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지부지’ 김건희 수사 맹탕 현주소

안 했나? 못 했나? 이대로 묻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통과되면서 검찰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동안 멈춰있던 대장동, 기획사정, 월성 원전 의혹 등 문재인정부 사건들에 대한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일가 관련 사건들에 대해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겠다”는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는 ‘이례적’ 판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가 받는 대표적인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연루 ▲허위 학력·경력 ▲모친 잔고증명서 위조 공모 등이다. 검찰과 경찰은 해당 의혹들을 수년간 수사하면서 김 여사를 한 번도 소환조사하지 않았다. 김 여사가 받는 모든 의혹이 무혐의 처분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피의자 신분
봐주기 수순?

송경호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조만간 김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수사 개시 2년이 지난 현재까지 김 여사에 대해 서면조사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2부(부장검사 조주연)는 지난 1월 말부터 윤 대통령의 임기 시작 전 김 여사를 소환 조사할 방침이었다. 당시 이정수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수사팀의 의견을 존중하자고 했으나 결과를 보고받은 김태훈 4차장 검사가 김 여사의 무혐의 처분에 반대해 결정이 보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검찰은 지난해 12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전문 시세 조종꾼(주가조작 선수) 이모씨, 투자자문사와 증권사 전·현직 직원 등 8명을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2009년 12월3일부터 2012년 12월7일까지 3년간 91명 명의의 157개 계좌를 이용해 가장·통정매매, 고가·허위 매수 등 이상매매 주문 7804회를 제출해 1661만주(654억원 상당)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인위적으로 주가를 상승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김 여사는 이 기간 도이치모터스 주식 146만주, 50억원어치를 거래했다.

검찰은 이후 전체 이상 거래내역을 담은 수사기록을 법원에 제출했고 이 가운데 김 여사가 DS·대신·미래에셋 등 증권사 계좌를 통해 수십차례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매매한 기록도 포함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김 여사가 사건에 깊게 연루된 정황이 짙어졌음에도 소환조사를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도이치 주가조작
허위 학력·경력

잔고증명서 위조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를 통해 김씨가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유의미한 진술을 확보하지 못해 어떤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정하지 못해 섣불리 소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김씨는 투자자가 아닌 ‘전주’로 보는 것이 옳다. 현재 영부인이 된 만큼 정치적 부담감이 대선 때보다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특수통 출신의 변호사도 “시세조종에 대한 혐의가 구체화되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을 것”이라며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수사는 사실상 무혐의로 끝났다고 보는 게 맞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수사팀은 김 여사를 주가조작 공범으로 의율 하기는 어렵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에 김 여사의 계좌가 사용된 건 맞지만, 이 자체로 김 여사가 주가조작 범행을 공모했다고 보기에는 연결고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통상 주가조작 범행 수사에서 전주를 처벌하는 핵심은 ‘공모’ 여부인데, 입증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주가조작 ‘선수’로 활동한 피의자는 대부분 기소되지만 돈과 계좌를 제공한 ‘전주’가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가 드문 이유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작전에 동원된 계좌는 157개, 계좌주는 91명으로 김 여사가 유일한 전주였던 것도 아니다.

특히 공모 입증의 열쇠를 쥔 권 전 회장 측이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도 김 여사의 무혐의 처분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권 회장 측은 올 초 첫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주가조작을 총괄했을 권 회장이 혐의를 부인하는 마당에 전주로 분류되는 김 여사의 처벌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게 수사팀 대다수의 의견이다.

