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공든 호남탑’ 딜레마

다시 영남으로 핸들 돌리나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역시 말뿐인 챙기기였던 모양새다. 그토록 탄탄히 쌓아온 성을 아주 쉽게 부숴버린 형국이다. 김재원 수석최고위원과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의 발언으로 인해 보수당의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과거 발언들까지 소환되면서 호남 표심이 제대로 흔들리고 있다. 지도부가 다급하게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늦은 듯 보인다. 당내에서는 이미 불안함이 감지된다. 

국민의힘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이 전광훈 목사의 예배에 참석해 내뱉은 말의 후폭풍이 거세다. 소위 전라도를 배척하려는 태도가 강해서다. 전 목사는 김 위원에게 “헌법에 5·18 정신을 넣겠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전라도 표가 나오지 않는다. 전라도는 영원히 10%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또다시
극우로?

김 최고위원은 “불가능하고, 반대”라며 “표 얻으려고 하면 조상묘도 파는 게 정치인”이라고 답변했다. 5·18 정신을 헌법에 수록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해당 발언은 이틀 만에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서 보도됐고, 파장이 일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김 최고위원은 즉시 “죄송하다”며 SNS를 통해 사과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신임 지도부는 김 최고위원의 발언이 일파만파 커지자 재빨리 진화에 나섰다. 김기현 대표는 진지한 자리가 아니지만 적절한 발언이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성일종 정책위원장 역시 당과 관련 없는 이야기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개헌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한 이야기지만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히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다만 지도부는 본인이 반성했기 때문에 별도의 징계는 하지 않을 예정이다. 문제는 김 최고위원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임명된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의 과거 인터뷰도 다시 재조명됐다. 


앞서 김 위원장은 임명에 앞서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자격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인물이다. 그는 공개 석상서 다시 한번 5·18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서 민주당 의원이 김 위원장의 과거 인터뷰를 근거로 질의하자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북한군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020년 열린 한 정책 심포지엄 발표한 논문서도 5·18 헬기 사격은 허위라고 언급한 이력도 있다. 얼마 전 개정된 교육과정에서는 5·18민주화운동이라는 단어가 일제히 삭제된 사건까지 발생했다. 

교육부는 급히 해명에 나섰다. 교육과정 대강화 취지에 따라 교사의 교육 자율권 보장을 위한 조치라고 해명했지만, 5·18 단체를 중심으로 역사 지우기라는 뭇매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명시하도록 전면 공고했지만, 최근에는 이런 과거 논란까지 다시금 떠오르는 형국이다. 이처럼 여당 지도부 핵심 인사와 윤석열정부 인사들의 발언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공격모드에 들어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두 인물이 5·18 정신을 훼손했고, 반국가적 발언을 했다며 해임을 요구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함께 끌어들였다. 두 인물과 결별하지 않으면 한 편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해당 여파는 쉽게 가라앉을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지금껏 다져온 호남 기반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양새다. 즉시 윤 대통령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치는 중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5·18 정신 헌법 수록 입장은 확고하다”고 밝히며 해명에 진땀을 뺐다. 그러면서 “김 위원의 발언은 당론이 아니며, 대통령실과 연결지으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여러 단체들은 일제히 비판 목소리를 냈다. 참여연대를 비롯해 전국 18개 시민사회단체가 꾸린 참여자치지역운동연대는 지난 15일 성명을 내고 망언을 규탄했다. 이날 해당 단체는 “윤 대통령의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공약을 득표를 위한 공수표 공약으로 폄훼했다”고 비판했다. 

말 한마디에 호남 표심 추풍낙엽
물거품 된 윤석열 대통령의 노력

호남 정치권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일각에서는 두 인물을 향한 사퇴 압박까지 가하는 상황이다.

