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 막전막후

입맛 따라 눈엣가시만 제거?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잘못된 부분은 분명 바로잡아야 한다. 일부의 잘못을 전체로 확대해 몰아가는 행위는 잘못됐다. 윤석열정부가 ‘카르텔 타파’를 국정운영의 방향으로 잡으면서 많은 조직 전체가 점점 카르텔이 돼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과거 몸담았던 조직만은 나쁜 집단에서 빠졌다. 이러다가 후폭풍마저 불어닥칠 태세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서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에 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해당 발언을 두고 일각에선 수해 복구를 정치와 엮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서도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 

누굴 위한 
집단 몰이?

윤 대통령이 지목한 이권 카르텔은 비리와 불법이 드러난 노동계, 민간단체, 문재인정부서 추진된 태양광 관련 사업 등을 일컫는 것으로 여겨진다. 통상 카르텔이라는 용어는 동일 업종 기업이 경쟁 제한 혹은 완화를 목적으로 가격, 생산량, 판로 등에 대해 협정을 맺고 형성하는 독점 형태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법적인 행태를 일삼는 집단끼리의 결탁으로 여겨져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2년 전, 윤 대통령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소수 이권 카르텔을 타파하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윤 대통령이 발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금방이라도 이들과 전쟁마저 불사할 태세였다.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힌 소수 이권 카르텔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고, 책임의식, 윤리의식이 마비된 먹이사슬을 구축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같은 해 11월 국민의힘 대선후보 수락 연설서도 카르텔 언급은 다시 등장했다. 이들을 혁파하고,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이권 카르텔을 뿌리뽑기 위해 대선에 나섰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다만 이권 카르텔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윤정부가 언급한 카르텔 세력은 윤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자주 표적이 돼왔다. 지난해 2월, 대선 전국 유세 현장서도 자주 등장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발언 수위는 한껏 더 올라갔다. 충북 청주시 성안길 유세길서 그는 “카르텔 기득권 세력을 박살내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카르텔이라는 단어는 끊임없이 언급됐다. 지난해 9월에도 문정부의 태양광 비리가 적발되자 다시 카르텔을 띄웠다. 

같은 해 12월부터는 노조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이들을 카르텔로 규정해버렸다. 민노총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 사태서 강경 대응한 뒤 화물연대가 백기를 들고서다. 

수해 복구 정치적으로 엮어버려
어떻게 하겠다는 이유 빠져있어

화물연대에 이어 건설노조도 카르텔로 내몰렸다. 물론 일각에선 노동계의 악질적인 행태는 처벌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악의 축으로 매도하는 행위는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노조는 건폭(건설 폭력배)으로 몰렸으며, 결국 한 건설 노동자는 분신까지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6월 말, 경찰은 2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건폭 특별단속서 총 1484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이 중 132명은 구속했다. 최다 단속 사례는 전임비와 월례비 등 금품갈취 혐의였다. 문제는 대법원 판례상 월례비는 불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월례비, 전임비에 이어 윤정부는 회계장부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노조의 비리나 횡령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닌 이야기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가 개입하는 순간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 


윤정부의 카르텔은 문정부의 적폐와 비슷한 의미로 통용되는 듯하다. 당시의 적폐 세력은 검찰이었는데, 정치권서도 무리한 적폐 퇴치로 다른 현안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던 바 있다. 

윤 대통령의 3대 개혁 중 언급된 이권 카르텔은 세트 격이다. 정치에 참여한 지 2년이 흐른 현재에도 이들 세력과 전면전을 벌이겠다며 줄곧 강조해오고 있는 사안이다. 현재까지 윤정부서 카르텔로 못 박은 곳은 노동계, 민간단체, 사교육계, 태양광 사업, 5대 은행, 3개 이동통신사 등이다.

점점 다양한 계층 및 기업들이 카르텔 집단으로 낙인찍혀가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새로 인선된 차관들과의 자리서 현 정부는 반 카르텔 정부라며 맞서 싸우라고도 주문했다. 이번 수해 피해 복구 지원대책으로도 윤 대통령은 이권 카르텔의 보조금을 주겠다며 정치와 엮기도 했다.

이런 탓에 여의도에까지 옮겨가 정치적인 이슈로까지 번진 상황이다. 앞서 윤정부는 노조에 이어 민간단체에 지급된 국고보조금 1조1000억원 중 314억원이 부정 사용된 것을 확인했다며 부정행위가 적발된 단체를 형사고발 혹은 수사 의뢰했다.

정부는 민간단체 보조금 예산은 5000억원 이상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전 정권
발라내기?

결국 정치 이슈로까지 불거지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가 예산은 쌈짓돈이 아니다”라며 윤 대통령을 공격했다. 특히 정청래 최고위원은 “백번 양보해 부패·이권 카르텔을 털어 나온 돈이 있다고 해도 수재민은 하루가 급하다. 어느 세월에 피해 복구를 한단 말이냐?”며 윤 대통령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실제로 수재민 예산은 즉시 지급돼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조금 회수는 즉시 이뤄지기가 어렵다. 사실상 결정이 정확히 난 시점부터 환수할 수 있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하나 둘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염치가 있다면 수많은 생명을 잃은 참사에 카르텔을 들먹이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한노총이 보조금을 받는 부분은 이미 대부분 탈락했다”며 읍소했다. 보조금 선정에 탈락된 재원은 노동 상담 제공 서비스 부문이다. 

역대 정부들도 노조에 강경한 자세를 취했지만, 윤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모습을 자주 보인다. 노조를 때릴수록 윤정부의 지지율은 오르는 현상을 보이는데, 적어도 정치적인 이익이 있다는 뜻이다. 