서면조사만…
사건 끝내기

중앙지검 내부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취임 당시 공정성을 강조한 송 지검장을 바라보는 형사부 검사들의 불만이 상당한 분위기다. 최근 수도권 재경지검에 지난 정부에서 검찰 수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을 보좌하며 ‘조국 수사’ 등을 벌이다가 추미애 전 장관 시절 뿔뿔이 좌천된 ‘특수통’들이 요직을 꿰찬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중앙지검 한 관계자는 “살아있는 권력이 된 김 여사와 윤석열정부에 대한 수사가 어려워졌다는 게 내부 분위기”라며 “검찰 인사에 대해 형사·공판부 검사들의 불만이 많은 상황에서 송 지검장의 김 여사 사건 처리에 따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나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지검장은 대표적인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때 특수2부장을, 윤 대통령이 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2019년엔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중앙지검 3차장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지휘했다.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도 도이치모터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월 도이치모터스 SNS에 기록된 문화 후원 내역과 코바나컨텐츠의 행사 협찬 내역 등을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민주당은 도이치모터스가 2018년 3월14일 공식 SNS에 올린 게시물에서 2010년 ‘미스 사이공’을 시작으로 ‘샤갈전’ ‘마크 리브’ ‘반 고흐 인 파리’ ‘고갱’ ‘점핑 위드 러브전’ ‘마크 로스코’ ‘르 코르뷔지에’ 등의 행사에 후원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 행사는 모두 김 여사가 대표로 있는 코바나컨텐츠에서 개최한 것이다.

민주당은 도이치모터스의 행사 후원과 주가조작 수사 간 연계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민주당 측은 “도이치모터스의 후원이 진행됐던 기간 주가조작에 대한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은 2009년부터 2012년 사이 이뤄졌고 2013년 경찰이 이에 대한 내사까지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가 윤 후보가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지난해가 돼서야 권 전 회장을 비롯한 5명이 구속 기소되는 등 총 9명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안 대응 TF의 김병기 단장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이 한창이던 2010년~2012년 윤 대통령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등을 지냈다”며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이후 권 회장이 일사천리로 구속 기소됐음에도 김건희씨는 여전히 소환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코바나컨텐츠의 부당 협찬 의혹을 수사한 검찰은 김 여사에 대해 또 무혐의 처분했다. 코바나컨텐츠가 2016년 12월6일부터 3월26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한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 전’에 삼성카드 등 19개 기업이 부당 협찬을 했다는 게 고발 내용의 골자다.

고발인인 황희석 변호사는 지난해 9월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청탁금지법 위반·뇌물수수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코바나컨텐츠에 협찬한 기업들이 윤 대통령 혹은 동료 검사들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해당 전시회에 협찬금을 지급한 회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나 내사가 진행되고 있었는지 등을 조사해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부당하게 협찬금을 수령했는지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황 변호사는 주장했다.

검찰 수사팀은 1년3개월 동안의 수사 과정에서 협찬 기업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한편, 김 여사에 대한 서면조사도 진행했지만 윤 대통령과 김 여사 등 피고발인들에게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당시 대전고검 검사로 국정 농단 특검팀에 파견돼있던 윤 대통령의 신분을 고려할 때 해당 협찬이 공무원 직무상 받은 금품으로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김 여사의 어머니인 최은순씨는 지난해 12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검찰은 ▲2020년 3월 최씨를 동업자인 안모씨와 공모해 2013년 1~8월 4차례에 거쳐 총 349억원 상당의 신안상호저축은행 명의 잔고증명서(사문서) 위조 ▲위조 잔고증명서를 법원에 제출함에 따른 사문서 행사 ▲부동산을 차명으로 소유해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최씨를 재판에 넘겼다.


일반인이라면…
고심하는 검찰

최씨는 재판 과정에서 사문서 위조 혐의만 인정했고 ▲사문서 행사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최씨는 사문서 행사 혐의를 두고 ‘동업자 안씨가 자신에게 알리지 않고 2013년 8월7일 관련 재판에 위조한 잔고증명서 1건(100억 원 상당)을 제출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잔고증명서를 제출하면서 함께 법원에 제출했던 최씨 명의 사실확인서에 최씨가 직접 서명날인한 점 등에 비추어 최씨가 안씨와 공모했다고 봄이 옳다”고 판단했다.

최씨는 경기도 성남시 도촌동 부동산 차명 소유 혐의도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씨 부탁을 받고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김모씨와 도촌동 부동산 매매계약을 중개했던 이모씨 모두 해당 부동산의 실소유자가 최씨라고 증언했고, 최씨와 그의 아들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부동산 관련 대출금을 변제한 점 등을 지적하면서 최씨가 도촌동 부동산을 소유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 최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놀라운 것은 해당 재판에서 김 여사가 여러 번 언급됐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건 관련 인물들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최씨의 부탁을 받고 잔고증명서를 위조한)김씨는 2010년경 서울대 EMBA 과정에서 김건희를 알게 됐고, 2012년경 김건희의 전시회를 통해 최은순을 우연하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검경, 대질·소환조사 없이 무혐의
“정황 짙다” 지적 불구 불기소 무게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김 여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사세행은 “최씨가 허위 잔고 증명서를 김 여사의 회사 감사에게 부탁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이런 상황을 사전에 인지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3월 김 여사에게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사세행은 이 처분에 불복해 이의를 신청했고 경찰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했다.

