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헌정회장 출사표 던진 정대철 전 대표

“나라꼴이 어쩌다…정계 원로들이 나설 때”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형·동생하던 사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서운한 게 있다면 대화로 풀어가던 소위 말하는 ‘인싸’ 정치인.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를 대변하는 수식어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헌정회(이하 헌정회) 회장에 자신 있게 출사표를 던졌다. 

“정치는 Agree to disagree다.”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게 진정한 정치라는 뜻이다. 갈등과 모순을 극복하고 조정, 타협해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대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헌정회장 후보)가 세워온 ‘정치 모토’다. 지금으로부터 약 46년 전, 정치권에 발을 들인 뒤 긴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정치원로로 불린다.

‘그만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목표가 남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념을 이어나가기 위해 대한민국헌정회장에 도전한다. <일요시사>는 최근 정 후보와 만난 자리서 정치의 정의, 헌정회장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이유, 여야의 대립 해결법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강연이나 강의를 자주 나간다. 과거보다 더 바쁜 나날을 소화 중이다. (강연·강의는)20년 전부터 해온 일이다. 최근에는 교황의 남북 방문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거의 성사됐다. 교황이 우리나라에 먼저 방문했다가 육로로 평양 방문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를 위해 남북통일 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에서는 10년이 넘게 통일시민포럼도 매달 연다. 또 꾸준히 해오던 교정 선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50개가 넘는 교도소가 있는데 이 중 서울구치소를 정기적으로 찾고 있다. 


-정대철이라는 정치인에게는 선친과 선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영향을 받았나?

▲선친인 정일형 박사의 인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평가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항일투사로,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인물로 평생을 올곧게 살아오셨다. 선친은 개인의 평안함이나 가정의 부유함을 추구하신 분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정의로운 게 무엇인지 헤아리던 분이다. 이 부분은 자식으로서 상당히 존경한다. 

선비께도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선친께서 21번 체포됐었는데, 옥바라지는 물론 자식 양육까지 혼자 다 감당했다. 누비이불을 가위로 잘라서 생계를 이어가셨다. 많은 고생 탓에 손가락이 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밖으로 크게 휘었다.

그러나 선비께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까지 하셨다. 선비께서는 내게 늘 인간적인 정, 겸손을 가르치셨다. 이 부분이 내 정치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부분이다. 

-이 같은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오랜 기간 몸담아왔다. 가장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면?

▲과거 선대위원장을 맡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승리해 정권을 재창출을 견인했던 기억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지만, 16대 대선이 좀 더 다이내믹하고, 극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대선 직전 정몽준 전 의원이 지지를 철회했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정 전 의원을 찾으러 다녔었다. 그러다가 내가 노 전 대통령을 태워 정 전 의원 집을 방문했는데,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아 발길을 돌렸던 기억도 난다. 간곡한 모습을 보이는 게 필요했다. 순간적인 판단력이 발휘됐던 거다. 

정치는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전직 대통령 감옥 보내는 일 멈춰야 

-김 전 대통령과도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다. 정치철학은 용서와 화해였다. 그러나 최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국가적으로도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남아프리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떠오른다. 당시 미국은 아파르테헤이트(Apartheid)라는 흑백 분리 정책을 펼쳤다. 이 정책은 학교 교실부터 교통시설, 심지어 화장실까지 따로 사용하게 했다.

상당히 모욕적인 정책이었던 셈이다. 넬슨 대통령은 당선 후 오히려 진실과화해위원회(TRC)를 설립해, 백인이 흑인을 탄압한 사항을 신고만으로 용서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전 대통령도 비슷하다. 자신을 희생시키려고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맏딸인 박근혜 당시 의원을 만났다. 또 전두환을 직접 만나 용서와 화해의 집권 경험을 들었다. 내게 사법적 판단할 권리는 없지만, 최근에는 전 정부와 현재 정부의 대립이 심하다.

