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헌정회장 출사표 던진 정대철 전 대표

“나라꼴이 어쩌다…정계 원로들이 나설 때”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형·동생하던 사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서운한 게 있다면 대화로 풀어가던 소위 말하는 ‘인싸’ 정치인.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를 대변하는 수식어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헌정회(이하 헌정회) 회장에 자신 있게 출사표를 던졌다. 

“정치는 Agree to disagree다.”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게 진정한 정치라는 뜻이다. 갈등과 모순을 극복하고 조정, 타협해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대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헌정회장 후보)가 세워온 ‘정치 모토’다. 지금으로부터 약 46년 전, 정치권에 발을 들인 뒤 긴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정치원로로 불린다.

‘그만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목표가 남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념을 이어나가기 위해 대한민국헌정회장에 도전한다. <일요시사>는 최근 정 후보와 만난 자리서 정치의 정의, 헌정회장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이유, 여야의 대립 해결법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강연이나 강의를 자주 나간다. 과거보다 더 바쁜 나날을 소화 중이다. (강연·강의는)20년 전부터 해온 일이다. 최근에는 교황의 남북 방문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거의 성사됐다. 교황이 우리나라에 먼저 방문했다가 육로로 평양 방문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를 위해 남북통일 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에서는 10년이 넘게 통일시민포럼도 매달 연다. 또 꾸준히 해오던 교정 선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50개가 넘는 교도소가 있는데 이 중 서울구치소를 정기적으로 찾고 있다. 


-정대철이라는 정치인에게는 선친과 선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영향을 받았나?

▲선친인 정일형 박사의 인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 평가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항일투사로,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인물로 평생을 올곧게 살아오셨다. 선친은 개인의 평안함이나 가정의 부유함을 추구하신 분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정의로운 게 무엇인지 헤아리던 분이다. 이 부분은 자식으로서 상당히 존경한다. 

선비께도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선친께서 21번 체포됐었는데, 옥바라지는 물론 자식 양육까지 혼자 다 감당했다. 누비이불을 가위로 잘라서 생계를 이어가셨다. 많은 고생 탓에 손가락이 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밖으로 크게 휘었다.

그러나 선비께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까지 하셨다. 선비께서는 내게 늘 인간적인 정, 겸손을 가르치셨다. 이 부분이 내 정치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부분이다. 

-이 같은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오랜 기간 몸담아왔다. 가장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면?

▲과거 선대위원장을 맡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승리해 정권을 재창출을 견인했던 기억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지만, 16대 대선이 좀 더 다이내믹하고, 극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대선 직전 정몽준 전 의원이 지지를 철회했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정 전 의원을 찾으러 다녔었다. 그러다가 내가 노 전 대통령을 태워 정 전 의원 집을 방문했는데,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아 발길을 돌렸던 기억도 난다. 간곡한 모습을 보이는 게 필요했다. 순간적인 판단력이 발휘됐던 거다. 

정치는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전직 대통령 감옥 보내는 일 멈춰야 

-김 전 대통령과도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다. 정치철학은 용서와 화해였다. 그러나 최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국가적으로도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 남아프리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떠오른다. 당시 미국은 아파르테헤이트(Apartheid)라는 흑백 분리 정책을 펼쳤다. 이 정책은 학교 교실부터 교통시설, 심지어 화장실까지 따로 사용하게 했다.

상당히 모욕적인 정책이었던 셈이다. 넬슨 대통령은 당선 후 오히려 진실과화해위원회(TRC)를 설립해, 백인이 흑인을 탄압한 사항을 신고만으로 용서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전 대통령도 비슷하다. 자신을 희생시키려고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맏딸인 박근혜 당시 의원을 만났다. 또 전두환을 직접 만나 용서와 화해의 집권 경험을 들었다. 내게 사법적 판단할 권리는 없지만, 최근에는 전 정부와 현재 정부의 대립이 심하다.

