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국가를 분류할 때 보수국가와 진보국가로 나누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 개념은 국제적인 범주의 의미가 아니라, 한 국가의 영역 안에서 정당이나 국민의 성향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의미의 용어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세력이나 진보세력의 힘이 한 국가를 벗어나 국제무대로 나가면 그 색깔이 정반대로 달라진다.
보수세력이 자국 내에서는 안정을 추구해야 하지만, 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자국을 지키기 위해 강한 힘과 함께 진취적인 전략을 가져야 하고, 진보세력이 자국 내에서는 진취적인 정책을 추구해야 하지만, 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자국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우호적인 전략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당도 보수정당은 국내 문제에서는 보수 성향을, 국외 문제에서는 진보 성향을 띠고 있고, 진보정당은 국내 문제에서는 진보 성향을, 국외 문제에서는 보수 성향을 띠고 있다.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은 국내 정책이나 정쟁 같은 문제는 보수적인 태도로 일관하지만, 북한이나 일본과의 갈등 같은 국외적인 문제는 매우 단호하고 과감해 오히려 진보적인 반면, 전통적으로 진보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내 정책이나 정쟁에서는 과감하고 도전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북한이나 일본 문제 같은 국외적인 갈등에서는 우호적이고 부드러워 오히려 보수적이다.
우리나라 근대 정치사를 봐도 보수정권 때는 한미동맹 강화와 자주국방 전략으로 북한을 압박했고, 진보정권 때는 대통령 3명이 모두 북한 최고 통치자와 만날 정도로 북한과 가깝게 지냈다.
그런데 중국과 패권싸움을 하면서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미국의 정당은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의 국제무대에서의 방향성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미국의 보수정당인 공화당은 국내 문제에서도 안정을 추구하고, 국외 문제에서도 가능하면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국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진보정당인 민주당은 국내 문제에서도 변화를 강조하고, 국외 문제에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으며 전쟁을 해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베트남 전, 보스니아 참전, 쿠바 공격, 시리아 내전 참전, 리비아 내전 참전 등 모두가 민주당 정권 때 일어난 전쟁이고, 공화당 정권 때 일어난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침공도 궁극적으로는 민주당이 지지해서 일어난 전쟁이다.
이것만 봐도 미국 민주당이 국외 문제에서 얼마나 도전적인 지를 알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전쟁물자 지원 및 전쟁에 적극 동조하는 세력이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라고 한다.
우리나라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 미국 진보정당인 민주당과 친한 이유와 우리나라 진보정당인 민주당이 미국 보수정당인 공화당과 친한 이유가 바로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한 국가의 영역을 벗어나 국제무대로 나왔을 때 우리나라와 미국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 세계는 타협을 통해 세계 질서를 바로 잡으려는 공화당 정권의 미국보다 전쟁을 해서라도 세계 패권국가가 되려고 하는 민주당 정권의 미국을 더 두려워하고 견제해왔다. 그런데 현재 미국은 민주당 소속 바이든이 행정부 수장이고, 입법부 수장이라 할 수 있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민주당 소속이어서, 전 세계는 지금 미국 진보세력의 움직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말이 중국과의 패권싸움이지 사실 미국은 중국과의 패권싸움을 핑계로 안보와 경제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전 세계를 미국 손아귀에 넣겠다는 속셈인 것 같다.
올해 들어 개최된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QUAD(쿼드) 정상회담, 그리고 최근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열린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을 비롯한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외교장관회의도 모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바이든 행정부의 의도가 깔려 있는 회담이나 회의라 할 수 있다.
미국 의회도 지난 3일 NATO와 러시아 사이에서 약 73년 가까이 정치적 중립을 고수했던 스웨덴과 핀란드의 NATO 가입 비준안을 민주당 주도하에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키면서 러시아를 압박했다.
그리고 지난주 ARF와 ASEAN 외교장관회의가 열리고 있는 시점에 대 중국 싸움닭으로 알려진 미국 권력 서열 3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대만, 한국, 일본을 방문해 태평양지역 안보동맹과 경제협력을 강조하면서 중국을 압박했다.
문제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런 일련의 미국의 공격적인 상황이 2018년 무역전쟁으로 표면화된 미·중 패권싸움에서 전쟁을 해서라도 중국을 이기겠다는 미국 민주당의 전략과 지지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혹시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이 오는 11월8일,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를 선출하는 중간선거를 염두에 두고 더 강하게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중 패권싸움의 격전지에 있는 국가들이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의 움직임을 더 주의 깊게 봐야할 이유다.
특히 한반도는 미·중 패권싸움의 격전지 중에서도 대만해협과 함께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핵폭탄을 안고 있는 곳이다. 이 같은 한반도 여건을 감안해 우리나라 보수정권인 윤석열정부가 미국 진보정권인 바이든 행정부와 친하다 해도 전쟁마저 불사하는 미국 진보세력의 패권싸움 논리에 절대 휘말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지난 3일 윤 대통령은 방한 중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약 40분 동안 전화 통화하면서 “양국 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을 발전시키기 위해 미국 의회(민주당)와 긴밀하게 협력하겠다”고 했다.
프놈펜에서 열린 ARF 외교장관 회의 참석하고 있는 박진 외교부 장관도 지난 5일 중국의 대만해협 군사훈련에 대해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은 용납할 수 없다”며 미국 바이든 행정부를 확실하게 지지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미국 민주당과의 어떤 협력이나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어떤 지지도 “한반도에서 위기 상황을 초래하지 않는 차원의 협력과 지지여야 한다”는 원칙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최근 미국은 인종차별, 낙태법 문제 등으로 양극화가 심하고, 트럼프와 그 추종자들의 대선 결과 불복종 시위까지 이어지면서 정국이 혼란에 빠져 바이든 대통령의 8월 첫 주 지지율이 아이젠하워 이래 최저치인 38%로 급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이 미·중 패권싸움의 격전지에 있는 국가들과의 안보동맹과 경제협력을 내세우며 중국을 압박하는 데만 주력하는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미국 진보정권인 바이든 행정부와 미국 진보정당인 민주당이 자신들의 진보 성향 역량을 국제 외교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국내 현안에도 집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보수와 진보 개념은 국제적인 범주의 의미가 아님을 미국 민주당이 깨닫기 바란다.
※ 이 기고는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