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록 법무사의 쉬운 경매> 주민등록을 옮기면 안 되는 이유

[Q] 확정일자에 의한 우선변제권을 갖춘 임차인입니다. 집주인이 주민등록을 잠시 옮겨달라는 데, 괜찮을까요?

[A] 주민등록을 옮기면 안 됩니다.

임대차는 그 등기가 없는 경우에도 대항요건(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갖추면 그 다음 날부터 제3자에 대해 대항력이 생기고(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대항력), 경매기입등기 전에 대항요건을 갖춘 소액임차인에게는 주택가액(토지가액 포함)의 1/2 범위 내에서는 선순위 담보권(저당권, 근저당권, 가등기담보권)보다 더 우선적으로 소액보증금을 변제해 주고(법 제8조)(소액보증금의 우선변제권 ­ 확정일자에 의한 우선변제권과 구별하기 위해서 최우선변제권이라고도 한다), 대항요건과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인은 후순위 권리자보다 우선적으로 배당을 받을 수 있습니다(법 제3조의2)(확정일자에 의한 우선변제권).

위와 같은 대항력 및 우선변제권을 행사하려면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해야 하는데, 대항요건으로서의 주민등록은, 주민등록이 주민등록법상의 절차에 따른 유효한 주민등록이어야 하고, 실제의 거주를 표상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또한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이라는 임대차의 공시방법은 등기라는 원칙적인 공시방법에 갈음해 마련된 것이므로, 임대차 공시방법으로서의 주민등록이 유효한 공시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주민등록이 등기사항증명서상의 주택의 현황과 일치해야 합니다. 

다만 주택의 소유권보존등기가 이뤄진 후 토지의 분할 등으로 지적도, 토지대장, 건축물대장 등의 주택의 지번 표시가 분할 후의 지번으로 등재돼있으나 등기부에는 여전히 분할 전의 지번으로 등재돼있는 경우, 임차인이 주민등록을 함에 있어 토지대장 및 건축물대장에 일치하게 주택의 지번과 동호수를 표시했다면 설사 그것이 등기부의 기재와 다르더라도 사회통념상 임차인이 그 지번에 주소를 가진 것으로 제3자가 인식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유효한 임대차의 공시방법이 됩니다(대법원 2001다63216 판결).


그리고 주택의 임차인이 그 주택의 소재지로 전입신고를 마치고 입주함으로써 임차권의 대항력을 취득한 후 일시적이나마 다른 곳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했다면, 전출 당시 대항요건을 상실함으로써 대항력은 소멸하고, 그 후 임차인이 다시 그 주택의 소재지로 주민등록을 이전했다면 대항력은 당초에 소급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재전입한 때로부터 새로운 대항력이 다시 발생합니다(2002다20957).

또한 주택임차인의 의사에 의하지 않고 시장, 군수 또는 구청장에 의해 주민등록이 직권말소된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그 대항력은 상실된다고 할 것이지만, 직권말소 후 동법 소정의 이의절차에 따라 그 말소된 주민등록이 회복된 경우에는 그 대항력이 유지된다고 할 것이고, 동법시행령 제32조(말소자와 거주불명 등록자 재등록 등)에 의해 재등록이 이뤄진 경우에는 직권말소 후 재등록이 이뤄지기 이전에 주민등록이 없는 것으로 믿고 임차주택에 관해 새로운 이해관계를 맺은 선의의 제3자에 대해 임차인은 대항력의 유지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2002다20957).

주택 임차인이 그 가족과 함께 그 주택에 대한 점유를 계속하면서 그 가족의 주민등록을 그대로 둔 채 임차인만 주민등록을 일시 다른 곳으로 옮긴 경우라면, 전체적으로나 종국적으로 주민등록의 이탈이라고 볼 수 없는 만큼, 대항력을 상실하지 않습니다(95다30338).

