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초가’ 문재인 옥죄는 네 가지 검날

검찰 칼춤 추는데 문빠는 조용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면초가,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래. 주변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을 뜻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검찰의 노래’에 시달리고 있을 듯하다. 재임 시기 일어난 사건이 하나둘 들춰지면서 검찰의 포위망이 좁혀오는 모양새다. 여기에 공고했던 지지층도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저는 그냥 대통령으로 끝나고 싶다. 대통령 이후에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이라든지, 현실 정치와 계속 연관을 갖는다든지 그런 것 일체 하고 싶지 않다.” “대통령을 하는 동안 전력을 다하고 대통령이 끝나면 ‘잊혀진 사람’으로 그렇게 돌아가고 싶다. 대통령 끝난 이후 좋지 않은 모습, 이런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잊히고 싶다
SNS 등장?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퇴임 이후엔 ‘자연인 문재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드러냈다. 경남 양산 사저에 머물면서 자연과 벗 삼아 살겠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하지만 지난 5월9일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고 얼마 되지 않아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통에 나섰다. 

책을 추천하거나 자신과 반려동물을 근황을 알리는 등 꾸준한 SNS 활동을 이어갔다. 언론을 통해 문 전 대통령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정치권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왔다. 구심점이 사라진 ‘친문(친 문재인)’과 지지세력에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는 의견과 자연인이 된 전직 대통령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일 뿐이라는 의견이 맞섰다. 

어떤 해석이 맞든 문 전 대통령은 ‘잊혀진 사람’이 되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문제는 그 존재감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문재인정부 시절 일어난 사건이 재부각되면서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고 있다.


수사 범위가 확대되면서 검찰의 칼끝은 좀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중이다.

지난 14일 검찰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을 불러 조사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2020년 9월 북측 서해 소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어업지도 활동을 하던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대준씨가 실종됐다가 숨진 사건이다. 이씨는 실종 지점에서 38㎞ 떨어진 북방한계선 이북 북측 해역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사건이 화두로 떠오른 건 문정부 조사와 윤석열정부의 조사 결과가 정반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2020년 당시 문정부는 이씨의 자진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지만 윤정부 해경과 국방부는 지난 6월 결과를 번복했다. 결과가 180도 달라지면서 당시 사건 관련자가 줄줄이 언급됐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턱밑까지
서훈 구속·박지원 조사·유족 고소

박 전 원장은 이날 오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첩보 삭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에 출석했다. 그는 검찰 조사 전 “문재인 대통령이나 서훈 실장으로부터 어떤 삭제 지시도 받지 않았으며 국정원장으로서 직원들에게 무엇도 삭제하라는 지시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 전 원장은 이씨가 북한군에 피살된 다음 날인 2020년 9월23일 오전 1시에 열린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뒤 국정원 첩보 보고서 46건을 삭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당시 회의에서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보안 유지를 명목으로 관계기관에 첩보를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파악했다.

서 전 실장은 직권남용 등 혐의로 지난 9일 구속 기소됐다. 


서 전 실장의 구속, 박 전 원장의 소환 조사가 이어지면서 검찰 수사가 문 전 대통령을 향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박 전 원장은 지난 15일 검찰 조사 후 출연한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검찰 조사가)문 전 대통령까지 미치지 않으리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문 전 대통령에게 조금이라도 혐의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저한테 ‘문재인 대통령한테 보고했느냐’를 물었을 것인데 전혀 말이 없었다”며 “제가 받은 감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은 아니고 아마 제 선에서 끝나지 않을까”라고 추측했다. 검찰 수사가 더 윗선으로는 향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이씨의 유족 측은 박 전 원장의 검찰 조사 날인 지난 15일 문 전 대통령을 검찰에 고소했다. 이씨의 친형 이래진씨는 이날 서울중앙지검을 찾아 직무유기·허위공문서 작성·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뒤바뀐 결과
확대된 수사

법조계에서는 문 전 대통령의 조사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족 측 변호사는 문 전 대통령이 이씨 사망 전 서면보고를 받았음에도 즉시 북한에 구조요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직무유기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씨에 대해 자진 월북으로 발표한 점 등에서 문 전 대통령에게 최종 승인자로서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일 “서해 사건은 당시 대통령이 국방부와 해경, 국정원 등의 보고를 직접 듣고 보고를 최종 승인한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문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주변부를 향한 검찰의 칼날도 매섭다. 지난 8일 검찰은 타이이스타젯 배임 사건과 관련해 시한부 기소중지 조치를 해제하고 이스타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지난 1월 기소중지 처분 이후 약 11개월 만이다.

