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는 44년 푸르밀 설익은 오너 책임론

도련님이 말아먹은 우유 명가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푸르밀이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오너 2세 체제가 가동된 직후부터 휘청거리더니, 적자를 이겨내지 못한 채 사업을 접기로 한 것이다. 꼭대기에 앉은 황태자가 헛발질을 계속하는 사이 탄탄했던 회사는 순식간에 망가졌고, 피해는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 형국이다. 

유제품 전문 기업 푸르밀이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다. 지난 17일 푸르밀은 사내 이메일을 통해 400여명에 달하는 직원에게 사업 종료와 정리해고를 통지했다. 푸르밀 측은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돼 내부 자구 노력으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아봤다”며 “하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돼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고 밝혔다.

날치기
수순

잇따른 매각 무산이 사업 종료 결정을 내린 이유였다. 푸르밀은 경영난 해소를 위해 매각을 추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약화된 경쟁력 역시 푸르밀의 새 주인 찾기가 실패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유업계 경쟁사들이 건강기능식품 및 케어 푸드 등으로 외연을 확장하며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신경 쓴 데 반해, 푸르밀은 유제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사업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푸르밀의 갑작스러운 사업 종료 통보로 인해 그간 원유를 공급해왔던 낙농가와 협력업체들은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푸르밀과 자체 브랜드 상품 공급계약을 체결했던 대형 유통업체들도 대체 업체 물색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직장을 새로 찾아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푸르밀 임직원들이 가장 큰 피해자다. 임직원들은 임금 삭감마저 감내하면서까지 사측에 협조했지만, 이 같은 노력은 끝내 물거품이 됐다. 사측에서 통보한 사업 종료 및 정리해고일은 내달 30일이다.

몇몇 직원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사측의 일방적인 사업 종료 및 해고 통보를 저지하고자 결집하는 모습이다. 지난 20일 푸르밀 노동조합은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은 직원들의 가정을 파탄시키며 죽음으로 내모는 살인 행위”며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노조는 “소비자 성향에 따른 사업 다각화 및 신설라인 투자 등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했으나 안일한 주먹구구식의 영업을 해왔다”며 “해고 통보 전 임직원들과 일절 협의가 없었고 보상 방안도 없이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불법적인 해고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푸르밀의 사업 종료 결정을 오너 경영 체제의 실패라고 규정짓고 있다. 푸르밀의 가파른 하향세가 오너 경영 체제로의 회귀 시점과 맞물린다는 점에 주목한 시각이다. 사실상 ‘신준호·신동환’ 책임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책임은
누가?

푸르밀은 1978년 4월 설립된 롯데우유를 모태로 하는 ‘범롯데’ 기업이다. 롯데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건 신준호 푸르밀 회장과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간 얄궂은 인연에 기인한 탓이다.

신 명예회장의 막냇동생인 신 회장은 롯데건설·롯데제과 대표이사, 롯데햄·우유 부회장 등을 거치며 롯데그룹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하지만 신 회장은 1990년대 중반 형제 간 분쟁을 거치며 그룹의 모든 직위서 해임됐다.


이런 신 회장에게 롯데우유는 재기의 발판이 됐다. 신 회장은 2007년 4월 롯데햄으로부터 롯데우유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독자생존을 모색했고, 롯데그룹의 브랜드 사용금지 요청을 계기로 사명을 2009년 1월 푸르밀로 변경하면서 완벽한 선긋기에 돌입했다.

롯데라는 우산을 벗어 던진 푸르밀은 2009년부터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렸다. 무엇보다 2009년 남우식 대표이사를 내세운 전문경영인 체제가 신의 한 수였다. 남 대표 취임 첫해에 거둔 매출 2000억원 돌파와 분사 이래 첫 흑자라는 결과물은, 푸르밀의 홀로서기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후 푸르밀은 유업계서 확실한 영역을 구축해나갔다. 매출은 2012년 3000억원을 찍은 뒤 조금씩 내림세를 나타냈지만, 흑자 행진은 2017년까지 쉼 없이 이어졌다.

꾸준히 순이익을 발생시킨 덕분에 남 대표 취임 직전 해인 2008년 130억원에 달했던 결손금은 2012년부터 이익잉여금으로 전환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2017년에는 이익잉여금이 272억원에 달할 만큼 내실이 탄탄해졌다.

하지만 남 대표 체제는 2017년을 끝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유업계 경쟁 심화와 유류 소비 하락이라는 악재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라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까닭이다.

실제로 푸르밀은 남 대표의 마지막 임기였던 2017년에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 수준인 15억400만원으로 떨어졌고, 순이익은 10억원 밑으로 주저앉는 등 2008년 이래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창립 40주년을 앞두고 있던 만큼 눈앞에 닥친 수익성 악화를 이겨낼만한 탈출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일방적 사업 종료·해고 통지
후계자 오고 귀신같이 미끌∼

변혁을 꾀하고자 꺼낸 카드는 오너 경영 체제로의 회귀였다. 남 대표가 사임한 2017년 12월31일에 곧바로 신 회장이 후임 대표이사직을 넘겨받았고, 사흘 뒤 신동환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부자 공동 경영 체제가 갖춰졌다.

