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남FC 후원’ 유니폼의 비밀

로고 하나에 39억원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성남시민프로축구단(성남FC) 후원금 의혹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그때 왜 그랬지?’라는 의문에 하나둘 답이 나오는 모양새다. 당시 관계자의 말과 행동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부족했던 퍼즐이 나타나면서 그림이 완성되는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방탄조끼가 부서지고 있다. 이 대표는 대선 패배 이후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판에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도전해 배지를 달았다. 당 대표 선거에도 출마해 당선됐다. 검찰 수사에 대한 방어막을 몇 겹으로 친 셈이다. 

조여 오는
검찰 수사

이 대표를 둘러싼 의혹은 한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 2018년 한 변호사의 고발로 시작된 성남FC 후원금 의혹, 기업으로까지 번진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 굵직한 사건이 줄지어 있다. 

검찰은 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이 대표를 소환 조사했다. 이 대표의 측근이 연이어 구속되면서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임박했다는 의견이 나왔다. 어떤 사건으로 스타트를 끊을 지를 두고 법조계, 언론 등에서 다양한 말이 오갔다. 그러던 중 성남FC 후원금 의혹이 검찰의 레이더에 걸린 것. 

성남FC 후원금 의혹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재직할 무렵 민원을 해결해주는 대가로 두산건설, 네이버, 차병원 등 6개 기업이 성남FC에 후원금을 줬다는 내용이다. 2018년 장영하 변호사가 이 내용으로 고발할 당시 후원금 액수는 161억원에 달했다.


연루된 기업이 정자동 부지 용도변경(두산건설), 제2사옥 건축허가(네이버), 분당경찰서·분당보건소 부지 용도변경(차병원) 등 이른바 혜택을 받았다는 게 골자다. 

6개 기업 중 주목도가 높은 건 네이버다. 다른 5개 기업과 달리 ‘우회 지원’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후원금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2015년 5월19일 성남시·사단법인 희망살림·성남FC 등과 ‘빚 탕감 프로젝트 참여와 확대를 위한’ 4자 간 협약을 맺었다.

FC바르셀로나 벤치마킹 주장
‘돈 주고 새겼다’ 전혀 달라

네이버가 희망살림에 40억원을 후원하면 희망살림이 39억원을 성남FC에 광고료로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4자 간 협약서는 네이버의 우회 지원을 두고 의문을 제기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이 대표가 직접 SNS에 공개한 문서다. 성남시 시민단체 ‘성남공정포럼’은 4자 간 협약서가 이 대표의 ‘제3자 뇌물죄’를 입증하는 스모킹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4자 간 협약서 내용대로 진행된 게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4자 간 협약서에 따르면 네이버는 2015~2016년 2년에 걸쳐 희망살림에 40억원의 후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지급일자와 방법은 네이버와 희망살림의 별도 합의에 의해 정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두긴 했지만 네이버는 독특하게도 ‘법인회비’ 명목으로 돈을 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세제 혜택도 받지 않았다. 

희망살림은 19억5000만원씩 2년 동안 총 39억원을 성남FC에 광고료로 지급한다고 했다. 희망살림은 취약계층의 금융복지를 위한 사단법인이다. 모금 활동을 통해 장기 연체된 부실채권을 싸게 사들인 뒤 이를 소각해 채무자의 빚을 없애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고유 목적사업은 ‘채무자의 빚 탕감’이다. 수많은 채무자의 빚을 없애줄 수 있는 돈을 성남FC에 광고료로 낸 셈이다. 

성남FC는 그 조건으로 희망살림의 ‘롤링 주빌리’ 로고를 메인스폰서 광고로 표출하기로 했다. 선수 유니폼에 롤링 주빌리를 새겨 빚 탕감 프로젝트를 알리자는 것. 문제는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성남FC 유니폼을 살펴보면 의아한 구석들이 많다. 

돈 내고
흔적 없어

4자 간 협약은 2015년 5월에 진행됐다. 하지만 2015년 2월 이미 성남FC 유니폼에는 ‘Rolling Jubilee(롤링 주빌리)’가 새겨져 있었다. 성남FC는 2015년 2월16일 롤링 주빌리를 메인 유니폼 로고로 채택했다며 국내서 공익캠페인을 메인 유니폼 로고로 사용하는 것은 성남FC가 처음이라고 홍보했다.

당시 성남FC 관계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서도 이 로고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어 아시아 전역에 홍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희망살림 등에서 광고료를 지급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석연치 않은 부분은 2015년 5월 4자 간 협약 이후 유니폼의 변화다. 성남FC의 2016년 유니폼을 보면 ‘Jubilee Bank(주빌리 뱅크)’가 새겨져 있다. 4자 간 협약서에 따르면 성남FC는 롤링 주빌리를 유니폼에 넣었어야 한다. 하지만 성남FC는 원래 로고로 쓰고 있던 롤링 주빌리 대신 주빌리 뱅크를 넣어 유니폼을 만들었다.

게다가 39억원의 광고료도 지급받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성남FC가 롤링 주빌리 로고를 유니폼에 새길 당시 ‘FC바르셀로나’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FC바르셀로나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대표하는 축구단으로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오래 몸담은 곳으로 유명하다. 

성남FC는 2017년 네이버의 우회 지원 의혹이 불거지자 ‘성남FC-네이버-희망살림 후원 협약 관련 정치적 의혹 보도에 대한 성남FC 입장’을 발표했다.