잘한 일은 승계하고, 잘못된 일은 반면교사 삼고 국가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전직 대통령이 감옥 가는 상황이 더는 벌어지지 않고, 화해와 용서의 정신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부모님의 말씀과 신념을 새긴 뒤, 오랜 기간 정치권에 몸담았다. 이제 정치원로가 됐는데, 정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다. 통상적으로 정치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대립을 조정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활동이다. 즉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행위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서로 간에 대립이 일어난다. 결국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Agree to disagree’ 서로 다르다는 인정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다름을 인정하면 갈등과 모순이 줄어든다. 

그러나 서로 다르다 보니 모순과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이 부분을 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극복하고 해결해나가야 한다. 정치는 권력을 정당한 방법(투표)으로 획득한다는 것을 모두 안다. 권력이라는 희소가치를 남용하지 않고, 정당하고 공정하게 배분할 필요가 있다.

-여야도 마찬가지다. 대화 자체가 단절된 모양새다. 일각에선 정치가 발전은커녕 퇴보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는데… 


▲과거엔 여야 간 대화가 더욱 활발했다. 여야 의원들이 만나 정말 대화를 많이 했었다. 결국 정치는 협치와 상생이 필요하다. 한 발도 아니고 반 발자국만 물러나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특히 결과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이 지게 돼있는 만큼 제일 노력해야 할 모습을 보일 사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없다. 이런 점에서 정치 선배, 자문기관을 통해서 정치에 대한 충고를 받아들이도록 하길 바란다. 최근 국민의힘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준석 전 대표, 나경원 전 대표, 안철수 의원을 발로 걷어차는 인상을 국민에게 줬다.

이 전 대표는 대선서 일정한 역할을 했고, 나 전 대표도 정치적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안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후보 단일화를 통해 정권교체에 도움을 줬던 인물이다. 충분히 포용할 수 있었다고 본다. 

“여야 반 발자국만 물러나자”
민주당 선당후사 정신 필요

-윤 대통령 옆에는 이른바 윤핵관 세력이 있다

▲윤핵관은 권력을 직접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눈에 덜 띄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해관계가 비교적 적은 정치원로들의 조언이 필요하다. 다만 윤 대통령 경험이 쌓이면 잘 헤쳐나가리라 믿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만 일해야 한다. 


-민주당 상황도 녹록지 않다. 국민의힘에게 지지율을 추월당했는데…

▲헌정회장은 당적을 갖고 있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민주당을 탈당한 상태다. 민주당에도 문제는 있다. 윤 대통령이 국민적 지지를 받을 만한 행동을 못 하면 상대적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올라가야 정상이다. 그러나 거꾸로 곤두박질쳤다.

심지어는 국민의힘과 지지율이12%p까지 차이가 난 적도 있었다. 민주당이 지지율을 회복하려면 선당후사의 정신이 필요하다. 당은 이재명 대표 개인 문제를 떠나서 당의 발전과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에 힘을 실어야 한다.

자꾸 이 대표 보호에만 빠져 있을 경우, 국민들 지지를 받기는 어렵다. 지금부터라도 국민적 지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개인 문제는 개인 문제대로, 당은 당대로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국회 체포동의안에 당이 몰입돼있으면 정신 못 차린 정당으로밖에 볼 수 없다. 위기는 늘 기회다. 경제, 외교, 민생 등 산적해 있는 대국민적 문제가 많다. 혹여 당이 죽으면 당 대표도 죽는다. 

-국민의힘 측과는 어떤 소통을 하나?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적 있는데 당시 이 대표를 만나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윤 대통령도 이 대표를 만나지 않고 있고, 국민의힘도 그렇다. 상당히 잘못됐다. 1년째 정치가 멍하니 흘러갔다. 

-조금은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내년 총선 결과를 전망한다면? 

▲비행기는 양 날개로 중심을 잡고 날아간다. 정치도 비행기의 양 날개처럼 균형이 잡혀야 제대로 비행하는 법이다. 한쪽으로 쏠리면 균형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총선을 전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지만,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 어느 쪽이든 국민감정에 어긋나버리면 그 당은 패배하는 게 자명하다. 