경매목적 부동산이 경락된 경우에는 소멸된 선순위 저당권보다 뒤에 등기됐거나 대항력을 갖춘 임차권은 함께 소멸합니다. 따라서 그 매수인(경락인)에 대해 그 임차권의 효력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99다59306).

즉, 대항력을 갖추기 전에 선순위 저당권이 있으면 매수인에게 대항력을 주장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선순위 저당권이 있는지 여부는 등기사항증명서에 의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소유자가 주택을 매도함과 동시에 매수인으로부터 당해 주택을 임차한 경우(소유자가 집을 팔고 임차인이 된 경우)에는 소유자의 주민등록은 매수인에게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된 이후에야 비로소 대항력 인정의 요건이 되는 주민등록이 되므로, 소유권이전등기 다음날부터 대항력을 갖게 됩니다(99다59306).

주택임차인이 임차주택을 직접 점유해 거주하지 않고 그곳에 주민등록을 하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임대인의 승낙을 받아 적법하게 임차주택을 전대하고 그 전차인이 주택을 인도받아 자신(전차인)의 주민등록을 마친 때에는, 이로써 당해 주택이 임대차의 목적이 돼있다는 사실이 충분히 공시될 수 있으므로, 임차인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정한 대항요건을 적법하게 갖췄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주택임차인이 임차한 주택을 임대인의 승낙을 받아 전대차하고 전차인이 입주한 경우에는 임차인(전대인)이 간접점유자가 되고 전차인이 직접점유자가 되는데, 이때는 간접점유자인 임차인의 주민등록으로는 적법한 주민등록이라고 할 수 없고, 실제로 당해 주택에 거주하는 직접점유자의 주민등록을 해야 비로소 제3자에 대해 적법하게 대항력을 취득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주민등록법 제6조, 대법원 2000다55645 판결).

법인은 법인이 임차인이고 법인의 허락을 받은 자연인이 주민등록을 마쳤더라도 이를 법인의 주민등록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96다7236).

그러나 주택도시기금을 재원으로 저소득층 무주택자에게 주거생활 안정을 목적으로 전세임대주택을 지원하는 법인(한국토지주택공사, 지방공기업법 제49조에 따른 지방공사)이 주택을 임차한 후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그 법인이 선정한 입주자가 그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쳤을 때에는 대항력이 인정됩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2항).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법인이 소속 직원의 주거용으로 주택을 임차한 후 해당 법인이 선정한 직원이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친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3항). 다만 위와 같이 대항력이 인정되는 법인에 대해서는 우선변제권이 인정될 수 있으나(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2 제2항, 제3조의3 제5항), 소액보증금의 우선변제권은 인정되지 않습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8조 제1항).

출입국관리법에 따른 외국인의 외국인 등록과 체류지 변경신고는 주민등록과 전입신고를 갈음하며(출입국관리법 제88조의2 제2항),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에 따른 외국국적동포의 거소신고 또는 그 이전신고도 마찬가지입니다(출입국관리법 제10조 제4항).

한편 재외국민의 경우 2015년 1월22일부터 주민등록법이 개정되면서 재외국민 주민등록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재외국민도 주민등록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외국국적동포가 국내거소신고와 거소이전신고를 한 경우, 외국인이 외국인 등록과 체류지 변경신고를 한 경우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에서 주택임대차의 대항요건으로 정하는 주민등록과 같은 법적 효과가 인정되고, 이 경우 국내거소신고 등을 한 때에 전입신고가 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2015다254507). (그러므로 매수 희망자 입장에서는 이런 경우에 외국국적동포 또는 외국인은 주민등록등초본, 전입세대열람내역(지번/도로명)에 나오지 않으므로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경우에는 임차인 확인 시 주의해야 합니다).

주민등록은 다가구주택의 경우에는 지번만 기재하는 것으로도 충분하고, 위 건물 거주자의 편의상 구분해놓은 호수까지 기재할 의무나 필요는 없습니다(97다47828).