과거에도 국민의힘은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시절을 거치면서 5·18 민주화운동 관련 논란이 끊임없이 터졌던 바 있다. 문재인정부에 대한 반발이 컸지만, 이 때문에 반사이익을 얻어내지 못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을 깨고자, 대선 기간 윤 대통령은 호남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왔다. 후보 시절 무려 일곱 차례나 호남권을 찾으면서 지지를 호소했던 바 있다. 오프라인 홍보물도 모두 호남에 올인해 호남 230만가구에 손편지까지 발송한 적도 있다.

그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율을 뛰어넘는 기록을 세웠다. 보수정당이 호남서 거둔 가장 높은 득표율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윤 대통령은 당선 이후에도 이른바 ‘호남 챙기기’에 나섰다. 이를 계기로 보수당의 새로운 변화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5·18 광주민주화 기념식은 윤 대통령의 요청으로 여당 의원이 전원 참석했는데 이는 보수당 대통령으로서 헌정사상 유례없던 일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민주의문을 통과한 것도 보수정당 출신의 현직 대통령 중 처음이기도 했다. 기념식서도 윤 대통령은 자유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덕분에 윤 대통령의 지지율도 동반 상승했다.

분명 윤 대통령도 “42년 전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피로 지켜낸 전 광주·호남 시민의 5월 항거를 기억한다”며 “5월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 그 자체”라고 추켜세웠다. 이 같은 행보는 여야 정치권서도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정책적인 부문에서도 호남 챙기기는 빠지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두드려왔다. 대선 기간에도 호남 정책을 제시했다. 꾸준히 힘들여온 덕에 지방선거에서도 효과를 거뒀다. 광역단체장 선거에 승리한 후보는 없지만 모두 15%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할 정도였다. 

모두 다
물거품

이 덕에 호남 후보들은 선거비를 보전받을 수 있게 됐고, 보수 열풍이라는 새 기록도 세웠다. 지속적인 호남 포용 효과가 빛을 발한 셈이다. 

광주광역시의회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국민의힘 김용님 후보가 시의원에 당선돼 파란을 일으켰다. 광주서 보수정당 시의원이 탄생하는 성과를 거뒀다. 보수정당서 시의원이 당선된 것은 무려 27년 만이다. 


호남 일부 지역에서는 국민의힘 후보의 득표율이 민주당 후보를 앞지르기도 했다. 이처럼 국민의힘은 기존처럼 호남을 배제하려 하지 않았다. 또 보수당이 광주와 전남, 전북서 민주당에 이어 제2당으로 올라서는 쾌거도 이뤘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 역시 호남에 공들여온 인물 중 한 명이다. 이 전 대표 체제하에서는 일찌감치 호남에 상당한 힘을 쏟아부었다. 미리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친호남 기조를 닦았고, 호남 공략을 위한 내실화에 이 전 대표가 힘을 보탰다. 과거에 대한 반성을 선언한 뒤, 본격 지원하겠다는 노선을 깔았다. 

심지어 이 전 대표는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해 흑산도까지 방문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간 호남을 찾았다. 이른바 서진정책을 펼치기 위한 움직임이었던 셈이다. 

대선이 끝난 뒤에도 이 전 대표는 호남을 찾아 새벽까지 시민 한 명 한 명을 만나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윤리위 징계를 받은 뒤 장외 여론전을 펼칠 때도 호남은 이 전 대표가 빠짐없이 찾았던 지역으로 유명하다. 무등산을 등반하고 진도, 광주, 순천 등 호남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이처럼 이 전 대표의 호남 방문으로 호남 당원도 크게 증가한 측면이 있다. 이번 3·8 전당대회서도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호남서도 국민의힘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히 높아졌다. 

없어진
공략점


현장서 준비한 800석의 좌석보다 2배 가까운 1500명의 당원이 몰리는 등 말 그대로 대성황을 이뤘다. 호남서 달라진 보수정당의 위상을 한껏 보여줬던 셈이다. 호남서 김 최고위원은 국민의힘 당원으로 활동하고, 국민의힘을 돕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안다고 연설했던 바 있다. 