신 회장의 둘째 아들인 신 대표는 사실상 회사의 후계자였다. 롯데우유 계열분리 과정서 지분 100%를 인수한 신 회장은 인수 직후 우리사주조합에 10%가량을 주고 나머지 90%를 보유해왔다. 신 회장은 2012년 7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가운데 30%를 아들과 딸, 손자들에게 증여하며 승계 작업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말 기준 신 회장이 푸르밀 지분 60%를 보유한 최대주주고, 2대 주주는 딸 신경아 푸르밀 이사(12.6%)다. 신 대표는 지분 10%를 보유한 3대 주주지만, 두 아들인 재열·찬열군이 각각 보유한 지분 4.8%와 2.6%를 더하면 사실상 2대 주주다.

표면상 두 명의 대표가 지휘하는 형태였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푸르밀이 사실상 오너 2세 경영 체제로 진입했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31일자로 신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완벽한 단독 경영 체제가 확립됐다.

신 대표는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리자마자 곧바로 신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1998년 롯데제과 기획실에 입사해 롯데우유 영남지역담당 이사, 푸르밀 부사장 등을 거친 신 대표는 본인이 직접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등 신제품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이 같은 노력이 빛을 발하며 신 대표 취임 첫해에 신규 출시한 가공유 제품만 30개에 육박했다. 다른 유업체들이 신제품 출시를 머뭇거리는 모습과 사뭇 다른 행보였다. 신 대표가 불러온 신선한 바람이 회사 수익으로 연결되는 건 시간문제쯤으로 여겨졌다.

기막힌
내리막

그러나 신동환호 푸르밀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신제품 출시가 매출 확대로 이어지기는커녕 주요 실적 지표에서 급격한 하향세가 뚜렷해진 것이다. 

신 대표 취임 직전년도에 2575억원이던 푸르밀의 매출은 2019년 2000억원을 겨우 넘기는 수준으로 떨어진 진 데 이어, 이듬해 1800억원대로 주저앉았다. 푸르밀이 1000억원대 매출을 찍은 건 2009년(1700억원) 이래 처음이었다.

수익성 악화는 한층 심각했다. 2008년(영업손실 75억원)을 끝으로 흑자전환했던 푸르밀은 신 대표 임기 첫해였던 2018년에 영업손실 15억원을 기록하며 10년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2019년에는 영업손실이 전년 대비 6배 가까이 불어났고, 이듬해 113억원, 지난해 124억원 등 최근 3년간 연평균 영업손실이 109억원에 달했다. 2018년 580억원이었던 판관비 지출을 지난해 523억원 수준으로 줄였음에도, 같은 기간 매출총이익이 566억원에서 400억원으로 낮아지는 바람에 적자 폭이 한층 커진 모양새다.


거듭된 적자 행진은 제법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던 푸르밀의 재무상태를 급격히 악화시켰다. 신 대표 취임 직후부터 본격화된 현상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7년 102.8%에 불과했던 푸르밀의 부채비율은 2020년 223.4%로 두 배 이상 높아졌고, 지난해에는 급기야 507.4%로 치솟았다. 통상적인 적정 부채비율(200% 이하)과는 현격한 격차가 발생한 셈이다.

심각한 총자본의 감소가 부채비율 급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2017년 657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찍었던 푸르밀의 총자본은 적자 지속의 여파로 지난해 말 기준 143억원으로 줄었다. 흑자 행진에 힘입어 2017년까지 271억원이 쌓였던 이익잉여금이 실적 부진의 여파로 2020년에는 결손금 107억원으로 전환됐고, 결손금 규모가 한 해 만에 240억원까지 확대된 게 뼈아팠다.

총자본이 줄어든 가운데 총부채는 나날이 증가하면서 재무상태에 부담을 더했다. 2018년 572억원이던 푸르밀의 총부채는 4년 새 723억원으로 150억원가량 불어났다.

외부에서 차입한 자금이 확대되면서 부채가 덩달아 커진 형국이다. 2017년 202억원이던 푸르밀의 총차입금은 2년 만에 100억원가량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498억원으로 불어났다. 차입금 증가의 영향으로 재정건전성의 척도로 인식되는 차임금의존도(적정 수준 30% 이하)는 2017년 16.5%에서 지난해 57.5%로 올랐다.

지난해 말 기준 차입금 항목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총차입금의 89.8%가 1년 내 상환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단기차입금이 408억원으로 비중이 가장 컸으며, 장기차입금 중 만기도래를 앞둔 유동성장기차입금이 40억원이었다. 상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본전도
못찾고…

업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올해 초 퇴직금 30억원을 챙기는 등 오너 일가는 챙길 건 다 챙겼고, 정작 임직원들만 피해를 보게 된 양상”이라며 “신 대표가 경영권을 잡은 이후 업황이 딱히 좋다고 보긴 힘들었지만, 오너 경영 체제에서 회사가 급격히 기울어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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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