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갔다” 막 오른 ‘검수완박’ 2라운드

민주 VS 한동훈의 강대강 단두대 대치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올해 정치권을 뒤흔든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논쟁. 일명 ‘검수완박’ 갈등이 여전하다. 검수완박 1차전은 문재인정부 말기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강행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들어 시행령 개정과 권한쟁의 심판 등 국회 밖 ‘장외’에서 2차전이 발발했다. 민주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힘겨루기에 눈길이 쏠리는 가운데, 경찰의 공개 입장 표명으로 ‘입법부 대 행정부’ 대결구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검수완박법’의 골자는 검찰의 수사 개시 범위를 기존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부패 및 경제범죄(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로 축소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검수완박법을 발의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입법 절차를 매듭지었다.

엎치락
뒤치락

검수완박법은 지난 5월9일 정부 전자관보 게재를 통해 정식으로 공포됐다. 이날은 문재인정부의 임기 마지막 날이었다. 법안은 지난달부터 시행됐다.

이후 정권이 바뀌자 정부 입장이 정반대로 돌아섰다. 법무부는 지난 6월 “검수완박법이 내용뿐 아니라 절차상으로도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권한쟁의심판이란 국가기관끼리 권한의 존재 여부·범위 등을 다툴 때, 이를 헌재가 헌법 해석을 통해 심판하는 제도다.

우리 헌법에서 ‘검사’는 두 번 등장한다. 헌법 제12조 3항과 제16조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라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법무부는 “헌법 조문에 검사에게 수사권이 있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영장 신청을 위해선 수사가 필수 불가결하므로 수사권이 전제돼있다”는 취지로 주장해왔다.


국회가 만든 검수완박법이 수사권을 침해했고, 이는 영장청구권을 명시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리다. 

이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8월 법무부 시행령인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검찰 수사권 축소를 상당 부분 무력화했다. 한 장관은 법안 자구 중 ‘등’에 주목했다. 여러 가지 명분을 대며 관련 대통령령에 들어가는 ‘중요 범죄’를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종전에 삭제된 공직자·선거범죄 수사가 사실상 가능해졌고, 부패·경제 범죄 해석 범위도 더욱 넓어졌다.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이었다.

검수완박법 입법을 강행했던 민주당은 크게 반발했다. 소속 의원들 사이에서 한 장관에 대한 탄핵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다. 정계 일각에서는 “한 장관의 강경대응으로 ‘검수완박 2라운드’ 서막이 올랐다”는 평이 나왔다.

그동안 국회 대정부질문 등에서 설전을 이어오던 민주당과 한 장관은 헌재로 전장을 옮겼다. 헌재는 지난달 27일 권한쟁의 심판 공개변론을 열었다. 

헌재에서 검수완박법 관련 공개변론이 열린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7월 국민의힘이 “검수완박법안 처리는 국회법상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국회 등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제기했을 때도 헌재는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시행령 개정, 권한쟁의 심판…장외 2차전
‘입법 VS 행정’ 민주당-한동훈 힘겨루기


차이점이 있다면 당시 사건은 ‘꼼수 탈당’ ‘회기 쪼개기’ 등 입법 과정에서의 절차상 하자에 초점을 맞췄고, 이번 사건은 법 내용과 입법 목적의 위헌성까지 주요 쟁점으로 다뤘다.

이날 헌재 대심판정에는 법무부 측 대리인으로 한 장관과 검사들을 비롯해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이 출석했다. 국회 측에선 이광재 국회사무총장과 박경미 국회의장 비서실장이 피청구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대리인으로는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출신 장주영 변호사가 출석했다.

양측은 변론 전부터 치열한 샅바싸움을 벌였다. 각각의 주장을 반박하는 주된 논거를 재반박하면서 명분 쌓기에 열중했다.

한 장관은 변론 전 헌법재판소 청사 앞에서 취재진과 만나 ‘검수원복 시행령으로 위헌 소지가 해소됐다’는 일각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시행령을 개정한 것은 이 법이 유지된다는 전제로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라며 “시행령으로 위헌성과 국민 피해 가능성이 해소된 게 아닌 만큼 헌법재판과정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장 변호사는 개정법 시행으로 국가의 범죄 대응 역량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을 부인했다. 장 변호사는 “개정 법률에는 시정 조치나 재수사, 보완수사 요구 등 검사의 권한이 다양하게 규정돼있다”며 “법이 부여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면 국민 피해 발생 우려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공개변론은 5시간가량 이어졌다. 한 장관은 대심판정에 서서 “정권교체를 불과 24일 남긴 4월15일 민주당은 검찰 수사권 폐지 법안을 실제로 당론으로 발의했다. 새로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막기 위해 전례 없이 시간까지 바꿔가면서 국무회의를 열고, 정권 출범 딱 하루 전에 공포했다”며 “일부 정치인을 지키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추진한 입법이 정권교체 직전에 마치 ‘청야전술’하듯 결행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수사가 광범위한 영역에서 담당해온 다양한 국민 보호 기능에 어떤 구멍이 생길지 생각조차 안 해본 것이고, 이미 디지털 성범죄 수사, 스토킹 수사 등에서 예상하지 못한 국민 보호의 구멍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보탰다.