김 여사의 과거 허위 학력·경력 기재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도 검찰처럼 사건을 무혐의 처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소환 없이 서면으로만 조사를 진행하면서 ‘무혐의를 전제로 한 조사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최관호 서울경찰청장은 지난달 23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김 여사에 대한 서면조사 방침을 밝히면서 “서면조사가 무혐의를 전제로 하는 건 아니다. 내용을 받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김 여사 허위경력 혐의를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김 여사 변호인 측과 조율한 뒤 서면조사서를 발송했다고 전했다.

최 청장은 “대학 관계자 입장도 다 조사했고 서면조사 단계가 됐다고 생각해서 질의서를 보냈다. 성급하게 한 건 아니다”라며 “제반 상황을 고려해서 했다고 이해해달라”고 부연했다.

앞서 지난해 12월23일 사립학교 개혁과 비리 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사학개혁국본),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김 여사에 대해 “시간강사와 겸임교수로 강의한 한림성심대, 서일대, 수원여대, 안양대, 국민대에 제출한 이력서에 20개에 달하는 허위사실을 기재했다”며 사기와 사문서 위조 및 동행사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김 여사는 이에 같은 달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과 학업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제 잘못이 있었다.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다”며 일부 의혹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했다.

남은 한 사건
마지막 기회?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한다고 하더라도 김 여사를 처벌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여사에게 적용 가능한 혐의로 형법상 사문서 등의 위조·변조, 업무방해가 꼽히는데, 두 혐의 모두 공소시효가 7년이기 때문이다. 수원여대 겸임교수 관련 의혹은 2007년으로 이미 10년도 훌쩍 넘은 일이고, 안양대 관련 의혹도 이력서 작성일이 2013년 6월이라 김씨는 1년 차이로 처벌을 피할 가능성이 크다.


<hounder@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건희 녹취 소송 현주소

김건희 여사가 지난 대선 기간에 <서울의소리> 측을 상대로 낸 1억원 손해배상 소송 사건이 조정에 회부됐다.

지난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01단독 김익환 부장판사는 지난달 24일 김건희 여사가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 및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를 상대로 낸 1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조정 회부 결정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보다는 합의를 통한 해결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할 경우, 재량 권한으로 해당 사건을 조정에 회부할 수 있다.

첫 조정기일은 오는 24일로 잡혔다.

김 여사 측은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이었던 지난 1월 <서울의소리>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서울의소리>가 유튜브에 올린 김 여사와 이 기자 간 통화 내용 중 법원이 공개를 허용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는 이유였다.

서울서부지법은 김 여사의 MBC 상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 김 여사가 연관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관련 발언과 일부 사적이거나 감정적인 발언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어 서울중앙지법은 김 여사가 열린공감TV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또 서울남부지법은 김 여사가 <서울의소리>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모두 일부 인용 결정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은 서울서부지법의 판단과는 달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 수사 중 사안에 대한 발언도 보도가 가능하다고 봤다.

<서울의소리> 측 변호인은 언론에 “<서울의소리> 상대 가처분 결정에서 방송을 해도 된다고 한 범위 내에서 방송했다”고 밝혔다.

반면 김 여사 측 변호인은 “<서울의소리> 상대 가처분 결정은 녹음파일 공개 이후 나왔다”고 반박했다.

<서울의소리>가 공개한 녹음파일은 MBC 보도 관련 가처분 결정에서 허용하지 않는 내용이 담긴 것이 분명하고, 이때는 <서울의소리> 상대 가처분 결정도 나지 않았던 시기라는 주장이다.
김 여사 측 변호인은 가처분 결정과 무관하게 해당 녹음파일을 공개한 데 따라 김 여사의 인격권 등이 침해됐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덧붙였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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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