진 노씨를 미리 준비한 차량으로 옮겼는데 이 과정서 노씨가 정신을 차리면서 몸싸움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일행은 노씨의 재산을 노리고 수면제를 먹여 납치했다. 경찰은 이후 노씨가 일행 A씨, B씨, C씨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해 숨을 거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들이 지난 7일, 노씨의 모친에게 “당신 아들이 마약을 버려 손해를 입혔으니 300만밧(태국 화폐 단위·약 1억1000만원)을 주지 않으면 아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내용의 협박 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마약, 불법 도박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범죄 동기를 수사 중이다.


일각에선 용의자들이 유가족에게 협박 메시지를 보내기 전인 지난 3일과 4일 사이 노씨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3일 용의자들은 파타야 수쿰윗 지역에 콘도서 짐을 챙겼고 이때 용의자 A씨는 먼저 한국으로 귀국했다. 남은 2명은 시신을 담을 드럼통을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경찰이 확보한 자료를 보면 지난 4일 용의자들은 클럽서 노씨와 탔던 렌터카를 버리고 다른 픽업트럭으로 갈아타는 모습도 포착됐다. 새 차량의 트렁크에는 노씨의 시신이 발견된 검은색 플라스틱 드럼통이 실려 있는 모습도 보였다. 해당 트럭은 시신이 발견된 저수지 인근 한 숙박시설로 향했다. 

이어 용의자들은 지난 7일 유가족에게 협박 메시지를 보냈고, 이를 받은 유가족은 주태국 대한민국대사관에 곧바로 신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담한 용의자들은 8일 노씨의 계좌서 두 차례에 걸쳐 170만원과 200만원을 이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 경찰은 용의자들이 노씨의 돈을 뺏을 목적으로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강요하다가 집단폭행이 가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저수지서 드럼통 속 시신 발견
사인은 폭력으로 인한 호흡부전

이들은 지난 9일 오후 9시께 짐칸에 검은 물체를 싣고 숙박업소를 빠져나갔고, 저수지 근처에 약 1시간 주차했다가 숙박업소로 돌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태국 경찰은 지난 11일 파타야의 마프라찬 호수에 잠수부를 투입해 시멘트가 가득 찬 200L짜리 드럼통을 건져 올렸고, 그 안에서 노씨 시신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노씨의 시신은 크게 훼손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3일(현지시각) 태국 공영방송 TPBS는 노씨의 시신 손가락이 모두 절단된 상태였다고 보도했다. TPBS는 “피해자의 손가락이 어떻게 잘렸는지는 법의학적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며 “만약 사망 전에 손가락이 절단됐다면 고문의 일환, 사망 후라면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하기 위한 목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태국 경찰은 노씨 시신 훼손은 증거인멸을 위해 자행된 것으로 봤다. 태국 경찰은 “차 안에서 몸싸움을 하면서 피해자 손가락에 피의자들의 DNA 등이 묻은 것을 감추면서 시신 신원 확인도 어렵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씨의 시신을 1차 부검한 결과 양쪽 갈비뼈 등에서 골절 흔적이 발견됐다고 한다. 먼저 붙잡힌 A씨로부터 “주먹과 무릎으로 상복부 등을 때렸다”는 진술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노씨의 사인은 폭력으로 인한 호흡부전이라는 게 태국 경찰의 주장이다.

시신을 발견한 태국 클롱탄 경찰은 지난 14일, 이번 사건과 관련한 증거를 방콕 형사법원에 제출했다. 이어 용의자 3명에 대해 살인과 불법 구금, 시신 은닉 등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방콕 남부형사법원은 한국인 용의자들이 3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과 도주 우려가 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인 증거가 있다고 봤다.

특히, 현지 언론은 용의자들의 여권 사진과 현지 가게서 드럼통을 구입하는 모습이 담긴 CCTV, 캄보디아 경찰에 붙잡혀 차량으로 이동하는 모습 등을 모자이크 없이 내보냈다. 국내에선 아직 이들에 대한 신상 정보공개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태국 현지 언론은 이날 한국 경찰이 용의자 3명 중 2명을 체포했다는 소식을 보도하며, 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기도 했다. 범행 과정서 먼저 귀국한 A씨는 지난 12일 한국의 전북 정읍 자택서, B씨는 14일 캄보디아서 체포됐으며 C씨는 태국서 미얀마로 도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먼저 붙잡힌 A씨는 지난 15일 구속됐다. 창원지법 형사4단독 김성진 부장판사는 이날 살인 방조 혐의를 받는 A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후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김 부장판사는 “A씨가 도주 우려 및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A씨는 일당 2명과 노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범행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체포된 2명이 지목한 주범
바로 미얀마 도주 후 잠적

경남경찰청 형사기동대는 당초 A씨에게 살인·사체유기 등 혐의를 적용해 긴급 체포했다. 경찰은 A씨가 지난 9일 태국서 입국한 사실을 확인하고 소재를 추적해 붙잡았다. 하지만 A씨가 “아무것도 몰랐고 내가 죽인 게 아니다”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범행에 직접 가담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자 경찰은 살인 방조로 혐의를 변경했다.

이어 경찰은 A씨의 공범 2명을 쫓던 중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한 숙소서 20대 피의자 B씨를 추가로 붙잡았다. 한국 경찰은 B씨의 송환을 추진하고 있다. 또 다른 공범 C씨는 태국 주변국과 미얀마 등으로 밀입국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현지 경찰과 공조해 C씨를 추적 중이다.

일각에선 추적 중인 C씨가 사건의 핵심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태국 교민들 사이에선 C씨가 범죄 조직 또는 청부 살해업자라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C씨는 한국서 차량을 털고 현금을 훔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으며, 폭력 사건으로 처벌받은 전과도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 체포된 2명은 자신들의 범행을 부인하면서 C씨를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또, 용의자들은 불법 도박 관련 전과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고향 선후배 사이로 지난 3월부터 태국에 장기간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이들이 불법 도박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다가 발생한 돈 문제가 사건 범행 동기인 것으로 추정했다.

결국 미얀마로 도주했다고 추정되는 C씨를 잡아야 범행의 동기, 목적, 배경, 구체적인 경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알고 지낸 사이

한편, 지난 16일 수사당국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현재 C씨가 미얀마로 도주했다는 것도 100% 신뢰하기 어렵다. C씨를 체포하기 어렵게 하려는 조력자들의 허위 제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고인이 생전 마약, 불법안마시술소에 연루됐다는 등의 억측이 난무하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유가족의 신고로 지난 7일부터 대응하면서 용의자 3명 중 2명을 신속하게 체포할 수 있었고, 태국 경찰의 수사권을 보장하는 차원서 시신이 발견된 지난 11일부터 본격적인 공조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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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