“독불장군 있어선 안 된다”
현실 정치에 가감 없이 조언

-헌정회장 출마를 결심한 이유와 포부를 밝혀달라

▲헌정회장은 정치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원로 기관으로서 현직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에 대한 극단의 대결구도를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정치 선배로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유도하는 일은 당연하다. 주변서 출마 권유를 상당히 많이 받아 결국 출마를 결심했다. 

전·현직 국회의원의 모임인 만큼 국가의 원로 집단으로 봐도 무방하다. 지금까지는 그 역할을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원로 모임단체로서 국가 발전에 대한 지혜를 나눠야 한다. 출마한 이유도 국가 원로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헌정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

▲헌정회원으로서 평소 느낀 점을 이번에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헌정회의 위상을 제고시켜야 한다. 헌정회는 회원 스스로를 위하는 단체다. 정치 원로로서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더라도 현실 여야 정치인에게 가감없이 조언할 수 있는 단체가 돼야 한다. 

국가 원로라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다. 대통령과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 등을 두루 만나 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 국가 지도자나 정치인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며,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해선 안 된다. 

-내세우는 공약을 알려달라

▲국민은 퇴직한 국회의원이면 마냥 잘 산다고 생각하지만, 식권을 타러오는 사람도 더러 있다. 헌정회원의 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회의원 공제회를 만들 계획이다. 국민 세금만 자꾸 축내는 모습은 국가 원로 처지에선 민망할 만한 사안이다. 세금으로만 유지하는 단체가 아니라 국회의원 공제회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단체가 되도록 하는 게 목표다. 

특히 정계 은퇴 후 현실정치서 물러난 이들의 후생 복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군인공제회와 비슷한 개념이다. 군인공제회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미 헌정회에는 국민 세금 70억원이 투입된다. 공제 시스템을 도입하면 퇴직한 의원의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고, 수입을 올려 장학사업까지 할 수 있는 이점이 존재한다. 

-여야 원로에게 동시 지지를 받고 있다. 이유에 대해 분석해본다면?

▲정치에는 독불장군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정치는 함께해나가는 것이다. 가두리 양식장 같은 정치는 결국 필패의 길이다. 내 정치 역정을 되돌아봤을 때 우리의 세력만으로, 우리 지지자만을 바라보는 정치를 해오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여야 원로들이 동시에 지지해준 게 아닌가 싶다. 정치인으로 살면서 항상 상대를 존중해왔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어의 몸이 됐을 때도 안부 편지를 보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중도통합의 정치를 해와서 특별히 척을 진 정치인이나 정치단체도 없다. 요즘 말로 인싸였다. 정치라는 환경에 늘 살아왔지만, 불철주야 수많은 곳을 찾아 희망을 이야기하는 모습과 교도소 교정위원으로 활동한 모습에 점수를 많이 얻는 게 아닌가 싶다. 

-정치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정치를 논할 때는 시대적 소명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시대의 정치적 소명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는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더욱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만들겠다. 전두환이 물러난 이후 민주화하는 데 좋은 과정을 겪고 있지만, 민주주의가 더욱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인 건가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경제적으로 더욱 성장시켜 양극화를 함께 극복하고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 GDP는 세계 10위다. 아프리카 55개국 GDP 합산(2020년 기준)과 같다. 그러나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지는 추세다.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극복해내겠다.

마지막으로는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나아가 평화적 통일을 이뤄내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시대적 소명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원로정치인로서 맡은 역할을 해나가겠다. 나의 정치 역정의 마지막 목표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헌정사상 최초 3대가 국회의원

고 정일형 박사, 정대철 헌정회장 후보, 새정치민주연합 정호준 전 의원은 3대가 모두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일무이한 일이다. 

정 박사는 일제강점기 시절 광복운동을 했고, 광복 후에는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힘을 쏟았다.

아들인 정 후보 역시 5선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까지 지냈다.

손자 정 전 의원은 19대 총선서 당선됐다. <차>

[정대철은?]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전 민주화추진협의회 통일문제특별위원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9·10·13·14·16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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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