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독자들을 위해 일반인이 잘못 알고 있는 두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조선조 제 7대 임금으로 수양대군으로 널리 알려진 세조의 부인 정희왕후와 세조의 큰 며느리로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에 대해서다.
거의 모든 사람이 두 사람을 상반되게 알고 있고 사극에서도 역시 그런 식으로 다루고 있다.
정희왕후는 온순하기 짝이 없는 여인으로, 반면에 인수대비는 상당히 강직했던 여인으로 그리고 있는데 실상은 그 정반대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결정적인 단서로 그들의 시호를 제시한다. 먼저 정희왕후의 시호인 정희(貞熹)에 대해서다.
정희가 비록 여자 이름인 듯한 인상을 풍기지만 한자 정희는 ‘지조의 지존’이란 의미로 여인에게 특히 왕비에게는 파격적일 정도로 강직한 시호다.
반면에 인수대비의 인수(仁粹)는 ‘어질고 순수한’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인즉 천상 여자라는 이야기다. 실제 역사를 차근하게 살펴보면 인수대비는 여성이 지켜야할 도리를 밝힌 <내훈(內訓)>을 저술할 정도로 현숙한 여인이었다.
이에 덧붙여 중요한 사실을 밝히자.
대개의 사람들은 성종 재위 당시 사사된 폐비 윤씨(연산군의 생모)의 죽음에 인수대비가 관련돼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부분 역시 잘못으로 폐비 윤씨를 죽음에 이르도록 한 여인은 바로 정희왕후였다.
이제 정희왕후에 대해 접근해보자. 그의 행적 세 가지만 거론한다. 먼저 계유정란 당일에 일이다.
수양대군이 난을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하게 퍼지자 수양이 주저한다. 그 순간 정희왕후가 갑옷을 입히고 강제로 등을 떠밀어 난이 성공한다.
다음은 양잠과 관련한 일이다. 세조 재위 당시 궁궐에 잠실을 설치해 며느리인 인수대비와 함께 양잠을 실시하고 세조 사후 각도에 잠실을 설치해 백성들의 곤궁함을 덜어내는 데 일조한다.
마지막으로 아들인 예종이 급서하자 왕의 서열에서 밀려나있던 열두 살의 손자 잘산군을 보위에 앉히고 직접 정치 일선에 나선다.
이른바 조선조 최초로 등장하는 수렴청정으로 그는 자신의 손자인 잘산군으로 조선을 완성시켰다는 의미의 성종으로 이끌어낸다.
간략하게 그의 행적 세 가지만 거론했지만 그는 세조에게는 동반자로, 또 성종에게는 조력자로 그 역할을 충실하게 이뤄낸다. 정희왕후를 언급한 이유는 왕, 혹은 대통령 아내의 내조가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제 최근 윤석열 대통령 아내인 김건희가 이상한 처신을 두고 내조랍시고 떠들어대는 한심한 현상을 살펴본다. 지난 대통령 취임식 당일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개최된 뒷풀이에서 발생했던 건에 대해서다.
당시 윤 대통령이 술잔을 들고 잔을 비우려는 순간 그의 차가운 시선이 윤 대통령에게 쏟아졌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가리켜 레이저 눈빛이라 표현했는데, 현장에서 직접 보지 않았지만 술을 즐겨하는 필자는 그 눈빛의 의미를 알고 있다.
여하튼 그의 시선을 받은 윤 대통령이 술 마시려던 동작을 멈추고 술잔을 내려놓게 되는데, 이 대목을 가지고 호사가들이 내조라 강조하는 장면을 살피면서 그야말로 윤석열정권의 실체를 보는 듯한 느낌에 절로 실소가 흘러나왔다.
결론적으로 언급하자. 그 장면 앞서 언급했지만 전혀 낯설지 않다. 고주망태를 남편으로 삼은 여인들에게 물어보라. 바로 답이 나온다.
그의 눈빛은 음주 이후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처라고.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