역공
맞불

반면 국회 측은 법무부가 청구한 권한쟁의 심판이 애초에 부적법하기 때문에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측은 “검찰사무를 관장하고 감독하는 법무 장관은 수사·소추권이 없기 때문에 검사의 수사권을 축소하는 법률개정행위에 대해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또 법무부가 ‘검사의 영장 신청권’을 규정한 헌법 조항들을 근거로 ‘검사에게 수사권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조항들은 공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한 헌정사를 반성해 무분별한 영장 남발을 막으려는 ‘국민의 권리장전’에 속한다고 역공에 나섰다.

국회 측은 “1954년 형사소송법을 제정할 때 권력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이 담당하는 논의가 있었으나 당시의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유보됐다”며 “권한 집중으로 인한 남용을 방지하고 수사와 기소 기능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입법 목적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수완박법의 제안·심사·상정 및 의결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헌법의 다수결 원칙과 국회법 규정이 모두 준수됐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에 이종석 재판관은 무소속 민형배 의원의 ‘꼼수 탈당’ 논란에 관해 “법률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가장행위는 효력행위로 인정하지 않는 게 법의 원칙”이라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중요 원리인 다수결 원칙을 위배한 게 아닌가”라고 질의했다.

국회 측은 “국회의원의 정치적 선택을 내심의 의사를 통해 법 위반 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정치인의)이합집산을 고도의 정치적 형성 행위로 이해하고 있다. 사법관계로 평가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이선애 재판관은 검수완박법으로 형사사법 체계에 공백이 발생했는지를 살폈다.

윤정부 출범 
알아서 기다…

차호동 대구지검 검사는 2020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무고·마약·조폭·보이스피싱 처벌이 감소한 그래프를 제시했다. 그는 “도둑을 못 잡으면 도둑이 없는 것 같은 착시효과가 생긴다”고 표현했다. 범죄가 줄어든 게 아니라, 적발 및 처벌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헌재는 이날 공개변론으로 변론 절차를 마친 뒤 심리를 거쳐 추후 선고기일을 지정할 계획이다. 헌재는 재판관 9명 가운데 5명 이상이 찬성할 때 인용·기각·각하 결정을 내린다. 


양측이 ‘총공세’를 펼치는 가운데 새로운 변수로 급부상한 것은 경찰이다. 경찰은 검수완박의 주요 당사자이면서도 윤정부 출범 이후 공식 발언을 삼가해왔다. 하지만 경찰이 이번 헌재 심판에서 법무부와 검찰 측 주장을 반박할 계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입장 변화가 주목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경찰에 법무부·검찰이 헌재에 낸 권한쟁의심판 청구서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다. 경찰은 이를 참고자료 형태로 작성해 기 의원에게 건넸다.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300페이지 분량의 정식 의견서를 작성, 헌재에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 의원실에 따르면 경찰은 의견서에서 법무부·검찰의 검수완박, 즉 검찰 수사권 대폭 축소에 대한 반대 논리를 조목조목 논박했다.

이를테면 경찰은 의견서에서 “검찰 수사권이 헌법에 보장된 권한”이라는 법무부와 검찰 주장을 “근거 없다”고 일축했다. 검찰에 수사권 축소를 거부할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요지다.

검수완박법 내용 가운데 ▲고발인 이의신청권 삭제 ▲수사개시 검사의 공소유지 금지조항 신설 ▲별건수사 금지조항 신설 등이 위헌적이라는 주장에도 일일이 반론을 달았다.

침묵하던 경, 이번엔 의견 표명 검토
검 수사권 헌법이 보장? 헌재 판단은?

또한 기 의원은 “법무부와 헌재가 경찰에 권한쟁의심판에 의견을 제출할 기회를 주지 않아 경찰이 세 달 가까이 의견을 낼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법무부가 권한쟁의심판 청구서를 경찰과 공유하지 않아 경찰이 의견서를 낼 수 없었고, 이에 기 의원이 법무부·검찰의 청구서를 경찰에 전해주고 나서야 의견서 제출을 추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침묵하던 경찰이 반기를 든 것은 검수완박법을 둘러싼 대립구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행정부 소속인 경찰이 ‘단일대오’에서 이탈하면서, 그간 법무부와 검찰이 짜던 ‘입법부 대 행정부’ 대치구도가 붕괴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대강 대치 속 새로운 변수가 떠오른 상황.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 어느 쪽이 승기를 거머쥘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법무부와 검찰 측에 대한 회의론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승리 가능성이 미지수인 데다, 설령 승리해도 가져갈 실익은 크지 않으리라는 관측이다.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달 27일 YTN <이슈앤피플>에 출연해 헌재 결정을 예측했다.

박 전 의원은 “개인적으로 민주당이 추진한 검수완박법, 그리고 그 추진 과정에 대해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법권 법률의 형성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헌재 입장을 보면 위헌 판결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앞서 헌재가 입법 절차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법률 자체의 효력은 인정한 판례가 있다는 점이 회의적 전망에 힘을 싣는다.

아쉬운 대로
명분 쌓기?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수완박법의 위헌 여부는 권한쟁의 심판에서 다룰 수 없고, 별도 판단이 필요하다는 진단도 나온다. 다만 정당성 획득의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소득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만약 법무부와 검찰이 승리한다면 ‘검수원복’ 시행령에 대한 반발을 원천 차단할 명분을 쥔다는 의견이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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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