이번 압수수색은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의원이 타이이스타젯을 실소유했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타이이스타젯은 2018년 문 전 대통령의 사위인 서모씨가 취업해 특혜 채용 논란이 일었던 회사다. 이 전 의원이 차명으로 운영해온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서씨의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해 “청년의 꿈과 희망을 짓밟고 미래를 훔친 이스타항공 채용 비리는 그야말로 공정이라는 가식의 탈을 쓴 민주당정권 비호 아래 자행된 ‘청년 기만극’”이라면서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으로 규정하고 이스타항공을 국정조사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위·아내
현재진행형

서씨는 증권·게임업계 출신으로 항공업 경력이 사실상 없다. 그는 이 전 의원이 2017년 2월 타이이스타젯을 설립하고 2018년부터 2020년 초까지 전무이사로 근무했다. 서씨 가족도 태국으로 이주했는데 당시부터 별다른 영업 활동을 하지 않아 ‘유령회사’란 의혹을 받았다. 


이 전 의원은 2018년 3월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 임명된 데 이어 2020년 4월 총선 때 민주당 공천을 받아 전북 전주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 전 의원의 인사 및 공천과 서씨의 채용이 연관됐다는 의혹이 나왔다. 2020년 9월 문 전 대통령과 이 전 의원은 뇌물죄로 고발당했다. 

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 관련 논란도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있다. 한 시민단체가 2019년 3월 문 전 대통령 부부의 의상, 구두, 액세서리 비용 등을 공개해달라며 대통령 비서실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월 사실상 원고 승소로 판결했지만 문정부 청와대는 불복해 항소했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윤정부가 항소를 취하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윤정부는 항소를 유지하기로 한 뒤 문 전 대통령 부부의 의전비용 관련 정부 예산편성 금액과 일자별 지출 실적에 대해 “각 정보를 보유·관리하고 있지 않다”는 내용의 항소이유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과 주변부에 대한 사법 리스크 외에도 문 전 대통령을 신경쓰이게 하는 요소가 또 있다. 문정부에서 역점적으로 추진했던 정책이 윤정부 들어 하나씩 뒤집어지고 있는 것.

탈원전·문재인케어 폐기 수순
개딸에 밀려 지지세력 줄었나?

최근에는 ‘문재인케어’가 표적이 됐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이른바 문재인케어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여 가계의 병원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의료비 부담 완화 정책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케어를 사실상 폐기하는 방향의 건강보험개혁을 공식화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건보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은 재정을 파탄시켜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결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돼있다”며 “건보 급여와 자격기준을 강화하고 건보 낭비와 누수를 방지해야 한다. 절감된 재원으로 의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분들을 더 많이 지원할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탈원전 정책도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4일 “지난 정권에서 무리하게 추진된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정책을 정상화했다”며 올해를 ‘원전 사업 재도약 원년’으로 규정했다.

이는 경북 울진 신한울 원자력발전 1호기 준공 기념행사 축사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원전 사업을 우리 수출을 이끌어가는 버팀목으로 만들고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원전 강국으로 위상을 다시금 펼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윤정부의 연이은 ‘문 뒤집기’에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전임 정부 정책이라고 해서 색깔 딱지를 붙여서 무조건 부정만 한다면 그에 따른 고통은 우리 국민의 몫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윤건영 의원은 윤정부의 문재인케어 폐기를 두고 “한 마디로 얼빠진 일을 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사라진 방패
속수무책?

여기에 문 전 대통령의 지지층이 예전만큼 화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의 절대적 지지자를 가리키는 ‘문빠’의 활동력이 많이 뜸해졌다는 의견이 있는 것. 일각에서는 민주당 이 대표의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의 세력이 커지면서 문 전 대통령 지지세력이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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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