그러나 다세대주택(공동주택)의 경우, 지번만 표시하고 동·호수를 누락하거나 주민등록이 등기사항증명서상 동·호수와 다르게 기재돼있는 경우에는 그 주민등록은 공시방법으로서 유효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99다4207).

다가구주택과 다세대주택에 대한 구별은 건축법시행령 별표 제1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건축법시행령에서 정하는 다가구주택은 다음의 요건을 모두 갖춘 주택으로서 공동주택에 해당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1) 주택으로 쓰는 층수(지하층은 제외한다)가 3개 층 이하일 것. 다만, 1층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필로티 구조로 해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부분을 주택(주거 목적으로 한정한다) 외의 용도로 쓰는 경우에는 해당 층을 주택의 층수에서 제외한다.
2) 1개 동의 주택으로 쓰이는 바닥 면적의 합계가 660제곱미터 이하일 것
3) 19세대(대지 내 동별 세대 수를 합한 세대를 말한다) 이하가 거주할 수 있을 것」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그 임차주택을 등기부상 표시(202호)와 다르게 현관문에 부착된 호수의 표시(302호)대로 그 임대차계약서에 표시하고, 주택에 입주해 그 계약서상의 표시대로 전입신고를 하고 그와 같이 주민등록표에 기재된 후 그 임대차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부여받은 경우, 그 임차 주택의 실제 표시와 불일치한 표시로 행해진 임차인의 주민등록은 그 임대차의 공시방법으로 유효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임차권자가 대항력을 가지지 못하므로, 그 주택의 경매대금에서 임대차보증금을 우선변제받을 권리가 없습니다(95다55474).

확정일자를 받은 임대차계약서의 임대차목적물 표시에 아파트의 명칭과 그 전유부분의 동·호수의 기재를 누락했다는 사유만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규정된 확정일자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확정일자의 요건을 규정한 것은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담합으로 임차보증금의 액수를 사후에 변경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취지일 뿐, 대항요건으로 규정된 주민등록과 같이 당해 임대차의 존재 사실을 제3자에게 공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므로, 위와 같이 임대차계약서에 임대차 목적물을 표시하면서 아파트의 명칭과 그 전유부분의 동·호수의 기재를 누락했다는 사유만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2 제2항에 규정된 확정일자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99다7992).

반면 상가건물임대차에 있어서는 임대차계약서가 사업자등록의 첨부서류로서 공시되므로, 임대차계약서의 목적물의 표시가 건축물관리대장 또는 등기사항증명서상의 목적물의 표시와 정확하게 일치해야 하고, 건물의 일부분을 임차한 경우 그 사업자등록이 제3자에 대한 관계에서 유효한 임대차의 공시방법이 되기 위해서는 사업자등록신청 시 그 임차 부분을 표시한 도면을 첨부해야 합니다(2008다44238).

대항력은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친 다음날부터 발생합니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다음날부터 대항력이 생긴다’고 함은 다음날 오전 0시부터 대항력이 생긴다는 취지므로(99다9981), 다음날 경료된 저당권에 기한 매수인에게 대항할 수 있습니다. 

임차주택에 대한 주민등록 전입일자가 근저당권설정일자와 동일한 경우 그 대항력은 다음날 오전 0시부터 발생하므로 결국 근저당권자보다 늦게 되어 대항력을 취득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①2022년 9월15일 주택 인도와 주민등록을 마친 임차권 ②2022년 9월15일 설정된 근저당권 ③2022년 9월16일 설정된 근저당권 중 우열을 따지면 ②→①→③ 순입니다.

그러므로 임차권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취득한 후 일시적이나마 다른 곳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했다면, 대항요건을 상실함으로써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소멸하므로 주민등록을 옮기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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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록은?]

법무사·공인중개사
전 수원지방법원 대표집행관(경매·명도집행)
전 서울중앙법원 종합민원실장(공탁·지급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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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