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여기가 화력 세다길래…성추행 재고소할 것”

“가슴 터치했다” 수성경찰서 불송치 통보건
네이트판에 입장문 낸 업주 “직접 판단해달라”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지난 2021년, 성추행 의혹으로 경찰로부터 불송치 통보를 받았던 헬스장 업주가 최근 ‘가슴 터치도 지도 중 일부라는 미친 헬스장 고발’이라는 글을 게재했던 피해자에 대한 입장문을 냈다.

자신을 이슈가 됐던 헬스장 대표라고 밝힌 글 작성자 A씨는 지난 17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 판에 “모든 판단은 (글을)읽는 분들이 해주시리라 믿는다”며 “여기에 올라온 글을 보고 현재 헬스장을 이용하시는 회원님들과 현재 트레이너들에게 오명이 씌워지고 피해가 갈 것 같아 모두에게 정확하게 ‘이런 상황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회원 B씨가)2년이 지난 지금 다시 당시 트레이너 C씨에게 연락해서 사과하라며 연락하고 다시 재고소하겠다고 카톡과 디엠을 보냈다”며 카톡 대화 내용을 함께 공개했다.

카톡 대화 내용에는 B씨가 C씨에게 “성추행한 거 사과하시라. 재고소도 되더라. 사과 제대로 안 하시느냐?” “당신이 정상적이냐? 또 변호사 선임하시던가요?” “본인 이름까지 적어놓고 무슨 본인이 아니에요? 정상적인 트레이너가 누가 회원 가슴 만지나요” 등 따지 듯 몰아세웠다. B씨는 C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기도 했다.

A씨는 “물론 트레이너라는 직업 자체가 잘해야 본전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여자 문제, 머리에 근육만 가득 찬 사람들이라는 말들이 많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신경 쓰면서 행동한다”며 “현재 저희 헬스장은 장기 PT 회원님들로 구성돼 오랫동안 다니고 계시고 심지어 본인 아내, 여자친구, 부모님까지 보내주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더 이상 저희 헬스장 및 트레이너에 대한 억측과 비난을 멈춰주시기 바란다. 개인의 욕심으로 남을 이용해 어떤 이득을 취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사실과 무관한 이야기는 삼가달라”고 요청했다.


사건의 발단은 2년 전인 2021년 10월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사건 당일의 CCTV 및 자료들을 첨부하기도 했다.

A씨 주장에 따르면, 이날 B씨는 PT 상담을 받기 위해 헬스장을 방문해 상담 후 1개월 헬스장 회원권을 등록하고 혼자 개인운동을 했다. 상담을 마친 C씨는 맞은편에서 다른 회원이 운동기구 사용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지도 중이었다.

이때 불안한 자세로 운동하는 모습을 본 그는 B씨에게 다가가 “그렇게 운동하면 다칠 수 있으니 알려드리겠다. 운동 지도 중 터치가 있을 수 있으니 불편하시면 얘기해달라”고 고지한 후 운동기구 지도에 들어갔다.

첨부된 CCTV 캡처 영상에도 ▲B씨가 개인 운동 중인 모습(오후 5시22분1초) ▲첫 번째 운동기구를 지도하는 모습(22분49초) ▲가슴 근육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25분41초) ▲인포데스크로 찾아와 지도 요청하는 모습(33분28초) ▲세 번째 지도 장면(35분23초)이 등장한다. B씨는 해당 과정서 C씨가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 영상 캡처본은 36분13초에 촬영됐는데, 이 역시 운동 방법에 대한 지도 모습이 담겼다.

이날 개인운동 후 귀가한 B씨는 별안간 헬스장에 전화해 1개월 회원권의 환불을 요청했다. 또 같은 날 오후 11시경엔 C씨에게 지도하면서 가슴을 터치한 부분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당시 C씨는 B씨가 불쾌하게 여겼던 만큼 장문으로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그는 “회원님께서 불편하셨다면 정말 죄송하다. 일부러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조금이라도 더 가르쳐드리고 싶어 의욕이 앞서다 보니 본의 아니게 생각없이 행동했던 것 같다”며 “남자친구분이 기분 나쁘셨다고 하면 그것도 죄송하다. 만약 수업을 원하실 경우 여성 선생님으로 배정되도록 도와드리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기분 나쁘게 해서 정말 죄송하다. PT 결제건은 최대한 서비스로 챙겨드릴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드린 건데 유도로 생각했다면 그 부분 또한 죄송하다”고 재차 사과했다.

A씨에 따르면 C씨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헬스장서도 조용하고 회원들 사이에서도 ‘조심스럽고 조용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데다 여자친구도 트레이너로 근무 중인 이른바 사내 커플이었다.

다음날 C씨로부터 해당 내용에 대해 보고받고 상황을 인지한 A씨는 B씨로부터 성추행에 대한 수차례 사과를 요구받았다고 한다. 당시 B씨는 “C씨를 당장 잘라 달라”며 이날 오후 헬스장을 찾아와 수업 중인 C씨에게 다시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CCTV를 확인한 A씨는 “가슴을 만졌다는 상황은 없어 보였던 만큼 오해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C씨도 “불편을 느끼신 부분에 대해 죄송하다”며 사과했지만 B씨는 “만졌으니 당장 와서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서 A씨는 “영업방해로 신고하겠다. 나가 달라”고 했고 B씨는 “소리친 거냐? 경찰 대동해서 오겠다” 등 언성이 높아졌지만 그날 상황은 이렇게 일단락됐다.