잘한 일은 승계하고, 잘못된 일은 반면교사 삼고 국가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전직 대통령이 감옥 가는 상황이 더는 벌어지지 않고, 화해와 용서의 정신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부모님의 말씀과 신념을 새긴 뒤, 오랜 기간 정치권에 몸담았다. 이제 정치원로가 됐는데, 정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다. 통상적으로 정치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대립을 조정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활동이다. 즉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행위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서로 간에 대립이 일어난다. 결국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Agree to disagree’ 서로 다르다는 인정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다름을 인정하면 갈등과 모순이 줄어든다. 

그러나 서로 다르다 보니 모순과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이 부분을 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극복하고 해결해나가야 한다. 정치는 권력을 정당한 방법(투표)으로 획득한다는 것을 모두 안다. 권력이라는 희소가치를 남용하지 않고, 정당하고 공정하게 배분할 필요가 있다.

-여야도 마찬가지다. 대화 자체가 단절된 모양새다. 일각에선 정치가 발전은커녕 퇴보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는데… 


▲과거엔 여야 간 대화가 더욱 활발했다. 여야 의원들이 만나 정말 대화를 많이 했었다. 결국 정치는 협치와 상생이 필요하다. 한 발도 아니고 반 발자국만 물러나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특히 결과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이 지게 돼있는 만큼 제일 노력해야 할 모습을 보일 사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없다. 이런 점에서 정치 선배, 자문기관을 통해서 정치에 대한 충고를 받아들이도록 하길 바란다. 최근 국민의힘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준석 전 대표, 나경원 전 대표, 안철수 의원을 발로 걷어차는 인상을 국민에게 줬다.

이 전 대표는 대선서 일정한 역할을 했고, 나 전 대표도 정치적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안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후보 단일화를 통해 정권교체에 도움을 줬던 인물이다. 충분히 포용할 수 있었다고 본다. 

“여야 반 발자국만 물러나자”
민주당 선당후사 정신 필요

-윤 대통령 옆에는 이른바 윤핵관 세력이 있다

▲윤핵관은 권력을 직접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눈에 덜 띄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해관계가 비교적 적은 정치원로들의 조언이 필요하다. 다만 윤 대통령 경험이 쌓이면 잘 헤쳐나가리라 믿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만 일해야 한다. 


-민주당 상황도 녹록지 않다. 국민의힘에게 지지율을 추월당했는데…

▲헌정회장은 당적을 갖고 있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민주당을 탈당한 상태다. 민주당에도 문제는 있다. 윤 대통령이 국민적 지지를 받을 만한 행동을 못 하면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올라가야 정상이다. 그러나 거꾸로 곤두박질쳤다.

심지어는 국민의힘과 지지율이12%p까지 차이가 난 적도 있었다. 민주당이 지지율을 회복하려면 선당후사의 정신이 필요하다. 당은 이재명 대표 개인 문제를 떠나서 당의 발전과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에 힘을 실어야 한다.

자꾸 이 대표 보호에만 빠져 있을 경우, 국민들 지지를 받기는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적 지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개인 문제는 개인 문제대로, 당은 당대로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국회 체포동의안에 당이 몰입돼있으면 정신 못 차린 정당으로밖에 볼 수 없다. 위기는 늘 기회다. 경제, 외교, 민생 등 산적해 있는 대국민적 문제가 많다. 혹여 당이 죽으면 당 대표도 죽는다. 

-국민의힘 측과는 어떤 소통을 하나?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적 있는데 당시 이 대표를 만나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윤 대통령도 이 대표를 만나지 않고 있고, 국민의힘도 그렇다. 상당히 잘못됐다. 1년째 정치가 멍하니 흘러갔다. 

-조금은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내년 총선 결과를 전망한다면? 

▲비행기는 양 날개로 중심을 잡고 날아간다. 정치도 비행기의 양 날개처럼 균형이 잡혀야 제대로 비행하는 법이다. 한쪽으로 쏠리면 균형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총선을 전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 어느 쪽이든 국민감정에 어긋나버리면 그 당은 패배하는 게 자명하다. 