입장문에 따르면 “성남FC의 공익켐페인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FC바로셀로나가 유니세프를 유니폼에 노출한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라며 “국내 프로스포츠구단 최초로 공익캠페인을 유니폼 메인 스폰서로 사용함으로써 구단 이미지와 사회공헌 가치를 제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 대표는 2015년 11월19일 FC바르셀로나 구단을 방문했다. 성남FC 구단주 자격으로 FC바로셀로나를 벤치마킹하려는 의도였다. 당시 이 대표는 “시민구단인 성남FC가 벤치마킹하고 싶은 구단이 바로 FC바르셀로나”라며 “조합원을 구성해 운영하는 민주적인 방식이 우리가 크게 배울 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눈 가리고
아웅 했나


2018년 1월12일 민주당 제윤경 전 의원도 자신의 SNS에 성남FC 관련 글을 쓰면서 FC바르셀로나를 언급했다. 제 전 의원은 4자 간 협약에서 희망살림을 대표해 협약서에 서명한 인물이다. 당시 대표권을 가진 대표가 따로 있었는데도 제 전 의원이 상임이사 자격으로 협약식에 참석해 서명을 하면서 대표성 논란이 불거졌다. 

제 전 의원은 “2006년 세계적인 축구 구단인 FC바르셀로나의 유니폼에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유명 기업의 로고 대신 ‘유니세프(UNICEF)’의 로고가 새겨진 것”이라며 “유명 구단의 경우 유니폼에 상업 로고(스폰서)를 달아 막대한 수익을 본다. 그러나 세계서 가장 유명한 구단 중 하나인 FC바르셀로나는 그런 상업적 수익 대신 오히려 공익 목적의 국제연합 아동기금, 유니세프를 홍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15년 우리나라에서도 처음 그런 일을 한 곳이 있다. 바로 성남FC”라며 “당시 성남시는 2014년부터 ‘빚 탕감 프로젝트(롤링 주빌리, Rolling Jubilee)’를 펼치고 있었고 이후 성남FC의 유니폼 메인 로고로 채택, 국내 프로스포츠구단 최초로 공익캠페인을 스폰서로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공익캠페인의 참여와 확대를 목적으로 성남시, 내가 상임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희망살림, 성남의 대표 기업인 네이버, 그리고 FC바르셀로나처럼 시민구단이었던 성남FC가 뜻을 모아 공개 협약식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FC바르셀로나를 벤치마킹했다는 성남FC, 이 대표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협약서 내용과 다른 로고
이재명 정책 홍보용으로?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성남FC와 FC바르셀로나의 상황은 확연히 다르다. FC바르셀로나는 1899년 창단 이후 무려 106년 동안 유니폼에 클럽 문장과 선수 이름 외에 어떤 표시도 붙이지 않았다. 그 전통을 깨고 유니폼에 새긴 로고가 바로 ‘유니세프(UNICEF)’다.

여기에 FC바르셀로나는 향후 5년 동안 매년 150만유로(약 18억원)를 유니세프에 기부한다는 내용의 협력협정을 맺었다. 

심지어 FC바르셀로나는 유니폼에 로고를 새기고 되레 돈을 냈다. 광고료를 지급받고 유니폼에 로고를 새긴 성남FC와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여기에 성남FC는 협약서에 명시된 롤링 주빌리 대신 주빌리 뱅크를 새긴 점도 의문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실제 돈을 준 네이버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말 그대로 돈만 낸 셈이다.

주빌리 뱅크, 이른바 주빌리 은행은 2015년 8월27일 설립됐다. 금융기관으로부터 부실채권을 싸게 구입해 채무자에게 원금의 일부만 갚으면 빚을 탕감해 준다는 취지로 시작됐다. 당시 이 대표는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장과 공동 은행장을 맡았다.

2015년 2월 성남FC 유니폼에 새겨져 있던 롤링 주빌리는 1년 뒤인 2016년 2월 주빌리 뱅크로 바뀌었다. 2015년 5월 성남시‧네이버‧희망살림‧성남FC가 4자 간 협약식을 맺었고 3개월 뒤 주빌리 은행이 출범했다. 성남FC 유니폼에 새긴 주빌리 뱅크라는 로고가 이 대표를 ‘띄우기’ 위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는 지점이다. 

1년 동안
무슨 일이?

성남공정포럼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는 네이버의 39억원으로 ‘빚 탕감 프로젝트’라는 본인 정책을 홍보한 것”이라며 “희망살림, 주빌리 은행과 연관된 이헌욱 GH 사장, 제윤경 전 의원, 유종일 원장 등도 전부 출세가도를 달리지 않았나. 그들 입장에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시민단체,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 고발 이유는?

성남FC 후원금 의혹에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없던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부각되고 있다.

성남시 시민단체인 성남공정포럼서 이 GIO를 ‘제3자 뇌물죄’ 혐의로 고발한 것. 

<일요시사>가 입수한 고발장에 따르면 김진철 사무국장은 지난달 26일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이 GIO와 민주당 제윤경 전 의원을 제3자 뇌물죄로 조사해달라고 수원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 GIO는 2013년 8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네이버 이사회 의장직을 맡았다. 

김 사무국장은 “네이버는 상장기업이기 때문에 상장기업 회계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며 “거액의 자금을 희망살림에 후원금으로 지출하기 위해선 내부 결재 및 이사회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GIO가 당시 이사회 의장으로 40억원 후원금 지출에 대해 최종 결정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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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