그는 “다른 지역서 노력하는 것에 100배, 1000배 노력을 기울여야 비슷한 결과가 온다”며 “한 표를 주면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호소했다. 앞서 김 최고위원의 망언 논란은 지금껏 쌓아올린 포인트를 한 번에 무너뜨린 측면이 있다. 

이번 3·8 전대를 통해 새로 꾸려진 지도부서 호남 세력은 찾을 수 없다. 최고위원에 출마했던 민영삼 홍보본부장이 전라도 출신이긴 하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내려진다. 민 본부장은 스스로를 호남의 강을 건너온 귀순용사라고 밝혔다.

최고위원들 중에서는 조수진 최고위원이 유일하게 호남 출신으로 정계 입문 당시 보수당으로 발을 들였다. 호남의 딸이라며 외연 확장에 자신감을 보이고는 있지만, 혼자서는 호남 표심을 다지기에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에는 호남을 제외하더라도 영남 지역의 인구가 더 많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선거를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서울에만 호남 출신 유권자가 34%를 넘어섰다. 국민의힘이 자꾸 호남을 배척하는 그림을 연출한다면 차기 총선서 수도권 승리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힘들어진 외연 확장
이대로라면 총선 망가질 판

그나마 있던 호남 표심이 이탈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지도부는 급하게 전주 현장 최고위원회의 개최라는 해결책을 내놨다. 전주는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열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다시 한번 5월에 개최될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소속 의원 전원 참석 방안도 모색 중이다. 

이번 전주 보궐선거는 국민의힘에 대한 호남 민심을 가늠할 시험대다. 이번에 득표율 15%를 넘기지 못하면 과거와 달라진 양상이 펼쳐질 수 있어서다. 이런 탓에 국민의힘 외연 확장에도 빨간불이 함께 켜질 수 있다. 양당의 지지율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상황서 불리한 쪽은 국민의힘이다.

대선도 외연 확장으로 선거전략을 꾸려온 마당에 그마나 끌어온 호남을 잃는다면, 어려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여당과 정부가 점차 우클릭 중이라는 것은 정치권 안팎에서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윤정부 출범 이후 정부 주요 부처 등에도 호남 인사가 극소수란 점으로 대통령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호남 표심을 다져야 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악재 속에서 호남 민심이 점차 식어가고 있는 가운데, 호남과의 연결통로를 반드시 마련해야 할 숙제가 생겼다. 사업이 진척되고 있긴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모습보다는 공약 이행 차원이나 특별법을 발의해 진전시킨 사례가 많다. 기대를 모았던 광주 최초의 복합 쇼핑몰, 고속철도 등의 대선공약 사업도 예산에서 줄줄이 누락됐다.

김 전 위원장이 과거 광주서 무릎을 꿇기까지 했던 이유는 보수당에 대한 호남의 긍정적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함이었고, 외연 확장의 필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재 뿌린
중앙당

두 인사의 망언을 두고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호남서 뛰는 사람이 백날, 천날 뛰어도 중앙에서 재를 뿌린다”고 작심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과거 총선 패배 트라우마가 벌써부터 불거지는 모양새다. 총선이 1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다시 한번 같은 이유로 패배할까 하는 우려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이번 3·8 전대처럼)당원으로만 총선을 치른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공든 탑을 한꺼번에 부셔버렸다”고 언급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기현도 전광훈 찬양?

국민의힘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의 발언과 함께 김기현 당 대표의 과거 발언도 함께 주목받는 모양새다.

김 대표는 극우로 평가되는 전광훈 목사를 과거 메시아라고 칭했던 점이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김 대표는 당시 울산시장이었다.

과거 전 목사가 주최한 집회에서 “패악한 (문재인)정권, 독재 정권을 향해 외치는 이사야 같은 선지자가 전광훈 목사”라고 했던 과거 이력 때문이다.

이런 탓에 당 내부에서도 벌써부터 총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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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