이뿐만 아니다. 사교육계 역시 수능 킬러 문항과 관련돼 또 다른 카르텔로 규정됐다. 현재 대형 입시학원 등이 세무조사 대상이 됐고, 사정기관은 사교육계를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단순 킬러 문항부터 시작해 교육 카르텔로 확전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논리가 허술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문제의 시작은 지난 6월 전국 수능 모의평가였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게 학교 수업서 배우지 않은 내용은 수능 출제 문제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같은 발언은 수능을 5개월 남긴 시기에  말 그대로 교육계를 혼란에 빠뜨려놓기 충분했다.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식?

윤 대통령의 주문이 나오자마자 교육부 대입담당국장은 경질됐는데, 교육계에선 이 사태에 대해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대통령실은 교육 당국과 사교육이 결탁해 카르텔을 형성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교육 당국이 수능을 어렵게 낸 탓에 고액의 사교육이 횡행하게 됐다는 것이다. 교육 당국도 킬러 문항을 배제할 경우 사교육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를 내놨다.

문제는 최근 총리실서 보안자료인 수능 출제·검토위원 관련 자료까지 가져갔다는 점이다. 사교육과 카르텔 관련성을 확인하기 위해 수능 출제 인력풀 자료까지 입수한 것이다. 정부가 이들의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함께 지목된 것은 사교육 강사의 고수입이다. 본격적인 세무조사가 시작되면서 사실상 이들 강사가 카르텔의 한 축으로 지목된 셈이다. 

앞선 일련의 사태들을 살펴보면 윤정부는 불법을 저지른 몇몇을 전체가 그렇다는 것처럼 확대해 매도하려는 경향이 짙어 보인다. 책임 역시 카르텔로 분류된 곳이 무한으로 짊어지도록 만든다. 정부가 나서 대화와 타협을 하기보다는 수사와 환수로 압박하는 식이다. 


이번 수해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적 책임을 즉시 시민단체로 돌렸다. 오송 터널 참사가 발생했을 때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있었다. 대통령실서 나온 메시지는 “대통령이 서울로 뛰어간다고 해도 집중호우 상황을 크게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같은 말이라도 정치적인 수사를 내놔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대통령실의 입장과 발언은 대통령의 공식 창구로 늘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공감, 위로, 책임 대신 하고 싶은 말만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자리에 없던 와중에 이슈를 돌릴 대상이 필요했던 모양새다. 

노조, 교육계 등 전체 매도  
이후에 후폭풍 올까 우려돼

이권 카르텔 발언 이후 여전히 규모,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논의할 것인지도 모호하다. 노조, 민간단체에 지원하던 보조금은 추계되지도 않고 법적 근거도 없는 돈이다. 대통령실이 내놓는 메시지들은 여전히 단편적일 뿐이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올해 예산 중 아낄 수 있는 부분을 아껴 재해 복구와 지원에 사용하자는 것”이라며 또다시 해명에 진땀을 빼야 했다. 윤 원내대표는 “내년·내후년 예산을 확정할 때 방만하게 집행됐던 정치 보조금을 폐지해 복구와 재난 안전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쓰겠다는 뜻”이라면서도 “오히려 민주당이 수해로 정쟁을 부추기고 있다. 새롭게 편성되는 예산을 감안한 원론적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국민의힘의 해명이 시원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시민단체 등에 지원되던 정부보조금과 이번 수해와 무슨 상관이 있냐는 지적이다. 또 카르텔 중 법조 카르텔은 빠져 있다는 비판도 나오는 가운데, 선택적 카르텔 몰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법조 카르텔은 윤정부서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키워드다. 현재 검찰 수사에 따르면 대장동 수사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향하고 있지만, 고위 판·검사, 변호사 출신도 다수 연루돼있다. 이들 명단은 일찌감치 공개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수사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박영수 전 특검의 압수수색은 뒤늦게 이뤄졌고,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기각됐다. 최근 불거졌던 로톡 이용 변호사 징계 사태도 마찬가지다. 

앞서 로톡은 헌법재판소서 승소했고, 공정거래위원회도 로톡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변호사협회는 달랐다. 오히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들 변호사를 징계 처리했다. 

법조계 패스
이러다 역풍

윤 대통령은 여전히 법조 카르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있다. 전관예우, 특정 기업을 수사하던 검사가 퇴직한 뒤 해당 기업을 변호하는 로펌, 법률 고문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논란이 됐던 바 있다.

정치권서 제기하는 카르텔을 빙자한 자기 조직 지키기라는 비난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전체를 매도해버리면 반드시 역풍을 맞을 것”이라며 “이러다가 국민 전체를 카르텔로 몰아갈 판”이라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부 연구개발 예산도 줄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 타파’를 카드를 꺼내들자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이 내년 정부 출연금 중 주요 사업 예산의 20% 삭감안이 제출된 상태다. 

뒤이어 각 정부 부처와 한국연구재단 등의 공공 R&D 과제 예산도 감축되는 분위기다.

앞서 윤 대통령은 “나눠 먹기, 갈라 먹기 R&D는 제로 베이스(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며 강하게 말했다. 현재 연구 현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자 점점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계가 이권 카르텔이 있다고 하는 게 R&D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는 입장을 내놨다. 업계에서도 연구자 간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등의 우려가 나온다. <차>

<기사 속 기사> ‘쏙 빠진’ 금융권 회전문 인사

윤석열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을 언급하자 시선이 금융권에게도 쏠린다.

이와 관련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2023년 반부패 청렴 워크숍서 카르텔을 언급한 바 있다. 

이 원장은 “이권 카르텔이 문제가 되는 만큼 복무 자세를 더욱 가다듬어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감독과 검사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정작 금융 관료와 감독당국의 회전문 인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현재 관료 출신 인사들은 금융권에서 자리만 바꿔가며 직을 이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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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