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추가 기소의 기로에서 기사회생했다. 덩달아 수사심의위 소집으로 승부수를 띄운 김오수 검찰총장도 한 고비를 넘겼다. 청와대 역시 한 시름 놓게 됐다. 검찰만 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8일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 장관에게 ‘배임 교사’ 혐의를 추가로 적용하는 게 타당한지를 판단하는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이하 수사심의위)가 열렸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직권으로 수사심의위 소집을 결정한 지 49일 만이다.
장관 선에서
대전지검은 지난 6월30일 백 전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및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사장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수사팀은 당초 백 전 장관에게 배임 교사 및 업무방해 교사 혐의도 적용하려 했지만 대검찰청 지휘부와 의견이 갈리면서 수사심의위가 열리게 된 것.
수사심의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의 수사 과정을 심의하고 수사 결과의 적법성을 평가하기 위해 열린다. 각계 전문가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된 현안 위원 15명이 논의를 거쳐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다.
수심위 9 대 6 불기소 우세
만장일치로 수사중단 의결
백 전 장관의 배임 교사 혐의를 둘러싼 쟁점은 정 사장의 배임 혐의 증명 여부였다. 그의 배임죄 혐의가 성립하기 위해선 원전 보고서 조작으로 발생한 손해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야 한다. 여기에 정 사장의 고의성도 입증돼야 한다. 정 사장의 배임 혐의가 인정돼야 백 전 장관의 배임 교사 혐의도 인정되는 상황이었다.
비슷한 사례로 이명박정부 시절 자원외교 관련 사건으로 기소된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그의 혐의에 대해 “정책 판단의 문제였다. 배임의 고의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18일 수사심의위는 백 전 장관의 배임·업무방해교사 혐의에 대해 불기소 의견을 의결했다. 현안 위원 15명 가운데 9명이 불기소 의견을, 6명이 기소 의견을 냈다. 수사 계속 여부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수사 중단 의견이 나왔다.
수사팀은 원전 조기폐쇄로 한수원이 1481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백 전 장관에게 배임 교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백 전 장관 측은 원전 조기폐쇄는 정책적 판단이며, 이익을 본 주체가 불명확해 배임 혐의가 성립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수심위의 불기소 의결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당혹감을 표했다. 정 사장이 배임 혐의로 기소된 상황에서 배임 행위를 하도록 만든 백 전 장관의 교사 행위에 책임을 묻지 못하는 건 비상식적이란 입장이다.
검찰은 수심위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만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다만 김 총장이 직권으로 수심위를 소집한 것이기 때문에 이번 불기소 의견은 검찰이 따를 가능성이 높다. 백 전 장관에 대한 검찰의 추가 기소 가능성은 낮아진 셈이다.
백 전 장관에 대한 추가 기소가 불투명해지면서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수사는 그대로 종결될 전망이다. 검찰은 이미 기소된 백 전 장관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업무방해 혐의 사건 공소 유지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백 전 장관은 수심위 결과로 한숨 돌리게 됐다. 수심위에서 기소 의견으로 의결하고 실제 기소와 유죄 판결이 이어졌다면 그는 한수원의 모회사인 한국전력 주주들의 손해배상 청구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었다. 국가배상법에 따르면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을 경우 국가가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돼있다.
결정 49일 만에 늑장 개최
문재인정부 탈원전 면죄부
대전지검 부장검사들이 백 전 장관에게 배임 교사 혐의를 만장일치로 의결한 것을 막고 수심위 소집을 결정한 김 총장도 한시름 놓게 됐다. 통상 수심위 소집이 결정되면 1~2주 안에 열리는데, 이번 수심위는 두 달 가까이 진행되지 않으면서 무수한 뒷말이 나왔다.
실제 김 총장의 결정은 검찰 안팎에서 비판을 받았다. 수심위 소집이 사실상 ‘권력수사 방탄용’이라는 의구심이 나왔다. 또 김 총장이 취임 이후 맡게 된 첫 주요 사건을 직접 판단하지 않고 외부에 의견을 구했다는 점에서도 책임 회피 논란이 불거졌다.
이 같은 논란은 수심위의 불기소 의견으로 다소 해소됐다는 평이다.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정치적 중립성 논란도 일정 부분 가라앉게 됐다는 시각도 나온다. 다만 현안 위원들의 의견이 9 대 6으로 팽팽하게 갈린 점이 불안 요소다. 불기소 의견이 우세하긴 했지만 현안 위원 절반에 가까운 수가 기소 의견을 낸 부분에서 김 총장의 리더십이 상처를 입었다는 분석도 있다.
막혔다
수심위 결과로 정부도 부담을 덜게 됐다. 수사심의위가 기소 의견을 냈다면 백 전 장관을 움직이게 한 윗선까지 살펴볼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추가 기소에 부정적이었던 김 총장의 의견에 수심위가 힘을 실어주면서 결론적으로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도 나왔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당 의원 아내 현안 위원으로?
지난 18일 열린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배임 교사 혐의 추가 기소 여부에 대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 여당 의원의 아내가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날 수심위에는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의 부인인 오지원 변호사가 참석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 검찰개혁특위에서 활동 중이며, 오 변호사도 본인의 SNS 등을 통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판하는 글을 여러 차례 쓰기도 했다. 오 변호사는 판사 출신으로 현재 인권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선>