한 주가 지나 A씨는 관할인 대구수성경찰서로부터 출석을 요구받아 CCTV 확인 및 진술서 작성 등의 조사를 받았으며, 같은 해 11월18일 경찰로부터 결국 불송치 통보를 받았다.

당시 성추행 누명을 쓴 C씨는 큰 충격으로 헬스장을 퇴사한 후 트라우마로 인해 다른 일을 하고 있다.

A씨는 “글 쓰신 내용 중 ‘저희는 원래 이렇게 지도하니 꼬우면 다른 헬스장 가라’고 한 내용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B 회원이 ‘여기는 여자 회원들 만지면서 가르치느냐’고 했고 저희는 ‘원래 지도할 때 남녀불문하고 터치 전에 불편하시면 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글쓴이의 최초 글과 자료들을 모두 수집했고 법적 처벌 조건을 충족해 변호사를 선임했으며 법적 대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해당 글은 1253명이 추천을, 28명이 반대 버튼을 눌렀으며 35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세상에…불송치로 끝난 문제인데 그거 싹 빼고 징징글 쓴 거임? 대단하네 ㅋㅋㅋ” “저건 윗가슴이 아니라 겨드랑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음? 겨드랑이 성추행? 글쓴이도 징글징글하다. 2년 전 불송치 난 걸 또 물고 늘어지네” “남자 트레이너가 역고소하면 안 되나? 누가 봐도 명백히 여자가 남자 몸을 터치하고 있는 증거 영상이 있는데” 등 A씨를 응원하는 댓글이 베스트 댓글로 올라가 있다.


이 외에도 “이거 공론화돼야 한다. <궁금한 이야기> 어디 갔냐? 일 안해?” “저게 성추행은 아닌 것 같은데…” “사장님, 트레이너 너무 불쌍하다. 이거 트레이너가 고소해야 하는 거 아냐?” 등 B씨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이 쇄도하고 있다.

앞서 지난 16일, B씨로 추정되는 누리꾼은 ‘가슴 터치도 지도 중 일부라는 미친 헬스장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던 바 있다. 그는 “여기가 화력이 세다고 해서 올린다. 시간이 된 일이지만 전 이 사건 이후로 트라우마로 또 같은 일을 겪을까 봐 헬스장을 못 가고 있고 헬스에 대한 인식이 진짜 안 좋아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부모님이 헬트(헬스 트레이너)들이 질이 안 좋다고 엮이지 말라고 너무 만류하셔서 고소 중간에 그만뒀는데 내일 다시 고소하러 간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이 어느 때인데 사전고지 없이 회원의 몸, 더군다나 예민한 가슴 부분을 꾹 누르는 건지 저는 알 수 없었다. 보통 가슴 같은 부위를 건드려야 한다면 헬트 본인 자신의 몸을 누르면서 설명하지 않느냐? 너무 당황해서 그 자리에선 별 말을 못했지만 집에 와서 성추행당한 거라고 생각하고 헬스장서 직접 사과 받고 싶어 찾아갔더니 ‘수업 중이라 바로 사과는 못한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트레이너가 제 몸을 터치해야 하는지도 의문이고, 영상에 나온 CCTV는 헬스장 측에서 제공한, 본인들 유리한 영상이 나온 장면만을 캡처한 것”이라며 “문자로 사과받았다고 해서 제가 다시 찾아가 얼굴 보고 사과받고 싶다고 한 건 진정한 사과라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게 그렇게 큰 죄인지도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아울러 “이 글은 진짜 제가 언급한 헬스장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닌, 제가 겪은 어려움을 호소하고자적은 공익성 목적의 글”이라며 “다들 피해없으시길 바란다. 성추행을 그렇게 원래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대표 밑에서 헬스 배우지 마시라”고 적었다.


해당 글에는 “성추행 신고하세요. 정상적인 트레이너는 PT 회원 몸도 말 없이 안 만진다. 심지어 가슴이라니…” “원래 헬트들 1도 지식 없으면서 여자들에게 껄덕이는 애들 참 많다” “성추행 맞다. 모르고 한 것도 아니다” 등 헬스 트레이너를 비판하는 댓글이 주를 이뤘다.

반면 “여기 센터 입장도 들어봐야 할 것 같다”는 반대 댓글도 눈에 띄었다.

한 회원은 “신고를 안 하고 이제 글을 씀? 사업장 말아먹으려고 대표가 큰소리쳤다? 보통은 합의를 보거나 사과하는 게 상식”이라며 “상식적으로 가슴을 만진 트레이너는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여기 센터 입장도 들어봐야 할 것 같은 글”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다른 회원도 “이미 불송치 결정난 거 가지고 2년이나 우려먹으려 하는 게 정신이 제대로 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또 CCTV 영상 보니 가슴도 아니었다. 팩트는 만질 가슴조차 없는 뽕브라던데, 어차피 감각도 없을 텐데…”라고 조소하기도 했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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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