“독불장군 있어선 안 된다”
현실 정치에 가감 없이 조언

-헌정회장 출마를 결심한 이유와 포부를 밝혀달라

▲헌정회장은 정치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원로 기관으로서 현직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에 대한 극단의 대결구도를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정치 선배로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유도하는 일은 당연하다. 주변서 출마 권유를 상당히 많이 받아 결국 출마를 결심했다. 

전·현직 국회의원의 모임인 만큼 국가의 원로 집단으로 봐도 무방하다. 지금까지는 그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원로 모임단체로서 국가 발전에 대한 지혜를 나눠야 한다. 출마한 이유도 국가 원로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헌정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

▲헌정회원으로서 평소 느낀 점을 이번에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헌정회의 위상을 제고시켜야 한다. 헌정회는 회원 스스로를 위하는 단체다. 정치 원로로서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더라도 현실 여야 정치인에게 가감없이 조언할 수 있는 단체가 돼야 한다. 

국가 원로라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대통령과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 등을 두루 만나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 국가 지도자나 정치인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며,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해선 안 된다. 

-내세우는 공약을 알려달라

▲국민은 퇴직한 국회의원이면 마냥 잘 산다고 생각하지만, 식권을 타러오는 사람도 더러 있다. 헌정회원의 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회의원 공제회를 만들 계획이다. 국민 세금만 자꾸 축내는 모습은 국가 원로 처지에선 민망할 만한 사안이다. 세금으로만 유지하는 단체가 아니라 국회의원 공제회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단체가 되도록 하는 게 목표다. 

특히 정계 은퇴 후 현실정치서 물러난 이들의 후생 복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군인공제회와 비슷한 개념이다. 군인공제회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미 헌정회에는 국민 세금 70억원이 투입된다. 공제 시스템을 도입하면 퇴직한 의원의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고, 수입을 올려 장학사업까지 할 수 있는 이점이 존재한다. 

-여야 원로에게 동시 지지를 받고 있다. 이유에 대해 분석해본다면?

▲정치에는 독불장군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정치는 함께해나가는 것이다. 가두리 양식장 같은 정치는 결국 필패의 길이다. 내 정치 역정을 되돌아봤을 때 우리의 세력만으로, 우리 지지자만을 바라보는 정치를 해오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여야 원로들이 동시에 지지해준 게 아닌가 싶다. 정치인으로 살면서 항상 상대를 존중해왔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어의 몸이 됐을 때도 안부 편지를 보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중도통합의 정치를 해와서 특별히 척을 진 정치인이나 정치단체도 없다. 요즘 말로 인싸였다. 정치라는 환경에 늘 살아왔지만, 불철주야 수많은 곳을 찾아 희망을 이야기하는 모습과 교도소 교정위원으로 활동한 모습에 점수를 많이 얻는 게 아닌가 싶다. 

-정치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정치를 논할 때는 시대적 소명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시대의 정치적 소명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더욱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만들겠다. 전두환이 물러난 이후 민주화하는 데 좋은 과정을 겪고 있지만, 민주주의가 더욱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인 건가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경제적으로 더욱 성장시켜 양극화를 함께 극복하고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GDP는 세계 10위다. 아프리카 55개국 GDP 합산(2020년 기준)과 같다. 그러나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지는 추세다.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극복해내겠다.

마지막으로는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나아가 평화적 통일을 이뤄내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시대적 소명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원로정치인로서 맡은 역할을 해나가겠다. 나의 정치 역정의 마지막 목표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헌정사상 최초 3대가 국회의원

고 정일형 박사, 정대철 헌정회장 후보,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전 의원은 3대가 모두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일무이한 일이다. 

정 박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광복운동을 했고, 광복 후에는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힘을 쏟았다.

아들인 정 후보 역시 5선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까지 지냈다.

손자 정 전 의원은 19대 총선서 당선됐다. <차>

[정대철은?]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전 민주화추진협의회 통일문제특별위원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9·10·13·14·16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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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